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37화 (38/260)

37화

5. 실종자들

보현이 정신을 차린 건 사흘 후였다.

훈련이 끝나고 대뜸 센터에 찾아와 있기에 알았다. 아니 아침까지 눈도 못 뜨고 있던 사람인 걸 아는데. 지호는 기겁하며 보현이 앉을 것부터 찾았다. 보현은 의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나 중환자 아녜요.”

“팔 잘렸던 사람이 중환자 아니면, 누가 중환자예요? 얼른 앉아요.”

보현은 재밌단 얼굴을 하며 지호가 해 주는 보살핌을 얌전히 받았다. 무릎 담요를 덮어 준다거나 물을 떠다 준다거나 선풍기 바람을 돌려 준다거나 하는 자잘하고 귀여운 방식이라 웃겼다.

“왜 웃어요.”

“훈련 빠져도 돼요?”

“저 병원에 있을 때 봤던 자료들이에요. 이론 수업이라고요. 연락이나 하고 오지 그랬어요?”

“핸드폰을 잃어버렸더라고요.”

어쩔 수 없었다며 고갤 으쓱하는 여유로움은 언제나의 보현이다. 그러나 한쪽 팔꿈치가 허옇게 색이 떠 있어 부자연스럽고, 보현 역시 그 팔을 감싸듯 쥐고 있어 이전보다는 소극적인 자세였다.

보현의 팀은 보현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했다고 했다. 보현이 살아남은 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비보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비보를 전할 생존자가 없었던 것이지.

“언니가 눈 뜨고 일어나서 보고하러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양 박사님이 있는데.”

“그 사람이랑 친해졌어요?”

“양 박사님은 각성자들한텐 다 오픈 마인드잖아요. 쉬운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아니 그런 말은 누가 가르쳤대.”

보현이 과장되게 화난 척을 하자 지호는 얼른 간식을 내밀었다.

“과자 먹으러 온 건 아닌데요.”

“그런 것 치곤 드리는 대로 다 드시길래요.”

짧게 신음한 보현은 과자를 내려놓았다. 표정이 좀 이상했다. 뭘 잘못했나? 과자에 이물질이라도 들어 있었나? 상했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사이 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들고 있던 과자를 마저 입에 넣었다.

“그러네. 습관이에요. 챙겨 주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보현의 미소가 썩 밝지 않았기에 지호는 그 이상 물을 수 없었다. 누군지는 짐작이 갔다. 처음부터 함께했다던 파트너겠지.

남잔지 여잔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정보가 없는데도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보현이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보현의 삶에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호는 문득 그가 궁금해졌다.

“저기, 언니. 있잖아요.”

“없어요.”

“없어도 만들어 봐요. 그날 언니가 그랬잖아요. 아직 죽으면 안 된다고. 누가 돌아오기 전에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보현의 곤란한 미소는 지호의 입을 막지 못했다. 물론 입을 다물 수도 있었겠지만, 한 번 튀어 나간 물음의 허리는 도무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 끝까지 뱉어야 했다.

“제가 그랬던가요?”

“옆에 있던 순자 헌터님도 들으셨다고요. 저한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셨는데.”

순자 헌터. 누굴까. 보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2세대 헌터들 중에 유독 엄마뻘 헌터들이 많다. 균열에 약간이나마 적응한 세대에서 태어난 각성자들. 자기 살기보다는 아들딸과 손주를 택하던 강인한 모성.

보현은 그것도 참 이상하단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자 혼자 애 낳나.

아무튼 또래 중년 여성이 많고 이름이 많이들 비슷하다 보니 영 헷갈린다. 탈출 당시엔 거의 정신이 없다시피 했었고.

“음, 그랬을 수도 있고. 알다시피 좀 맛이 가 있었잖아요?”

“누구 기다리시는 거예요?”

보현은 짧게 신음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습관적으로 양손을 써 의자 손잡이를 짚었다가 균형을 잃을 뻔했다. 지호는 그 모양새를 안쓰럽게 바라보았고, 보현은 코웃음 쳤다.

“지금 저를 동정하는 건 아니죠? 제가 한 손으로도 지호 씨는 그냥 이겨요.”

“그래도 돼요. 누구 기다리시는 거예요?”

“아, 생각보다 끈질기신데요.”

보현은 약간 짜증스럽게 웃었으나 그렇게까지 싫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냥, 좀 복잡해 보였다.

오만 가지 감정이 휘몰아친 뒤, 보현은 툭 던졌다.

