73화
9. 단서들
간밤의 사고 소식을 들은 지호의 얼굴은 과장 조금 더 보태 급성 균열에 혼자만 휘말린 사람 같았다. 고작 하루 뒤져 찾아낸 결과로는 고무적이지만, 아무튼 온종일 고생고생해 가며 얻은 결과였다. 지호는 박 팀장의 말에 현실을 외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뭔가 잘못됐을 거예요. 아무도 안 사는 곳이었다고요. 가스 폭발이라뇨? 가스도 안 들어가는 동네 아니었어요?”
“근방이 주인 없는 곳이다 보니 불량 청소년 무리가 간간이 아지트로 쓰고 있었나 보더군요. 다 쓰지 않은 부탄가스들이 쌓여 있었는데 날이 건조해서 사고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담배꽁초 때문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정확한 건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육안으로 봐도 이런 분석 결과가 나올 게 확실하…….”
“남은 게 있을 거예요. 큰 규모의 사고도 아니잖아요. 어제 우리 같이 봤었죠? 차나연 헌터님도 같이 찾았잖아요. 분명 상당한 양의 가루들이…….”
“압니다. 같이 봤잖아요. 원래 아침 일찍 감사 팀이 갈 예정이었는데……. 일단 다른 장소를 다시 찾아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차 헌터를 필두로 감지계 전공 헌터들이 함께하겠다고 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상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승찬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켜 가며 찾아낸 결과라 더욱 그랬다. 차라리 혼자 생고생하고 먼지 뒤집어쓰고 발품을 팔았다면 이렇게까지 아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호는 오늘도 승찬이 쉰다면서 젊은 애가 체력이 없다느니 투덜거리는 형철의 메시지를 받은 참이었던지라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저도 합류해서 찾아도 되나요?”
“어제야 누가 우겨서 좀 동행해 드렸지만, 안 됩니다. 근신 중이시라고요. 일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요. 센터도 나오지 말고요.”
“그치만…….”
“지호 씨는 쉴 줄 알아야 돼요. 안 그럼 임보현 씨 같은 사람으로 자란답니다. 자기한테 좀 관대해져도 괜찮아요. 아직 어리잖아요.”
“박 팀장님도 다크서클 발에 밟힐 때까지 무리하시잖아요.”
“그건 제가 헌터니까……. 그리고 우리 임시 헌터님은 아직 정식 헌터가 아니니까요.”
신체 계열인 지호가 당연히 박 팀장보다 체력이 좋은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그는 딱 잘라 지호를 밀어냈다. 근신 명령을 받았으니 따라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니 이길 방법이 없었다.
“정식 헌터 되면 이렇게 쉬라고 안 그러실 거죠?”
“그때는 쉴 시간도 없을 거예요. 지금 감사한 마음으로 휴식을 즐기라고요. 나가서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필요한 것도 좀 사고.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도 좋고요. 산책해도 괜찮고.”
여유 시간이 있을 때 시간 보낼 거리가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지호는 이마만 긁적였다. 영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를 보며 박 팀장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나중에 파트너 데려와도 정식 자격을 받는 데 결격 사유가 있다고 보고해 버릴 거예요.”
“치사해…….”
“쉬라고 할 때 쉬어요. 부탁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센터를 나와 발 닿는 대로 걷던 지호는 몇 달 전에 균열이 열렸던 지역 근처에 도착했다. 큰 타워 크레인이 몇 대나 설치되어 있고, 건축 기초 작업으로 한창이라 높은 가림막이 처져 있었다. 이렇게 빨리 복구되는 걸 보니 땅값이 비싼 지역임이 분명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으면 감지 파장을 쏘아 보냈던 훈련을 했던 탓에 지호는 습관적으로 안쪽을 확인했다. 미량의 이형 에너지 반응이 있다. 다만 정말로 미미한 양이라, 이 부근에서 마정석을 사용하는 도구를 썼을 것이라 추측될 뿐이었다.
아마 어젯밤에 찾아냈던 그곳도 이렇게 파헤쳐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가스 폭발…….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았다.
그 집단에서 알려진 유일한 각성자를 생각한다. 이동 능력은 흔치 않다고 했었다. 미등록 각성자가 아니라면 약간의 단서만으로도 어떻게든 추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공사장뿐 아니라 거니는 거리 사방에 이형 에너지의 미약한 흔적이 남아 있다. 도시일수록 그랬다. 마정석 도구가 그렇게 흔한 건 아닐 텐데. 관련 도구 사용 후 잔류 에너지가 오래 머무르는 걸까? 온통 지호가 알기는 어려운 분야의 이야기들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거기에 남은 건 물리적 흔적이 아니라 에너지의 흔적뿐이라는 거다.
어제 각성자가 아니었던 승찬마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던 푸르스름한 돌가루들이 필요했다.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을 텐데. 그것들을 어디서 구했는지 추적하고, 수상한 짓 벌이는 사람들을 잡아낼 실마리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또 열심히 도시를 뒤지며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이번에는 공교로운 사고 없이 흔적을 발견하길 바라며, 찾는 현장도 현장이지만 일부 증거품을 챙겨 놓는 게 좋겠다.
인천 관광버스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이층 버스가 신호에 걸려 멈추었다. 지호는 그 차량에 큼지막하게 걸린 광고에 눈을 빼앗겼다. 생존 가방, 잘 챙기고 계십니까? 하며 여러 가지 물품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급성 균열에 휘말릴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이런 소소한 준비물들이 사람을 살린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균열은 비슷한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일이 거의 없기에 한 곳에 균열이 열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한숨 돌리고 산다.
