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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44화 (45/260)

44화

세 사람은 말을 얼버무리며 안쪽을 가리켰다. 평범한 오피스텔. 어느 건축 회사가 쓰던 건물인지 조감도와 설계도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도시 지도를 크게 펼친 채 한쪽을 노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정장이 썩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나마 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제일 멀쩡한 차림새다. 나이 든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실내엔 거의 남자들뿐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균열 지도와 종이 지도를 대조하며 몇 가지를 의논하던 이들은 보현에게 질문했다.

“자네, 죽었었나?”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인가. 보현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종인이 옆 사람을 노려보았다. 보현을 데려온 셋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허겁지겁 손을 내저으며 밖을 가리켰다.

“아니 저쪽, 저기 차에 있었어요. 다른 대원들도 봤고요. 다 찌그러진 차였습니다.”

“전혀 아니잖아.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필요하다고!”

저들끼리 화내는 사람들을 멀뚱히 관찰하던 보현은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개소린가 생각했다. 그때였다. 건물 밖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다채로운 비명과 함께 모두 몸을 움츠렸다. 다행히 건물은 약간 흔들리고 말았으나 밖에서 들리던 괴물들의 소리가 공격적으로 변했다. 모두 고개를 내밀지 않을 수 없었고, 보현은 경악했다.

건물 위를 뛰어다니는 놈이 있는데 그게 아는 얼굴이다. 도준우! 왜 여기로 왔지? 속도가 어마어마했던 건 기억이 났다. 준우가 여기 있으면 아파트는? 가족들은?

보현은 곧바로 뛰어나가려다 건물이 또 흔들려 휘청이며 멈추었다. 누군가 밖을 가리키며 어어, 하고 소리쳤다. 다른 방향 다른 건물 중간쯤에서 어떤 사람이 빛줄기 같은 걸 쏘아 대고 있었다.

보현은 눈을 의심했다.

영화가 아니다. 뭐 특수 효과도 아니었다. 그 사람이 쏘아 대는 빛줄기에 괴물이 죽어 나갔다. 놀랍게도 효과적인 공격 같았고, 그것들은 펄쩍펄쩍 뛰며 그 초능력자를 공격하려 애썼다.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밖을 구경하는 사람 수가 꽤 많았다. 그들 틈에서 삿대질하며 다른 이들을 윽박지른 종인은 내내 욕설과 함께 소리쳤다.

“저런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야. 왜 일반인이 들어온 거야? 여기서 입 하나 늘려서 어쩌자고? 먹을 것도 다 떨어진 와중에!”

“아니, 분명 저 부서진 소방차에서 내렸는데 어떻게 멀쩡한 건지 저희도…….”

나누는 대화가 수상쩍다. 모두의 시선이 날카롭다. 핏발 선 눈에 깎지 못한 수염으로 거칠어진 인상들.

그러고 보니 왜 남자들뿐일까.

남자들만 일하는 회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내를 둘러보니 남은 것은 한쪽뿐.

보현은 천천히 문 쪽으로 물러났다. 애석하게도 탈출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다시 비상구를 나가 위로 올라가야 하나? 다 잠겨 있으면 어떻게 하지? 중간에서 다른 괴물이라도 만나면?

운 좋게 모두의 시선이 창 쪽으로 쏠려 있었다. 보현은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길게 뻗은 복도 한편에 열린 문이 보인다. 아까 올라온 곳과 다른 쪽이다. 불이 다 꺼져 어두침침하다.

옅게 부는 바람. 맡아 본 적 있는 냄새가 났다.

“이쪽은 뭐죠? 왜 다 여기 모여 있어요?”

보현의 물음에 몇 사람이 창에서 눈을 떼고 그를 돌아보았다. 서로 눈치를 살피던 이들 중 하나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다른 곳엔 시체가 많아요. 이 층에서도 괴물이 나왔었거든요. 운 좋게 그놈이 도망가는 사람들을 따라 밖에 나가서 지금은 없지만, 그 과정에서 많이들 죽었어요.”

눈치 보며 말하는 남자의 표정이 어둡다. 옷과 소매에 갈색 얼룩이 남아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다. 이미 한차례 죽음의 공포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 성마르고 신경질적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여자들은 다 죽었나 보죠?”

“괴물을 먼저 발견했던 박 대리 비명이 괴물 시선을 끌었어요. 우리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건…….”

