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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47화 (48/260)

47화

지호는 보현이 했던 과거 이야기를 떠올리며 던진 말이었으나 성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이거 비밀로 해야 하는 건가. 기준이 보현이 되어 버린 탓에 지호의 상식 역시 반쯤 마비되어 있었지만, 지호는 아직 그걸 몰랐다. 어물어물하던 지호는 대충 둘러댔다.

“아마 변이되는 개체일 수도 있고…….”

양 박사와 성 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게 아닌데. 지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수습하려 애썼다. 물론 말할수록 이야기는 진창으로 흘러가고 말았지만.

지호가 흘리지 않으려 한 이야기 속에서도 온갖 것들을 만족스럽게 챙긴 성 팀장은 방음실에 들어온 이래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메모를 정리했다.

“또 봤으면 좋겠네요. 아니, 이른 시일 내로 다시 볼 거예요. 다음에는 임시 헌터로 만나요, 이지호 각성자.”

지호가 아직도 소속을 명확히 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는 이야기였으나 지호는 자기가 흘린 말이 정말 중요한 이야기였으면 어쩌지 하고 머리를 부여잡느라 그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라는 기록은 안 하고 펜이나 돌리며 대화를 경청하던 양 박사는 흐뭇하게 웃었다.

“오늘 이지호 각성자의 이야기는 진짜 많이 도움될 거예요. 안 그래도 균열이 이어져 있단 것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픈 참이거든요.”

“다들 처음 안 사실인가요?”

지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울 쪽 헌터들과 정부는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었는데. 보현을 제외하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좀 이상하다. 성 팀장은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생긋 웃었다.

“아뇨. 이론상으로만 알았죠. 추측만 난무했고요. 그걸 횡단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해 준 사람은 전 세계에서 임보현 헌터가 처음이에요. 지금 온갖 요청이 쇄도할 텐데 잘도 검단 센터에 숨어 있네요. 미국에서도 난리가 났다고 들었는데.”

“다른 나라들엔 헌터가 더 많지 않나요?”

“인구가 많은 만큼 각성자도 많긴 할 거예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각성하는 조건 자체가 까다롭다 보니까……. 각성 요건부터도 일부 국가들끼리만 공유하는데요. 중국에서 사람들을 세뇌해서 각성자를 양산하려다 실패한 사례가 있어서…….”

성 팀장의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며 그 이야기들을 들었다. 다른 국가들 이야기를 몇 가지 늘어놓던 성 팀장은 녹음기를 끄며 넌지시 이야기했다.

“그런 것보다 정말 중요한 건 식량 자급 문제예요. 균열이 인구 많은 곳 위주로 생겨나긴 하는데, 그렇다고 사람 적은 곳에 안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그쪽 균열에 괴물이 더 적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각성자도 적은 동네란 뜻이에요. 대처가 어렵죠. 작년 농번기에 이천 지역이 농사를 그대로 말아먹었어요. 3주를 넘게 방치되어 있던 땅이 멀쩡할 리 없죠. 수확량이 엄청 줄었고, 농민들이 입은 피해도 심각해요.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균열은 자연재해와 같게 취급되고 있으므로 보상을 받을 길이 없죠.”

신선한 채소와 야채, 과일 같은 것들은 그야말로 금값으로 뛰었다. 지호가 자라 오며 그런 것들을 입에 대기 어려웠던 까닭은 균열 때문이었으니.

“그런데 임 헌터가 증명한 대로라면, 이제 균열이 생겨난 농지로 들어가서 농사를 마저 지을 수 있단 뜻이거든요. 물론 사람이 들어가진 않죠. 우린 그 일에 적합한 기계 개발에 들어갔어요. 현재 제일 중점이 되는 연구는 균열 입구가 닫혀 그쪽 세계와 이쪽의 연결이 끊겨도 움직일 수 있는가, 거든요. 왜 쟁점이 되냐면 에너지 보급 문제도 있고, 균열 너머는 태양빛이 약하다 보니 태양열 에너지 수급도 문제가 좀 있고…….”

이후로는 지호가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쭉 나열됐다. 성 팀장은 헌터보다는 연구자에 가까운 사람 같았고, 양 박사와는 확연히 다른 타입이다.

