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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34화 (35/260)

34화

며칠 후 균열이 안정기에 들어섰다.

임시 각성자들은 당연히 현장에 참여하진 못했고, 1세대 중에서도 정신 계열 괴물을 상대한 적 있는 헌터들만 현장에 투입되었다.

뉴스에서도 연신 현재 상황이 어떻다느니 하는 속보가 올라왔다. 물론 그런 속보들보다는 균열 어플의 보고가 훨씬 빠르지만, 사실 지호에겐 아직도 뉴스가 익숙하다. 채널 몇 개에서 모두 같은 소릴 하고 있었다. 한 리포터가 계양 균열 앞에서 먼지바람을 맞으며 현장 소식을 전했다.

-균열이 안정되었으나 헌터들을 파견해 생존자들을 구조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지호는 턱을 괴고 그 뉴스만 한참 쳐다보았다. 생존자의 가족, 혹은 그 지역에 연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인터뷰하는 것 같다.

“균열 발생하고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애들을 구조 못 해요? 균열 경계 부근에 있는 초등학교에 있다는데! 우리 애들이 얼마나 무섭겠냐고요! 으흐흑, 지혜야…….”

“며칠쨉니까? 헌터들이며 구조대며 투입 안 되고 대기하기만 하는데요? 며칠째 전철도 끊겼는데 언제 균열이 정리되는 겁니까?”

“이번 균열 절반가량이 산이라서 다른 지역에 열린 균열에 비해 피해자 수가 많지 않다고 어플에 뜨던데, 뭐 이상한 실험 같은 거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이론이 어쩌고 가운 입은 사람이 떠드는 거 봤는데요.”

“헌터들이 안 하면 구조대라도 들어가야죠. 뭐 하는 거예요? 이런 때 일하라고 세금으로 월급 주는 거 아닙니까?”

아주 사방 천지에서 난리였다. 어떤 괴물 종류가 있는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해당 괴물에 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헌터 측에서는 구조대나 소방관들 정도와만 정보를 나누었다. 민간에 주의 사항을 비롯한 생존 정보를 공지하기 위해서는 놈에 관한 자료가 더 필요한 건 당연지사.

그러나 사람들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일반 균열도 아니다. 급성 균열이라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고, 특히 초등학교가 포함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여론이 날뛰었다. 외부를 상대하는 일을 맡은 박 팀장 같은 사람들은 얼굴이 누렇게 떴다. 거의 잠도 못 자고 일하는 모양이었다.

“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언제 왔는지, 센터 로비에서 헌터들을 욕하는 사람들만 수두룩이 나오는 방송들을 보던 박 팀장은 힘없이 웃었다. 잠시 앉을 짬이 나 커피 한잔 하는 동안마저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왜 어쩔 수 없어요? 상황 설명이라도 하면 안 돼요?”

“모든 사람을 이해시킬 순 없으니까요. 저희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지호는 그동안 실험실에서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명은 정신이 무너져 자살했고, 나머지 하나는 고열로 뇌가 손상되어 죽었다고 했다. 어떤 죽음이건 끔찍하다. 그리고 또 다른 실험이 준비되고 있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한가지라면 방법이라도 찾아내는 편이 좋겠죠. 사실 어린애들이라도 어떻게 구조해 보자고 온갖 방편이 튀어나오는 판인데, 동물들을 앞세워 세뇌 한계 수를 채운 다음 들어가자는 사람들 의견부터 동물 보호 단체의 반대에 부딪혔거든요. 대체 어떻게들 알았는지…….”

동물이 사람보다 먼저일 순 없다고 하는 사람들과도 부딪힌다. 정말 여러모로 부딪혔다. 다 사람들 구하자고 하는 일인데 도와주는 이 하나 없다. 박 팀장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 쉬었다.

