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간밤처럼 속이 안 좋은지 허옇게 질린 얼굴이지만 끝까지 할 말은 하는 게 승찬답다. 지호는 각성자가 되는 조건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었던 선량한 구조대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균열을 강제로 열고 싶어 해요. 근데 괴물이 아니고, 사람이더라고요.”
“가능한 겁니까?”
“제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그럴싸한 결과가 튀어나왔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가게 해 줄래요? 전화 받고요.”
승찬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지호의 번호가 뜬 핸드폰을 통화 상태로 돌리며 염려했다.
“그런 짓을 하는 자들이 사람이겠습니까? 괴물이라 봐도 무방하겠군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실은 훈련을 겸해서 많이 돌아다녔는데, 잡힌 게 여태 없었어요. 위에 보고하긴 했는데, 마찬가지로 비슷한 반응이 잡힌 적은 없대요. 놈들이 감지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거겠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래 봐야 사람인데, 균열에 있는 괴물들보단 덜 위험하겠죠.”
수화기와 정면에서 목소리가 두 번 울리는 동안 승찬은 그가 고갤 끄덕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이어폰을 연결하며 “가 볼게요.” 하는 짧은 말과 함께 지호는 훌쩍 뛰어 도약했다.
여전히 통신은 연결된 상태. 스피커로 수신음을 전환한 승찬은 오늘 근무하고 있을 대원 소수에게 상황을 전했다. 소규모 균열 조짐 있음. 이지호 헌터와 함께 상황 정찰 중.
득달같이 전화가 울렸다. 그러나 승찬은 지호의 임시 파트너고, 그의 상태를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오는 전화는 거절하며 그가 사정을 간략히 남겼다.
[헌터 백업 중. 통신 불가.]
지호가 정확한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승찬이 할 수 있는 것은 넘겨짚기뿐이었다. 전화 너머에선 바람 소리와 짧은 숨소리,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릴 뿐이다. 무슨 일이 있지는 않겠지. 그저 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고 싶어 남들을 밀치는 이들의 행렬만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여러 가지로 속이 좋지 않았다. 승찬은 벽에 기대어 속을 고르며 뉴스들을 확인했다.
이형 에너지를 측정하는 소규모 계측기를 취미 삼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몇몇이 sns에 이형 에너지 이상 반응 계측 결과를 올린 뉴스를 확인하기 무섭게 미친 듯이 문자가 왔다. 오는 메시지가 너무 많아 새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다음 메시지가 올 지경이었다. 승찬은 모르는 번호들로부터 오는 연락들에 당황했다. 뉴스를 터치하려다 새 메시지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폭주하는 메시지 란을 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균열 어플을 통해 온 메시지다. 주변 이형 에너지 수치가 이상 도를 초과하면 자동 실행되는 애플리케이션. 세부 계측기와는 당연히 성능 차이가 나지만, 요즘 핸드폰에는 이형 에너지 측정 장치가 기본으로 설치된다. 그리고 이게 실행되었다는 말은 즉…….
[아저씨, 뛰어요! 역 쪽으로!]
훈련받은 몸은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승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역으로 달리며 소리쳐 물었다.
“균열입니까? 지원 요청할까요?”
[지금 당장요!]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형 에너지 이상 반응은 균열 내부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제발 아니기를. 승찬은 이전 급성 균열에서 도망칠 때처럼 있는 힘껏 내달렸다. 또 다른 전화가 왔다.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지호의 전화를 통화 중 대기 상태로 돌린 승찬은 곧장 소리쳤다.
“주안 공단 방면으로 균열 발생! 계측기에 측정되지 않는 소규모 사이즈입니다. 바로 출동 바람!”
상대가 뭐라고 소리쳤으나 들을 시간이 없었다. 승찬은 그 전화를 끊고 지호 전화를 수신 상태로 돌렸다.
“지호 씨, 균열에서 멀어져요. 당장요!”
함께 도망치던 사람들의 걸음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승찬은 걸음을 멈추고도 바로 뒤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근처에 있던 학생 하나가 공단 방면을 손가락질했다.
“균열이잖아…….”
의아함과 안도감,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들을 더는 볼 수 없기에 승찬은 고개를 돌렸다. 일반적으로 마주치는 크기의 균열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고작해야 공단 몇 블록을 감싸는 크기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다. 지호의 속도라면 당연히 진작 저쪽으로 이동했을 터.
아까부터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승찬은 몇 번이나 지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이윽고 들려오는 낮은 으르렁거림. 그 직후 통화가 뚝 끊어졌다.
* * *
온갖 나쁜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연결이 끊겼으나 지호가 당장 괴물과 맞닥뜨린 것은 아니었다.
통화가 끊기기 전, 승찬을 두고 뛰어올라 이형 에너지 파장이 크게 퍼져 나오는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간 지호의 눈에 보인 건 얼마 전에 보았던 바로 그 기계 장치였다.
워낙 특이한 설비가 많은 공단이다 보니 크게 눈에 띄는 기계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감지계 능력자인 지호의 눈에는 그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형 에너지 파장이 너무 잘 보였다.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처럼 사방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던 기계는 지호가 도착하기 전에 폭발했다.
찰나였다.
부근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이형 에너지는 이 기계가 뿜어낸 것이었고, 지호를 비롯한 공단 건물 사람들 일부가 그 충만한 에너지 바다에 푹 잠겨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 세상이 쪼개진다.
이전에도 느껴 본 감각이었다.
중심부의 폭발로부터 뻗어져 나온 충격이 사방을 찢어발겼다. 중심으로부터 파도치며 뻗어져 나오는 이형 에너지를 느낀 지호는 습관적으로 방벽을 펼쳤다.
