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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49화 (50/260)

49화

네 사람은 미리 와 있던 헌터 팀과 합류했다. 병아리들은 보조 임무만 맡는 게 정석이다만, 워낙 사람이 부족해 당장 투입되는 이례적인 상황. 팀장을 맡은 헌터는 신중하게 통신을 나눴다.

“구조 신호는?”

“약 500미터 근방. 오차율 백 미터가량입니다. 좁혀지는 중.”

“예상 위치 경인 교대 도서관입니다.”

헌터들이 능숙하게 정보를 주고받았다. 대화하는 내용이 곧 정보가 되어 균열 어플에 업데이트됐다. 웨어러블 장비가 손목 부근에서 반짝였다. 음향은 전혀 없는 기기로, 이형 에너지 공급 시에만 동작하는 헌터 전용 도구였다. 신체 계열을 위해 마정석을 건전지처럼 사용하는 모델도 일부 보급되었다.

해당 기기에서 보이는 건 두 가지다. 구조 요청자가 보내는 구조 신호와 괴물이 뿜어내는 이형 에너지 발산 신호.

이형 에너지 계열 각성자가 갓 각성했을 때처럼은 아니지만, 괴물들은 특유의 파장을 지닌다. 때문에 감지계 헌터들이 그들을 감지할 수 있다. 지호는 심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 능력 사용이 익숙지 않아 능력으로 주변을 훑는 것과 시각 정보가 혼재되면 머릿속이 꼬이는 통에 눈을 감아야 제대로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눈 뜬 상태로는 근접한 거리만 확인할 수 있으니 안전을 위해서는 이 편이 차라리 나았다.

“정문까지 괴물 없음. 잠시 대기합니다.”

괴물들은 일정한 영역을 왕복한다. 어떤 원리로 그런 균일한 정찰이 이루어지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균열 안정기 후에는 괴물들끼리 영역이 겹치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괴물들은 오로지 특별한 경우에 다른 개체의 영역을 침범한다.

“뭔가와 감지 영역이 겹쳤습니다.”

지호는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며 신중히 부근을 확인했다. 감지계 헌터는 총 네 사람. 각기 사방을 확인하는 가운데 감지 영역이 가장 넓은 지호가 경인 교대 방향을 맡았다. 걸리는 괴물이 많은 와중에 한 놈의 흔들리던 감지 파장이 지호 쪽으로 머리를 고정했다.

“인식됨. 전투 준비.”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훈련받은 대로 매뉴얼을 읊기 무섭게 눈을 뜨자 지호의 앞으로 헌터들이 대형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본디 감지계와 방벽 소질은 병행되지 않는 재능이다. 그러나 오로지 보현과 지호만이 둘을 동시에 행할 수 있고, 부상자인 보현을 제외한다면 지호만 그 역할을 동시에 맡을 수 있다.

그렇기에 지호는 본인의 앞에 선 헌터의 어깨를 콱 밟아 디디며 소리쳤다.

“미, 미안해요!”

본인이 감지했기에 해당 방향에서 오는 공격을 누구보다 빨리 막을 수 있었다. 쐐기형으로 날아온 날카로운 고리가 방벽을 거칠게 할퀴었다. 균열의 고요가 깨진다. 열 명 남짓 되는 1팀, 절반가량은 병아리들이다.

“잘했어요. 다시 대기.”

지호가 방벽을 펼치는 순간 어깨를 밟힌 헌터가 곧바로 지호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쭉 밀려났을 것이다. 방향이나 공격 자체는 감지할 수 있지만 세기를 알기가 어렵다. 다짜고짜 실전이라 등에 땀이 주룩주룩 흘렀으나 어쩔 수 없다. 급성 균열 중에서도 악성 균열. 일반 균열과 달리 균열이 사라지는 순간 내부의 생존자들 역시 균열 너머로 휘말린다.

본디 급성 균열은 숨어 기다리면 살 수 있는 일반 균열과 전혀 달랐다. 만약 전조도 없이 균열이 사라지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는 거다. 구조에 인력을 집중하는 건 당연했다.

