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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59화 (60/260)

59화

“언니 나 이제 핸드폰 있어. 내 거 번호 줄게.”

“정말? 샛별이 핸드폰 생겼구나. 잘됐다.”

“균열 어플도 잘 쓸 줄 알아. 언니는 할 줄 알아? 내가 가르쳐 줄게!”

“어, 가르쳐 주면 고맙지. 근데 아빠가 병원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계시잖아. 샛별이 병원 가야지.”

“아픈 데 없는걸? 언니가 치료해 주면 되잖아!”

“아니야. 아직 제대로 할 줄 몰라서 안 돼. 언니 정식 헌터 되고 나서는 해 줄 수 있으니까 그때 도와줄게. 얼른 아빠랑 병원 가야지.”

한참 지호를 붙들고 실랑이하던 샛별이는 아빠의 엄한 목소릴 듣고 나서야 손을 놓았다.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긴 하지만, 여긴 균열이 아니었고 샛별이의 보호자도 지호가 아니다. 지호는 아이와 눈을 맞추어 몸을 수그린 채로 웃었다.

“완전히 다 나아서 병원 안 가도 된다고 하면 그때 언니랑 놀자.”

“반짝반짝도 하고?”

샛별이가 뭘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뉴스에서 다루는 지호의 순간 포착 비슷한 순간을 칭하는 거라면 이형 에너지 방벽이거나 뭐 아무튼 뭔가겠지. 지호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샛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때까지 병원 열심히 나오고. 아빠 말 잘 듣고!”

“언니도 무리하지 말고. 음, 심심하면 놀러 와. 나 이제 글자 많이 읽을 수 있어!”

샛별이는 아빠에게 돌아가 손을 붙잡고도 아쉬운 듯이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지호는 샛별이가 병원에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 붙박인 듯이 서 있었다. 그립고도 아쉬운 기분.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함께한 것인데도 다른 누구보다 반가운 만남이라 우스웠다.

어쩌면 기대하는 바가 없는 관계라 그럴 수도 있겠다.

지호나 샛별이나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라곤 건강하게 다시 만나는 것 정도 아닐까.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소소하고 호의적인 미소.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지호에게는 참으로 낯선 것이다.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목숨을 던져 힘을 얻었고, 이후로도 대가 없는 행위는 없었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따스함이 마음을 울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기요.”

누군가 지호를 불렀다. 너무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서 있었나 싶어 그는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고, 그는 영문을 모르고 눈을 굴렸다.

“저 부르신 거였나요?”

“이지호 헌터님 맞죠?”

뭐라고 해야 하지. 지호는 당황하며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헤맸다. 그 반응에 말 건 학생들은 호들갑을 떨며 자기들끼리 맞잖아, 내가 맞댔잖아 하고 시끄럽게 떠들더니 대뜸 핸드폰을 내밀었다.

“팬이에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예?”

동의 없이 플래시가 번뜩였다. 아싸, 하는 외침 뒤로 지호는 불쾌감을 느꼈다. 뭐 한 거지? 다른 학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꺼내는 것을 보자 불쾌감은 배로 늘었다. 지호는 먼저 사진 찍은 학생의 핸드폰을 빠르게 낚아챘다.

“헌터 촬영 불법인 거 알죠?”

보현이 보였던 날카로운 반응이 생각났다. 분명 같은 말인데도 이렇게 무게가 다른가. 지호는 소심하게 중얼거리며 바보처럼 찍힌 자기 사진을 삭제했다. 그래도 핸드폰을 못 쓰게 망가트린 건 아니니 얼마나 착한 거절인가.

비교 대상이 보현이라는 사실을 깜빡한 지호는 핸드폰을 원주인의 손에 돌려주며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으나 지호의 행동에 얼어붙은 학생들이 쥐 죽은 듯이 닥치고 있던 까닭에 목소리가 묻힐 일은 없었다.

“어디 가서 남 함부로 찍는 거 아니에요.”

목소리 착 깔고 노련한 헌터인 척하려다 핸드폰 한쪽이 손가락 모양으로 우그러졌다. 너무 세게 잡은 모양이었다.

여태 관련자들이 사다 줘서 알지 못했지만, 헌터들이 쓰는 핸드폰은 일반인용보다 훨씬 튼튼하다. 전투 중에 망가지지 않아야 하기도 했고, 신체 계열 헌터들도 일상생활하며 사용할 만큼 단단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호는 당황했고,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은 더 당황했다. 금속을 찰흙처럼 주무르는 헌터를 가까이에서 본 적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 사진 하나 찍었을 뿐이잖아요.”

