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균열 바깥에서 커다란 돌덩이가 들이닥쳤다. 염동력 능력자들이다. 몸이 너무 무겁다. 상원은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몸을 움직였다. 압박감으로 후들후들 떨리던 다리가 간신히 떨어진다. 누군가 솜씨 좋게 구명줄을 던졌다. 상원은 마취총 맞은 대형 동물처럼 끌려 나왔으나 그 사실에 전혀 불만을 품지 않았다. 살이 다 쓸려 까지는 편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나았다.
“균열 폭주잖아. 어떻게 된 거야? 신체 계열이라더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모양이었다. 모범생이라 교육이란 교육은 모두 참석해 온 상원이라 헌터들의 대화를 듣자마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온 임시 헌터가 신체 계열 퓨어 헌터가 아니었다.
균열이 부푼다. 몸을 짓누르던 이형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압박은 거의 통증에 가까운 힘으로 상원을 내리눌렀었다. 균열을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운이 모두에게는 따르지 않았는지, 일부가 여전히 균열 내부에서 괴로움 섞인 신음을 토했다.
강풍이 분다. 균열이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내부를 할퀴는 이형 에너지는 생물과 무생물 모두를 할퀴었다. 운 나쁜 누군가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렸다. 비명. 그러나 구하러 들어갈 수가 없다.
처음 빛에 휩싸였던 임시 헌터를 중심으로 균열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물러나라는 외침이 사방에서 들린다.
그 임시 헌터는 뭔가에 빨려 들어가듯이 균열 안쪽으로 뒷걸음쳐 들어갔다. 이상한 모양새였다. 겁에 질린 얼굴, 핏기 없는 안색, 덜덜 떨리는 입술.
상원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살려 줘.
그는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
균열이 일그러진다. 균열 내외 할 것 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이형 에너지 능력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방벽을 쳤다. 간신히 그 힘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났으나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치유계 헌터가 방벽 주인에게 손을 뻗고 있는 것을 보며 상원은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
뒷걸음질 치던 사람의 몸이 이상한 방향으로 으적 꺾인다.
상원이 숨 참는 소리가 컸다. 그 헌터의 이상한 모습을 주시하던 이들 역시 기겁하며 사방에서 놀란 탓에 모두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울 수 없는 방향으로 우득 우득 꺾여 나가던 몸은 그로테스크한 비틀기를 넘어서 접히고 갈라졌다. 일부가 토악질을 시작했고,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 몸에선 이상한 파장이 피어올랐다. 감지계가 아니어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에너지 흐름이다.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뜻이었다.
“방벽 투명하게 유지해 줘요.”
누군가 어려운 요구를 하며 카메라를 켰다. 불투명하던 방벽이 조금 뿌연 유리에 가깝도록 맑아지는 동안 그 괴현상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다가 천천히 모양을 갖추었다.
사람이다.
아니, 사람 같은 모양새였다.
발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모양새는 주물 틀에 쇳물을 부어 모양이 갖추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재료가 이형 에너지 같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상 다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 모양으로 쌓인 이형 에너지가 기괴한 방향으로 꿈틀거리며 흔들리기를 몇십여 초.
푸르스름하기만 하던 이형 에너지 덩어리에 순식간에 색이 덧입혀지는 순간 헌터들의 입에서 각기 다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금 끌려가 끔찍한 모양새로 죽어 버린 그 임시 헌터였다.
“한다빈 씨?”
상원은 저도 모르게 그 헌터의 이름을 불렀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가끔 부는 거친 바람 소리 외엔 탄식과 긴장으로 뱉는 가쁜 호흡뿐이던 균열 앞이다. 모든 헌터들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
심지어는 한다빈 임시 헌터의 모습을 한 그 이형 에너지 역시도.
입을 벙긋거리던 두 번째 다빈은 자기 얼굴과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혼란스럽다는 얼굴이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이 다빈과 전혀 다르지 않다. 심지어 평소 다빈이 짓곤 하는 그 어색한 표정까지 똑같았다.
“저거 혹시 방금 죽은 그 사람 아닐까요?”
“말이 되는 소릴 해요. 죽었다고요.”
“우리도 다 죽었었잖아요.”
누군가 던진 일리 있는 의문에 좌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쪽에 모인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상원과 다빈을 보조하러 모인 팀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그마저 균열 내부로 함께 들어갈 수 있었던 헌터는 한 사람뿐.
내부의 돌변하던 공기를 함께 느꼈던 신체 계열 헌터가 조용히 의견을 물었다.
“확인해 봅시다.”
즉각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대 의견이 좀 더 극적이라 찬성이 여지없이 묻히는 꼴이었으나, 의견을 낸 헌터가 팀 리더였던 모양이다. 그는 단호하게 반대 의견을 다시 반대하며 말했다.
“임시 헌터야. 정식 헌터라면 나도 이런 이야긴 안 했을 거다. 하지만 두 번째로 살아난 상황이 맞다면?”
“방금 죽는 거 다 같이 봤어!”
“맞아. 우리는 평범한 사람에서 각성자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 그런데 각성자가 또 다른 무엇이 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도 없지 않겠어? 여긴 균열이야.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무엇도 확실한 것이 하나 없다. 끝까지 반대하던 이형 에너지 능력자는 결국 욕설을 퍼부으며 가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방벽 한쪽을 열어 버렸다.
거칠게 불던 바람은 꽤 가라앉아 있었으나 여전히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이 간헐적으로 불어온다. 균열 확장의 영향이다. 균열은 확장을 멈출 때까지 내내 압축과 수축을 반복할 것이다.
