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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42화 (43/260)

42화

죽었다 살아난 이유를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고, 힘을 얻었고, 그래서 부근을 돌아다니던 괴물 한 놈을 더 없앴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멀쩡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나가도 바깥엔 괴물이 득실거렸다.

이런 능력을 얻었다고 영웅이라고 할 순 없을 터. 그러나 아파트 사람들에게만은 대단한 영웅 취급받은 준우는 점잖게 그들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덩치 큰 괴물만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다.

맨 처음 아파트 단지를 습격했던 한 무리의 괴물들은 어디로 떠나고 없었고, 4층을 돌아다니던 머리 큰 놈을 추락시켜 아래층에 있던 끈적이는 놈에게 던졌다. 오래 관찰한 결과 놈은 소리에 민감했고,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얌전했으나 시끄러운 소리엔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다. 괴물로 괴물을 잡은 다음에는 비상계단에 숨은 사람들을 도와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래층 사람들이 머물 곳을 좀 마련해 달라는 말에 나서는 사람이 없어, 준우와 보현과 함께 있던 두 학생이 집을 비워 주었다.

그 과정에서 꽤 다치긴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능력으로 회복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준우는 자신이 영웅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눈을 감고 또 다른 괴물이 오지 않는지 감각을 집중했다. 죽었다 살아난 뒤엔 모든 신체 감각이 예리해졌다. 종일 뛰어다닌 탓에 몸에 축적된 피로는 상상 이상이었으나, 맘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결국, 새벽이 다 되어서야 또 앉은 채 선잠에 빠진 준우에게는 다행히도 그 밤은 조용히 지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균열에 휩싸인 채였다.

저물었던 해가 다시 뜨기만 하면 세상이 본래대로 돌아올 것이란 사람들의 실낱같은 희망은 애석하게도 희망으로만 끝났다. 아침이 밝아 왔으나 괴물들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세상에 펼쳐진 지옥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는 못했으나 생각만큼 피곤하지 않아 다행이다. 준우는 우선 아파트 단지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내부에 남은 건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혹여 건물 안쪽이나 실내에 들어간 놈이 있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간밤의 수고가 비록 헛수고였다 하더라도 다행인 일이었다. 더는 누가 죽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

약 한 시간에 한 번, 단지 입구 부근을 지나다니는 신체 절반이 입으로 이루어진 괴물 무리가 있다. 그놈 외에도 몇 마리 더 있지만 단지 근처로 오는 것 같지는 않아 따로 수를 세진 않았다. 다만 꽤 많았다. 각기 다른 사이클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자기들끼리도 사냥할 만한 놈인지 가늠하느라 멈추어 선 채 한참 대치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괴물들끼리는 싸우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돌아다니는 영역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확실해지고, 각자의 영역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괴물들의 구역이 나뉘었다.

준우는 괴물을 관찰하느라 내내 긴장되어 있었을 어깨를 두드렸다. 습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긴장 때문에 극도로 날카로워진 정신을 제외하면 몸은 언제 이래 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가벼웠다.

초능력 같은 게 생긴 건가. 영화도 이렇게 개연성 없진 않을 텐데. 준우는 생각에 잠겼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만이 이런 힘을 얻는 조건이라면 지금 죽은 모든 사람이 일어나 괴물과 싸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 그대로 죽었고, 준우 역시 죽었어야 했다.

울적하게 흘러가던 생각을 멈추게 하는 건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보현의 경쾌한 걸음이었다. 그들이 숨어 있던 폐쇄형 계단 말고 뚫려 있는 쪽 방향으로 내려오는 터라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는 머리에 시선을 빼앗긴 탓이긴 했지만.

랩으로 싼 주먹밥부터 다짜고짜 내민 보현은 준우가 보고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쭉 뺐다.

“뭐 하냐?”

“감시.”

“뭘?”

“차가 한 대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위에서 보는 게 더 잘 보일 텐데.”

“혹시 누가 도망 다니는 중이면 어떻게 하냐. 이쪽으로 오면 안전하다고 말해 줄 생각이었지.”

