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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65화 (66/260)

65화

샤워를 마치고 센터를 나서자 어느새 어두워지는 하늘이 지호를 반겼다. 오늘은 모처럼 갈 곳이 있는 날이다. 아는 차가 센터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요. 먼저들 가 있어요.”

“오늘 차를 가져오셨다는 건, 술을 안 드시겠다는 말씀?”

능청스러운 지호의 질문에 승찬은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열어 주었다.

“사회인에겐 대리 운전이란 카드가 있는데요.”

지호가 옆자리에 타 축 늘어지자 검은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비교 대상이 보현밖에 없긴 했지만, 그 난폭 운전을 제외하고라도 승찬의 차는 승차감이 좋았다. 보통 운전대 잡으면 성격 나온다고들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매너 있는 태도를 유지하기도 하고.

“위치만 알려 주면 날아갈 수 있는데요.”

“벌써 추워졌잖아요. 감기 걸린다고요.”

“각성자가 감기요?”

“감기는 안 걸려도 코며 얼굴이며 새빨개지잖아요. 그렇게 날아오게 뒀을 때 제가 얼마나 잔소릴 들었는데요.”

“결국, 잔소리 안 들으려고 차 가져오신 거구나.”

“맞아요. 얌전히 협조해 주세요.”

따뜻한 공기에 뜨끈하게 데워진 시트. 느리고 조용한 음악에 피로 해소에 좋다는 디퓨저 향까지 곁들여지자 눈을 감지 않곤 못 배길 것 같았다. 지호는 그가 훈련실에서만 잠도 안 자고 내리 사흘을 훈련했단 사실을 깨닫곤 피곤의 원인을 깨달았다. 잠을 잤어야 했는데.

“한숨 주무세요. 차가 좀 막히는군요.”

“안 자도 돼요. 헌터잖아요, 저.”

승찬은 별다른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이곤 말았다. 차는 평소보다 좀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고, 느른해진 공기 속에서 지호는 결국 졸음에 굴복했다. 하루도 아니고 며칠씩 깨어 강도 높은 훈련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차는 멈추어 있었다.

지호는 번쩍 눈을 떴다. 주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면 심장이 철렁했다. 또 흙먼지 가득한 바닥에서 맨몸으로 균열을 헤맬 것 같은 불안감.

그는 가끔 꿈을 꿨다. 아직 아무 훈련도 받지 않았던 말랑말랑한 시절의 꿈.

“일어났어요? 오래 안 잤어요. 십 분은 잤나?”

“도착했으면 깨워야죠.”

“깨웠는데요.”

“입에 침부터 발라요.”

승찬은 사실 삼십 분 정도 지났다며 문을 열었다. 그렇지. 차 문을 여는 느낌이 났으면 바로 눈을 떴을 것이다. 솜씨 좋게 차를 멈추고는 자는 걸 놔둔 것이다. 이유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아주 자라고 고사를 지내는 수준 아니었어요, 막? 졸린 음악에 따뜻한 공기에…….”

“협회 측에선 지호 씨 좀 제발 재워 달라고 난린데요?”

“집에 가면 알아서 잘 자요. 제가 애도 아니고.”

승찬은 그 말에 토를 달진 않았다. 단지 지호가 집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며 난처한 미소를 지을 뿐.

“모처럼 회식인데 늦게 부르고!”

“일찌감치 데리러 간 거라 안 늦었어요.”

가게에 들어서자 환호성이 울렸다.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린 구조대원들이 얼른 와서 앉으라며 의자를 두드렸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승찬이 일찌감치 이야기를 전해 둔 모양이었다.

지호가 앉자마자 앞접시에 고기가 쌓였다. 익숙하고 야무지게 고기를 입에 밀어 넣는 지호를 보며 형철이 소리쳤다.

“왜 저번에 소방관은 국가직인데 균열 구조대는 국가직 아니냐고 말들 많았잖아요.”

모두가 신나고 기쁜 얼굴인 걸 보니 해당 안건이 통과된 모양이었다. 정치 쪽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해도 균열 구조대원들이 신이 났다는 것 정돈 알 수 있었다. 지호는 고기를 우물거리며 질문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겼나 보죠?”

