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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39화 (40/260)

39화

보현은 겁이 많았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친구를 잃을 바에는 그냥 평생 곁에 두는 편이 낫지 않나 싶을 만큼. 심지어 도준우는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태 보현에게 고백하지도 않았고, 그런 뉘앙스를 허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믿고 있었다.

그럴 놈이니까.

보현이 보아 온 준우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야, 가만 좀 있어. 딴 새끼들이 개소리하는 거 더 듣기 싫어. 못 기다리겠다. 원래 나도 면허 딸 때까진 좀 있으려고 했었는데.”

“역시 아까 먹은 것 중에 뭔가…….”

“한 번쯤은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들어 봐. 내가 너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잖아.”

보현이 조용해졌다.

좀처럼 당황하거나 감정 드러나는 일 없는 준우의 얼굴이 드물게 붉었다. 노을 때문이야. 노을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나 좋아했냐?”

“어.”

척수 반사로 튀어 나간 속마음에 당연한 듯 돌아오는 답 때문에 보현은 입을 쩍 벌렸다. 이건, 그러니까. 이거.

“대체 언제부터…….”

“내가 너보다 먼전데? 눈치는 더럽게 없어서.”

얼이 빠지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말이 잘 안 나왔다. 십 년을 넘게 좋아했는데. 진짜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 세월을 이놈 하나 보고 연애도 안 하고…….

그때였다.

준우의 옆,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쩍 금이 갔다.

“이게 무슨…….”

보현의 말은 온전한 문장으로 끝나지 못했다.

세상이 찢어진다.

허공이 깨지고 바닥이 일렁였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뭔가 튀어나왔고, 동시에 무언가 있던 곳이 순식간에 평탄해졌다. 밀려오는 멀미. 준우가 다급히 보현을 붙잡았다. 디딜 곳을 잃고 굴러떨어질 뻔한 보현은 가까스로 주르륵 미끄러지다 멈췄다.

세상이 색을 잃어 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미쳤나? 보현은 다짜고짜 제 뺨을 갈겼다. 눈앞에 번쩍 별이 보였다. 준우는 기겁해 보현의 팔을 붙잡았다. 또 때릴 기세였던 탓이다.

“야, 미쳤어?”

“우리가 동시에 미친 건지 나만 미친 건지 설명해 줄래? 지금 이거 뭐지?”

누구도 그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살려 줘요!”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뭔가에 쫓기고 있었다. 준우와 보현은 그들을 따라 일단 뛰었다. 아파트 단지 밖에 나타난 것들이라 도로 아파트로 돌아와야 했다. 태양이 꺼진 것처럼 세상이 어둑어둑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여전히 해가 떠 있지만, 달이나 다름없는 흐릿한 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부근을 달리던 사람이 넘어졌다. 보현과 준우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했다. 뒤를 따라오는 건 괴물이었다.

돼지를 연상시키는 퉁퉁한 몸체였으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입만 달린 놈들이다. 놈들 절반이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든다. 비명, 비명, 비명, 이후로 끔찍한 침묵.

넋을 뺀 보현의 배로 뭔가 쑥 들어왔다. 그는 시야가 뒤집혀 기겁했으나 저를 둘러멘 게 준우란 걸 알고 발버둥을 멈췄다. 들려 가며 머리를 빳빳이 들고 뒤를 응시했다. 사람이었던 것으로 포식하고 있는 괴물 군집 뒤로 뭔가 거대한 것이 달려오고 있다.

잡히면 죽는다. 분명 죽을 거야.

그러나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아파트 단지 밖에서 수없이 비명이 울렸고, 동시에 아파트 안에서도 비명이 울렸다. 엘리베이터가 요란하게 삐-소릴 내며 만원 알림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일부 괴물들이 반응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 보현은 준우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단 걸 알았다. 잘 신지도 않던 구두가 벗겨져 한 짝이 없었다. 아까 비틀거릴 때 떨어진 모양이다. 그래서 준우가 지금 보현을 들고 뛰는 건가.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비상계단으로 뛰어든 준우는 그제야 보현을 내려놓으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철문이 쾅 닫히자 사방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뚝 끊겼다.