돌아다니는 놈 중에 준우가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 있을 확률이 높았기에, 준우는 밖으로 나가 생존자를 찾는 짓은 하지 못했다. 뭣보다 가족의 안전이 우선이었으니 멀리 나갈 마음도 안 들었고.

근처에 괴물이 있단 사실만으로 진저리가 난 보현은 같이 먹으려고 들고 온 주먹밥을 까며 질색했다.

“이런 상황에 차를 갖고 이동하다니, 뭐 탱크라도 몰고 다녀?”

“아니, 소방차인 것 같던데…….”

보현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일반적인 재난 상황이라면 소방차가 돌아다녀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런데 이런 괴물이 튀어나오는 상황에서 군대가 아니고 소방차?

“소방차가 왜 돌아다니지?”

“그걸 알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괴물들 동선을 파악해서 잘 피해 다니는 것 같긴 한데.”

세 시간가량 통신이 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그러고 한 시간 정도는 또 핸드폰이 된다. 추측하건대 전파가 통하지 않게 하는 괴물이 다른 놈들과 비슷하게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핸드폰이 되는 시간이라, 보현은 배터리 빵빵하게 충전해 둔 핸드폰으로 실시간 검색어와 뉴스를 확인했다.

“여기만 그런 건 아닌데, 전부 다 그런 것도 아니네. 이상 현상이 일어난 구역 외부부터 군인들이 진압을 시도하고 있대. 전 세계적인 현상인가 봐.”

“나갈 수 있는 덴 없나?”

“지금 균열 지도란 앱 생겨서 까는 중이야. 균열이라고 부르나 보네.”

사방에서 보현이 본 것과 같은 것을 목격했다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 법하다. 공간이 깨져 나가던 순간의 충격.

급조된 어플은 조악했고 버그가 많은 데다 인터페이스까지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개발자가 남긴 코멘트가 절절했다.

[집이 균열에 휘말린 상탭니다. 야근하느라 늦게 들어간 저만 회사에 남아서 생환을 바라고 있어요. 연락도 안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생존자분들이 올린 정보와 외부에서 촬영되는 정보들을 모아 생존자들을 위해 이걸 만드는 것뿐이었습니다. 생존자 여러분의 무사를 기원합니다.

우리 재현이 나경이 아빠가 기도한다. 선아야 제발 살아 있어 줘.]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죽은 이들 모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겠지. 보현 역시 부모님에게 연락해 둔 상태였으나 답이 없어 초조했다.

몇 번이고 꺼지다 간신히 켜진 지도에서 준우네 아파트는 균열 중심부와 가까웠다.

최악이네.

보현은 감상을 삼키며 상황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1인 개발자가 급조해 만든 어플이다 보니 기능 자체가 많지는 않았고, 결과적으로 보현이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균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루트 정도다. 그나마 8차선 도로가 멀지 않아 그쪽으로 어떻게 차만 가지고 내달리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소방차가 돌아다닌다던 게 생각나 보현은 준우가 보는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진짜 소방차가 있었다. 물론 달리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긴 하다. 기어를 D에 놓고 액셀을 밟지 않는 듯한 속도로 슬금슬금.

소방차는 뭔가에 들이받힌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옆이며 앞이며 다 그랬다. 차 뒤로 풀린 호스가 길게 이어져 바닥에 끌리고 있기까지 했다.

“움직이긴 하는데 상태가…….”

운전석에 사람이 있었다. 복장이 소방관이다. 깨진 유리에 엉망이 된 차에 탄 채 마네킹처럼 뻣뻣한 모양새 그대로 앞만 바라보다 준우와 보현을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소리는 없다. 입만 벙긋벙긋. 준우는 그가 소리에 민감한 괴물을 보았으리라 추측했다. 준우가 목격한 것만 해도 소리를 따라가는 놈,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는 놈, 노란색에는 일단 달려드는 놈 등 다양했다.