“그럼요. 서울 쪽 구조대원들 장비가 진짜 좋거든요. 거기는 연구 인력도 많아서 시착 장비도 많고 뭔가 듣도 보도 못한 것들도 많고. 다른 나라랑 협업하는 것도 먼저 받아 보고 그래요. 저희도 이제 그거 공급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서명은 장인님이 자기가 최고라고 막 그랬었는데.”

“그분이 권위자시긴 한데,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연구원도 장인도 적다 보니까 수가 달리죠. 그런 분이 서울엔 열댓 명씩도 더 있다고 하더라고요. 금 박사인가 하는 분이 실질적으론 최고 권위자래요. 그러니 물량 부분에서도 따라가기가 어렵죠.”

“전국으로 서울 보급품 푼다고 하니까, 다들 사정 좀 나아질 거예요. 우리는 그래도 좀 괜찮지. 저기 수원 쪽만 가도 구조복이 괴물한테 씹혀 너덜너덜한 걸 돌려쓰고 그런다고 했거든요.”

오늘은 국가직 전환을 기념하는 회식이란다. 일전에는 다쳤던 구조대원들이 회복된 걸 기념한 회식이었고, 첫 회식 자리는 같이 밥을 먹는 사이가 된 걸 기념하는 모임이었던가.

의미야 붙이면 그만이고, 슬퍼할 일이 기뻐할 일보다 많으니 기뻐할 일에는 꼭 이름을 붙여 기뻐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따라 구조대원들은 종종 이렇게 회식을 한다고 했다. 있어야 할 얼굴이 보이지 않아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 급성 균열에서 목숨을 잃은 구조대원은 둘. 치명적인 상처로 사경을 헤매던 구조대원은 의수를 들어 보이며 팔은 한쪽 없어졌지만, 목숨은 부지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후련함마저 엿보였다.

그는 이번 회식을 마지막으로 구조대원을 그만둔다.

다들 밝은 척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신나고 즐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도저히 웃지 못해 구석에 앉아 술만 들이켜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러나 서로 웃으며 떠나려 하고, 웃으며 보내 주려 한다.

떠나는 삶도, 남는 삶도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했다.

“우리 오늘 제출한 부족 물품 리스트가 얼마나 길었던 줄 알아요? 캬, 진짜 헌터님은 상상도 못 할 거야.”

“그거 검토하고 준다는데, 서울 쪽 수준에 최대한 맞춰 준대요. 십 년 전에 소방관 국가직 전환될 때도 시끌시끌하더니 이번엔 그렇게까지 잡음 있진 않게 진행하려나 봐요. 그때 탁상행정이니 뭐니 아주 말 많았는데…….”

“아, 십 년 전 얘기하지 맙시다, 아재요! 우리 헌터님 그때 학생이었을 거라고! 그쵸? 한 잔 받읍시다. 오늘 그래도 날인데!”

술에 취한 구조대원 중 하나가 형철의 말을 뚝 자르며 끼어들었다. 지호는 난처하게 웃었다. 승찬의 손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안 돼요. 내일도 훈련 가신답니다.”

“아, 아! 이 재미없는 사람들 같으니. 난 내일 비번이란 말이에요. 한 잔만. 응?”

“제가 흑기사 하죠.”

승찬이 홀랑 잔을 비워 버리자 지호에게 술을 주고 싶어 하던 대원은 으악 하며 다른 술병을 찾아 헤맸다. 흥겨운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아, 지호는 승찬에게 눈짓했다. 한 잔 정도는?

물론 돌아오는 건 냉정한 거절이다. 승찬 역시 신체 계열 헌터인 지호가 술에 취해 큰일 날 염려는 비교적 덜하단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어른 감독하에선 술 한두 잔 정도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겠지.

