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6. 호사가들
졸업도 하지 못하고 헌터 교육부터 받게 된 터라 지호에게는 일정 수준 상식의 공백이 있었다. 본래라면 차근차근 교육 과정을 밟아 가며 배웠을 텐데 단계도 축소되었고 급성 균열에도 파견되며 이리저리 치이는 통에 제대로 배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보현은 그런 것들은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양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어느 정도의 속성 교육까지는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임보현 헌터는 1세대 때부터 헌터였던지라 일반 상식을 잘 몰라요. 사람들이 어느 걸 알고 어느 걸 모르는지를 모른다고 해야 하나. 가끔 다들 알고 있는 걸 아무도 모르죠? 하면서 이야기한다거나 아무도 모르는 걸 일반 상식인 것처럼 이야기한다든가.”
몇 번 느낀 적이 있었기에 지호는 그저 웃었다. 보현의 상식 수준 이야기보다 양 박사가 왜 여기 있는지가 좀 더 궁금했지만 대놓고 묻진 않았다. 양 박사는 본인이 먼저 하려던 이야기를 꺼내게 놔두지 않으면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음 날도 그 이야기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이라, 되도록 먼저 이야기하도록 놔두라는 조언을 들은 탓이다.
“이지호 각성자, 한동안 연수 센터에 출근 도장 찍는 게 좋겠어요.”
“예?”
“지금 헌터 지망생들 교육받는 연수 센터는 교육 기관도 겸하고 있어서, 이지호 각성자처럼 교육 과정을 미처 끝마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학부 과정이 있어요. 지호 씨를 그 과정에 추천하고 싶어서요.”
학교를 떠나 곧장 현장에 오게 되면서 학교 비슷한 것은 다시 다니지 못하게 될 줄 알았다. 지호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다른 센터들이랑 차이가 있나요?”
“좀 더 지식과 상식을 겸비하게 되죠. 헌터가 되어 일하게 된다고 해도 사람들하고 아주 안 부딪히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필요한 걸 다 돈으로 때운 대도 한계가 오기 마련이에요. 그런 자리를 메꿔 주는 게 교육이죠. 사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만나게 해 주는 의미도 크고요.”
“저를 만나게 하고 싶은 누군가 있는 모양이군요?”
양 박사는 웃었다. 핏줄이 잘 보이는 하얀 팔 위로 가운 소매를 둘둘 걷어붙인 그는 수줍게 안경을 고쳐 쓰며 희망에 찬 표정을 지었다.
“제 의도를 눈치채셨다는 건…….”
“그, 아뇨. 언니가 양 박사님 제안은 일단 거절하라고 했어요. 언니랑 꼭 상의하라고…….”
“뭐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실험 대상이 되어 달란 것도 아니고 수치 확인을 하게 전투력 측정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세포를 채취해 가겠단 것도 아니고 여기로 소속을 옮겨 달라는 것도 아닌데…….”
“언니한테 도대체 뭘 요구하셨던 거예요?”
“헌터들의 다채로운 협조로 연구가 다각화되어 기쁘다는 말을 전했던가요? 아무튼, 어려운 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두 번째로 등장한 올라운더가 상식 부족인이기를 원하진 않아요. 아무래도 여기저기 불려 다닐 일도 많은데, 배워 둬서 나쁠 건 없거든요. 정 찝찝하면 임 헌터한테 물어봐도 됩니다. 진짜로요. 기다릴게요.”
이렇게까지 나오자 거절하기도 뭣했다. 지호는 결국 양 박사가 보는 앞에서 보현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다. 뜻밖에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안 그래도 연수 센터장하고 이야기 한 번 했어요. 다시는 그러는 일 없을 거라고 했으니 지호 씨 다녀오는 것 정돈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쪽에 친구도 있다고 했었죠?
