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이쪽 부근에 그놈이 있군요. 정신 침식 계열의 새 괴물…….”
“임시 헌터 여러분께서는 다른 지점으로 지원을 가 주시겠습니까? 이곳으로는 다시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채 잇지 못하고 구조대원이 무너졌다. 모두 침통한 얼굴로 서로를 다독이며 필사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이 안타깝고 슬펐다. 당장은 코드 레드에 관해 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균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호는 어쩔 수 없이 구조대에게서 멀어졌다. 어플을 통해 확인한 다음 근접 위치는 아파트 단지다.
“일단 움직여요. 소개하다가 말이 끊겼는데, 저는 이동 능력자라서요. 아직 멀리는 못 가지만.”
네 사람은 다시 모였다. 이동하는 데 집중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소민의 말에 따라 그들은 얌전히 손을 잡은 채 둥글게 섰다.
“구조대원은 왜 사라졌을까요?”
궁금한 얼굴들. 셋 모두 정신 방벽 계열 능력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임시 각성자를 들여보낸다곤 안 했지만……. 지호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는 것이 힘이고, 어떤 지식은 언젠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
“이번 계양 급성 균열에 새로운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정신 방벽을 다룰 수 있는 각성자가 아니면 균열에 들여보낼 수 없대요.”
“왜 정신 방벽을……. 뭐 조종하기라도 한대요?”
“그런가 봐요.”
지호의 긍정은 다른 각성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농담으로 말을 던졌던 하나는 심각해졌다.
“아니 그럼 인간의 몸을 조종해서 밖으로……. 아니지, 방금 그 상황. 그러니까 괴물은 균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으니까…….”
“아마 괴물이 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자세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요.”
무거운 침묵 후에 소민이 눈을 떴다. 이동할게요. 양쪽으로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지호는 눈을 감았다. 출입 금지 팻말 세우는 구조대원들의 쓸쓸한 등을 오래 볼 수 없었다.
노련하지 않은 이동 능력자의 힘을 타고 온 덕분에 셋은 현기증과 두통, 구토감을 느끼며 곧장 널브러졌다. 심지어 능력을 쓴 소민 역시 괴로운 얼굴로 이마를 짚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지호는 새삼스럽게 박 팀장이 얼마나 유능한 능력자인지 체감했다.
“밤새 달리고 숙취에 시달리는 느낌이에요…….”
“미안합니다. 아직 익숙하질 않아서…….”
네 사람 모두 적응하느라 허우적댔다. 치유 능력으로 자가 치유부터 시작한 지윤은 다른 사람들을 차례로 도우며 에너지 부족으로 허덕였다. 하기야, 그들 모두 능력을 갖추게 된 지 얼마 안 된 초짜들이다. 힘이 생겼다고 갑자기 숙련된 헌터들처럼 능력을 펑펑 써 댄다면 그거야말로 소설이고 영화일 터.
본디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구조대원들이 구조 차 부근에서 조용히 멈추어 있었다. 혹시? 지호는 좀 전 상황이 생각나 황급히 구조대 쪽으로 접근했다. 다행히 구조복을 입은 구조대원은 멀쩡히 균열 밖에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원 나온 헌터 지망생들입니다.”
구조대원들의 시선이 전투복 포켓 노란 명찰에 머물렀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일단 대기 명령을 받은 상태라서요.”
무선을 통해 코드 레드가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중이다. 이쪽도 구조 작업이 중단되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균열 너머를 보는데, 뭔가가 보였다.
괴물이 아니다. 사람 형태다. 그런데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균열 내부로 들어갔다던 신체 계열 헌터인가, 생각하는 찰나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균열에서 뛰어나왔다.
동시에 요란한 흙먼지가 나부끼며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사방이 기침했고 지호는 아예 눈도 못 뜰 정도라 저도 모르게 치유 능력으로 눈 통증을 줄여야 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사방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황을 파악하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지호의 손이 움직였다. 균열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 구조 차가 대기 중이었기에 가능한 행동. 지호의 손이 움직임과 동시에 몇 미터쯤 위에 방벽이 생겨났다.
보현이 하던 것을 떠올린다. 몸을 밀어 내지 않고 통과시키는 느낌으로. 지호는 흙먼지 위로 방벽을 내리눌렀다. 속도를 내진 않았다. 혹시 누가 다칠까 싶은 까닭이다.
비눗방울을 떠올리며 천천히 방벽을 내리자 흙먼지만 그에 눌려 금세 가라앉았다. 다행히 성공이다. 구조대 차량 뒤편으로 좀 전에는 없던 사람들이 둘 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둘 다 본 적 있는 얼굴들이었다.