그러나 여전히 매 순간이 불안한 지호를 보면, 할 수 있는 선까지는 그를 보호받는 위치에 두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승찬뿐 아니라 꽤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 덜덜 떨면서 사람들을 괴물 세력권 밖으로 밀어 내던 지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특히 이 자리에 모인 구조대원들은 계양 균열 당시 지호의 활약을 코앞에서 본 이들이다. 무궁한 호의와 신뢰, 나아가서는 경의로 어린 헌터를 대하는 이들뿐인 곳. 덕분에 지호는 그 어느 곳보다 구조대원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인 데다 하는 일마저 선한 사람들.

“그럼 월급도 오르고 그래요?”

“그렇죠! 제일 중요한 거지. 공무원 연금요!”

대균열의 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나 여전히 세상은 여러 재화로 돌아간다. 석유보다 더 귀하며, 그러면서도 세상 어느 곳에서든 채취할 수 있는, 그러나 그 누구도 손쉽게 얻을 수 없는 마정석이라는 새로운 재화가 나타난 지금. 연금 보장성은 옛날만큼의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제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기는 했다.

돈을 벌 수단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안전을 벌 수단은 더 줄었다. 연금은 이제 종신형보다는 보험형에 가까워졌고, 그중에서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연금만큼 신뢰성 있는 상품도 더 없었다.

“국민연금도 한때는 몇 년 후면 고갈이라느니, 우리 세대가 다 내고 받기는 못 한다느니 말이 많았는데 균열 이후로 말이 싹 들어갔잖아요. 사람들 삶은 팍팍해지고 피폐해졌을지 몰라도 국가 재정 상태는 생각보다 좋아졌대요.”

“마정석이 그렇게 비싼가요? 누가 사는 거예요?”

“목숨은 소중하고 돈만 많은 사람요.”

한때 석유 부자였던 사람들, 그리고 유명 기업의 사장들이나 재벌들이 마정석을 갈퀴로 끌어모았다. 각성자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있는 직업이 특정인 호위 업무가 된 건 그만큼 페이가 센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호위 일도 말이 좋아서 호위지, 균열 경보 뜨기 무섭게 대피하는 훈련들이 되어 있다 보니 그냥 내 보디가드가 더 세다는 힘겨루기 수준의 장식? 뭐 그렇게 되었대요. 급성 균열 터지는 상황에서야 도움되겠지만요.”

“그 어디더라, 전자 기기 만들던 유명 중국 회사 있잖아요. 거기 사장은 실제로 급성 균열에 휘말렸던 전적이 있어서, 거기서 살아 나오자마자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준의 각성자를 끌어모았다가 총살당했대요.”

지호는 기겁했다. 다른 이들은 놀라는 일 없이 이런 시대에도 공산주의가 굳건하다느니, 이런 시대라서 종교처럼 지도자를 떠받드는 머저리들이 많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술잔과 함께 나누었다.

담배를 뻑뻑 피우고 들어온 사람이 근처에 앉은 탓에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지호가 생각하는 신체 계열의 단점은 냄새를 너무 잘 맡는다는 거다. 개도 아니고, 유독한 냄새의 경우엔 이런 식으로 두통을 유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호 씨, 잠깐 나갈래요?”

“왜요?”

“머리도 좀 아프고 해서요.”

지호는 승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멀쩡해 보이니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건 아닐 터. 평소처럼 그를 위한 행동일 것이 분명했다. 지호는 모른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바람도 쐬러 가지 못 하는 어른이라니!”

“이해하고 보호 좀 해 주세요, 이지호 헌터님.”

“으, 아직 헌터 아니에요. 아저씨까지 그러지 마요.”

균열 구조대원들에게 아무리 임시 헌터라는 말을 해도 도통 들어 먹지 않아, 지호는 벌써 헌터님으로 통했다. 거의 대명사에 가까운 이름이라 그냥 헌터님! 하고 불러도 지호임을 알아먹을 정도다.

하지만 지호는 여전히 노란 명찰을 단 임시 헌터일 뿐이다. 합을 맞출 파트너를 찾지 못하면 그 상태는 계속 유지되겠지.

사실 착잡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찬바람 가르며 밖에 나온 뒤, 지호는 한참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승찬은 그냥 그러기 위해 나오자고 한 사람처럼 코코아나 홀짝였다. 술을 마시면 단 게 당긴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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