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지호는 얼른 고개를 숙이곤 소민의 옆구리를 찔렀다. 소민은 익숙하게 훈련장으로 둘을 옮기곤 또 이마를 짚었다. 아찔하니 몰려오는 현기증에 지호 역시 속이 좀 안 좋았다.
“왜 피해요?”
“으, 아무래도 그 반장님 좀 그래요. 불편해…….”
“저도 전에 뵌 적 있어요. 무슨 테스튼가 하는 거 받으려고. 그대로 세상에서 존재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는데.”
“소민 씨도요? 저도요, 저도. 멀미 나고 막. 이동 능력 부작용이랑은 차원이 다른 그 느낌 있잖아요.”
둘은 김 반장의 무자비한 테스트를 욕하며 지윤과 하나가 앉은 곳으로 돌아와 앉았다. 일반 균열 내부에 서식하는 괴물에 관한 영상 자료가 재생되는 중이라 실내가 조용했다. 멀쩡하던 허공에 갑자기 그림자가 진다.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과 요란한 소리, 그리고 곧 끊어지는 신호.
“바닥에 지나가는 그림자 보셨습니까?”
교육 담당 헌터가 화면을 앞으로 돌렸다. 그림자가 확 가까워지며 아래에 형체를 식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보였다. 화면은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그림자 역시 움직임대로 모습을 바꾼다.
그리하여 나타나는 모습은 고양잇과의 대형 동물.
“균열 경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개체 중 하납니다. 다 왔다고, 곧 살 수 있다고 희망에 찬 생존자들을 가장 많이 죽이는 놈이기도 합니다. 소리가 거의 없는 놈이라 습격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냄새가 고약하고 숨는 경우가 없어 습격 전조를 짐작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발견 후 부여된 이름은 그림자 호랑이로, 아직 본체를 정확히 목격한 이가 없어 얼추 고양잇과의 대형 동물이니 호랑이겠거니 하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행히 단체 행동을 하는 놈들은 아닙니다.”
실제 호랑이보다는 체격이 작고 고양이보다는 크다. 그러나 사람 하나는 충분히 덮칠 수 있는 크기이기도 했다. 승찬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저놈이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었지.
지호는 덤덤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했다. 균열에서 일어나는 많은 죽음의 원인 중에서도 악랄한 편인 놈들이다. 희망에 가득 찬 얼굴이 절망과 고통, 괴로움으로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걸 오래 보기 어려웠다.
“어떤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괴물들은 일부 특징을 공유합니다. 은신 개체들이 그에 속하죠. 모습이 보이지 않는 놈들의 특징은 자기 소리를 숨길 생각이 없단 겁니다. 울부짖고 부딪치고 부수고 요란하게 움직이는 편이죠. 실외에서라면 상당히 까다롭지만, 실내라면 대처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익혀 두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겁니다.”
실내에서 괴물에 관한 교육을 받는 임시 헌터의 수는 전보다 적었다. 김 반장이 기어코 정신 방벽 능력을 개화시킨 사람이 몇 있던 까닭이었다. 다만 지호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그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까닭에 이제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다음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괴물을 보며 지호는 인상을 썼다. 사실 화면에 등장한 건 일렁임뿐이지만, 지호는 부근의 물체들이 빨려 들어가는 것과 영상에 들리는 철퍽 소리 때문에 놈의 정체를 알았다.
“이것 역시 은신 개체죠. 이상하게 좁은 실내에서만 등장한 이력이 목격되는 놈입니다. 이번 남동구 급성 균열에서 처음 나타났고요. 관련 정보가 균열 어플을 통해 제보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계양 균열에서도 발견되었죠.”
부평 초등학교에 등장했던 바로 그놈. 형철을 방호복째로 삼키려고 했던 놈이다. 헌터들이 해당 지역에 코드 레드 경보가 해제되기 무섭게 가장 먼저 출동한 지점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어떻게 생존자들을 구출하긴 한 모양이었다.
“전진밖에 못 하는 놈이라 뒤를 잡으면 상대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면에서 마주치면 상당히 까다롭고, 상대해 본 헌터들은 되도록 공간을 차단해 피해 버리는 법을 추천하더군요. 불에 약하기에 정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놈의 전진 방향으로 불을 질러 버리면 도주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건물이 반파되어 실외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겼는데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걸 보니 건물 내부에서만 머무는 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보이지 않는 개체 중에는 가장 최근에 나타난 놈입니다. 용해성 액체를 뿜어내서 접근하면 위험하니 주의하고, 부근에 널린 것들을 빨아들이는 놈이라 해당 공간이 이상할 정도로 깨끗하면 곧바로 도주로를 확보하십시오. 국내에서 발견되어 코드 네임은 실내 청소부로 붙었습니다.”
뭐 그런 이름을 붙이냐고 지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지호는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코드 네임이란 게 발견한 국가에서 붙이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퀸 패러사이트는 영어권의 타국에서 발견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으로 번역된 것이거나.
다음 괴물의 영상이 화면에 송출됐다. 균열 생존자가 찍은 것인지 흔들리고 화질이 좋지 않지만, 용케 그 모양이 끝까지 잡혔다. 지호는 그것들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기억했다.
언젠가 다시 균열에서 만날 때는, 놈들이 지호를 두렵게 하지 않을 것이다. 지호가 그것들의 공포가 될 테니.
