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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63화 (64/260)

63화

공원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치며 지호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지호는 다솔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일단 집에 들어가. 밖에 혼자 있다가 무슨 오해받을지 몰라. 내가 방금 가짜 치료기 부수고 온 길이거든.”

“알아. 지금 단톡 난리야. 널 본 사람도 있대.”

“다른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진 말고 그냥 신고해.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고, 음, 그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물 빠진 것처럼 색이 변하고 그런 걸 봤다고 해. 그러면 헌터들이 금방 와 줄 거야.”

“네가 신고하면…….”

“물론 좀 더 빠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범인들을 잡아 보려고. 부탁 좀 할게. 진짜 가야겠다. 안녕.”

지호는 다솔의 등을 급하게 떠밀며 훌쩍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고양이 같은 움직임이다.

사실상 방금 쓴 치유계 능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들을 강제로 눌러놓은 것과 진배없었기에 지호의 힘은 다른 방식으로 배출되었다. 신체 기능이 극도로 강화된 건 그 탓이었다.

균열 내부에서도 이렇게 뛰어다닐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호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빠르게 어둠을 갈랐다. 아까 도망간 사람들이 나간 방향이 이쪽이다. 차가 많지 않은 시각이고 어떤 차인지는 기억해 두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터.

오래 달리지 않아 지호는 정말로 그 차량을 찾아냈다. 번화가에서 벗어나면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논밭이 쭉 늘어진 동네가 있다. 그쪽으로 향하는 차는 더더욱 없었고, 지호의 추적은 손쉬웠다.

오래된 창고 앞에 멈추어 선 차에서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차 뒤에는 순도 낮은 마정석 든 상자들이 가득했다. 부딪힐 때마다 이형 에너지가 미약하게 퍼지는 바람에 모른 척하려 해도 그러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

창고는 어두웠다. 사용하지 않는 건물처럼 사방이 캄캄하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까지 꺼지자 주변은 거의 암흑에 가까웠고, 차에서 내린 수상한 무리 역시 손전등을 꺼내 발치를 비췄다.

어디로 가는 걸까?

지호는 수십 미터를 부웅 날아 바닥에 착지했다. 애석하게도 날렵한 동작이 아니었다. 둔하게 쿵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을 울리며 몇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렸다. 아차 싶었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은 사뿐히 잘만 떨어지던데 왜 비슷하게 안 될까.

어둡던 밤눈이 밝아지는 일은 없었다. 대신 지호는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마정석 가루를 쫓았다.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바닥에 빵 쪼가리 대신 마정석 가루가 떨어져 있는 꼴이라니.

발소리 죽일 것도 없이 밤 산책하듯 느긋하게 걷던 지호는 정석적인 이형 에너지 파장을 느꼈다. 안쪽에는 제대로 된 각성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제정신인가. 뭐 하는 놈인데 균열 여는 실험에 동참하지?

모든 각성자가 다 선량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되새기며 주기적으로 퍼지는 파장을 느끼던 지호는 그 파장이 꽤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었다고 했지.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이번에도 휘말리면 무작정 이동할 것이 분명…….

“악, 잠깐. 멈춰!”

지호는 뒤늦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 이형 에너지의 파장은 염동력 능력자들 특유의 힘이다. 그 어떤 능력보다 선명하고 강렬한 파장.

이동 능력자가 능력을 쓸 때 몸을 훑고 지나가는 바로 그 파장 아닌가.

왜 몰랐지? 눈치채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감지계 능력을 억누른 상태라 먼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으니까. 몸을 훑고 지나가는 에너지 파장이 어떤 능력에서 비롯되는지 단박에 체감하려면 보현 정도는 되어야 할 터였다.

지호가 맘먹고 뛰어왔는데도 남은 것이 없었다. 어두운 실내에 마지막 남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붙잡고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형 에너지를 끌어내려던 지호는 팔에 밀려오는 통증에 억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그사이 놈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진짜 협조하는 각성자가 있었다. 그것도 이동 능력자.

그 희귀하다는 힘을 이런 범죄에 쓰는 이유가 뭘까. 지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단 바닥에 떨어진 마정석 가루들을 거꾸로 쫓아 그들의 차로 돌아간 그는 차 안에 남은 상자와 그 안의 내용물을 촬영했다.