저 정도의 에너지 파장에 부딪히면 당연히 미친 듯이 고통스러울 터. 그러나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지호 뒤편엔 아직 덜 대피한 공단 사람들이 있었고, 개중 일부는 이건 챙겨 가야 한다고 손에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있어 도망치는 속도가 느렸다.
에너지 파장과 방벽이 부딪친다. 수십 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듯한 충격에 지호는 컥, 하고 속에서 올라오는 뭔가를 토해 내며 튕겨 나갔다. 불가항력이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분명 이형 에너지가 짙어진 곳을 따라 뻗어 나가려던 균열이 멈칫하더니 그곳에서 그대로 경계를 이루었다. 지호의 발치에서부터 서서히 색이 갈라진다. 명백한 균열 경계였다.
내부에 남은 사람이 더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충격에 굴러가 어느 공장 외벽에 요란하게 부딪친 지호는 충격에 신음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온몸이 미친 듯이 아팠다.
누군가 지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승찬 목소리다. 괜찮다고 말하려던 지호는 소리가 생각보다 멀리서 들린다는 사실에 구겼던 인상을 펴며 주머니부터 뒤졌다. 핸드폰이 없었다.
본인이 백업해 달라고 사람 놓고 와서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아까 부딪쳤을 때 충격으로 떨어졌는지 핸드폰은 균열 안쪽에 있었다. 누구한테 가져다달라고 할 수도 없다. 지호 뒤편에 있던 이들은 지호가 튕겨 나오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으니.
그는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균열 부근이라 그런 건지 사람들이 다 도망친 다음이라 그런 건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후자라면 좋을 텐데. 지호는 그가 부수지 못한 기기가 있을 균열 안쪽을 노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각성한 후 시력이 꽤 좋아졌는데도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다. 묘한 굴절 반응.
부근이 하도 조용했기에 지호는 그 소리를 들었다. 허리까지 오는 크기의 네발짐승. 개와 비슷한 형태지만 눈이 여섯 개다. 놈이 앞발을 들면 지호보다 훨씬 클 터.
으르렁하는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놈이 지호의 핸드폰을 밟았다. 콰직 부서지는 핸드폰 저편으로 승찬의 목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놈의 소리를 들었을까? 걱정할 텐데.
지호는 꼼짝 않고 멈춰 서서 기다렸다. 여태 배운 바에 따르면 괴물들은 균열 너머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균열에서 동일한 행동을 보이는지는 관측되지 못했다. 특히 지금 이 작은 균열 같은 인위적인 것은 더더욱.
혹여 놈이 균열 경계를 뛰어넘어 달려들까 봐 지호의 작은 어깨가 빳빳이 경직됐다. 처음 보는 놈은 아니다. 그래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들개는 다른 곳에서 나는 소리를 포착했는지 귀를 쫑긋 세우더니 이내 다른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균열 안쪽에서 괴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건 적신호에 가깝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터뜨린 균열이 자연 발생하는 균열과 마찬가지의 생태계를 보인다는 의미였으니.
당연히 각성자인 지호는 경계를 드나들지 못한다. 지금 안쪽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건 어떻게 취급될까. 급성 균열에 가까울까? 만일 그렇다면 악성만 아니면 좋을 텐데. 크기가 커지는 균열을 쳐다보고만 있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아는 에너지 파장이 지호를 감쌌다. 인식하기 무섭게 지호 옆에 박 팀장이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이지호 헌터, 괜찮습니까?”
“빨리 오셨네요. 관할 구역도 아닌데.”
“그게 중요해요? 대체 누가 혼자 움직이랬습니까!”
박 팀장은 버럭 소리쳤다. 헌터는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교육받지 않았느냐고, 정식 헌터도 아니면서 더더욱 문제 일으키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한참 잔소리를 퍼부은 박 팀장은 지호가 자꾸 다른 쪽을 보는 걸 보고 더 화가 났다.
“뭐 해요! 귓등으로도 안 듣습니까? 제정신이에요? 저기 휘말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완전 혼자 온 건 아니었어요. 근데 핸드폰이 부서져서 지금 저쪽에 연락할 방법이 없네요.”
“누구랑 왔는데요?”
박 팀장이 눈을 있는 힘껏 부라리며 지호를 채근했다. 승찬의 이름을 입에 올리려던 지호는 멈칫했다. 그와 함께 오게 된 연유와 간밤의 사정을 전부 설명해야 할 것 같단 기분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렇게 해야겠지만, 그건 승찬의 이미지에 썩 좋은 일 같지 않았다. 함부로 남을 집에 들인 것도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고.
“구조대원분이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걸 백업이라고 합니까? 지호 씨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잖아요!”
“제가 아무것도 못 하고 개죽음당했다는 것과 균열에 휘말려 사고를 당했다는 건 차이가 있지 않나요? 그걸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지호 씨!”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던 지호는 박 팀장이 버럭 소리치자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박 팀장은 한숨 쉬며 몇 번이나 얼굴을 쓸어내렸다.
임보현 헌터가 깨어나면 뭐라고 할까? 아마 당장 박 팀장 멱살을 잡으며 헌터 하라고 바람 잡은 게 네놈이냐고 그를 흔들어 댈 것이 분명하다.
물론 박 팀장은 억울하다. 그러나 당장 지호는 부천 센터 소속이고, 임시 헌터에 대한 책임은 박 팀장에게 있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 친구를 어떻게 하면 좋나.
또 혼이 날까 봐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걸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다. 균열에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고, 큰 사고가 없어 다행이었다. 박 팀장은 긴 한숨 끝에 질문했다.
“혹시 안쪽에 생존자 있는지 확인됐습니까?”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요. 균열 터질 때 뒤편에 사람들이 있어서 제가 일단 막았었거든요…….”
“막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