하나와 지윤이 연수 센터 소속이다. 물론 지금 헌터 지망생 교육이 연수 센터에서 같이 이루어지니 소민도 얼굴 보긴 할 텐데, 그런 실습형 훈련을 매일 할 수는 없어 항상 보긴 어려웠다. 울상을 지을 소민이 떠올라 지호는 이마를 긁적였다.
“음, 친구들이긴 한데 언니들이에요. 그래도 친구니까.”
-혹시 이상한 거 하면 기계 부숴 버려요. 이 기회에 감지계 기술도 항상 활성화해 놓고. 능력은 써야 늘어요. 알죠?
요새 보현이 부쩍 잔소리가 늘었다. 지호는 그러겠단 대답을 세 번은 한 다음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양 박사는 수화기 너머로 다 들었으면서도 눈을 빛내며 대답을 기다렸다. 열댓 살쯤 많은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웃기기도 해서 지호는 종료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된대요. 근데 누구를 봐야 돼요? 다른 헌터 지망생들?”
“교육 과정에서 만날 분들이니 따로 만남을 청할 이유는 없겠죠. 그보다는 인터뷰를 좀 해 주셔야 합니다.”
“예?”
“어, 외부로 누출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이번에 임보현 헌터한테 이야기한 코드 레드 의심 개체 이야기 말입니다. 아무래도 목격자한테 직접 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다른 목격자는 따로 없는 것 같고, 있어도 어린 것 같아서……. 심지어 일반인이잖습니까?”
“물어보는 것 정도는 되지 않아요?”
“각성자도 아닌 사람들이 그런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 할 리 없습니다. 심지어 어린애고요. 보호자가 질색할 겁니다.”
오랜만에 샛별이를 만날 수 있었나 싶어 잠시 반가웠던 지호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샛별이의 새 연락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보호자가 연락하는 것을 원치 않아, 몇 줄 메시지를 적다가도 지우기 일쑤였을 뿐 인사조차 보낸 일 없다.
샛별이는 잘 있을까?
이젠 이름도 쓸 줄 알겠지. 다른 글자를 좀 더 배웠을지도 모른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메시지 정도는 주고받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동시에 떠올린다. 지호를 보면 샛별이는 그때의 끔찍하던 균열 내부를 떠올릴 것이고, 죽어 있던 엄마와 함께 있던 며칠을 떠올릴 것이며, 아수라장이던 온 순간들과 괴물에게 밟혀 죽던 수희를 떠올릴 것이다. 지호가 안 보게 하려 해서 할 수 있던 것이 아니었으니.
“언니한테 이야기한 게 단데…….”
“좀 더 세부적인 정보가 필요해서요. 혹시 기록용으로 녹화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요청하시면 모자이크도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정보 기록용 자료일 뿐이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말하는 양 박사의 눈은 빛나고 있다. 분명 모두에게 도움될 일을 하는 게 맞는데 어째 좀 찜찜하다. 지호는 얼떨결에 양 박사를 따라 이동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근데 이 인터뷰랑 교육 기관으로 이동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의문은 금방 풀렸다. 지호와 인터뷰하는 담당 헌터가 연수 센터 팀장이라고 했다. 박 팀장이 부천 센터 팀장이니까 이쪽 사람도 꽤 지위가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을 성여진이라고 소개한 팀장은 생긋 웃으며 인사부터 건넸다.
“일전에는 이쪽에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정보 통제를 하는 게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닌데 아직들 조급해해서요.”
“어, 들었어요. 혼란을 막기 위해서 조금씩 푸는 거라고. 근데 헌터들끼리도 정보를 막을 이유가 있나요? 알아야 도움되잖아요.”
“아, 그건…….”
옆에서 기록만 담당하겠다고 서기관의 자리를 빼앗아 앉은 양 박사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코드 레드 개체 이야기를 하러 나온 거니까 알 건 알고 있어야 안전할 것 같군요. 그리고 당장 균열에 들어갈 건 아니어도, 결과적으로 사냥하러 들어가긴 할 거니까요.”