“갑자기 이걸 캐묻는 걸 보니 다른 사람한테 내 얘길 들은 모양이네요. 명은 씨는 지금 바빠서 안 될 테고, 최근에 문젯거리 될 만한 게……. 김 반장이구나?”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현 역시 답을 원하고 물은 게 아니었다. 힘주는 것이 여전히 어색한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편 보현은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산책 좀 할까요? 여긴 듣는 귀가 많아서.”

아무도 없는데 무슨 말일까. 보현이 먼저 일어나 움직였기에 지호는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문을 먼저 열어 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서였다. 사실 염동력을 쓰면 될 문제지만, 거기까지 생각 닿을 새가 없었다.

여전한 합동 훈련 때문에 지호는 연수 센터로 출퇴근했다. 균열 부근에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승찬이 지호를 돌려보냈다. 지금은 헌터들의 강화가 필요한 시기라 현장에 나오면 안 된다나.

“머리 아프죠? 배울 것도 많고.”

갑자기 터져 나온 말에 지호는 우선 고개부터 끄덕였다. 보현이 하는 웃기지 않은 농담에도 웃어 주겠다고 다짐했으니 웃을 준비도 했다. 그러나 보현은 평소처럼 이상한 농담을 던지는 대신 먼 하늘을 응시했다.

“옛날이야기 좋아해요?”

“언니 이야기면 다 좋아요.”

보현은 까르르 웃곤 손에 들고 나온 무릎 담요를 펼쳐 둘렀다. 추워서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그냥 그러면서 생각에 잠긴 얼굴일 뿐.

“우리 집 말이에요. 우리 아파트. 되게 좋은 건물 같죠?”

실제로 동네에서 그보다 좋은 집은 없다. 지호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현은 빙그레 웃었다.

“실은 지호 씨 보호자를 하겠다고 나서기 전에 지호 씨에 관해 좀 조사를 했어요. 각성자가 되었으니 인성은 보장이긴 한데, 어떤 인성 좋은 사람도 죽은 가족 이야길 꺼내면서 날 보호해 주세요. 하는 이야긴 못 한다고요. 그런 과정의 일환이었죠. 그러다 알게 됐어요.”

조금 더운 바람이 불며 보현의 머리카락이 느릿하게 흔들렸다.

“옛날에 우리 집 있던 위치에 큰 소방서가 있었거든요.”

본디 남동 소방서였던 건물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파괴보다는 분쇄에 가까운 힘으로 건물째로 사라졌다. 지호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 것 같았다.

“거기 다 무너지고, 진짜 철거 작업할 것도 별로 안 남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되고 나서 아파트 건축 들어갔던 거예요. 그땐 이렇게 될 줄 모르긴 했죠. 그때는 사망자보다 실종자가 더 많았어요. 죽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무작정 실종 처리 했었거든요.”

지호네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시신을 절반가량은 온전히 찾을 수 있어 화장이라도 치를 수 있었다.

“그때 우리 아파트 터가 된 자리에 있던 게 소방서랑 임대 아파트 단지, 그리고 역세권 아파트 단지. 이렇게 셋이었죠.”

지호는 보현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제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던 바로 그 날.

“그날 돌아가셨다고 쓰여 있더군요. 지호 씨 아버지.”

지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이름만 나와도 눈물이 따라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얼굴은 이제 조금 뿌옇게 흐려졌고, 그 가르침과 선명하고 선량한 발자국들이 지호를 이끈다. 지호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안에서 있었던 일들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아빠 병문안 왔던 사람들도 자세히 이야기해 주진 않더라고요. 지금은 좀 이해할 것 같아요. 알고도 무서운데, 모르고는 정말 죽을 것처럼 무서웠을 것 같아.”

지호가 생각보다 가족의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에 보현은 약간 놀랐다. 생각보다 어른스럽네. 하기야 그렇기에 이 나이에 천재급 각성자가 되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좋은 분이셨을 것 같아요.”

“제일 좋은 아빠였어요. 혹시 그날 여기서 아빠라도 마주치신 건…….”

갑자기 다급해지는 물음에 보현은 서둘러 손을 저었다. 전혀 아니다. 그가 지호를 구조하기까지 두 사람은 일면식은커녕 옷깃 닿을 연도 없는 사이였으니.

“소방관분들 도움을 받긴 했어요. 그때 출동했다가 돌아오던 소방차가 근방에 멈췄었거든요. 그러니까, 균열 파국 봤죠? 대균열 때는 균열 사이즈가 어마어마했었어요.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 발생했고.”

심지어 전대미문의 재앙이었다.