거칠게 숨 쉬는 소리만 둘 사이를 채웠다. 보현은 나머지 한 짝 남은 신발을 벗어 휙 집어 던지며 차디찬 계단 냉기를 느꼈다.

준우의 얼굴은 어두웠다.

퉁탕퉁탕 계단 뛰어 내려오는 소리 때문에 둘의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났다. 보현은 얼른 일어섰다. 그러자마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나가, 나가야 돼!”

“안 됩니다. 밖에 괴물이 깔렸어요.”

준우가 단호히 말하며 문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짜고짜 준우를 밀치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준우가 급히 철문 앞을 발로 막아 버리는 바람에 문은 열리다 말았다.

그 틈 사이로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렸다. 살려 달라는, 신을 찾는, 엄마를 부르는,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는, 그저 흐느끼며 좌절하고 신음하며 절망하는 소리가 뒤섞이는 가운데 문을 열려던 이의 손에 힘이 빠졌다. 준우는 다시 문을 닫았다.

이웃 간에 교류가 없는 시대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출퇴근 길에, 혹은 오가는 와중에 간간이 행동반경이 겹쳐 얼굴이 익은 사람 정도가 몇 명.

“이게, 이게 도대체 뭐야.”

“위층에도 뭐가 있어요?”

보현의 물음에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층이냐는 물음에 4층이란 답이 돌아온다. 준우네 집은 6층.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높이다. 이 난리가 났으니 내다보러 나왔을 수도 있고, 6층에 뭐가 나타났을 수도 있겠지.

여기만 이 난리가 났으리라 생각하기도 어렵다. 대부분 핸드폰만 잡고 있다.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당연했다. 실시간 검색어를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몇 개의 단어들이 생경했다.

“괴물, 지구 멸망, 대피소, 살려 주세요…….”

누군가가 읊는 실시간 검색어 목록에 사람들의 얼굴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온 사방이 난리인 모양이었다. sns마다 숨어 있거나 도망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올려 대는 통에 유의미한 정보라고는 지금 안전한 곳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외엔 없었다.

그리고 그건 전혀 도움되지 않는 정보다.

준우 역시 핸드폰 화면을 쭉쭉 내려 보다 작게 욕하며 보현에게 손짓했다. 보여 주는 화면은 연우의 메시지다.

[오빠, 밖에 뭐가 있어. 지금 어디야? 집에 오면 안 돼. 6층 복도 위험해. 절대 오지 마. 어디 안전한 곳에 숨어 있어.]

안전한 곳? 4층도 6층도 안전하지 않단 것만 알게 되었을 뿐이다. 1층은 더더욱 그랬다.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바닥을 쿵쿵 울리는 발소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모두의 몸이 덜덜 떨릴 만한 큰 소리.

거대한 괴물이라도 있는지.

혹여 밖에 들킬세라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발소리가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훌쩍였고, 누군가 욕을 연신 토했으며, 누군가 기도했고 누군가 말했다.

“위층에서 뭐가 내려오면 어떻게 하죠?”

1층으로 뛰어나가 괴물들이 다른 사람 습격하길 빌며 흩어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머릿수가 열에 가까웠고, 다들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필 뿐 앞서는 사람이 없다. 계산적으로 바깥쪽으로 뚫려 있는 비상계단보다는 막힌 쪽 제2 피난 계단으로 들어왔던 준우는 보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올라가 볼까 하거든? 여기 있을래, 같이 갈래?”

“뭐? 왜 올라가, 미쳤어?”

“사방이 난리가 난 것 같고 전파도 잘 안 터져. 옥상으로 올라가서 확인하고 싶어서.”

