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운 좋게 옥상엔 아무것도 없었다. 준우는 옥상과 물탱크 주변, 그리고 혹시나 싶어 건물 외벽까지 일일이 확인한 다음에야 세 사람에게 손짓했다. 깨끗한 공기는 아니지만 약간 숨이 트였다.
동시에 사방에서 연기가 치솟는 것이 보여 심정적으로는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연기가 오르지 않는 쪽에서 바람을 등지고 선 채 네 사람은 지옥도와 같은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을 돌아다니는 건 괴물뿐이다.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준우의 중얼거림에 보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참 괴물을 관찰해 보니 특정 개체가 반복해 모습을 드러냈다. 구역 같은 게 정해져 있나? 자기들끼리는 싸우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공격할 거라곤 사람밖에 없단 뜻 아닐까.
팔을 타고 오르는 소름에 보현은 먼 길가에서 눈을 돌렸다. 눈 좋은 게 이럴 때 나빴다.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 좋았을걸. 사방에 끔찍한 흔적들 투성이다. 시선을 피하려고 돌아보는 곳마다 벌겋고 꺼멓고 난리였다. 지이익, 사람이었던 것을 끌고 가는 놈이 보인다. 그걸 노리고 괴물들이 달려들어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끔찍할 따름이라, 보현은 결국 바깥에서 시선을 완전히 돌려 버렸다.
“외벽에 뭐가 있진 않아. 어디 열린 집을 들어갔는지 6층에도 보이는 거 없고, 4층에는 머리 큰 뭐가 하나 돌아다니더라. 저걸 머리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리고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다른 층엔 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층은 유리가 다 깨지고 난리가 난 상태였다. 일 층은 그야말로 폐가들뿐이고, 2층과 3층은 반파되어 사방에 멀쩡한 것 하나 없이 난리가 나 있다. 괴물이 건물 내부에 나타난 영향은 아닌 것 같았다.
“키 큰 놈들이 건물로 뛰어 올라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길게 늘어나는 뭐가 있든가.”
섬뜩한 추측이다. 학생이 어, 하고 아래를 가리켰을 때 둘은 이야기하던 걸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4층을 돌아다니던 괴물이 덜 깨진 유리창을 몸으로 밀어 와장창 깨트렸을 때,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소리 난 지점을 향해 촉수를 뻗었다.
보현은 눈을 의심했다. 그건 진짜 촉수였다.
고무호스와 비슷한 모양새였으나 한 가닥이 아니다. 다만 가장 길어 4층까지 닿는 것은 하나뿐이라, 유독 길었던 것이 4층에 있는 머리 큰 놈을 휘감았다. 4층 괴물은 육성으로 낼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발톱으로 호스를 공격했다. 아래층 촉수가 벽을 할퀴며 사방을 공격해 댔고, 놈들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보현은 문득 이상한 것을 봤다.
건물 중간쯤, 아파트 무늬라고 부르기는 좀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파트 로고는 건물 상층 아파트 이름 근처에 그려지는 게 상식이다. 그러니 건물 중간에 뜬금없이 저런 게 그려져 있을 턱이 없다. 심지어 높이가 높이라 아이들이 낙서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림이 꿈틀거렸다.
보현은 너무 놀라 속으로만 비명을 질렀다. 아파트 고층에선 괴물의 위험 반경에 들지 않은 사람 중 용감한 몇몇이 바깥 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림은 슬쩍슬쩍 움직여 위치를 가늠하더니, 이윽고 빠르게 쏘아졌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다. 복도식 아파트라 외부에서 침입하는 게 쉬워도 너무 쉬운 게 문제였다. 한참 비명이 들리다 곧 소리가 뚝 끊긴다.
목덜미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흘렀다.
“내려가자. 내려가야 돼.”
저 속도면 여기로 올라오는 것도 금방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동했고 어떻게 벽에 붙어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들키면 저 사람과 똑같은 꼴이 될 것이다.
당연하게도 보현이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준우 역시 동의했다. 옥상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보는 것으로 의미가 있고, 다른 층이 안전하면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파악하는 데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족했다.
“6층에 있던 게 저놈이겠지?”
부디 그랬으면 싶었다. 보현은 고개를 저으며 계단실과 부속실 문을 둘 다 닫았다. 옥상은 안전 구역이 아니다. 저렇게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놈이 있다면 더더욱.