햇병아리의 포부를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다. 지호와 팀을 이룬 친구들은 아무도 김 반장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급조된 팀은 전투에 당장 투입되는 대신 퀸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위험하지 않게 균열 입구 부근을 오가며 놈의 숙주들을 다른 방향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관측된 바에 의하면 본체와 멀리 떨어지게 될 경우, 숙주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멈춘다고 했다. 아직 그 상태로 멈춘 숙주에게 접근한 헌터가 없어 그 이상의 기록은 없지만, 조금 기다리면 숙주는 곧 움직인다. 본체가 함께 이동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헌터들은 느리고 신중하게 퀸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아무리 정신 방벽 운용이 가능해졌다지만 급조한 힘이고 익숙지 않은 능력이기에 김 반장은 직접 병아리 팀을 지휘했다. 구현화계에 정신 계열이라 전투에 적합지 않은 사람인데도 나설 수밖에 없다고 들었다.
하나는 짬이 날 때마다 균열 어플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현장 보고를 읽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 오후 세 시를 기점으로 경인 교대 방면까지 코드 레드 경보가 해제될 겁니다. 그러니 계양 균열에 나타났다는 괴물 정보는 모두 숙지하십시오. 딴 짓은 나중에 하시고요.”
교육 담당 헌터가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집중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면 사실 몇 분이 멀다 하고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하나의 친구가 경인 교대 학생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어제 배터리가 끊길 것 같다고 온 연락이 마지막이었고.
죽음이 너무도 가깝다. 삶은 그토록 가까웠던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한 일이다.
“하나 씨, 우리 잘 숙지하고 들어가서 꼭 도움되는 헌터가 되어야죠. 핸드폰 나중에 봐도 돼요. 어차피 이동하면서 브리핑 들을 수 있어요.”
“그건 그렇죠. 알지만…….”
하나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려고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이란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내 다시 핸드폰을 켜곤 제 인내심의 바닥에 놀라 도로 종료 버튼을 누르게 되는 게 사람이다.
인터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쏟지 않았지만 놓친 괴물 정보가 있었기에 지호는 십여 분가량 주어진 쉬는 시간 동안 해당 정보들을 빠르게 열람했다.
급성 균열이라 당연히 모르는 괴물이 더 많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러나 아는 괴물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때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게 지금 지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한참 자료를 읽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승찬에게서 온 메시지다. 어쩐 일일까. 화면에 문장이 빼곡했다. 쉼표며 온점 하나하나 지키는 게 어쩐지 승찬답다.
[혹시 계양 균열로 출동하십니까? 이번에 임시 헌터들 역시 동행한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만약 파견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계양산 쪽으로는 오지 마십시오. 주말이었고, 등산객이 많았습니다. 전에 보니 비위가 좋질 않으셨는데, 여긴 벌써 벌레가 끓습니다. 아비규환이고요.]
산을 끼고 생긴 균열이라기에 안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등산객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건물과 건물, 엄폐물 사이로 숨을 수 있는 도심지와 달리 탁 트여 몸 하나 가리지 못하는 나무들이 솟아 있는 산지.
생각하니 아찔했다. 도망치는 것조차 어려웠을 터. 지호는 승찬이 그에게 왜 이런 이야길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런 지옥들은 때로 상상하지 않아도 이미 머릿속에 빼곡하다.
그는 급성 균열이 생기기 무섭게 수습하러 달려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또한 마찬가지로 유혈이 낭자했다. 죽어 가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그리고 죽을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의 피로 엉망이었고. 산 것과 죽은 것, 발 디딜 곳과 눈에 보이는 풍경 모두 끔찍했다.
계양산으로 출동하라고 하면 아무래도 망설이게 생겼다. 승찬의 의도와 달리 거부할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가야 한다면 가야지. 그래서 살아 있을지도 모를 사람을 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지옥이면 더더욱, 그 틈에서 시체인 척 위장하고 있는 산 사람이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는데.
[주의할게요.]
지호는 간략한 답변을 남긴 뒤 다시 시작된 영상 교육에 시선을 두었다. 걱정에 손을 어쩔 줄 모르는 하나 곁에는 이미 지윤이 앉아 그를 다독이고 있다. 이대로 출동할 수는 있을까. 파리한 안색의 소민을 보며 지호는 이상한 책임감을 느꼈다.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그러나 지호 역시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해쓱하단 건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더 잘 알았다. 계속된 괴물들의 영상 자료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 반응이다.
가슴이 꽉 조이는 느낌을 애써 외면하면서, 지호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괜찮아. 저건 진짜가 아니다. 진짜를 마주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일 뿐.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문득 요란하게 느껴졌다. 세 시까지는 앞으로 한 시간. 그 안에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을까?
한 시간이 지나기 무섭게 땡, 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었으므로 그들의 교육은 삼십 분 후 종료되었다. 빳빳한 전투복에 부평 기능공 연합에서 제공한 새 장비를 장착한 병아리들은 나무 병정보다 더 뻣뻣한 모습으로 이동 포트에 올랐다.
아직 소민의 능력으로는 연수 센터에서 계양 균열까지 멀쩡하게 이동하기 어려웠기에 해당 지점까지의 이동은 다른 헌터들이 맡았다. 소민은 그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하는 것 같은데, 하는 중얼거림과 함께 소민의 몸이 옆으로 한 칸 움직인다. 으으, 하고 두통 참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익숙해지기까진 앞으로 요원한 모양이었다.
“연습은 나중에 해요. 지금은 에너지 비축하라고 박순자 헌터님이 그러셨다고요.”
지윤은 냉정하게 말하며 주변을 살폈다. 일전에 사고가 있었던 바로 그 위치다. 다 무너진 살풍경한 정경이 익숙했다. 또 그 바람이 불어오진 않겠지. 지호는 조금 걱정하며 균열 안쪽을 보려고 목을 쭉 뺐다.
균열이 막 열렸을 때와 안정기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폭발할 듯한 불안정함이 가라앉은 경계는 고요했다.
익숙한 고요.
균열의 불길한 바로 그 고요가 피부에 진득하게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