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김서영 헌터는 지호를 내려놓았다. 신체 계열에 염동력 하이브리드 계열이라 전투가 벌어지면 곧바로 뛰어들어야 하기에, 열외 인력을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경계에서 곧바로 지원 가능 신호가 왔다. 워낙 입구에 가까운 덕에 이동 능력자 일부가 빠르게 이동해 왔고, 생존자들이 속속 구출되었다.
지원을 온 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박 팀장이라 가능한 일이다. 여러 사람을 한 번에 옮기진 못하지만, 균열 경계에서 곧바로 경인 교대 내부 좌표로 이동해 올 수 있는 능력자. 생존자들을 우선 대피시킨 후, 1팀은 다시 수색을 위해 방향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팀장은 지호를 박 팀장에게 맡겼다.
“부상자 열욉니다.”
“부상? 전투가 있었습니까?”
“아뇨. 가요, 바쁘니까. 1팀 인원 보충 요함. 감지계나 방어 계열로 인원 보충 요함.”
보현과 마찬가지로 1세대 헌터였기에 팀장의 말은 짧았고, 박 팀장 역시 여기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생각은 없었다. 지호는 순식간에 균열 경계로 이동해 왔다. 내내 느껴지던 시선은 균열을 통과하기 무섭게 자취를 감추었다.
온몸이 땀으로 목욕한 것처럼 축축했다. 박 팀장은 걱정스레 지호를 한쪽에 앉히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습니까? 무슨 일이에요?”
지호는 대답 대신 손을 내저었다. 축객령 비슷한 행동이지만 멀쩡한 사람이 할 때나 효과가 있는 법이다. 박 팀장은 다른 이동 능력자에게 1팀 백업 대기를 지시하곤 지호 앞에 앉아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지호 각성자. 내 말 들려요?”
눈을 마주 보는 것 같지만, 시선이 맞질 않는다. 자꾸만 떨어지는 초점을 보곤 박 팀장은 지호를 구급차 안으로 데려갔다. 평소 이동 능력자의 힘이 닿을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며 저도 모르게 그 파장을 느끼던 지호였으나 지금은 조용하다.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자극에서 자신을 걸어 잠근 것 같다.
균열을 벗어나자 진득하게 따라붙던 시선이 사라졌고, 곁에서 등이나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지호는 힘겹게 각성 당시를 떠올렸다. 하늘에 뭐가 있었던가? 기억이 정확지 않을 확률이 높았지만, 허공에 뜬 뭔가를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좀 괜찮아요?”
“예? 아, 예.”
“아닌 것 같은데.”
웃음으로 얼버무릴 여유도 없었다. 지호는 균열 저편의 회색빛 세상을 응시했다. 경계를 통과했기에 허공에 뜬 눈알 괴물이 지호를 응시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계속 그를 찾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위에 뜬 거, 보셨어요?”
“위요?”
못 본 모양인지 박 팀장은 다시 균열 내부로 들어갔다 왔다. 일반적으로 허공을 경계하는 일이 잘 없는 탓에 발견이 늦었던 모양이었다. 해당 개체 부근으로 드론을 보내도록 지시한 그는 황급히 돌아와 질문부터 던졌다.
“어, 여태 본 비행 개체들이랑 좀 다른데요. 저건 뭡니까?”
“알고 계셨으면 했는데요.”
“아무래도 급성 균열이라 나타난 특이 개체 같긴 한데……. 혹시 저것에 뭔가 영향을 받으신 겁니까? 정신 계열이고 그런가요?”
“아뇨. 그냥 봤어요. 그게……. 저를 봤어요.”
김 반장의 냉정한 평가에 따르자면 지호는 본인이 정신 공격을 당하는 것 자체를 뒤늦게 깨닫거나 아예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아주 가능성이 없으리라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지호의 횡설수설하는 답변이 박 팀장을 만족하게 할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는 탁월한 이동 능력자답게 능숙한 염동력 사용자였고, 대학 입구에 있는 5층 높이 상가 건물로 이동하자마자 상공으로 떠올라 놈에게 접근해 상황을 살폈다.