“투입된 1세대 헌터들로부터 경인 교대 생활관에 숨어 있던 학생들을 구조했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정신 지배 개체가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는 동안에 이루어 낸 쾌거죠. 하지만 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왜 부평 초등학교나 계산 초등학교 같은 어린애들 있는 곳에 먼저 투입되지 않았느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부천 센터에서 지호와 같이 대균열을 겪은 임시 각성자는 한 사람. 몇 달 전 각성자가 된 두 사람까지 해서 총 네 사람의 임시 각성자가 있다. 지호를 제외하곤 실전 투입이 불가능할 만큼 능력이 약했다.

양 박사는 그걸 보고 또 소리쳤다. 숭고한 희생의 증거!

지호는 이제 양 박사의 이야기 절반 이상은 흘려도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정말 싫다는 얼굴로 양 박사 보조에 투입된 헌터들마다 같은 말을 했다.

“무시해, 그냥.”

양 박사의 업적과 연구 자료는 대단한 것들이지만, 그의 집착에 가까운 각성자 숭배는 전혀 대단하지 않다. 각성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이 대단치 않은 존재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니 그 숭배에 경도될 이유가 없긴 했다. 누가 각성자 될 줄 알고 몸을 던졌으려고.

물론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정보가 완벽히 통제되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기에.

“임시 각성자 한 사람 구조했대요. 소식 들었는지 모르겠네.”

“누구요?”

“둘 중에 남자 쪽입니다. 여자 쪽이 하이브리드 계열인 모양이더군요. 그쪽은 발견 소식도 없어요.”

균열 폭주의 원인 제공자는 상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곁에서 그 상황을 겪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비록 호감 가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지호는 그를 동정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내야 할 동정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쳤대요?”

“자세한 건 모르겠네요. 오늘부터 임시 각성자들을 속성 교육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서 네 분 다 이동하실 겁니다. 근방에서는 연수 센터가 시설이 제일 잘 되어 있어서 그쪽으로 갈 거고요. 여기는 실험 위주지 사실 교육 시설로서 적합한 곳은 아니라서요. 구조된 임시 각성자는 연수 센터 출신이니 가서 확인하는 게 편할 것 같죠?”

꽤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마신 박 팀장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피로를 몰아내려 애썼다. 그러나 핏발 선 눈이 쉬이 가라앉는 일은 없었다.

“치유 능력 좀 필요하세요?”

“특기 분야가 아니시잖습니까. 그럼 능력을 쓸 때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뭐랑 비교할까, 그렇지. 전자 기기에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이 붙어 있잖습니까. 그걸 떠올려 보세요. 5등급보다 1등급인 능력을 쓰는 쪽이 에너지가 덜 빠져나가고 효율적이라고요.”

“그렇다고 못 쓰는 건 아닌데요.”

“그건 그렇죠.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박 팀장은 너스레를 떨며 등을 보이고 앉았다. 지호는 연수 센터의 지윤이 펼치던 치유 파장을 떠올리며 천천히 힘을 불어넣었다.

치유 계열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지호의 힘은 부러진 것을 붙이고 사라진 것을 복원하기보다는 상태를 회복시키는 쪽에 가깝다. 항상성 유지를 위한 힘을 보태는 것. 사실 그래서 박 팀장처럼 늘 피곤한 사람들에게 썩 유용한 능력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지호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천천히 퍼져 나가는 힘에 박 팀장이 사우나에 앉은 아저씨 같은 소릴 내며 어깨를 두드렸다. 피로가 꽤 쌓였으니 당연할 터.

“맘 같아선 이대로 자 버리고 싶네요. 진짜 좀만 자도 행복할 텐데. 여러분 좀 데려다주고 눈 붙였다 일어나야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와중에도 뉴스에선 끊임없이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매번 다른 사람이란 점이 기가 막히다. 다들 저렇게까지 헌터를 원망하는 이유가 뭘까.

지호는 문득 승찬의 얼굴을 떠올렸다. 화면 뒤로 지나간 균열 구조대원 때문만은 아니다.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긴 했지만.

가족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을 거라던 사람.

헌터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는데 저렇게 비판과 질책만으로 헌터들을 후려친다고 뭐가 달라지나. 물론 아이들이 안타깝고 걱정된다. 그러나 자신을 중요시하지 않는 구조자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데.