지호 역시 보현에게 구조되지 않았다면 여기 있을 수도 없었을 터. 비슷한 시기에 각성자가 된 지호의 친구들 역시 같은 이유로 지원했다.

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 선택지는 고르지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에 헌터를 지망하지 않았을 테고.

일산과 수원 쪽에서 일반 균열로 파견되어 있던 헌터들이 속속 지원 준비를 마쳤다곤 들었으나 할 수 있는 한은 최대한 처리해야 했으므로 헌터들은 다시 전열을 갖췄다. 같은 방향에서 공격이 날아오진 않았다. 지호는 양해를 구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쭉 살피자 아까 걸렸던 위치에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다.

“어, 음. 깨끗해요. 그니까, 클리어.”

“에너지 흐름은?”

“잠시만요…….”

지호는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흔적을 느꼈다. 강하게 압축된 이형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 헌터들 방향으로 나 흐르는 파장. 그러나 끝에는 괴물이 없다.

“어, 여전히 없습니다. 클리어.”

“1팀 이동.”

건널목을 두 개 지나 입구에 들어설 때까지 감지되는 괴물은 없었다. 본디 안정된 균열 내부에 괴물이 그렇게 득실거리지 않는다고 배우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조용한 이유는 뭘까? 본디 코드 레드 경보가 발령 났던 지역 부근이라 노련한 헌터들도 꽤 긴장한 눈치였다.

대학 입구를 통과해 가로수 가지런한 길을 느릿하게 걸으며 펼쳐진 참사를 확인했다. 주차장의 차들은 반파되거나 완파되었고, 도망치다 잡혀 죽은 이들의 흔적이 사방에 가득하다. 하필 이런 뚫린 곳에서 괴물을 만난 사람들이라니, 그들을 찾아온 것이 차라리 신속한 죽음이었기를 바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파헤쳐진 화단들을 지나쳐 도서관 건물에 도착했다. 아래층은 다 깨져 있고 주변엔 소음 하나 없이 고요하다. 손목의 화살표가 강렬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부근에 생존자들이 있다.

“실내 수색합니다. 두 사람만 들어가죠. 최소민 각성자. 좌표 확인하며 진입.”

팀장이 이동 능력자인 소민과 동행해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 조각 밟히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진다. 내부에 실내 청소부가 있을 확률이 다분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염동력 능력자들이 2층 높이로 떠올라 부근의 이상 현상을 감시했다.

지호는 도서관 부근에 감시장을 펼친 채 기다렸다. 내부를 훑고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외부에서 오는 위험을 미리 아는 게 훨씬 중요했다. 보현은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고 말했다. 팀원들을 지킬 수 있었다는 자책과 함께.

제 오만이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보현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런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분명 그러지 말라고 보현이 옛이야기를 해 줬을 테니까.

지호는 균열에 흐르는 이형 에너지를 몸으로 받아들이며 감지 파장을 좀 더 균일하고 넓게 퍼트렸다. 물처럼 흘러 나가던 파장에 괴물 몇이 걸리지만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이동해 간다.

처음에 공격해 온 놈은 어떻게 되었을까? 불안이 이마에 맺혀 또르르 흘러내렸다. 곁에서 대기 중이던 지윤이 손수건으로 얼굴께를 닦아 주었다.

차라리 본인이 들어가고 싶어 하던 하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위를 쳐다보다 도서관 상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는 눈대중으로 층수를 확인했다. 얼추 5층가량. 해당 사실을 어플에 업로드하기 무섭게 확인 통신이 왔다.

“언니 친구도 괜찮을 거야.”

지윤은 두 사람 모두를 챙기면서도 걱정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응시했다. 하나 또래인 지윤에게도 여기 다니는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처음부터 연락이 없던 사람과 중간에 연락 끊긴 사람에게 가지는 희망의 크기가 다를 뿐.