“아닐 수도 있어. 6층으로 나가는 건 안전하지 않을지도 몰라. 복도에서 마주치면 그대로 끝이잖아. 문 안쪽에 누가 있나 싶어서 문을 열려고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똑똑한 놈들일까?”
그렇게까지 똑똑해 보이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눈앞에 보이면 달려들었고, 소리가 나면 움직였다. 옥상에서 관찰하던 지옥도를 상기한 보현은 준우의 물음에 짧게 답했다.
“최악을 상정해야지.”
내려가는 계단은 올라올 때처럼 조용했으나 느낌이 전혀 달랐다. 약속한 것처럼 몇 층 내려가자마자 발소리를 죽인 네 사람은 살금살금 계단을 지났다. 위에서 사고 지점이 몇 층인지 세기엔 상황이 너무 급했다.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조심할 수밖에. 그래도 중간은 확실히 넘는 것 같았다.
6층이 아니라 7층 앞에 멈추어 선 준우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6층으로 바로 나가는 게 어려울 것 같으니까 7층으로 나가서 우리 집 쪽으로 넘어가야겠어. 아까부터 답장이 없거든.”
“그거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
“괴물 만나는 거랑 벽 타고 내려가는 것 중에 뭐가 더 위험할까?”
심정적으론 둘 다 위험하다. 그러나 당장 뭐라도 걸어 볼 수 있는 건 확실히 후자가 맞았다. 심각한 두 사람 사이로 작은 손이 살그머니 열쇠를 내밀었다.
“저, 우리 집이 7층이에요. 706호거든요.”
한 층에 열 가구가 있어 이쪽에서 나가면 701호, 코너를 돌면 그대로 706호가 나올 것이다. 층당 열 가구씩에 한 방향에 다섯 가구씩.
“같이 안 갈래? 그래도 학생네 집인데.”
“저는 그래도 무서워서 여기 있을래요. 혹시 7층 복도가 안전하면 다시 데리러 와 주세요.”
두 사람을 모른 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열쇠를 내어 주는 친절에 준우와 보현은 꼭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학생은 무작정 뛰쳐나오지 말고 집에 있었어야 했다며 중얼거리다 동생으로 보이는 옆 학생에게 옆구리를 찔렸다. 주변이 이상해지자 상황을 보러 나왔다가 사람들에 휩쓸려 아래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준우네 집은 608호. 거리가 많이 멀지 않다. 만약의 경우 대피할 장소가 있다면 잘된 일이다. 준우는 고맙다고 말한 다음 살그머니 질문했다.
“근데 저, 혹시 240 사이즈 신발 하나 빌릴 수 있을까? 얘가 신발을 잃어버려서.”
“어, 한번 찾아보세요. 엄마 신발이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 이 사태 잠잠해지면 꼭 돌려줄게. 꼭.”
준우의 낮은 목소리는 묘하게 믿음이 간다. 이 상황이 정리되기는커녕 당장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은데도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처럼.
부속실 문을 여는데 아파트 건물 전체가 우르릉 울렸다. 비상계단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 느껴졌던 바로 그 흔들림이다. 다른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공간을 오가는 걸까? 보현은 괜히 심란해졌다. 이 정도의 발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는 놈이면 정말 집채만 할 텐데, 혹시 6층까지 손이 닿고 그러는 놈이면 어쩌나.
동시에 아까 건물 벽을 타고 올라 사람을 습격하던 그 괴물도 생각나 마음이 몇 배로 불편해졌다.
“그럼 갈게.”
준우의 말에 이번에는 보현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태연한 척 씩 웃으며 아까 준우가 했던 말을 읊었다.
“문 잡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뒤에나 있어. 내가 더 빠르잖아.”
“그니까 빨리 문 닫아야지. 내가 뛰어 들어오면 그 뒤로 뭐가 못 들어오게 닫는 게 네 역할이야. 알았어?”
보현은 대답을 듣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마자 비린내가 훅 풍겼다. 보현은 저도 모르게 냄새의 진원으로 눈을 돌렸다.
문 부근에 죽어 엎어진 사람이 셋이다.
멀찍이서 죽어 있던 사람들을 보는 것과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죽은 사람을 보는 건 심적 부담 차이가 너무 컸다. 아래턱이 지나칠 정도로 떨려 보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우선 위아래 층을 살폈다. 아까 그 괴물은 없다. 아까 그 사람이 습격당한 후 밖에 나와 영상 찍던 사람들마저 다 집으로 도망쳤다. 조용한 실내.
