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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60화 (61/260)

60화

“장비 점검차 왔었어요. 여기 마석 치료기랑 각성자용 장비들이 좀 들어와 있어서요. 겸사겸사 검사도 좀 하고요.”

지호는 명은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어쩌지 하고 눈을 굴렸다. 아까 끌려간 사람들이 좀 걱정됐다. 그가 사진을 찍지 말라고만 했어도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정말 핸드폰 물어 주지 않아도 되나.

물론 값을 물어 줘야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지호는 아직 자기 사유 재산이랄 게 마땅치 않았고, 보현이 쓰라고 준 카드가 있긴 해도 그건 보현의 돈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큰돈 나가면 어쩌지 싶은 생각부터 덜컥 들었던 탓이다.

헌터는 돈을 많이 번댔는데 요즘 상황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다. 돈이 아니고 죽을 자리를 버는 것 같기도 했다.

병원에 들어가 있는 설비에 대해 본인에게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던 명은은 눈치 빠르게 말을 멈추었다.

“왜요. 신경 쓰여요? 아까 그 사람들?”

“네? 음, 약간요. 그래도 제가 핸드폰 부순 건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찍혀 주게요? 지금 뉴스며 신문이며 얼굴 흐릿하게 나가는 거 알죠? 보도 지침 안 어겼다고 우겨야 하니까 그러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이런 상황에서 지호 씨 목격담이랑 사진이 딱 올라와 봐요. 빼도 박도 못하고 정보 팔리는 거라고요.”

“다 알아보게 나오던데요…….”

“그거야 자기 얼굴이니까 알아보는 거죠. 머리 풀고 뒤로 돌아봐요. 머리 끈 주고.”

지호는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돌아섰다. 길쭉한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를 솜씨 좋게 빗어 내렸다. 묘한 그리움이 드는 행위다. 부스스하고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묶어 주며 잔소리하는 건 언제나…….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지호는 황급히 눈을 깜빡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려는 노력은 다행히 빛을 발했다. 두상에 딱 붙게 머리를 양쪽으로 땋아 내려 뒤쪽에서 합쳐지도록 묶어 내린 머리 모양. 누가 봐도 손에 닿는 대로 대충 잡아 묶은 머리와는 다르다. 명은은 뿌듯한 얼굴로 지호를 다시 돌려세우며 양옆을 확인했다.

“좋아, 좋네. 이렇게만 해도 못 알아볼 거예요.”

“설마요…….”

“진짠데. 내기할래요?”

명은의 묘한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일까. 둘은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자판기 코코아를 마시며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구경했다.

“어, 저기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나온 여성에게 우르르 다가갔다. 지호가 항상 그러하듯 정수리 부근에 머리를 올려 묶은 것 외에는 남들과 큰 차이 없는 사람이다. 대여섯이나 되는 사람들이 둘러싸자 여자는 당황해 걸음을 멈추었다. 한 명이 묻는다. 이지호 헌터님 맞죠?

아니라고 대답하는데도 두어 명이 사진을 찍었다. 여자는 화를 내며 이봐요! 하고 소리를 쳤으나 절반은 도망가고 절반이 여자를 막는다. 용의주도한 움직임이었다.

“아니 저게 무슨…….”

“지호 씨가 맞으면 땡 잡은 거고 사진 비싸게 팔 수 있는 거고. 아니어도 못 잡으면 처벌하기도 어렵죠. 잡아도 무슨 죄목으로 처벌해야 할까요? 지금도 유튜브 방송하는 BJ들이랍시고 밖을 다니면서 허락도 안 받고 사람들 얼굴 막 찍어 내보내는 사람 천진데.”

한 번을 봤을 때는 설마 싶다. 그러나 두세 팀이 나오는 사람마다 붙잡아 그러고 있는 모양새를 보자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건 옳지 않아요.”

“세상 모든 일이 옳을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은 특히 그렇죠. 이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거예요. 각성자 특수 병동 있는 병원 앞마다 다 저런 꼴일 거고요. 그걸 지호 씨가 다 막을 수는 없어요.”

“왜 처벌이 안 돼요? 아까 그 사람들은 끌려갔는데.”

“진짜 지호 씨를 찍어서 그럴 수 있었던 거죠. 다른 사람들은 도움 청할 새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잖아요.”

“하지만 진짜 도움이 필요한 건 저보다는…….”