소방차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멈췄다. 새빨갛고 커다란 몸체가 눈에 띈다. 보현은 다른 괴물이 이걸 보고 관심을 가지며 이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을까 염려하며 내리는 소방관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 있었는지 내리자마자 풀썩 쓰러졌다. 준우와 보현은 서둘러 뛰어갔다. 소방관은 떨고 있었다. 냄새도 좀 나는 것 같았지만, 그 정도야 이런 상황에서 충분히 모른척해 줄 수 있는 문제다.

소방관은 둘의 팔을 잡고 일어나며 울었다. 준우는 들고 있던 주먹밥을 내밀었고, 그는 체면이고 뭐고 밥부터 입에 밀어 넣었다.

물까지 마신 뒤에야 약간 정신을 차린 소방관은 멋쩍어하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안전한 곳이 있는 줄 알았으면 이쪽으로 진작 들어와 보는 건데……. 기름은 다 떨어져 가고.”

“여기도 그렇게 안전하진 않아요. 근데 어쩌다 계속 돌아다니신 거예요?”

“화재 현장 출동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요…….”

소방관은 말하다 말고 또 울음을 터뜨렸다. 달래 가며 힘겹게 들은 주변 상황은 아파트 단지 내부보다 더 최악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구조용 해머를 휘두르다 물려 가고 찢겨 죽은 동료 대원들. 대로변은 특히 아수라장이었다고 했다.

수압을 최대로 물을 뿌려도 괴물을 죽일 순 없었다. 밀어 내는 것까진 가능했으나, 한 놈을 피하면 다른 놈이 나타났고 그놈을 밀어 내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대원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하자 소방차에 대기 중이던 그는 패닉에 빠졌다.

“덜덜 떨면서 차에 올랐어요. 마지막 동료가 끌려갔을 때였습니다. 아무도 구할 수 없었어요. 다음은 나구나, 하는데 갑자기 괴물들끼리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갑자기 뭐가 날아왔는데, 그걸 피하려고 차를 틀려는 순간 옆에 사람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핸들 잡고 버텼는데,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그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가슴팍에 이현상이라고 적힌 명찰이 너덜너덜했다. 현상인지 현삼인지 확실히 보이지도 않는다.

“정확한 건 모르겠습니다. 급하게 출발하려고 기어를 바꿨던 건 기억이 나는데, 깨어나 보니 여기 앉아 있더군요.”

“사고 지점 기억합니까?”

“예, 그 모래내 시장 쪽으로 넘어가는 큰길이요. 소방서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 생각했던 터라 정확히 기억합니다. 근처에 소방서가 있거든요.”

보현은 균열 지도를 확인했다. 균열 거의 끝자락이다. 반대편으로 갔다면 균열을 빠져나갔을 텐데, 중앙을 지나 가운데를 통과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으니 아직도 이 지옥 한복판인 모양이었다. 애석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준우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며 현상을 보고 있었다.

깨진 유리, 찌그러진 차체, 묘한 냄새와 엉망이 된 복장.

이 사람 역시 그와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닐까?

죽었다 살아난 모든 이가 특별한 힘을 갖게 된다고 가정하면 이 사람 역시 아파트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준우는 그의 머리 옆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유심히 보며 질문했다.

“상황 터지자마자 그렇게 됐다가 이제 깨어난 겁니까? 그럼 어젯밤부터 새벽 내내 차가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말인데, 고작 그것밖에 이동하지 못했을 리가요. 아무리 느린 속도라고 해도.”

“그게……. 움직이던 상태로 깨어난 건 아닙니다. 깨어났을 때 차는 가로수를 들이받은 상태로 공회전하고 있었거든요.”

“그럼 깨어난 건 얼마 안 된 겁니까?”

준우가 소방차의 움직임을 확인한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현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우의 눈치를 살폈다.

“여긴 진짜 괴물 없는 거 맞습니까?”

“당장은요.”

“안전한 것 같은 곳엘 가도 어디선가 괴물이 자꾸 튀어나옵니다. 진짜 안전한 곳이란 사실 세상에서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여기도 그러면 어떻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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