“어, 박사님하고……. 특수 요원 언니.”
예전에 지호를 센터에 데려다준 적 있는 사람이다. 보현의 친구. 지호가 아는 사람 중에선 제일 차가운 사람이기도 했다.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고 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양 박사는 한참 기침하더니 눈물을 닦으며 팔을 뻗었다. 허공을 더듬거리는 걸 붙잡아 일으키는 헌터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하다.
“그러게 이런 짓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처음 보는 개체가…….”
박사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요란하게 기침했다. 갑작스러운 양 박사의 등장, 게다가 균열 내부에서 뛰쳐나온 상황임에 모두 당황하며 어딘가로 연락한다. 그들의 사진이 균열 어플에 올라가기 무섭게 곧장 박 팀장이 나타났다.
“박사님! 빌어먹을,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균열 내부엘 좀…….”
“비상 뜬 거 못 들으셨어요?”
양 박사는 눈을 굴렸다. 그가 입을 열기 전 곁에 서 있던 헌터가 대신 답했다.
“새로운 개체가 인간을 감염시키는데 균열을 빠져나올 방도를 모색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마정석을 추출당한 괴물들의 시체를 가지고 나가는 것을 목격한 것으로 보이며, 상위 지능 개체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이거 고작 엊그제 열린 균열인데요?”
“이주리 헌터. 내가 설명하죠.”
양 박사가 손을 흔들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임시 각성자들과 균열 구조대원들, 그리고 이동 능력자들. 양 박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균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네만, 이 조합의 사람들 틈에 서 있을 수 있는 게 내겐 참 기쁜 일이야. 숭고한 희생으로 힘을 얻은 여러분과 아무 힘이 없어도 자신을 던져 사람들을 구하는 여러분이…….”
“본론만요, 박사님.”
주리가 말을 뚝 끊었다. 그의 장황한 서두가 익숙한 모양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보다 지호에게서 시선이 멈춘 양 박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자네는…….”
“왜 균열에서 나오신 건가요, 박사님?”
지호의 질문은 주리와 박 팀장을 만족하게 했다. 한껏 숭고한 희생이니 뭐니 늘 던지던 레퍼토리로 여러 사람 질리게 할 수도 있었던 양 박사는 헛기침하며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극비리에 연구 중이던 자료가 있습니다. 표본을 얻으려고 이주리 헌터의 능력을 좀 빌렸죠. 이제 공표할 거긴 한데, 신체 계열 퓨어 헌터들은 균열에 영향을 주지 않고 내부를 오갈 수 있더군요. 이주리 헌터는 지금 경인 지방에서 활동하는 신체 계열 퓨어 헌터 중에는 가장 속도가 빠른 사람이거든요.”
“뭘 연구하시는데요?”
지윤이 질문함과 동시에 균열 안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지호는 반사적으로 균열 방향을 향해 방벽을 펼쳤다. 훈련받은 헌터들처럼 능숙한 모양새를 본 양 박사는 괜히 뿌듯한 얼굴로 지호를 응시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힘이군요. 그런 힘을 얻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지…….”
“박사님.”
“아, 도중에 균열에 이상 신호가 퍼지더군요. 안쪽에서 균열 확장을 관측한 건 또 처음입니다. 멋모르는 각성자가 하나 균열에 들어와 버린 것 같던데요.”
“신체 계열인 줄 알았던 헌터 중 하나가 약한 정신계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균열 확장이 길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박 팀장이 한숨과 함께 답했다. 양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지호가 방벽을 거두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제고 찾아가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경이롭군요. 누가 이지호 각성자를 보고 각성한 지 한 달가량 된 햇병아리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지호는 대답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망설이며 박 팀장의 눈치를 보았다. 주리가 먼저 양 박사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박사님. 샘플과 데이터를 가지고 센터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내부 재진입은 무리고요.”
“아, 벌써 갑니까? 하지만…….”
“저는 다시 균열에 들어가야죠. 언제까지 종노릇시키실 겁니까? 방해됩니다.”
양 박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사과했다. 주리는 박 팀장에게 양 박사를 부탁하곤 다른 팀과 교신에 들어갔다. 이동하려는 박 팀장의 팔을 황급히 뿌리친 양 박사는 얼른 주리의 어깨를 잡았다.
“이 균열엔 신체 계열 퓨어 헌터들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다들 정신 방벽이 없잖아요!”
“압니다. 전투에 들어갈 생각 없고, 진입한 헌터들 위주로 코드 레드 발견 지점과 반대 방향을 수색할 예정입니다. 생존자들에게 식량을 전달해야죠. 박사님보다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으니 어서 센터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방해되니까요.”