뭔데 눈치까지 봐 가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지호는 결국 호기심에 굴복했다. 성 팀장은 헛기침하더니 준비해 온 파일철 하나를 펼쳤다.
“퀸 패러사이트의 숙주가 되었던 자들의 흔적입니다. 대체로 인간에서 벗어난 모양새와 행동을 보이는 게 특징인데, 그건 살아 있을 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머리를 열어 뇌만 파먹는 괴이한 괴물이 나타난 게 아니라면 이런 형식의 시체는 패러사이트 퀸의 소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호가 보기엔 다소 끔찍한 부분이 있었다. 보여 줄 사람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감안했는지 사진의 해상도가 높지 않다. 심지어 일부는 그림으로 그려 왔다. 그렇다고 끔찍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지호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며 눈치를 살폈다.
“이걸 왜 보여 주시는 건지…….”
“남동구 균열에서 목격하신 개체의 위험도를 예측하기 위해섭니다. 연수 센터는 교육 센터임과 더불어 균열 예측 연구소를 겸하고 있거든요. 그 때문에 새로운 개체를 만난 헌터들에게 늘 정보를 수집합니다. 통상적인 업무입니다만, 아무래도 우리 센터에서 겪은 일에 불편함을 느끼실 수 있어서…….”
지호 눈치를 보는 게 아니다. 보현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지호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현이 이걸 몰랐을 리는 없고, 지난번 보현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여기에 전달한 것도 보현이겠지. 그래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겠다고 지호를 부른 것일 터.
그러니까 교육을 받는 겸 해서 이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 이 인터뷰를 수월히 하기 위해 교육 기회를 다시 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죽은 상황까진 기억도 잘 안 나고 경황도 없어요. 다만 괴물이 인식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상하단 생각은 했었어요. 그리고, 음.”
제일 이상한 부분을 거론하며 지호는 머뭇거렸다. 그게 정확한 기억인지 아니면 공포나 놀람으로 인한 착시였는지 정확히 떠올리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래서 지호는 이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덧붙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동행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를 죽인다고 했었고, 계속 그것만 반복하면서 그 사람만 봤어요. 구조되기 직전에 죽은 사람이라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고요. 제가 세게 걷어찼는데도 멀쩡했고, 입 안이 시뻘겠어요. 뭐 때문에 빨간지 자세히 보진 않았어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화가 통하던가요?”
“계속 수희 언니를 죽이겠단 말만 반복해서 잘 모르겠어요. 언니가 대화하려고 하긴커녕 패닉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멀쩡한 정신으로 대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때 지호는 본인이 각성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 두려움, 긴장은 전부 생생한 현실이었다.
“수희 언니는 정신 공격당한 사람 같은 반응을 보였었는데…….”
“그런 반응을 이지호 각성자가 어떻게 알아요?”
양 박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호는 그가 살아온 환경을 읊기에 앞서 생각했다. 보현이나 양 박사나 헌터들 사이에서만 살아온 탓인가. 일반 상식이 부족한 거로 둘이 서로에게 뭐라고 할 처지가 못 되는 것 같다. 지호는 덤덤히 답했다.
“제가 균열 피해자들 사는 지역에 오래 살았었거든요.”
“양 박사님, 대상자 기록 미리 안 보고 오셨어요? 옆에서 채록만 하신다셨잖아요. 입 좀 다물고 계세요.”
성 팀장은 지호와 똑같은 표정으로 양 박사에게 한 소리 했다. 양솔은 시무룩한 얼굴로 종이에 얼굴을 처박았다. 다들 저한테만 뭐라고 합니다, 하는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하며, 성 팀장이 질문했다.
“퀸 패러사이트의 숙주가 된 사람도 목격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차이점이 있어 보였나요?”
“어, 한쪽에는 감지 능력을 쓰질 않아서 정확하게 구분하긴 어려워요. 그래도 육안만으로도 대충 분간이 되는데, 퀸의 숙주는 인간보다는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요. 새 의심 대상 괴물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모양새예요. 정말 그게 괴물이 맞기는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