정신 공격 개체라면 상당히 위험한 관측이다. 애초에 박 팀장은 염동력 및 이동 능력 특화 헌터고, 정신 방벽이나 물리 방벽 자체를 쓸 줄 알 턱이 없었다. 그런데도 위험한 선택을 한 건 오랜 헌터 생활로 길러 온 감 때문이었다.
“특별히 공격하거나 뭐 위협적인 모양새를 보이진 않더군요. 다만 어떤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으니 주의하긴 해야겠습니다. 관련 정보 업데이트했나요?”
“아뇨. 좀 부탁드려요.”
균열 어플에 사진과 관련 관측 정보를 업로드한 박 팀장은 허옇게 질린 지호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고 안심했다.
회색빛 하늘에 떠 있는 괴이한 눈알. 지호는 박 팀장이 올린 정보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해당 개체는 감지계 파장을 감지함.]
지호의 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 팀장은 방금 생각난 것처럼 질문을 뱉었다.
“저쪽에서 감지 능력 비슷한 걸 쓸 수도 있을까요?”
“가능성 정도는 있을 것 같아요. 저기, 근데 혼자 그렇게 들어가시면 안 되잖아요. 적어도 파트너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지금 안에서 구조 작업이며 사냥이며 들어간 팀이 몇 갠데요. 다른 사람 기다리느라 지체됐다가 혹시 위험한 능력 갖춘 놈이면 어떻게 하려고요.”
“팀장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요.”
“아니었으니 괜찮습니다. 이제 좀 괜찮죠? 구조 팀 백업으로 입구에서 대기해 줘요. 삼백 미터가량 떨어진 경계에서 그림자 호랑이 소리가 들렸단 제보가 있습니다. 사냥 팀에서 온 소식이고, 그쪽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이쪽으로 피해 올 확률이 높아서요. 그리고 균열 구조대가 금방 도착할 예정인데 외부에서 보조할 헌터가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정말 그게 괜찮은 건가요?”
박 팀장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다. 그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신념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어찌 일일이 설명할 수 있나.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하던 말을 마쳤다.
“구조 작업에 투입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염려할 필요는 없단 이야길 하려고 합니다. 꼭 직접 균열에 뛰어들어야 사람들을 구하는 건 아니에요. 아시죠?”
“저는 아는데, 팀장님은 모르시는 것 같아요.”
박 팀장은 빙그레 웃곤 이만 가겠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렸다. 홀로 남은 지호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꼭 움켜쥐며 생각했다. 헌터들이 지켜야 할 수칙에 관해 배우지 못했을 때라면 그의 행동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헌터들이 서로를 잃어 가며 세워 온 규칙들을 정면으로 어기는 박 팀장의 행동은 정말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을 지킨다는 전제가 있다면 자신이 위험에 빠져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가 지호를 현실로 끌어 내렸다.
죽음을 맞닥뜨리던 때의 공포, 두려움, 떨림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한 두려움 속에서 지호는 생각했다. 박 팀장의 행동은 옳은가?
이전에는 지호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그저 타인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던 시절에나 그랬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본인과 같은 헌터가, 그리고 헌터의 길을 택하는 각성자가 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무작정 몸을 던져 희생하는 것보다는 살아남아 좀 더 많은 이들을 구하는 게 나았다.
사람 좋은 얼굴로 자신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닌 박 팀장을 떠올린 지호는 왜 보현이 그에게 날을 세우는지 백 번쯤 이해할 것 같다고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균열 구조대가 온다고 했었지. 아는 얼굴들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승찬과 그의 팀원들은 아마 계양산 쪽 균열로 파견되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팀을 구조했는지 이동 능력자 파견을 요청하는 알림이 떴다. 지호는 다급히 이동해 오는 다른 이의 파장을 느끼며 호흡을 골랐다.