“그렇죠. 헌터들에겐 이제 그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는 제각기의 방법이 생겼네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아니겠죠. 그러니 범인들에게도 그들에 걸맞은 대응법이 필요할 거예요. 그래도 머지않아 경찰이 올 건데…….”

“저쪽 가드분들한테 도움 청하면 안 돼요?”

“저분들이 움직이면 무력 진압이라 안 돼요. 각성자들이거든요.”

“어, 그럼 아까는요?”

“헌터한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거랑 다름없잖아요. 현행범인걸? 그거랑은 다르죠.”

병원에 각성자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지호의 표정 변화가 재밌었는지 명은은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병원 전체를 얼추 가늠했다.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인원이 모여 있는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죠. 각성 조건을 보면 각성자가 엄청 나쁜 놈일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지만,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면 생각도 좀 달라지고 인생의 방향도 좀 바뀌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사고가 없던 것도 아니고요. 난리 피우는 사람 제압하는 건 한두 명 힘으론 어려워요.”

사이렌 소리가 평온한 병원 앞을 쨍하게 울리며 다가왔다. 아마 중간부터 사이렌을 켠 모양이다. 지호의 예민한 청력에도 뒤늦게 잡히는 것을 보면.

난리를 피우던 사람들이 붙잡혀 갔다. 경찰이 쓰는 독특한 도구에서 이형 에너지가 번쩍 쏘아져 나가는 것을 본 지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평범한 사람들까지 손쉽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봐요. 금방 잡혀가죠? 저거 클라우드까지 털어야 할 텐데. 그래도 오래 난리 피우진 않아서 다행이에요. 사람들 지나다닐 때 불편했을 거라고요.”

“금방 잡혀서 다행이긴 하지만……. 왜들 저런 짓을 하는 걸까요? 제 사진을 찍는다고 얻는 게 뭐가 있는지…….”

“중국에서 비싸게 살걸요? 다른 나라도요. 그렇게 팔려 나간 개인 정보들을 통해서 브로커들이 연락 오는데, 진짜 억 소리 나는 금액을 부르더라고요. 가끔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긴 있어요. 그걸 비난할 수는 없죠. 없이 살아 본 사람들은 특히 그래요. 각성하고 헌터가 된다 한들 아무튼 차근차근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단계를 건너뛸 방법이 있다면 누군들 거부하고 싶겠어요.”

“장인님은 방송도 나오고 그러시는데, 여기저기서 연락 많이 받으시겠죠?”

명은은 대답 대신 크게 웃었다. 왜 웃지. 우스운 질문을 한 건 아니었는데.

한참 웃느라 대답을 보류한 명은은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닦아 낸 다음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의문 가득한 지호의 시선을 받으며 손목시계를 위로 세운 명은은 화면 위를 몇 번 조작했다.

지호는 화들짝 놀라 물러나기까지 했다. 마법처럼 홀로그램이 펼쳐졌고, 삼십 센티 크기 정방형 상자 안에 실제 같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서명은입니다. 한국의 핵심 기술 개발 팀 소속이었죠. 최근 저를 귀찮게 하는 분들이 많아서 하는 말인데, 또 연락 오면 그쪽 국가로는 기술 지원 안 가요. 관련 교류도 끊어 버릴 거고요. 저뿐만 아니라 이쪽 기술 팀에 손대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생각 있는 사람이 알아서 연락할 거니까 연락처나 놓고 꺼져 버려요.

화면 속 명은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항의하며 일어났다. 다리를 딱 꼬고 앉은 명은은 누가 뭐라 하건 상관없다는 얼굴로 귀를 후비다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뭔가 날아간 것 같은데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모욕적인 태도에 열 받은 누군가가 삿대질을 일삼자 명은은 생긋 웃으며 손뼉 쳤다.

-와, 축하드려요. 일본 대표세요? 저희는 일본과는 기술 교류를 하지 않을 예정이랍니다. 앞으로도 계속요. 또 교류 중단을 원하는 다른 국가가 있으신지?

제일 크게 소리치던 중국인이 입을 다물자 화면 속이 급작스럽게 고요해졌다. 어물거리는 몇 사람이 예의 바르게 항의했으나 명은은 어깨를 들썩이며 어쩌라고요, 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회담장 비슷한 풍경 속에서 오로지 명은과 기술자들만이 태연했다.

“언제예요?”

