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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69화 (70/260)

69화

“예? 어, 이형 에너지가 쭉 퍼지길래 일단 방벽을 폈는데요. 타인의 에너지에 간섭하면 충돌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해서…….”

지호는 말하다 말고 요란하게 기침했다. 박 팀장은 또 끓어오르는 화를 토해 내려다 참았다. 당장 급한 건 이게 아니었으니까.

“곧 다른 분들 올 겁니다. 너무 급해서 저 혼자 출발했잖아요. 뉴스 막았더니 sns스타라도 되고 싶었던 겁니까?”

“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겠어요? 당분간 근신입니다.”

“네? 아니, 아니요. 잠깐만요.”

“같이 왔다던 구조대원분께 상황 설명하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요.”

지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이동해 왔다.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박 팀장보다 험악한 인상을 쓴 이주리 헌터였다. 함께 온 이동 능력자가 주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다. 오랜만에 보는 이주원 각성자였다. 반가움을 표하기도 전에 야차 같은 표정의 주리가 소리부터 질렀다.

“이지호!”

지호는 벼락같은 노성과 함께 이번에야말로 요란하게 혼이 났다. 박 팀장이 참아 넘긴 분노를 참지 않은 주리는 온갖 잔소리를 퍼부은 다음 서늘하게까지 느껴지는 음성으로 으르렁댔다.

“이따위로 굴 거면 헌터 때려치워요. 규정이 왜 필요합니까? 남들은 병신이라 따르는 줄 알아요?”

“저는……. 빨리 와야 할 것 같아서…….”

“이주리 헌터. 내부 수색부터 좀 부탁합니다.”

박 팀장이 자기가 근신 처분을 내렸으니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고 주리를 달랬다. 노여움으로 불타던 시선이 돌아가자 지호는 시무룩해졌다. 균열이 퍼지는 건 막았는데. 사람들이 휘말리는 것도 막았는데. 당연히 칭찬받을 줄 알았기에 지호의 상심은 더 컸다.

주리는 신체 계열 헌터라 균열 확장에 관계없이 경계를 드나들 수 있었고, 지호는 출발하려는 주리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아까 들개가 경계 부근에 온 걸 봤어요. 공장 안쪽으로 들어갔고요.”

“확인.”

주리가 빠르게 균열로 뛰어들자 뒤에는 화낼 타이밍 놓친 박 팀장과 낯설지만 익숙한 얼굴의 이동 능력자만 남았다. 주리와 똑 닮았으나 성별 다른 그 능력자는 피곤한 얼굴로 바닥에 그냥 앉았다. 털푸덕 앉아 버리는 게 묘하게 익숙했다.

“누나 나올 때까지 제가 대기할게요.”

“매번 고생입니다, 이주원 각성자. 그냥 헌터 하는 건 어때요?”

“싫어요. 졸보라 그런 거 못 해요.”

“어차피 일 터지면 현장 오시잖아요.”

“제가 싸우는 거 아니고 누나가 싸우는 거잖아요. 자꾸 인력 빼 가려고 한다고 임 헌터님한테 신고해야겠다.”

“아니 저는 그냥 제안하는 거죠. 이주리 헌터 일 도우러 자주 뵙고 하니까…….”

“누나 때문만 아니었어도 균열 부근엔 얼씬도 안 해요.”

전에도 느꼈지만, 생김새만 닮고 표정은 정반대인 남매였다. 지호가 자기를 살피고 있는 것을 안 주원은 목덜미를 벅벅 긁더니 중얼거렸다. 입가에서 퍼진 이형 에너지가 지호에게 닿은 순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정도 크기 균열이면 정찰 금방 마치고 올 거니까 얼른 가요. 또 한소리 할 거 같으니까.

지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주원은 얼른 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좀 더 남아 있고 싶었으나 멀리서 사이렌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승찬이 상황 보고를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전화가 박살 나 승찬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아까 그 위치에 있을까? 지호는 머뭇거리다 땅을 박차고 위로 날아올랐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부근에서 균열을 구경하고 있던 민간인들이 너무 많았다. 급성 균열이라 열리는 속도도 빨랐고, 크기가 작아 내부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던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아차 싶어 황급히 근처 건물 옥상에 내려앉은 지호는 품을 뒤졌다. 급하게 나오느라 선글라스가 없었다.

