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거친 바람이 사방을 뒤흔들며 요란하게 내달렸다. 악취는 심해지고 설핏 피비린내 같은 것도 느껴지는 것 같다. 벌레가 많아 이야기하는 도중 손부채질을 몇 번 했는지 모른다. 정엽은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다. 악성 균열은 대균열의 날 이후 세 번밖에 생겨나지 않았고, 나타날 때마다 최악의 참사를 불러오곤 했다.
“양동 작전이라도 펼쳐야 하지 싶은데. 저쪽을 대놓고 막고 있는 걸 보니 유인이라도 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헌터들이 잘하겠죠. 우리가 뭘 알겠어요.”
임시 헌터들은 불안을 감추려 노력하며 경계 부근에 버섯처럼 모여 앉았다. 생사를 건 전투보다는 자신의 삶을 택한 사람들. 그러면서도 끝끝내 타인의 위기와 불행을 외면하지는 못하고 자신의 공포로 돌아온 사람들.
본인은 헌터의 길을 택했으나 이들의 길 역시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님을 알기에, 지호는 붉은 명찰을 단 임시 헌터 중 소수가 떨림을 가라앉히려고 기도하거나 심호흡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균열이 주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헌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 했었다.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사냥이 잘 끝나고, 사람들 구하러 들어가면 될 거고…….”
애석하게도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적색경보가 뜨며 불길한 경보가 울렸다. 이동 능력자 몇이 사색이 된 얼굴로 경계 앞에 나타났다.
“정신 방벽 보유자 지원 부탁합니다. 긴급!”
고작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임시 헌터들의 불안한 수군거림을 들으며 지호는 그들이 정보와 유리된 삶을 살아온 탓에 현재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가 공유되긴 하지만, 관심이 없으면 보지 않는다. 균열이 그들의 삶과 관계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그들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괴물 정보를 확인하며 지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 우리 같이 여기 들어갈 거라면. 아셔야 할 게 있어요.”
잘하는 짓일까? 지호는 곁에 선 임시 헌터의 옅은 떨림을 보면서도 말을 계속했다. 퀸 패러사이트,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그 괴물에 관해서.
좌중은 경악했으나 생각보다 빨리 수긍했다. 그런 규격 외의 괴물이 나타나지 않고서야 1세대나 2세대가 다 투입되었는데도 이렇게까지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긴 어려웠을 거란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었다.
“일차적으로 조심해야 할 건 놈의 촉수인가 보죠?”
“알려진 건 없어요. 다른 수단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정신 방벽 가진 사람들만이 초기 균열에 파견되어서…….”
급작스레 불어온 강풍에 차량 부근에 서 있던 사람들을 제외한 전부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지호는 허겁지겁 바람에 맞서 일어나며 방벽을 펼쳤다.
익숙하다. 아는 바람 같았다. 불길한 감각이기도 했다. 옆에 나뒹굴던 헌터들 중 신체 계열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지호의 방벽 뒤편이라 비교적 빨리 상태를 수습한 임시 헌터 중 일부가 방벽을 함께 펼쳤다.
습하고 악취가 풍겨 오는 강풍.
“균열 폭주도 아닌데…….”
“악성 균열 확장 시에도 비슷한 현상이 생겨요. 다친 사람 있나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균열 바깥에서 다친 상처라 회복이 더디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안으로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치유계 헌터가 자잘한 상처들을 봐 주었다. 지호 역시 한바탕 구를 때 머리를 어디 박았는지 이마가 깨져 피가 나고 있었다.
홀로 비틀대며 사람들 앞을 가로막고 선 지호가 바람에 주욱 밀려 난 자국이 바닥에 길게 남았다. 초기 균열 앞에서 지호를 도와주던 병아리들은 없다.
문득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호는 바람을 타고 옆으로 흐른 눈물을 닦으며 옆 사람을 일으켰다. 아까부터 떨고 있던 사람이었다.
신체 계열이었는지 휘청이다가도 금세 균형을 잡은 정엽은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그럼 균열 확장 조짐이에요? 좀 전에 커진 건요?”