구조 신호가 꺼졌다. 신호를 보내던 기기가 부서지거나 직접 신호를 종료할 때에만 나타나는 현상. 몇 사람이 불안한 얼굴로 건물을 확인했다. 다행히 생존자 확인 및 부상자 관련 보고가 줄줄이 올라왔다. 실내에 괴물은 없거나 마주치지 않은 모양.

-내부에 실내 청소부 둘 이상 돌아다니는 것으로 확인되며, 생존자들 건물 외벽을 통해 내보내겠습니다. 염동력 능력자들 지원 바람.

팀장의 지시 후 지호는 감지 파장을 거두어들였다. 부근에 위험한 괴물은 없는 것 같다. 엄청 속도가 빠른 놈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적절한 시기에 생존자를 균열 밖으로 대피시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며칠 배우지도 못했으면서 지호는 배운 대로 움직이려고 애썼다. 공부하던 버릇이 남아 암기하던 것들을 입으로 웅얼거리며 확인한다. 본인에게만 사용되는 염동력이니 홀로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해, 지호는 5층 높이에 떠오른 채 방벽을 펼쳤다. 높이 오르자 대학 정경이 쭉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상당히 높은 곳에 뭔가가 떠 있는 게 보였다.

방벽과 감지 파장을 둘 다 사용할 수는 있어도 동시에 써 본 적은 없었기에 지호는 주춤했다. 둘을 같이 쓰려면 범위가 좁아진다. 저 높이까지 힘을 뻗어 확인하려면 방벽을 거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반구형 포도 젤리 두 개를 겹쳐 놓은 듯 구형이면서 울퉁불퉁한 모양새를 갖춘 괴이한 물체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위험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균열에 사는 괴물을 육안으로 판별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지호는 위쪽 방벽 두께를 두껍게 하며 하늘을 경계했다. 다른 염동력 능력자들과 신체 계열 능력자들이 서른 남짓되는 생존자들을 건물 밖으로 대피시키는 동안 내내 시선을 떼지 않았다.

거의 체력이 없어 실신 직전의 생존자들은 소민이 맡아 빠르게 균열 밖으로 데려간다. 한 번에 셋 이상은 불가능하며 엄청난 두통과 멀미가 수반되겠지만, 그 무엇보다 확실한 조치다.

마지막 사람이 신체 계열 헌터에게 업혀 건물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철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실내 청소부가 도서관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다행히 마주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5층 외에 생존자가 더 있을 수 있으나 차후 수색합니다. 김서영 헌터, 이지호 각성자 업어요. 주변 감지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수비 대형으로. 생존자 여러분, 서둘러 움직여 주시겠습니까?”

본디 다른 팀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순서다. 그러나 지호가 보고 있는 것을 팀장 역시 보았고, 그것이 불길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라 그는 다급히 결정을 내렸다.

생존자들이 우르르 길가로 나섰다. 지호는 다른 헌터에게 업힌 채로 감지 파장을 최대로 뻗었다. 방벽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자 감지 파장은 순식간에 쏘아져 나갔다.

파장이 하늘 높은 곳에 있는 놈에게 닿은 순간, 검은 구체가 반으로 쩍 갈라졌다.

붉고 선명한 시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의 기억이 그를 덮쳤다. 지호가 덜덜 떨기 시작하자 그를 업고 있던 헌터가 고개를 돌려 안부를 물었다.

“이지호 각성자?”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은커녕 힘을 제대로 운용할 수조차 없었다. 감지 파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자 에너지가 날뛰는 것을 느낀 팀장이 황급히 대열을 멈추게 했다.

“왜 그래?”

“아니 갑자기…….”

팀장은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세 사람 중 두 사람에게 주변을 탐지하도록 지시했다. 가용 범위나 에너지 밀도 해석 정도가 달라 아무래도 시간이 더뎠다.

지윤이 지호의 등에 손을 얹어 그를 안정시키려 애썼으나 아무래도 쉽사리 상태가 안정되지 않았다.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는 흔적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팀장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생존자들을 숨겼다. 최소한 숨기는 시늉이라도 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위치가 아닌지라 이러면 곤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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