세상 사람 누구도 그런 현상이 일어날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던 그런 재난. 지호 역시 어릴 때 TV에 지나가던 생경한 화면들을 생생히 기억했다. 모든 이들의 트라우마가 된 날이었으니, 사실 잊어버리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날 저는 친구를 보러 여기 왔었어요. 여기 있던 작은 임대 아파트에 말이에요. 그때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좋은 건물 이런 의미는 진짜 하나도 없었는데. 가끔 편법 쓰는 사람들이 끼어 있긴 했지만, 진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라가 하던 복지 사업이라 그랬을 거예요. 제 친구네 집이 좀 어렵긴 했었거든요.”

좀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하고 슬그머니 말을 덧붙이며 보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깜짝 놀라겠지.

보현은 제 차림을 살폈다. 괜찮다. 나쁘지 않아.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 좀 깔끔하게 하고 왔어야 했는데 며칠 날밤을 새운 다음이라 눈 밑이 시커멓다. 그래도 이 정도 사람 몰골 했으면 잔소리 들을 일은 없을 거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좀처럼 연락이 어려웠다. 예과 때까지는 간간이 볼 수 있었는데 본과부터는 진짜 큰 맘 먹고 시간 내지 않으면 나오기가 어려웠고, 실습 때는……. 어휴. 끔찍한 생각을 떠올렸다. 즐거운 날에 이러면 안 되지.

오늘은 오랜 친구를 만나러 온 길이었다. 날씨가 화창하다. 사실 친구에게는 연락 안 하고, 친구 동생한테 연락해 몰래 온 거라 두근두근했다.

“언니, 여기야 여기!”

“연우야! 오랜만이야. 완전 대학생 다 됐네.”

“언니도 참, 나 이제 2학년이거든?”

“준우는? 언제 온대?”

“오빠 과외 끝나고 오면 한 시간 정도? 시간 맞춰서 오라니까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줌마 또 뭐 준비하실까 봐.”

“안 그래도 왜 이렇게 늦게 말했냐고 엄청 혼났거든? 진짜, 무슨 비밀공작 한다고 오빠한테도 비밀이래.”

보현은 연우의 등짝을 팡팡 두드려 주었다. 호탕한 웃음에 묻혀 원망은 슬쩍 밀려났다. 옛날엔 정말 자주 봤었는데, 하고 툴툴거린 연우는 보현의 손이나 목 같은 곳부터 잽싸게 훑었다. 반지 없음, 장식 없음. 언제나의 보현이다.

“그래서, 언니 오늘 고백해?”

“으악, 뭐?”

“아니, 우리 그 답답이가 고백하겠어? 집에 들고 오는 선물만 몇 갠 줄 알아?”

“뭐? 여자 친구 생겼어?”

“안 가르쳐 줄래.”

“으아악, 선생님 좀 봐주라.”

연우는 후다닥 도망쳤다. 보현은 그 뒤를 쫓다가 단지 앞 아파트로 쏙 들어갔다. 챙겨 온 선물은 있지만 역시 집에 들르는 데 마실 거라도 챙겨야지. 술래잡기가 시시해진 전직 과외 학생은 어느새 돌아와 보현이 집은 박스 옆을 가리켰다.

“그거 말고 이거. 엄마 이거 더 좋아해.”

“둘 다 사면?”

“욕할걸. 가시내 돈지랄한다꼬.”

연우는 엄마 사투리를 흉내 내며 낄낄 웃었다. 한 손에는 유명 제과점에서 사 온 빵을, 다른 손에는 방금 막 산 오렌지 주스를 든 보현은 자신만만하게 양팔을 번쩍 들었다.

“좋아, 두려울 거 없다!”

“어, 오빠?”

“아악!”

“가 아니었네.”

보현이 욕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연우는 후다닥 단지 내로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연우 고등학교 들어갈 때 예과 공부하면서 짬 내어 과외를 해 줬고, 대학 들어갈 때도 포트폴리오니 논술이니 점검해 주며 자주 연락했다. 얼굴 보는 건 꽤 오랜만이긴 했지만, 그런다고 갑자기 어색해질 리가.

“아줌마 허리 아픈 건 좀 어떠셔?”

“오빠가 봐 주긴 하는데 아직 좀 그러네. 오빠 수련하는 병원에서 할인받아서 종합 검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해서 내년만 기다리고 계셔.”

“우리 병원 오시라니까.”

“언니가 얘기해 봐.”

“아, 사실 벌써 얘기했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때 현관에서 누군가 삑삑 버튼을 눌렀다. 큰 키에 체격 좋은 몸. 실루엣만으로도 그럴싸한 태가 나는 남자다.

에이, 그럴 리 없지. 한 시간 후에 온다고 했었는데. 보현은 아무렇지 않게 곁에 선 연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황급히 뛰어오는 발소리.

“잠시만요.”

낮은 음성과 함께 열림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낡은 엘리베이터 문이 뻣뻣하게 열린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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