양 박사보다는 기능공 연합의 서명은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성 팀장은 열변을 토하며 지호에게 해당 이론으로 상용화될 여러 가지 기술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것들 다 대외비라 어디 퍼지면 안 돼요. 물론 안 그럴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녹음은 안 한 거고요. 사실상 아까 인터뷰로 본래 용건이 끝나기도 했지만.”

“다 잘되면 좋겠네요. 건조식품이나 가공식품 말고 신선한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보현의 집에 얹혀살면서 보현이 주문한 음식을 먹고 보현의 카드를 쓰곤 하지만, 지호의 의식 수준은 여전히 엄마와 함께 살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문에 보현이 맘껏 쓰라고 준 카드는 대부분 지갑에 잠들어 있을 뿐이다.

“저, 그래서 말인데. 조금 전에 말하던 변이 개체 이야기 말이에요.”

지호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보현이 말하지 말라고 한 건 아마 준우 이야기 선에서 끝이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다른 것들 역시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성 팀장은 간곡히 애원하며 지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원한다면 연구 팀 내에서 외부로 자료 반출할 수 없게 철저히 통제할게요. 임 헌터는 도통 만나 주질 않는 데다 만나도 제대로 된 이야길 안 해 준단 말이에요. 헌터들 중에서도 연구 쪽으로 빠진 사람들을 질색한다고요.”

“그치만 제가 뭐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임 헌터한테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잖아요. 병원 나오자마자 바로 지호 씨한테 갔단 얘기 들었어요. 예? 제발요. 혹시 말하지 말라고 했었나요? 그것만 빼고 얘기해 주셔도 돼요. 예?”

성 팀장처럼 척 봐도 어른이란 느낌이 들던 사람이 체면 다 내팽개치고 매달리는 걸 보니 어쩐지 마음이 약해졌다. 지호는 고민하다가 양 박사의 초조한 시선을 받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호에게 이야기해 준 건 그가 알아야 할 사실이기 때문이도 했겠지만 이 사람들에게 들어갈 것이란 사실을 짐작해서이기도 할 터. 보현은 지호에게 입을 꼭꼭 막고 있으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때 이야기한 게 다는 아니고요.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이야길 하긴 해요. 가끔 집에 오니까…….”

그 임보현과 한집에 사는 사람의 특권이다. 헌터들 중에서도 통제 정보를 가장 많이 접했을 사람인지라 연구 팀 사람들은 모두 지호와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었다. 지호만 그걸 몰랐다. 연수 센터에 올 일도 교육 때문이었던지라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낼 일이 없기도 했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진짜! 뭐 쓸데없는 것도!”

“이런 게 왜 필요한지…….”

“여태까지 소수의 괴물을 제외하곤 살아 있는 인간에게만 반응했지 기계엔 잘 반응을 안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연구를 지속했다고요. 이제 곧 균열에 보낼 다용도 인공 지능이 나올 텐데, 근데 여기서 또 뭔가 변이된 괴물이 나온다고요? 말도 안 돼!”

“발견 안 되었던 개체일 수도 있어요. 그냥 제가 만났던 게 새 괴물이라면 문제가 없는 건지…….”

“중요한 건 그것들이 나타난 모양 그대로 현상 유지를 하느냐, 아니면 뭔가에 영향을 받아 진화해 가느냐거든요. 전자라면 문제없지만, 후자는 문제예요. 우리가 사용하는 기계나 전자식 도구들에 놈들이 익숙해지는 미래를 상상해 봐요. 그걸로 생존자들을 유인하고 사냥하는 상상이요.”

생각만 해도 끔찍했기에 지호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날 외에도 보현과 대화한 적이 많았기에, 지호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이 추측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실은, 퀸 패러사이트 말고 새로 나타난 괴물 있잖아요. 도플갱어?”

“예. 혹시 변이 개체라는 말이 도플갱어를 지칭하나요?”

“어, 그것보다는 다른 식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괴물이 있어서 했던 말이었는데요. 아까 이야기했던 그 괴물……. 음, 언니는 그게 정신 조종 계통 괴물이 분화해서, 그러니까 괴물이 진화하면서 나타나는 놈들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지난 십 년간 이런 놈들은 없었다고요.”