비상구 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바깥을 보던 것도 잊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하다. 괴물이 여기로 올라올 이유가 있나? 보현은 허옇게 질려 창가 쪽으로 물러났다. 저놈들 중 일부라도 여기 올라오면 죽은 목숨 아닌가? 비상구 문은 잠겨 있었으나 언제까지고 잠겨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좀 전에도 보현이 몸을 부딪쳐 열 수 있을 만큼…….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온 탓에 이 사람들까지 위험해진 것 아닌가?

보현이 1층 출입구 손잡이를 망가트려 가며 비상구 문을 열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은 무사했을 것이다. 소리가 커졌다.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도망칠 곳을 찾아 헤맸으나 저 비상구 외에 또 다른 출입구가 있을 턱이 없다.

“엘리베이터로 나가면 안 돼요?”

“못 써요. 고층에서 내려오질 않는다고요. 우린 당신이 저런 초능력자일 줄 알고, 그래서 문도 열었는데…….”

“초능력을 어떻게 써요!”

“하지만 다 부서진 소방차에 타고 있었잖아요. 당연히 죽었다 살아난 줄 알았다고요. 초능력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그게 무슨…….”

“죽은 사람들이 다 초능력자가 되진 않지만, 되살아난 사람들은 다 초능력자였다고요. 당신은 아니에요?”

헛소리 말라고 말하려던 보현이 벼락 맞은 것처럼 멈췄다.

건물 저편, 외벽에 손가락을 박은 채 현상을 들고 있는 준우가 보였다. 그가 언제부터 저런 힘을 가지게 되었나. 언제부터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쓰고 있었지?

발치가 다시 젖어 가는 기분이다. 축축하고 뜨끈한 감각. 보현을 일깨우는 건 비상구가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철문이 벽에 부딪치며 요란하게 널브러짐과 동시에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출구는 없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지옥으로 가는 입구뿐.

그 틈에서 보현은 외벽 유리를 바라보았다.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자살행위다. 준우는 너무 먼 곳에 있었고, 이미 현상을 데리고 있어 보현을 구해 줄 수 없을 터.하지만 보현은 생각했다. 어차피 죽을 거면,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한다면 이놈들에게 얌전히 밥상을 바치지는 않겠다고.

보현은 사장 자리에 놓인 대리석 이름표를 유리에 집어 던졌다. 팡, 하고 튕겨 나온다. 한 번, 두 번. 어느 대회에서 상으로 받은 트로피며 뭐며 손에 집히는 무거운 거란 무거운 건 다 집어 던졌다. 유리에 금이 간다. 실금이던 것이 점점 커지고, 마지막으로 의자를 던지자 외벽 유리가 와르르 무너졌다.

먼 건물 벽에 매달린 준우가 이쪽을 보는 것 같았다. 표정까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든가.

“책상 밑이건 캐비닛이건 문 뒤편이건 숨어요. 빨리!”

사무실엔 잡다한 자재가 많았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던 사람들은 움직이는 게 느렸으나 일부는 보현의 말대로 민첩하게 책상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다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절망이 스며든 얼굴이었으나 도리가 있나.

몇 초 후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은 괴물들이 서로를 밀치며 뛰쳐나왔다. 생선 같은 비늘 달린 몸뚱이에 갈퀴 같은 다리. 톱니 같은 아가리가 보현을 노리고 쩍 벌어졌다. 그들 눈앞에 오로지 문과 직선 방향에 있는 보현만 보일 터.

놈들이 이 사무실 입구로 달려드는 순간 보현은 뛰어내렸다.

아래에서 서로를 짓밟고 있는 괴물들이 고개를 든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놈들도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그 층으로 뛰어든 괴물들 역시 보현을 따라 그대로 건물에서 도약했다.

평생처럼 느껴지는 잠시간의 도약.

이윽고 커다란 입, 난폭한 발톱, 이름 붙이기 어려운 부속지와 성난 뼈들이 그를 찢어발겼다.

* * *

“깨어났을 땐 일주일이 지나 있더군요. 나중에야 알았어요. 각성자의 강함과 죽어 있던 기간이 비례한다는 걸. 개중에는 죽자마자 살아난 사람들도 있었고, 사람들을 생존할 수 있는 장소까지 대피시켰던 건 거의 그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죽기 전에 보았던 건물 위층엔 소방관들과 다른 사람들이 숨어 있었더라고요. 의도치 않게 그들까지 살린 셈이었죠. 다행스럽게도.”