“외부가 커지고 안쪽에서 바람이 밀려 나온 걸 거예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지호는 균열 안쪽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사람 그림자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괴물들은 분명 균열을 통과하진 못한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소리를 비롯해 다른 것들까지 전해지지 않을까? 단지 균열 경계만을 지나지 못하는 것일까? 괴물들의 인식 수준에 관한 정보가 있을 리 없으니 모두 입을 닥쳤다. 심지어 마석 치료기의 구동까지 멈춘 상태.
고요가 사방을 채우자 마치 균열 안에 들어온 것 같다.
침묵을 끊으며 섬뜩한 포효가 뒤를 이었다. 멀지 않은 곳이다. 헌터들은 바짝 경계하며 경계 안쪽을 노려보았다. 일렁이는 파장과 준비하는 모양새가 대부분 전투계보다는 보조 계열에 가까워 보였다. 지호는 번쩍이는 이동 능력자의 빛을 보곤 휘둥그레 눈을 떴다.
“박 팀장님!”
아는 얼굴이 하나가 아니다. 네 사람은 곧바로 방향을 확인하곤 번개처럼 움직였다. 창백한 보현이 방벽을 펼치기 무섭게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서 뾰족한 날붙이 같은 것들이 방벽에 날아와 박혔다.
“밖으로 넘어가요. 이동!”
“한 마리만 더…….”
“다리도 한 짝 버리고 싶어요?”
이주리 헌터가 욕설을 뱉으며 보현의 등을 받쳤다. 충격에 방벽과 함께 밀려 난 보현은 거칠게 기침을 토했다. 충격이 전신에 퍼지니 당연할 노릇이겠지.
뛰어들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박 팀장에 임보현, 이주리에 모르는 헌터까지 총 네 사람. 나머지 한 사람의 손에서 치유 파장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자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보현이 임시로 고른 팀치고는 밸런스가 좋다.
무리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지호는 균열 경계 가장 끄트머리까지 나온 그들이 경계를 빠져나오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달려갔다.
“언니!”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보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위험한 곳에 안 갈 거라고 말한 지 한 시간도 안 지났다. 뭐라고 변명할까 눈을 굴리던 보현은 그냥 솔직함을 택했다.
“퀸 조사차 접근했었는데 이쪽 팀 방벽 담당 헌터가 당해서요. 살리려고 낀 거예요.”
“다친 데는요?”
“우리 주리 씨가 방어 담당 백업에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진짜 잠깐 끼었어요. 퇴각 돕느라고요.”
박 팀장이 슬쩍 끼어들어 보현의 편을 들었다.
“임보현 헌터 없었으면 위험했을 겁니다. 구본희 헌터 챙길 겨를이 없었어요. 죽었을 겁니다. 하반신을 통째로 잃었으니까요.”
“사망 시각 확인합니다. 제 전투 합류 시점쯤이죠?”
보현은 몇 가지 정보를 입력했다. 박 팀장은 거의 탈수 상태로 털푸덕 주저앉고, 치유 담당 헌터 역시 다른 치유 계열 헌터에게 도움을 받을 만큼 탈진했다. 신체 계열인지라 남들보다 튼튼한 이주리 헌터마저 미세한 떨림을 숨기지 못하는 팀. 지호는 다른 임시 헌터들이 그들을 챙기는 것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퀸을 봤어요?”
“아니. 직접 보진 못했어요. 조종당하는 놈들만 봤어. 근데 보고받은 것과 달리 헌터가 두 사람 이상이던데요. 전투로 빠진 팀원들이 당한 것 같아요.”
“그럼 사냥은…….”
“남쪽에서 상대법 알려진 괴물들은 전부 사냥하는 중이에요. 수원 팀은 꽤 베테랑이고 사태 험악하기로 유명한 강남 쪽 균열에도 종종 파견되었으니 믿을 만하죠. 이쪽은 버티기만 하면 되니 그렇게 걱정하진 말아요. 아까도 균열 커지다 말았잖아요. 잘 모르나?”
강풍이 짧게 몰아닥친 게 균열 상태와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호는 그냥 본인이 좀 더 능숙한 헌터가 되어 그 상황을 빨리 이겨 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외면하려고 황급히 말을 돌렸다.
“배, 배움이 짧아서 모를 수도 있는 것 같은데요. 급성 균열도 흔치 않은데 악성 균열은 더더욱…….”
“사실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것도 몇 시간이 한계예요. 다들 번갈아 가면서 숙주를 유인하고 상대했는데, 퀸이 숙주의 힘을 다루는 데 익숙해졌는지 일부가 헌터였을 때 쓰던 능력을 쓰더라고요.”