정신 공격을 가하는 괴물이라면 몇 있었다. 그놈들에게 당한 피해자도 상당했고, 대처하기 까다로워 각성자들 중에도 여태 후유증을 호소하는 자들이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인간만 한 고등 생물체를 세뇌하고 조종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새로운 괴물이 아니라, 놈들이 진화하고 있다?”

“상황에 맞춰 괴물들이 새로 태어난다는 거랑 괴물들이 시기에 맞춰 진화한다는 것, 둘이 뭐가 다른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언니는 후자일 거라고 추측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놈들이 나타난 균열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

“위험하니까? 하지만 이지호 각성자는 곧 헌터가 될 거 아닙니까? 그런 위험한 균열에 앞장서 들어갈 텐데요. 그걸 피하려면 기능공 연합으로 가야죠.”

옆에서 양 박사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성 팀장이 눈을 부라렸으나 지호는 그걸 못 봤다. 생각에 잠겨 아래를 내려다본 까닭이다.

보현은 언제나처럼 무심히 이야기했었다. 그럴 때의 보현은 언제나 철저한 타인이다. 지호는 그때의 그 거리감을 떠올렸다.

“언니는 그냥, 헌터를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정확히는 각성자들이 헌터 일하는 걸요. 괴물들이 내놓는 마정석과 부산물들이 생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도 그랬어요. 이건 언니가 말한 건 아니고 제 생각인데요. 혹시 균열에 진짜로 위험한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요? 헌터들이 상대할 수 없는 그런…….”

성 팀장과 양 박사를 잔뜩 불안하게 만든 지호는 가 봐야겠다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 더 앉아 있으면 보현이 퍼지는 걸 원치 않을 이야기까지 털어놓을까 두려웠다.

지호가 연구실에서 나오는 것을 본 소민이 곧바로 이동해 왔다. 여전히 자연스럽진 않지만 이제 멀미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은 경지다. 물론, 두통은 여전했지만.

“으, 오래 걸렸네요.”

“소민 씨 어디 갈 때마다 이동 능력으로 움직이다 보면 두통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은데요.”

“하치만 자주 써야 익숙해진댔어요. 이동 거리나 무게 제한 같은 것도 천천히 늘어나고…….”

소민은 두통약을 찾아 품을 뒤졌다. 저러다 이동 능력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위장 장애 오는 게 먼저겠는데. 지호는 물도 없이 약을 삼키는 소민을 보며 정수기를 찾았다. 그쪽으로 이동하려는 지호의 어깨를 소민이 붙잡았다.

“지호 씨. 어디 가요?”

“예? 물 뜨려고…….”

“기억 안 나요? 센터 내에서 모든 행동 시 능력을 사용할 것.”

지호에게 유일하게 없다시피 하는 건 염동력 계열이다. 자신에게만 쓸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없는 셈 치기 때문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물론 나는 것 자체는 자신과 세계 사이의 일이라 보현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지호는 소민의 눈치를 보다가 벽 재질을 변화시켜 컵을 만들었다. 엉성한 모양새지만 물이 새지만 않으면 제 몫을 다하는 물건이다.

“이거 드리면 되죠?”

소민은 컵을 받으며 다시 능력을 썼다. 머리를 띵하니 울리게 하는 힘이다. 일 미터가량 이동했지만, 소민의 얼굴은 벌써 파리했다.

물컵 바닥이 평평하지 않았는지 내려놓자 컵이 기우뚱 흔들렸다. 지나가던 헌터 하나가 컵을 다시 벽으로 되돌리며 조언했다.

“물체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머릿속에 그리지 않으면 구현화 하느니만 못해요. 이게 안 되면 그냥 염동력을 익히시는 게 낫고요.”

“고작 컵이었는데…….”

“이게 잘 안 되면 공간감 개념 익히는 훈련부터 다시 해 봐요. 아마 김 반장님이 요령을 아실 텐데, 지금은 나가 계시지만 보통은 아마 연구실에…….”

“공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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