박 팀장처럼 고급 인력이 여럿 있으면 좋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소민과 같이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고작인 경우가 많다.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이동시키려면 거리가 짧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몇 번 얼굴을 본 이동 능력자 하나가 초췌한 얼굴로 균열 입구에 도착했다. 그는 방위를 파악한 뒤 지호를 불렀다.
“지도 켜 봐요. 제가 이쪽, 이쪽, 이쪽을 거쳐서 이동해 올 겁니다. 원거리 방벽 되나요?”
“아, 아뇨. 제가 안에 있어야…….”
“그럼 여기 앞에서 대기 좀 해 주세요.”
균열 안쪽 카페 건물 위다. 일반적으로는 건물 내부나 골목에 괴물이 숨어 있을 수 있어 옥상이 좀 더 안전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 균열은 사정이 좀 다르다. 지호는 좀 전에 업데이트된 정보를 불러왔다.
“허공에 이상한 눈알이 있어요. 옥상은 위험할 것 같은데요.”
“눈알?”
피로감 가득한 얼굴을 착착 두드린 헌터는 이미지를 확인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 보는 놈인데, 하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처음 발견된 개체니 당연한 일이다.
“공격성을 드러내진 않았어요. 하지만 감지 파장에 닿자마자 눈을 떴는데, 감이 안 좋아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으나 이걸 꼭 말해야 했기에 지호는 말을 마치곤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이러한 연유로, 이런 공격적인 모양새로 위험하다가 아니라 감이 안 좋다는 말이 타인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일 리가 없긴 했다.
“죽음을 경험한 모든 헌터의 감은 믿을 만하죠. 알겠습니다. 대로를 따라 이동하죠. 이쪽 길 중간에서 백업 부탁합니다.”
“어, 정말요? 그냥 느낌일 뿐인데…….”
“원래 헌터의 감은 믿는 편이 좋아요. 임시 헌터군요? 꼭 기억해요. 물론 걱정 많은 친구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네요.”
상의 왼쪽 포켓 주머니에 박힌 이름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이주환. 빼짝 마르고 키가 커 지호의 어깨를 두드리고 몸을 일으키자 머리 하나만큼의 차이가 느껴졌다.
“그럼 다녀올게요. 이 앞에서 봅시다.”
주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호는 약속한 장소를 향해 서둘러 달렸다. 익숙한 고요. 다른 괴물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균열에 들어서기 무섭게 기묘한 압박감이 어깨를 내리눌렀다.
본디 균열 안에서는 이형 에너지가 사람을 짓누른다. 그러나 이건 그런 느낌과는 달랐다. 역시 그때 그 급성 균열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또 그 뱀 같은 집단이 나타나면 어쩌지? 괴물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봤지만, 그것들에 관한 자료는 없었다. 저 눈알 괴물과 마찬가지로 급성 균열에서만 나타난 특이 개체일 수 있다.
이주환 헌터 말대로 헌터의 감을 무시하는 건 좋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근거 없는 느낌을 무조건 따를 순 없었다. 그에겐 여기에서 대기하다 괴물로부터 있을 공격을 막아 내야 할 의무가…….
균열 바깥으로 구조대 차량이 접근하는 게 보였다. 지호는 우선 한쪽으로 방벽을 펼친 뒤 다른 쪽을 경계했다. 이미 다른 팀이 지나간 길이라곤 해도, 언제 괴물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경계가 최우선이다.
고요 속에서 이동 능력자의 능력으로 이형 에너지가 옅게 흔들렸다. 눈을 뜨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눈 모양으로 생기기만 한 건지 의심스럽던 허공의 눈알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섬뜩한 감각. 지호는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세 사람과 함께 이동해 온 주환은 엉겁결에 공격받아 바닥에 쓰러졌다.
“엎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