다른 대원들의 선글라스야 기능성이지만 지호 것은 아니다. 일전에 계양 균열에서 뉴스를 탄 이후로 종종 지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뉴스며 신문이며 금방 내려가긴 했으나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사진과 영상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올라왔다. 결국, 지호에게 선글라스나 마스크는 필수품이 된 후였다.

너무 서둘렀다. 지호는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아래층에서 균열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로 슬쩍 끼어들었다. 차림새가 평범해 그가 헌터임을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구조대 차량이 지나가기 위해 사람들이 갈라지는 틈을 타 지호는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승찬은 보이지 않았다. 감지 능력을 펼쳐 사람들을 하나하나 인식하며 수색했지만, 균열 부근으로 혹여 감지 파장이 퍼질세라 능력을 넓게 펼 수가 없어 찾는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아까 균열이 폭발할 때 도망쳤을까? 그러면 균열과 반대 방향일 터. 열심히 추론해 사람들 사이를 걷던 지호는 익숙한 감각을 느꼈다. 승찬이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수색에 집중하던 것을 멈추고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든 지호는 무섭게 화가 난 승찬을 보곤 어깨를 움츠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수두룩한 것 같았으나 승찬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고 손짓부터 했다.

“일단 돌아가요. 헌터들도 출동했고 구조대도 왔으니.”

“아저씨도 균열 가 보시려고 한 거 아니었어요?”

“원래 같았으면 그랬겠죠.”

구조대가 균열 부근에 접근 금지 표식을 설치하고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까지만 보도록 허락하고, 승찬은 단호하게 말했다. 돌아가자고.

구경꾼들을 헤치고 돌아가는 길. 대중교통이 들어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도로가 통제된 상태라 둘은 좀 걷기로 했다.

박 팀장이 근신 내린 걸 들은 것도 아닐 텐데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들이라 지호는 입이 댓 발 튀어나와 툴툴거렸다.

“저거 제가 안 막았으면 완전 큰일 났을 건데. 균열이 엄청 커질 수도 있었다고요.”

“지호 씨한테 큰일이 났을 수도 있어요.”

“안 났으니까…….”

“헌터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 했죠. 지호 씨가 여태 임시 헌터인 이유는 파트너가 없어서고. 경험이 부족할 순 있어요. 하지만 그걸 이유로 계속 잘못된 행동을 하는 건 혼날 일입니다. 이번에야 운이 좋았지,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요. 저 균열이 터질 때 휘말려 안에 갇혔고, 그 안에서 혼자 괴물들과 싸워야 했을 수도 있어요.”

승찬의 분노는 조용하지만 싸늘했다. 지호가 자신을 임시 파트너니 뭐니 하는 모양새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이미 아는 것이다.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세요?”

“균열 확장을 막은 건 정말 잘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하나부터 아홉까지 다 잘못이에요. 혼자 움직인 것도, 헌터 측에 보고하지 않은 것도, 후속 조치 대신 본인이 칭찬받을 일을 했는데 칭찬해 주지 않는다고 화내는 것도요.”

“그건 그래도 제가 확장을 막았고…….”

“변명하는 건 좋지 않아요. 지금 해야 할 건 뭐죠?”

지호는 연달아 화내는 세 사람을 생각했다. 모두 걱정하는 부분은 같았다. 운 좋게, 우연히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이렇게 끝난 것이지, 사실 지호 역시 그가 그대로 균열에 휘말렸다거나 크게 잘못되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거란 사실도 알고 있다.

눈치를 보던 지호는 시무룩해졌다.

“잘못했어요. 혼자 앞으로 튀어나가고 그러면 안 되죠.”

“지호 씨의 보호자는 그만한 능력도, 경험도 충분한 사람이라 가끔 그런 돌출 행동을 했었죠. 하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좋지 않고, 저는 지호 씨가 그런 전철을 밟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한테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 기억하나요?”