헌터 경찰로 신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더라. 지호는 한참 균열 어플을 뒤졌다. 신고 메뉴가 어디에 있더라.

이동 능력자가 흔치 않다고 했으니 등록된 각성자라면 그 사람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생김새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수상한 패거리와 비슷할 정도의 덩치를 가진 사람이란 것밖에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일반적으론 남자겠지만, 여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림자만 본 것이니 모든 가능성은 열어 두는 편이 옳았다.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묘한 무력감이 발목에 휘감겼다. 걸음이 무겁다. 피로하지 않았지만, 어깨는 묵직했다.

잡을 수 있었는데.

다 잡은 놈들이라고 느긋했던 게 패착이었다. 균열을 강제로 열 방법이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그걸 알고도 시도하는 놈들이 있단 건 더 충격적이다. 그들이 가져간 기계라도 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차 안에 남은 건 마정석 가루뿐이었다.

보현이 없는 집으로 돌아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푹 엎어진 지호는 짧게 신음했다. 통증이 느리고 확실하게 몸을 덮친다.

확실히 무리했다. 마지막에 이동 능력자와 함께 사라지는 이들을 잡기 위해 이형 에너지까지 쏘아 내려 했으니. 아무리 신체 능력에만 의존하려 해도 그러기 어려웠다.

물론 도움이 되지 않은 건 아닐 터. 사람들에게 마정석 에너지를 쐬게 하는 것과 균열을 여는 것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아직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균열 경계를 어느 정도 구현했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그들에게 이형 에너지 덩어리를 붙여 놓는 하찮은 짓 같은 게 아니라, 뭔가 좀 더 근본적인 것이…….

한밤에 신고했으니 접수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머릿속이 복잡했으나 지호는 정신 방벽을 쭈욱 끌어 올렸다. 불안과 걱정, 염려와 초조함을 저 너머로 감추자 그제야 조금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지호는 오래 잠들어 있지 못했다. 선잠에 빠질 무렵, 누군가 창문을 연 것이다.

창문.

열리면 안 될 것이 열린 탓에 인지가 조금 느렸다. 달조차 어두운 밤이었기에 꿈에서 깨어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서늘한 새벽 공기.

“일어나 봐요.”

아는 목소리였다. 꿈인가. 지호는 크게 하품하며 눈을 비볐다. 어렴풋한 빛을 뒤로하고 지호의 침대맡에 걸터앉은 건 이 집에 있는 게 이상치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언니? 어떻게 일어나서…….”

“혼자 그렇게 위험한 짓 하면 어떻게 해요.”

분명한 책망. 지호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보현을 바라보았다. 누가 누구한테 위험한 짓을 했다고 타박하는 거지. 지호는 나았을 리 없는 보현의 팔을 노려보며 인상 썼다.

“언니가 할 말이에요? 헌터는 혼자 행동하지 않는다더니, 언니는 매번 혼자 행동하잖아요.”

“전 헌터 그만뒀거든요. 저랑 상황이 같아요? 괴물도 없고 백업도 없이 범죄자들뿐인 현장에 뛰어 들어가서 뭐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요? 총이라도 쐈으면 어쩌려고?”

“한국에서 총은 무슨…….”

“균열 생성 이후로 각성하지 못했고 불안감은 느끼게 된 사람들이 무기 밀반입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성공한 사람도 당연히 많겠죠. 예전보다 총기 규제도 느슨해졌고, 실제로 균열이 생겨났을 때 불법 무기로 괴물을 저지하며 여러 사람 살린 일도 있어요. 총기 자체가 괴물에게 충격을 줄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거든요.”

여느 때처럼 평온한 어조로 지호가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를 꺼내던 보현은 총기나 그와 관련된 일화를 더 이야기하는 대신 지호를 꾸짖었다.