-미래 씨는 팀원들 생존 가방에 꼭 휴대용 라디오를 넣는다면서요? 필수템이라기보다 기피템인데.
-아니, 균열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간답게 살아남는 거잖아요. 만약 혼자 고립되면 어떻게 해요?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사람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뿐이면요?
-무서운 이야기를 하시네요. 혹시 균열에 갇히는 상황이 오더라도 꼭 팀원들과 함께 있으시길 바라야겠는데요.
-그리고 모든 괴물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랬어요. 균열 위키 보면 요즘 들어 새로운 괴물에 관한 정보가 많이 올라오거든요? 그중에서…….
어느 가게에 켜진 걸그룹 멤버 하나의 인터뷰가 시선을 빼앗았다. 저렇게 반짝이는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준비하며 산다. 혹여 균열이라는 재앙이 남이 아닌 자기를 찾아올 때면 살아남기 위해, 다들 준비하며 산다.
준비한다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건, 그곳에 고립되어 봐야 알게 되지만.
한때 지호의 생존 배낭에는 늘 휴대용 태양열 집열판이 들어 있었다.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인데, 배낭 뒷 판에 받침처럼 밀어 넣어 차곡차곡 쌓으면 제법 그럴싸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걸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균열의 태양은 힘이 없었고, 그걸 온종일 켜 두어 봤자 스마트폰 충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휴대용 태양열 집열판은 꽤 인기 있는 필수 품목 중 하나다. 겪어 봐야 알게 되고, 이런 잘못된 정보들은 늘 시정되어야 옳다. 차라리 흔들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종류의 충전원들이 좀 더 효율적일 것이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지호는 수원 부근에 균열 경보가 내려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1차 경보 발령. 급성 균열이 아니라서 경보는 시간차를 두며 천천히 상승할 것이다. 시간 내로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대피소로 들어가야겠지. 예상 균열 범위가 꽤 넓었다. 아수라장이 된 수원역 CCTV화면이 거칠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조금씩 균열에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균열이 주는 공포를 이겨 낸 것은 아니다.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 혹은 근처 상가 TV에 고개를 처박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안타까워하는 탄식. 지호는 머뭇거렸다. 지금 수원으로 가면 안 되나?
각성자가 균열 경계를 오가면 안 되는 삼 일간, 내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함부로 움직이면 또 혼날 것이 분명하고, 지호 역시 혼자 균열에 뛰어 들어가는 건 내키지 않았다.
또 그런 괴물들을 마주치면 어쩌나.
계양 균열에서의 영악하고 강력하던 용 비슷한 괴물이 떠올랐다. 그런 게 또 없으리란 법이 없다. 중간에 보였던 붉은 눈 괴물 역시도 두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지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아니다. 너무 두렵고 무서워 온몸이 다 떨려 오는 그 순간의 공포를 알기에,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서 돕고자 하는 약간의 선의를 가졌을 뿐.
경계 부근에서 사람들이 다급하게 뛰어나오는 장면을 촬영하는 리포터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여러 뉴스가 하던 방송을 순식간에 접고 긴급 속보를 내보내는 탓이었다.
“근데 지금 판교에 균열 하나 열려 있잖아. 수원이면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인천에도 송도 균열 열려 있던 상태에서 계양 균열 열렸지 않나? 이러다가 막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 열리고 그럼 어쩐다…….”
말이 씨가 된다며 불길한 소리 말라고 외치는 행인 곁에서 지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급성 균열도 아니고 일반 균열이라 심각한 사태는 없을 것이다. 또 수원 센터 헌터들이 그렇게 노련하고 사냥을 잘한다고 양솔 박사가 극찬했던 것도 생각나고, 요전에 계양 균열 닫으려고 지원 왔던 팀도 수원 팀이었다.
헌터 재원이 많으니 일반 균열 다 열리기 전에 사람들을 대피시킬 능력도 충분하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능력자들이 손을 합친다면…….
“어, 어어!”
그때 누군가 소리치며 화면을 가리켰다. 어느 리포터 뒤로 허공이 쩡,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전자 기기로는 채 전달하기 어려운 소리가 온갖 기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균열 경계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시작된 균열이다. 말도 안 돼. 지호는 벌떡 일어났다. 저건 균열 경계가 아니다. 중심이었다. 최근도 아니고 바로 어제 저걸 봤다. 바로 코앞에서!
“안 돼!”
지호가 소리치는 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상당수가 화면을 향해 뭐라고들 외치며 탄식하고 있던 탓이다. 허공이 갈라진다. 세상이 찢어지고, 온갖 색이 출렁이며 뒤집혀 본래의 빛을 잃어 갔다.
비명을 지르며 아무런 방향으로 돌아가는 카메라 저편에 누군가 잡혔다. 거의 울며 덜덜 떠는 모습이다. 그가 일으키고 있는 새하얀 일렁임은 지호 눈에만 보였다.
지호는 그가 뭘 하려는지 금세 알았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이형 에너지를 펼쳐 균열의 확장을 막아 내려는 것. 지호도 시도했고 성공했던 바로 그것.
됐어! 각성자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일반 균열이 급성 균열로 전환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니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지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에너지를 있는 대로 일으켜 파도처럼 밀려오던 균열 경계와 충돌한 각성자는 그대로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