지호는 고개만 끄덕였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어른을 곁에 둔다는 것. 어쩌면 그때 지호는 무의식중에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 필요할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저는 헌터로서 지호 씨가 내리는 결정들에 평범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내놓을 거예요. 사실 이번 일은 헌터로서도 썩 잘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균열이 퍼지는 걸 막았다니 정말 잘했어요. 그래도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했으면 좋겠군요. 지호 씨를 위해서 말입니다.”

능력이 되는 사람조차 홀로 움직이면 다친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그랬다. 승찬은 헌터들이 종종 보이곤 하는 기이할 정도의 희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말을 마무리했다.

“남을 도우려면 먼저 자기부터 챙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다치면 남이 무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많은 헌터가 종종 그 부분을 착각하는데, 그렇게 구해진다고 해도 미안함과 죄책감이 남을 뿐입니다. 부디 자신을 소중히 여겨요.”

“하지만 목숨을 구한다면 기쁠 것 같은데요. 미안하지만 기쁘고 뭐 그렇게…….”

“글쎄요. 저는 평생 그 미안함을 갚지 못할 것 같아 구조대원이 되었는데요.”

생각지 못한 대답에 지호는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 보니 늘 지호 이야길 했지, 승찬의 옛이야긴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군대에 있었을 때 처음 균열에 휘말렸다는 이야길 들었던 게 다였나. 지호가 눈치를 보자 승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듣고 싶어요?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닌데.”

“말해 주셔도 괜찮으면요. 좀 궁금한데요.”

“군에 있을 때 제 선임이 각성자였어요. 소대원들을 구하려고 죽었죠.”

사실 이 이야기는 잘 안 한다며 승찬은 머리를 긁적였다. 들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족도 친지도 아닌, 억지로 끌려간 군대에서 남을 위해 목숨 던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지적한 까닭이다.

“좋은 사람이었어요. 진짜 드물게 존재하는 좋은 선임이란 환상의 동물이었거든요. 훈련 중에 중대 전체가 균열에 휘말렸어요. 요즘도 군부대 부근에 균열이 종종 나타나죠. 그때처럼 혼란스럽진 않아요. 대처법도 확실하고 균열 관련 훈련도 빡세게들 받으니까. 근데 그때는 아니었죠. 그때가 그러니까 흔히들 혼란기라고 하는 2세대 땝니다. 각성자들끼리 모여서 작게 소모임 같은 걸 만들고 가시화되지는 않은 시기라 각성자였던 선임은 그냥 군대에 왔었다더군요. 대균열의 날에 가족들이 희생되는 건 피했는데 징집은 못 피했다나.”

당시에는 분류도 확실치 않아 그 선임은 자기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몰랐다고 했다.

“다만 신체 계열이었는지 몸이 튼튼해 훈련을 가뿐히 받곤 했고, 뒤처지는 소대원들 몰래 챙겨 가며 도왔어요. 당연히 다들 좋아했었죠. 균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요.”

“더 좋아해야 하지 않아요?”

“알다시피 총이 안 통하잖아요. 진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형 에너지 방어 막 같은 걸 갖고 있고. 겁에 질려서는 다들 갖고 있던 실탄 다 쏴 댔는데도 쓰러지질 않으니까, 각성자면 영화에서 그러는 것처럼 다 구해 주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저놈 잡아 달라고들 생떼를 썼죠. 열댓 명이 그렇게 매달려 대니 앞으로 나설 수밖에요. 착한 사람이었고, 모질지를 못했죠. 자기 살겠다고 물러날 줄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대균열 때도 자기가 다 막았었다면서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금세 밑천이 털렸죠. 당연한 일이었어요.”

고작 괴물의 돌진을 저지하는 거로 모두 소모되어 버린 실탄 앞에서 승찬의 선임은 결국 울었다고 했다. 헌터로 싸우는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은 사람이 괴물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을 리 없고, 그는 몇 번을 씹히고 패대기쳐지며 너덜거리는 상태로 괴물을 제압했다. 그러나 분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다섯이 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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