핸드폰 주인은 겁에 질렸으나 옆 사람은 용기 내어 항의했다. 지호의 인상이 순한 탓이다. 다른 헌터들만큼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지도 않고, 험악한 인상이지도 않으며, 선글라스를 쓴 채 주변과 자신을 유리시키지도 않았으니.

항의에 지호가 멈칫하는 모습까지 보이자 행인들은 기세를 몰아 삿대질까지 시작했다.

“아니 뉴스로는 뭐 사람 구하고 좋은 척하더니 남의 물건 막 부수고 그러네. 그냥 지우라고 해도 됐잖아요!”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 됐고 물어 줘야죠. 연락처 빨리 줘요.”

핸드폰 주인보다 옆 사람이 더 성화였다. 오히려 핸드폰 주인은 친구를 말리며 진땀을 흘렸으나 죄를 지어 놓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무리 때문에 지호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거 뭐지. 내가 가해자인가?

“아니 태운아 나는…….”

“연락처 달라니까요.”

지호는 생각했다. 이상하다. 보현 언니가 할 때는 다들 군소리 없이 물러났었는데.

선한 인상의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정을 잘 봐줄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고, 더욱이 상대가 어리고 작은 여자아이면 어떤 사람들은 착각한다. 헌터 사실 별거 아닌 거 아닌가. 이렇게 하면 넘어올 것 같은데.

“아니면 같이 경찰서 가든가. 남의 물건 막 부쉈는데요. 지금.”

지호는 일전에 보현이 어떻게 했더라 생각하며 쩔쩔맸다. 기세 좋게 영상을 지운 것까진 좋았는데 뒤에 저지른 사고를 수습할 수가 없다. 당황해서 상대의 핸드폰을 받은 지호의 등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지호 씨?”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지호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너무 고개를 빨리 들어 목이 빠지는 것처럼 보였기에 상대는 화들짝 놀랐다.

“억, 놀래라. 무슨 일 있어요?”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작은 키에 통통한 체격. 지호 못지않게 둥글고 유순한 인상의 여성이 거기 서 있었다. 키가 큰 편이 아닌 지호보다도 작은 사람이지만 손에 든 담배와 치켜 올라간 눈썹은 어쩐지 지호를 안심시켰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그보다 큰 사람은 없었다.

“부평 연합에서 뵈었던…….”

“무슨 상황이죠, 이거?”

부평 각성자 연합의 소문난 싸움닭인 명은은 담뱃재를 툭 떨어뜨리며 행인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대놓고 시비 거는 어조에 아니꼬운 시선. 아까부터 지호에게 연락처를 요구하던 남자는 코웃음 치며 명은을 내려다보았다.

“뭔 상관이야? 남의 일에 참견 마!”

“우리 애 일인데 안 낄 수가 있나. 지호 씨, 이 난폭한 헌팅족들은 뭐예요? 왜 연락처를 맡겨 놓은 불한당처럼 굴지?”

“어, 그게…….”

지호는 손에 들고 있는 망가진 핸드폰을 명은에게 보여 주었다. 안절부절못하는 행인 A와 기고만장한 B를 본 명은은 금세 상황을 눈치챘다.

“지나가다 떨어지는 거라도 잡았어요?”

“아니, 그게 제 사진을 찍어가지고요. 언니가 헌터 사진 찍는 건 불법이라고 다른 사람들 사진 못 찍게 하는 걸 봤었거든요. 그래서…….”

“아, 불법을 자행하시고는 핸드폰 수리비를 내 달라?”

명은은 들고 있던 담배를 순식간에 불태웠다. 거세게 피어오르는 불길에 행인들은 움찔하며 물러났다. 또 다른 헌터가 있을 줄은.

물론 명은은 헌터가 아니고 일반 각성자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보일 상황은 아니었다.

“그, 그냥 지워 달라고 해도 되는 건데 핸드폰을 부쉈으니까…….”

“박태운, 너 입 좀 다물어. 아니에요. 사진 찍어서 죄송합니다. 핸드폰 주시면 갈게요…….”

“안 되겠는데?”