“지호 씨. 비록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다시금 생을 부여받긴 했지만,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요. 한 번 죽으면 끝이에요. 지호 씨에게 남들보다 조금 단단한 몸이 있다고 한들, 구멍 난 벌집이 된 다음에는 괜찮을 것 같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지호 씨는 괴물도 아니에요. 놈들만큼 단단한 갑각도, 호흡에 가까운 이형 에너지 방벽 같은 것도 없다고요.”

“그런 무지막지한 괴물들이 있어요?”

“봐요. 그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딜 혼자 뛰어 들어가요? 걱정했다고요.”

다친 팔을 깁스로 고정해 둔 탓에 보현이 손을 내미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지호는 그가 손을 내밀어 와 저를 붙잡는 듯한 기묘한 따스함을 느꼈다.

이런 방식으로밖에 위로하지 못하는 사람이겠지. 어쩌면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서 아픈 몸을 내던져 싸워 온 사람일 수도 있겠다. 곁에서 보아 온 바로는 그 편이 보현에게 어울렸다.

“수상한 사람들이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들을 이용했어요. 도망친 끝에는 이동 능력자가 있었고요.”

“범인들은요? 누군지 봤어요?”

“아뇨,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해서 여유롭게 따라갔었거든요. 근데 들어가니까 이미 이동 능력자가 다 데려간 다음이라…….”

키가 이 정도 되는 남자 같았다고, 지호는 자신 없어 하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과 비슷한 어둠이었다. 작아진 달조차 구름에 숨어 지독하게 새카만 어둠.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지호 씨가 다쳤다면 제가 어땠겠어요. 비록 제가 보호자로 미더운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이럴 때는 책임감을 느끼는걸요.”

지호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시무룩해졌다.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해서일까. 덜미를 잡았다면 정말 칭찬받았을지도 모르는데.

보현은 그런 지호를 빤히 바라보다 베개를 툭툭 두드렸다.

“다시 자요. 놀라서 이런 시간에 깨워 버렸네. 저는 병원에 들어가 봐야죠. 다들 놀라겠어요. 막 뛰쳐나왔거든요.”

“시간도 늦었는데 자고 내일 가면 안 돼요?”

“벌써 담당 간호사님을 꽤 곤란하게 한 것 같거든요. 아마 상태 확인하러 오셨을 거예요. 가 볼게요. 잘 자요.”

지호는 엉겁결에 누웠다. 보현은 한 손으로 지호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주곤 인사했다. 아쉽게도 보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전한 어둠 속에서 묘하게 졸음이 밀려와 지호는 눈을 감았다.

깨어났을 땐 해가 중천이었다. 보현이 이불을 덮어 줬던 상태가 아니라 들어오자마자 엎어진 자세 그대로라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까지 피곤했나? 잠버릇이 고약해진 것 같기도 했다.

눈뜨자마자 보현에게 연락했으나 그는 뭐가 그리 바쁜지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이런저런 검사니 뭐니 돌아다니느라 그런가. 하기야 지호도 그랬었다. 오래 아무것도 못 먹었을 테니 병문안이라도 가는 게 좋겠다.

그러나 죽을 사 들고 그의 보호자를 찾아간 지호를 맞이한 건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채 누워 있는 보현이었다. 지호는 당황했다. 분명 새벽에 보현과 대화했었는데.

“어, 저기 언니 다시 잠든 건가요? 일어났었거든요. 집에도 잠깐 들렀어요.”

“예?”

간호사는 무슨 이상한 소릴 하냐는 얼굴로 지호를 보더니 눈을 찡그렸다.

“글쎄요. 갑자기 눈을 떠서 밖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 시도를 했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는데, 돌아와서 혼자 저 바늘을 꽂고 카테터를 연결하고 하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그리고 간호사는 여러 기계가 보현의 상태를 측정하고 있었기에 그가 혹시 일어났다면 바로 신호가 왔을 것이란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지호의 표정이 어땠는지 그 간호사는 무심히 늘어놓던 말을 슬그머니 줄이며 지호의 등을 토닥였다.

“금방 일어날 거예요. 저분, 임보현 헌터잖아요.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위로는 손아귀 모래처럼 흩어졌다. 간호사가 떠난 뒤 지호는 사 들고 온 죽 그릇이 다 식을 때까지 한참 병실 앞을 서성였다.

물론 보현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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