지호는 몇 번이고 아빠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타인을 원망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지호와 같은 배움의 기회를 가졌을 리는 없으며, 어떤 사람들은 누구든 붙잡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울음을 토하고 싶을 수도 있다. 지호의 시선이 TV에 못 박힌 듯 고정된 동안 다른 임시 각성자들이 이동 포트 부근으로 속속 모였다. 졸린 눈을 비빈 박 팀장은 황급히 포트에 올랐다.

“얼른 가죠. 센터로 돌아오실 것 없이 각자 귀가하시고, 급성 균열이 열린 동안에는 연수 센터로 나가시면 됩니다. 자세한 안내는 그쪽에서 해 줄 겁니다.”

박 팀장의 힘이 네 사람을 감쌌다. 시야가 점멸한다. 익숙한 감각. 지호는 두통과 구토를 유발하던 소민의 능력을 떠올리며 웃었다. 이동 능력자들은 힘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유독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래도 그런 훈련을 해야 이런 매끄러운 이동이 가능한 법이니.

연수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최소민 : 저 연수 센터 간다던데요. 혹시 지호 씨도?]

지난번 임시 각성자들끼리 의기투합해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훈련 내용이나 새로운 이론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의미였다. 센터마다 교육 방침과 우선순위가 조금씩 달랐으니 확실히 도움되는 일 같았다. 지호는 얼른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지호 : 저는 벌써 왔어요. 당분간 임시 각성자들 다 같이 모여서 훈련받는대요.]

[최소민 : 진짜요? 와!]

[강하나 : 계열별로 나뉘니까 저랑 지호 씨 정도나 볼 것 같은데요? 그래도 얼굴 보겠어요. 우리 센터가 밥이 제일 맛있어서 선택되었단 소문이 있어요.]

[장지윤 : 완전 중요한 이유네. 그것보다 중요한 것 더 있을 수 없음.]

지호는 웃어 버렸다. 하나와 지윤은 죽이 잘 맞았다. 특히 치유계 헌터인 지윤은 입담이 좋다. 본인 말로는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해 주는 것이 진정한 치료가 아니겠냐고, 그래서 남을 웃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치료라고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기본 성격이 낙천적이고 유쾌한 사람 같다.

각성자의 성격과 새로이 갖게 되는 각성 능력에 어떤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을까?

지호의 물음에 양 박사는 한참 고민하더니 아직 연구 단계라 정확히 밝힐 수는 없다고 답했다. 각성 단계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최소민 : 저도 이제 연수 센터 가요. 그, 시간 되면 훈련 전에 얼굴 볼 수 있겠죠?]

[장지윤 : 소민 씨 저 보구 싶구나?]

[장지윤 : (사진)]

지윤이 올린 사진엔 떨떠름한 얼굴의 하나와 해맑은 얼굴의 지윤이 찍혀 있었다. 둘이 같은 센터라 아무래도 좀 더 친할 터. 숫자가 사라진 뒤에 소민이 이모티콘을 하나 날렸다.

금방 이동 포트가 열린다. 포트에서 내려서 있던 지호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들어온 사람을 확인했다. 소민은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얼른 다가왔다.

“지호 씨 우리 비슷하게 왔네요.”

소민은 손이나 팔 잡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동 능력자는 닿아 있어야 함께 움직일 수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뭐 다른 이유에서일까. 지호는 성격이 각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리라 추측했다. 아니면 뭐 습관이라든가 생활 방식이나.

한 팀이 더 이동해 온 다음 함께 훈련실로 움직였다. 나란히 움직이는 모양새가 역시 병아리들답다. 지호는 임시 헌터들에게 붙는 그 별명이 동주가 지은 것은 아니리라 추측했다. 이렇게까지 잘 어울리는 걸. 동주가 짓기에는 너무도 세심한 별명이 아닌가.

훈련 담당을 맡은 헌터가 주먹 쥔 손을 들었다. 이미 조용하던 좌중에 긴장이 깔렸다.

“여러분을 이번 급성 균열에 파견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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