명은은 손을 내밀었다. 지호는 반사적으로 거기에 망가진 핸드폰을 내밀었다가 이형 에너지 움직임에 깜짝 놀라 손 부위에 방벽을 펼쳤다. 시퍼런 벼락이 내리꽂혔다가 불투명한 방벽에 막혀 사라졌다.

“어, 왜 막아 줘요?”

“지금 뭘…….”

“그냥 지운다고 사진 날아가는 거 아녜요. 칩을 망가트리든지 태우든지 해야지, 아니면 복구 업체에서 금방 살릴 수 있거든요. 핸드폰 이리 줄래요? 아니면 직접 박살을 내 버리든가.”

행인들은 마른하늘에 내려친 벼락에 놀라 석상처럼 굳어 있었고, 지호는 명은의 태연한 발언에 놀라 제 귀를 의심했다. 보현이나 할 법한 대사인 것 같았다.

“그냥 부수라고요?”

“헌터 촬영은 불법이잖아요.”

물론 지호는 헌터가 아니며, 명은 역시 헌터가 아니고, 사실 이건 각성자의 무력시위에 불과한 상황이다. 지호는 그 사실에 당황하며 어물거렸다. 헌터가 아니라고 말을 하는 순간 명은이 곤란해지면 어쩌지 싶었고, 동시에 이 사람들 핸드폰 박살 내는 건 괜찮은 일인가 싶기도 했던 탓이다.

“여, 연락처만 옮길게요. 그러고 나서 부수시면 안 돼요? 제발요…….”

핸드폰 주인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싹싹 빌었다. 옆에 서 있던 친구가 입을 꽉 다물어 버린 건 불만이었으나, 지호는 이 태도를 봐서는 좀 넘어가 줘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에 명은의 눈치를 살폈다.

중간에 툭 끼어들었으면서 모든 상황의 주도권을 휘어잡은 명은은 당연한 듯이 미소 지었다.

“클라우드에 사진 저장되나 확인하고 나서. 내 기기로 로그인해.”

“예?”

“알파사 기종이네. 클라우드 자동 백업되는 거 아닌 거 확인하면 번호 옮기게 해 줄게.”

지호에겐 다정한 존댓말을 쓰던 사람이 행인들에겐 한겨울 뺨치게 냉정했다. 그들은 명은이 내민 기기를 쳐다만 보며 쩔쩔맸고, 명은은 병원 입구 쪽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이거요. 현행범이요. 헌터 정보 유출이에요. 이쪽이 증거, 이쪽이 피해자.”

지호는 명은이 누굴 부르나 싶어 몸을 돌렸다. 병원에 어울리지 않는 가드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행인들은 당황해 도망치려고 허우적거렸지만, 보통 사람은 발이 공중에 뜬 상태론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들이 그대로 붙잡혀 가는 걸 본 지호는 당황했다. 이래도 되나? 그는 정식 헌터가 아니었다. 그러니 헌터 법 규정의 적용을 받을 리도 없을 텐데.

그들이 충분히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지호는 명은을 붙잡았다.

“서, 서명은 장인님. 저 아직 헌터가 아닌데요. 저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헌터를 찍은 건 아니잖아요. 근데 저렇게 끌고 가도 되나요? 아무 죄 없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죠?”

“임시 헌터 아니에요? 헌터 일 안 하기로 했나?”

“아직 임시잖아요!”

“헌터복 입고 사람 구하러 출동한 그 순간부터 임시 헌터건 정식 헌터건 공식 분류는 헌터라고요. 이 일 안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만두겠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정식 달려고 교육도 받고 있고, 훈련도 받고 있고요.”

“그렇지만…….”

“임시 하나 보호 못 하는 법이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걱정 마요. 그리고 저런 사람들 하나하나 봐주면 금방 정보 팔린다고요. 이번 뉴스 특보 올린 기자들도 노란 명찰 때문에 헌터 법 적용이 안 되네 마네 우기면서 시끄럽게 굴고 있는데, 며칠 지나면 금방 기사 다 내려갈 거예요. 당분간만 참아요.”

아까운 내 담배, 하며 명은은 손바닥에 남은 재 가루를 툭툭 털었다. 아까 멋지게 불태운 다음 손에 뭐가 묻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욕봤네. 몸은 좀 괜찮아요? 벌써 퇴원해도 되는 거고?”

“어, 제 치유력으로 회복하는 편이 능력 강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박사님이 그러셔서요. 장인님은 여기 어쩐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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