보현은 몸을 숙였다.
복도 쪽 벽은 낮다. 그러나 성인이 몸을 기대거나 기울여도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기준을 철저히 지켰으므로 쪼그리고 앉은 보현이 외부에서 눈에 띌 일은 없을 터.
“야.”
보현은 이번에야말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곧장 입을 막는 손이 있어 비명이 튀어나오지 못했다. 준우였다. 그는 어이없어하며 다른 손을 내밀었다. 열쇠가 짤랑 흔들렸다.
“아.”
“그냥 나갈 때 알아봤다.”
“진작 챙겨 줬어야지!”
준우가 입 막은 손을 떼며 툴툴거리자 보현은 작게 목소릴 높이곤 또 눈을 굴렸다. 그 괴물이 근처에 없길 바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까닭이다. 보이면 냅다 뛰기라도 해야지.
준우는 보현보다 키가 커서 복도 벽면 쪽에서 머리가 튀어나오지 않으려면 꽤 고생해야 했다. 705호를 지날 때까진 다행히 별다른 조짐이 없다. 보현은 조금 안심했다. 아까 그놈은 조금 더 위로 올라갔을 것이다. 위에서 볼 때 어림짐작하기로 십 층 이상이었으니 아래로 내려오지는 않겠지.
엉거주춤한 준우를 두고 오리걸음으로 총총 걸어가 706호에 열쇠를 꽂은 보현은 달칵 소리가 나자마자 등을 빡 걷어차였다.
악 소리가 목구멍에 먹혔다. 당황하기도 전에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현관 앞에 깔린 러그 때문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아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동시에, 문이 쾅 닫혔다.
문 닫히는 소리인지 뭔가 부딪히는 소리인지 모를 것이 한 번 더 쾅.
그러고는, 조용해진다.
“도준우.”
보현은 엎어진 채로 준우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다. 이제는 아래턱뿐 아니라 온몸이 떨렸다.
아니야.
“도준우 이 새끼야, 사람을 바닥에, 너, 이…….”
대답이 없었다.
미안하다고, 너무 상황이 급해서 그랬다고, 아팠느냐고 물어보며 보현을 일으켜야 할 다정한 손이 없었다. 팔을 한 손으로 감아쥐는 그 큰 손이 없었다.
“왜, 왜 대답 안 해? 내가 부르는데, 내가 부르는데 네가 대답을 안 하면…….”
고요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계단에 그대로 남아 있을걸. 경찰이건 군인이건 누구든 도와주러 올 때까지 숨어 있었어야 했다. 연락이라도 되면 다행이지. 실내에 가족들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여기 있자고 그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거기 고꾸라진 채 등에 남은 통증이 아릿하게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며 보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했던 상황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
최악을 상정한다느니 똑똑한 척하며 이야기하던 몇 분 전의 스스로가 생각나 자괴감에 숨이 막혔다.
오지 말 걸 그랬다.
평생 좋은 친구로 남아서 서로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그런 사이로 남지, 무슨 미련이 있다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얼굴 들이밀고는.
그런 희망 품지 않았으면 여기에 와 있지 않았을 거고, 준우는 가족들과 함께 이 사태를 집 안에서 맞았을 거고, 그랬다면.
그랬다면 보현 때문에 죽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도무지 눌러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아프도록 할퀴었다. 끝끝내 목구멍을 타고 나오는 괴로움에 보현은 이를 악물고 울었다. 소리 죽여 끅끅대며 바닥을 긁었다.
문득 발이 축축해졌다.
이상할 정도로 더운 액체가 양말을 흠뻑 적셨다. 이미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던 바로 그 냄새가 텅 빈 집 안에 퍼졌다. 천천히 문틈으로 들어오는 진한 적색 액체.
속이 뒤틀릴 것 같다. 보현은 속을 잔뜩 게워 냈다. 토사물 냄새가 역했지만 그런데도 피 냄새가 사라지질 않아 미칠 것 같았다. 현관에서 기어 올라와 비틀비틀 실내로 들어온 보현은 화장실을 찾았다.
몇 걸음을 옮기다 비틀거린다. 지나친 충격 탓에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늘 그의 곁에서 보현을 잡아 주던 이가 없어, 보현은 그대로 우당탕 넘어졌다.
시야가 끔뻑끔뻑 멀어진다. 보현은 그대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