“음, 한 삼사 년 전인데요. 일반에는 공개된 사항이 아니라서 처음 보죠?”

“이래도 되는 거예요?”

“마정석 관련 핵심 기술을 처음 상용화한 게 우리거든요. 그러니까, 마정석을 추출하는 기술 자체 말이에요. 다른 나라들보다 일반 사용률도 높고, 마정석 적용 기술도 훨씬 앞서 있는걸요. 운이 좋았죠. 고순도 마정석을 가진 괴물을 잡을 수 있는 실력 있는 헌터들이 있었으니까요.”

명은은 홀로그램 재생 화면을 끄며 수줍게 웃었다. 방금 화면 안에서 건방 떨던 모습이 생각나 지호는 좀 재밌단 생각을 했다. 아마도 명은은 지호 앞에서는 좀 어른스럽고 싶은 모양이다.

앳된 외모와 다른 사람들이 명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장인’이라는 이름보다는 보현과 마찬가지로 멀지 않은 언니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보현 덕분에 지호에게 친근감을 가진 까닭이겠지만.

“헌터 일 안 해도 할 일 많아요. 보이죠? 치유계 능력도 있으니 간호사 일도 할 수 있을 거고, 신체 계열을 비롯해 다른 능력도 많다고 들었으니 가드 일도 전혀 무리 없을 거고요. 사실 이쪽이 수요가 제일 많아요. 돈 많은 분들은 언제든 강한 보디가드를 꿈꾸는 법이라서요. 나중에 단기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해 봐도 좋을 거예요.”

지호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명은은 아무래도 헌터가 아닌지라 보현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헌터가 아닌 다른 길을 꾸준히 권하고 보여 주고 알려 주는 것.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혹시 필요하게 되면 물어볼게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사람들 구하는 일 쪽이 좀 더 끌려요. 참, 보현 언니가 공방에서 새 도구를 받아 왔었던 걸 봤는데요. 물어보니까 헌터들한테 아직 배정된 물건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시제품 테스트는 언제나 상황에 대처할 능력 있는 노련한 사람들의 몫이거든요. 그래서 임 헌터가 제일 자주 도와줘요. 안정성이 확인되면 헌터 협회로 일부 제공하고, 팀 단위로 사용해도 괜찮다고 판단되면 양산에 들어간답니다. 시제품 테스트 도와주게요?”

예전에 해 봤지만, 썩 도움이 되지 않았던 터라 지호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 소심한 경험담을 전해 들은 명은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전에 고출력이 문제였던 도구들을 아무렇지 않게 다뤘던 걸 본 적이 있긴 했다.

“균열에 들어갔을 때 마정석으로 만든 것들 하나하나가 생각났다고 다른 분들이 많이들 그러셨어요.”

“그쵸. 특히 신체 계열 분들 좀 자유롭게 싸울 수 있게 무기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거든요? 지금은 백업 정도나 하고 보조하는 게 전부잖아요. 들고 뛰든가…….”

명은은 보현에게 주었던 광선 검 비슷한 것을 구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중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간의 휴식이었을까. 병원 부근이 조용해진 후에도 사는 이야기들, 간단하지만 각성자가 아닌 사람과는 할 수 없는 대화들을 나눈 두 사람은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음을 알았다.

“음, 오래 못 있어요. 정비가 빨리 끝나서 좀 여유가 있긴 했는데, 이젠 가 봐야겠네요. 지호 씨는 어디 갈 거예요? 퇴원했잖아요.”

“엄, 구조대분들한테 가 볼까 했는데요…….”

“악성 균열 닫히고 막바지까지 일들 하느라 아마 뻗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송도 쪽은 일반 균열이라 급한 것도 없고 구조 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지금이 딱 다 같이 휴식 시간 가질 때거든요.”

“엇, 어떻게 아세요?”

명은은 씨익 웃으며 지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서명은이에요, 서명은. 그쪽으로 들어가는 장비 기초 설계자라고요.”

구조 차량에 달린 장비들을 비롯해 여러 가지가 다 자기 손을 거쳤다고 자랑을 한참 떠들어 댄 명은은 정말로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다급하게 누군가를 호출했다. 피로한 얼굴로 이동 능력자가 나타난 건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명은 씨, 저 택시 아니에요…….”

“미안, 미안해요! 생각보다 너무 늦어서. 아무튼, 지호 씨 나중에 또 놀러 와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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