“임보현 헌터, 대외비를 그렇게 쉽게…….”
“어차피 보고 올라갈 거잖아요. 이런 정보 독점해서 뭐 하게요? 퀸한테 조종당하는 사람한테 접근했다가 큰 사고 나면 그때 가서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려고요?”
“말해서 달라질 게 없는 정보잖습니까. 이런 것들은 현장에 나가는 헌터들만 알고 있으면 되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 봤자 늘어나는 건 불안과 공포밖에 없단 말입니다.”
보현과 박 팀장은 또 싸우기 시작했다. 핏기 없는 얼굴에 간신히 혈색이 도는 치유 담당 헌터에게서 시선을 뗀 주리는 균열 어플 소리를 확 키웠다.
삐이이이. 경보가 크게 울리자 두 사람이 그제야 입을 다문다.
“회복하셨으면 도우셔야겠습니다. 헌터 숙주와 조우한 부천 3팀 구조 요청 신호.”
“방벽 가능 헌터 여러분은 균열 경계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해서요. 내부로 들어오지는 마십시오.”
보현은 박 팀장과 으르렁거릴 때의 유치한 태도를 순식간에 집어던지곤 간결하게 명령을 내렸다. 박 팀장이 당장 이동하긴 어렵다는 신호를 보냈기에 경계 쪽으로 백업을 나가는 건 세 사람뿐이다. 지호는 용기를 내 보현을 붙잡았다.
“저, 저도 갈래요.”
본래 같았으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놈도 아니고 퀸 패러사이트. 언제 급성 균열이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고, 이놈과 다시 마주하게 될 날도 정확지 않다.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지호를 내려다보던 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팔이 성치 않아서 아까부터 방벽이 불안정하던 참이에요. 제가 공격 포지션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건 하지 말고, 방벽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요. 다른 헌터들과 연합 훈련을 해 본 일이 많지 않을 테니…….”
“최선을 다할게요.”
정식 파트너로 함께하는 건 아니지만, 보현과 합을 맞추는 건 처음이다. 지호는 비장하기까지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임시 헌터 중 치유계 헌터 하나가 팀에 합류했다. 바짝 얼어 있는 모양새가 지호와 비교해도 크게 모자람이 없어 주리가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그러나 자원해 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아까 우릴 공격한 놈이 근처에 있을 거예요. 방벽 유지한 상태로 들어갑니다. 진입.”
신호와 함께 네 사람이 함께 움직였다. 보폭은 넓지 않게 맞춘다. 보현의 수신호를 따라 잠시 걸음을 멈춘 지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균열 남쪽에서 마주쳤던 붉은 눈알 괴물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는 풍경은 훨씬 더 초현실적이었다.
바닥 흙이 질척거린다. 머금은 물기는 물이 아니었다. 일부는 해 드는 자리라 버석하게 말랐으나 검붉게 말라붙은 모양새가 낯설다. 주리는 부근을 둘러보곤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내 왔고, 급조된 팀은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산은 고요하지 않았다.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굴러다니고, 지호는 이곳의 아비규환을 미리 보았을 다른 이들을 애도해야 했다. 지호 역시 정신 방벽이 없었다면 바로 뛰쳐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생존 신호와 이형 에너지 경보가 동시에 울렸다. 누군가 쫓기고 있다. 미식별 신호 접근! 주리의 목소리와 동시에 보현이 곧바로 방벽을 폈다.
익숙하게 뒤돌아 보현의 등을 받친 주리를 본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가가 방벽을 거칠게 할퀴었다. 끓어오르는 기침을 눌러 참으며 소리쳤다.
“방벽 유지, 맡아요, 지호 씨!”
“예? 아, 아!”
신호가 가깝다. 부천 3팀인지 다른 팀인지 모를 한 팀을 쫓던 놈일 터. 보현은 방벽을 지호에게 맡기자마자 방벽 바깥에서 에너지 창을 생성했다. 안쪽에서 지호의 방벽이 생겨나는 것보다 속도가 빨랐다. 수가 수십이다. 사방을 겨누는 창날에 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지어 방벽이 고슴도치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숨 막히는 고요. 그때 뒤에서 뭔가 방벽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