“저도, 저도 가도 됩니까?”
상원은 저도 모르게 그 헌터의 팔을 붙잡았다. 같은 신체 계열 헌터. 혹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이 자리에선 상원이 유일하다. 그의 떨림을 느낀 헌터는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요.”
서툰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다. 음성의 끝이 미세하게 떨린 것 같기도 했다.
이 사람 역시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빈이 진짜 각성자가 거칠 수 있는 다음 단계 같은 것으로 넘어간 것이라면? 헌터들은 무모한 실험 없이도 좀 더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방법의 단초를 다빈이 제공할 수 있을지도.
“한다빈 임시 헌터가 균열을 지날 때 방금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 그건. 일단 사람이 맞나 확인한 다음에 고민하죠. 이름이?”
“서상원입니다.”
“저는 조민잽니다. 우리 둘 다 신체 퓨어죠. 혹시 잘못되면 한쪽이 다른 쪽을 균열 밖으로 내보내 주기로 합시다.”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자고요.”
둘은 불안한 얼굴로 웃은 다음 결연히 균열 경계로 접근했다. 여전히 불안정한 경계면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강풍이 시야를 방해했다. 그나마 신체 계열들이라 무게가 무거워 뒤로 밀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저희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균열을 통과하자 그제야 시선이 돌아온다. 상원은 내내 혼란스럽던 다빈이 그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반가운 얼굴이 되는 걸 보고 조금 안심했다.
“민재 헌터님 가설이 맞나 봐요. 절 알아보는데요.”
“일단 좀 더 접근합시다.”
둘은 조심스럽게 다빈과 가까워졌다. 선 채로 멍청하게 제 몸만 더듬고 있던 다빈은 두 사람을 보곤 눈을 깜빡였다. 이윽고 흘러나온 건 상원이 기억하는 다빈의 음성이다.
“제가, 잘못한 거죠?”
“잘못이요?”
“저는 제가 신체 계열 헌터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잖아요. 제가 균열을 폭주하게 한 거잖아요. 그래서는 안 됐는데.”
괴로움 가득한 음성에 죄책감으로 일그러진 얼굴. 상원과 민재는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상원이 기억하는 다빈이 맞았다.
“몸은 좀 괜찮아요?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뭔가가 저를 막 잡아당겼어요. 그게 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다빈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것마저 다빈의 평소 버릇과 같았다. 상원은 완전히 마음을 놓았고, 민재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안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이 어두운 균열에서 선글라스라니? 두 임시 헌터가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모른 채 다빈을 훑어본 민재는 머리를 긁적였다.
“흠, 혹시 추가로 있던 다른 능력은 숨긴 게 아니고 정말 모른 겁니까? 파장이 꽤 센데요.”
“정말요? 몰랐어요. 그게…….”
“아까 그 이상한 현상 후로 뭐 두 번째 각성 같은 걸 한 건 아닐까요? 우리도 원래 이런 힘은 없었잖아요.”
그럴싸한 가설이라 민재 역시 동의하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고 중얼거린 그는 팀원들에게 상황을 간략히 브리핑하는 메시지를 전송한 뒤 주변 건물을 가리켰다.
“이 부근이 썩 안전할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균열이 안정될 때까지는 경계를 지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거든요. 방금 좀 상태가 이상하긴 했는데, 지금은 어디 아픈 데 없습니까? 다친 곳이나.”
“없어요. 괜찮아요.”
“좋습니다. 배운 것들 기억합니까? 균열 초기에 그 장소를 벗어나지 못했을 시, 각성자는 안정기까지 탈출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헌터가 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배우는 겁니다. 균열 폭주를 일으킬 염려가 있으니까요.”
두 사람이 병아리라는 사실을 고려해 민재는 최대한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둘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부근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웠다.
“저, 근데 방금 다시 각성하거나 그런 거면 조절 못 하는 이형 에너지가 괴물들을 끌어모으지 않나요? 방벽을 칠 수도 없는데…….”
“잘 배웠네요. 당분간 균열 경계를 돌며 번갈아 가며 보초를 서야 할 것 같습니다. 바깥 헌터들에게 미리 신체 계열 헌터들을 좀 수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균열 폭주 현상 때문에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던 헌터들도 전열 재정비하려고 물러났을 테고, 그럼 지원은 충분히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안 되어도 뭐, 해 봐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허탈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땅 울리는 소리가 났기에 세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다빈은 불안한 듯 눈을 굴리다 질문했다.
“제가 뭘 해야 할까요?”
“방금 태어난 아이한테 뭘 바라는 부모는 없죠. 갓 각성한 각성자 역시 상태는 비슷할 거고요. 다행히 우리 셋 다 신체 계열 능력자들이니, 여차하면 뛰어서 따돌리죠.”
“뛰어서요?”
“어지간한 놈들은 신체 계열 따라오기 힘들어요. 지도 띄워 놓고 길부터 확인합시다.”
다빈에겐 핸드폰이 없었다. 아까 그 괴현상에 휘말렸을 때 망가진 모양이었다. 그런 것치곤 옷이며 신발이며 다른 것들은 멀쩡한 건 좀 이상했지만……. 상원은 자기 핸드폰을 내밀어 함께 길을 확인했다. 효성 중학교 앞 아파트 단지가 폭주하는 균열에 서서히 먹히는 것이 보였다. 다빈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조금만 뛰어나가면 나갈 수 있는 경계 앞에서 다빈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 다 망쳤네요. 아무리 급성 균열이래도 그렇게 큰 크기는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