생각 이상의 끔찍한 죽음이라 지호는 뭐라고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보현은 감각 덜한 팔을 주물렀다.

“그분들 도움이 없었다면 깨어나자마자 저를 노리고 온 놈들한테 습격당해 지금 여기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서로에게 도움이 된 셈이죠. 일정하게 주변을 돌던 놈들이 갑자기 방향을 트는 걸 알고 새로운 각성자의 탄생을 알아챘다고 했어요. 종종 그런 일이 생겼고, 그때마다 새 초능력자가 나타났다나. 그때는 초능력자라고 불렀었죠. 각성자란 말이 정식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건 2세대 때부터예요. 1세대 각성자들은 뭐랄까, 대부분 초능력자였죠. 저도 그랬고.”

“그 준우라는 분이 언니 파트너였던 거죠?”

“맞아요. 다시 깨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제 소식을 듣고 바람처럼 뛰어오더라고요. 와, 진짜 바람처럼이었는데. 지금이야 주리 씨가 제일 빠른 헌터라고 불리지만, 준우가 사고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걔가 일등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체 계열 퓨어 헌터까지는 아니고 이동 계열 능력이 좀 있었더라고요. 남한테 써 줄 수 없는 치유 능력하고요. 그나마 이동 능력은 한참 후에야 알았어요.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도 2세대 끝 무렵에나 생긴 거라 그럴 수밖에 없었죠. 저도 제가 정신 방벽이 있는 줄 몰랐었고…….”

주리 씨 전에 봤죠? 우리 집에 왔던, 하고 말하는 보현의 표정은 덤덤했다. 이야기하는 내내 그랬다. 가끔 고통스러워 보이고, 가끔 웃기도 했지만, 준우란 사람 이야기를 할 때만 표정이 변했다. 지금은 곧 울어도 이상치 않을 것 같은 슬픔이 가득해, 지호는 한참이나 묻기를 망설였다.

“저, 사고라는 건…….”

“코드 레드 개체, 퀸 패러사이트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였어요. 괴물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때였지만, 여전히 그런 종류의 괴물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었죠.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아무 제반 지식 없는 상태에서 습격당하는 헌터 대부분은 그대로 놈에게 종속되었을 테니. 정말 운 좋게 정신 방벽을 가진 헌터 하나가 놈의 침식에서 빠져나왔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죠. 거기서 살아 나온 건 그 헌터 하나였고, 그는 죄책감에 헌터를 그만뒀어요. 그의 목숨처럼 소중했던 파트너를 잃었고, 가족처럼 손발이 맞던 팀원들까지 잃었으니까.”

지호는 보현이 말하는 헌터가 바로 보현 자신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팀이 퀸 패러사이트의 습격을 받았고, 오로지 홀로 살아 나왔다는 것.

“김 반장님은 그 사고를 좀 다르게 이야기했었는데…….”

“치유계 헌터들에게 미약한 정신 회복 작용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파트너는 어디 쓸 데는 없고 자기 쓸 정도밖에 재능이 없는 약한 치유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아주 찰나의 순간에 침식에 저항했어요. 그리고 그 힘으로 거기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절 도망치게 했고요. 그 순간에 저는 퀸을 죽일 생각뿐이었는데, 준우는 그게 불가능하단 걸 일찌감치 알아챈 것 같았죠. 시야가 좀 좁았어요. 그게 제 패착이었고, 팀원들을 보호했어야 했음에도 모든 에너지를 공격으로 돌린 탓에 그들 전부를 잃은 저는 헌터로서의 자격을 잃은 셈이죠.”

“언니도 몰랐잖아요. 그런 괴물이 나타날 줄…….”

“그러게요. 보통은 그 화살 한 방이면 다들 머리가 터졌거든요. 근데 그게 안 통하는 놈이 있었고, 하필 그게 정신 침식 개체였고, 하필이면 제가 모두를 보호할 방벽 에너지까지 집중한 틈을 타 전부를 노렸어요. 당연히 제 부주의 탓이죠.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만 공격 계열인 것도 아니었는데. 제 오만이 모두를 죽음에 몰아넣은 셈이에요. 저 때문에 각성자가 되었던 준우는, 마지막까지 저 때문에…….”

보현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지호는 준우란 사람의 존재가 보현에게 생각보다 더 컸으리란 사실을 짐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했고, 준우 역시 보현을 지키려다 각성자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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