옥상에 뭐가 있으면 어쩌냐는 말을 도저히 꺼내지 못한 보현은 눈치부터 살폈다. 말이 씨가 될까 덜컥 겁이 났다. 사방에서 울리던 비명이 생생해 밖으로 나가자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나도 갈래.”

“그래.”

보현은 저도 모르게 준우의 손을 잡았다. 마주 잡은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짜식, 무서워서 같이 가자고 했지?”

준우는 웃기만 했다. 신발을 벗어 주려는 그를 만류하며 보현은 얼른 덧붙였다.

“여긴 뭐 밟아서 위험할 게 있는 건 아니잖아. 밖에선 몰라도. 그리고 혹시 뛰어야 할 상황이면 아까처럼 나 좀 들고 뛰어라.”

“양심 있냐?”

준우는 어이없어했으나 천연덕스럽게 농담하는 보현 덕분에 약간 여유를 되찾은 모양새였다. 굳어만 있던 얼굴이 좀 풀렸다. 둘은 단단히 손을 붙잡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치를 살피던 사람 중 일부가 둘을 따라왔다. 준우와 보현은 아무 말도 않고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오래된 아파트라 비상계단도 둘이고, 닫힌 쪽 비상계단에는 완충 공간이 있어 계단실로 들어오려면 문을 한 번 더 열어야 한다. 올라가며 문고리를 한 번씩 돌려 보던 준우는 비상구 문이 다 잠겨 있다는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잠겨 있진 않지 않나?”

“아, 아까 어떤 아저씨가 내려오면서 다 잠갔어요. 안 그러면 여기로 뭐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고…….”

누군지 모를 아저씨를 향한 복잡한 심경이 몰아닥쳤다. 이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누군가 괴물에게 쫓기며 비상구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위험해졌을 터.

물론 아파트에 괴물이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제일 좋지만, 이미 두 층이나 위험한 상황이라 뭐라고 말을 얹기가 어려웠다.

“왜 밑에 안 있고 따라와요?”

“밑에서 담배 피우시더라고요. 담배 냄새 맡으면 머리 아파서…….”

나가서 피우라고 말할 상황도 아니거니와, 담배로라도 마음을 좀 돌리고 싶을 상황이긴 해서 보현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아래가 더 안전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대로 올라가는 게 낫다고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 제일 싫다. 보현은 맨발로 타박타박 계단을 오르며 층마다 적치되어있는 자전거며 짐 같은 것들을 옆으로 밀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뛰어 내려가며 도망쳐야 할 수도 있으니.

6층 앞에서 조금 머뭇거렸던 준우는 애써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이후로는 한 번도 머뭇거리는 일 없이 15층에 도착했다. 한참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찼다. 심지어 오던 사람 중 하나는 무섭다고 돌아가고 둘만 남았다. 교복 치마 아래로 츄리닝 바지가 보여 학생임은 짐작했다.

“학생들은 여기 있어. 혹시 모르니까.”

“난?”

“너는 문 잡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준우의 얼굴이 차분하다. 물론 잡은 손은 그렇지 않았고, 손바닥이 미미하게 떨리며 축축해지는 걸 느끼며 보현은 반대편 손으로 그의 등짝을 퍽 쳤다.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래.”

한 번 더 힘주어 손을 잡은 다음, 준우가 부속실에 들어섰다. 꼭대기 층 사람들이 난잡하게 쌓아 놓은 짐이 가득해 발 디디기 어렵다. 학생들이 보현의 등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준우는 느릿하게 옥상 문을 쥐었다. 다행히 잠겨 있지 않다.

삐이익, 녹슨 문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매캐한 공기가 훅 계단실로 불어닥쳐 눈이 매웠다. 새카만 연기가 사방에 자욱했다. 아까 터지는 것 비슷한 소리가 나더니 어디서 불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이제는 사방이 꽤 조용하다. 드물게 비명이 들리긴 하지만, 다들 죽은 건지 숨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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