양 박사의 팔을 탁 떨쳐 낸 주리는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몇 번 하더니 총알같이 뛰어나갔다. 뒤로 자욱한 흙먼지가 남았고 그게 가라앉은 후에 이주리 헌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된 뒤였다.
다른 임시 각성자들에게 관심을 표하던 양 박사는 박 팀장에게 붙잡혀 그대로 사라졌다. 정말 폭풍 같은 사람들이다.
균열 어플을 통해 주리의 활동 보고가 올라왔다. 현재 정신 침식 개체 관측으로 인한 코드 레드 발동 지점은 총 세 군데. 그곳과 반대되는 구역은 애석하게도 산을 끼고 있어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안쪽으로 구호품을 투척할 건데요. 터지거나 깨지지 않을 만한 것들이 들어 있으니 세게 던져도 괜찮아요. 되도록 고르게 투척해야 해요.”
“괴물들이 먹을 수도 있나요?”
“그렇기도 하죠. 그중 일부라도 생존자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구조대원들이 농구공만 한 구호품을 헌터들에게 건넸다. 구현화 계열 헌터들에게 커다란 새총 같은 모양새의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구조대원들은 공처럼 둥근 스티로폼 틀 안에 진공으로 포장한 음식들과 의약품을 담았다.
“멀리 퍼져서 다 같이 쏴야 해요. 순서대로 던지면 그걸 수거하면서 구조대원들을 따라오는 개체가 있대요. 매번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섬뜩한 말이었다. 생각보다 균열 내부에 지능 높은 괴물들이 많은 모양이다. 지호와 임시 각성자들은 구조대원들을 도와 구호품 꾸러미를 만들었고, 구현화 계열 능력을 갖춘 두 사람이 오십 내지 백 미터가량 떨어진 위치마다 큰 새총 모양의 임시 발사대를 설치했다.
균열 어플을 통해 계속해서 구조 신호가 올라온다. 그나마 산 쪽에서 나오던 신호가 하나둘 꺼지는 것으로 보아 주리를 위시한 신체 계열 퓨어 헌터들이 활약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구호품 전달 후에는 귀가 조치 명령이 떨어졌다. 구조대원들조차 들어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노릇.
지호는 임시 각성자 세 사람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또 보게 될 것이고, 합이 잘 맞았으니 함께 뭔가를 하게 된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센터에 돌아와 전투복을 반납하고 귀가하려던 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보현이다. 검단인가 어딘가로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균열 들어간 거 아니죠?
“네? 어, 아니에요.”
-임시 각성자들 둘이 균열에 들어갔다 실종되었단 말을 들어서요. 십년감수했네, 진짜. 하긴, 그랬으면 전화도 못 받긴 했을 텐데…….
“실종이요?”
-정신 공격하는 개체는 경험 많은 헌터들도 상대하기 힘들 텐데요. 아마 저를 비롯한 1세대들 파견 갈 것 같아요. 절대 현장 들어가지 마세요. 알았죠?
학교에 갈 때 차 조심하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걱정이다. 당연히 조심할 테지만,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걱정과 염려. 엄마도 아니고 뭐야. 지호는 여태 균열에 갇혀 있을 여러 사람을 떠올리며 물었다.
“균열 안정기 전에 누가 들어가서 균열이 폭주했나 확장했나 뭐 그렇다고 하던데요. 언니는 들어가도 돼요? 처음보다 더 강한 것들이 나온댔잖아요.”
-김 반장한테 정신 계열 훈련받았죠?
그걸 훈련이라고 해야 할까, 고문이라고 해야 할까? 지호는 고민하다 짧게 긍정했다.
“그게 훈련인가요? 일단 뭔가 겪긴 했어요.”
-정신에 침투하는 종류의 괴물이 하나만 있던 건 아니에요. 이렇게 조종하는 놈은 처음이긴 해도요. 그래서 1세대를 비롯한 헌터들은 대부분 김 반장의 능력을 이겨 내는 훈련을 받죠. 괴물이 그 사람 상위 능력자라면 몰라도 아니면 이겨 낼 수 있어요. 걱정 마요. 그리고 김동주 그 사람 어지간한 독종이 아니라서 훈련을 게을리하지도 않거든요. 가끔 진짜 죽여 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훈련 끝나고 멱살 좀 많이 잡혔을걸요.
보현의 분위기 상관 안 하는 농담을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좀 풀렸다. 귀가하자마자 정신 계열 괴물들의 자료부터 찾았다.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놈도 있었고, 피아 식별을 막아 버리는 놈도 있었다. 자료가 두 놈밖에 없지만 하나같이 악랄하다. 대응할 방법이 제로에 가깝다는 점이 제일 문제다. 마주치면 도망가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