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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32화 (33/260)

32화

뒤늦게 이동 능력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난장판이 된 집결지를 보곤 다급히 병아리들을 출신지별로 나누었다.

“미안합니다. 급하게 가려다 사고가 났어요. 현장 투입이 어렵게 되어 원래 파견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먼저 간 두 분은요?”

“그게……. 상황이 썩 좋지 않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이 바람은 뭔데요?”

박 팀장은 바싹 마른 입술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게……. 누군가 본인 속성을 숨기고 퓨어 헌터인 척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지금 균열이 폭주 상탭니다.”

“예?”

“진짜 능력을 속인 건지 워낙에 미미한 능력이라 본인도 있다고 생각을 못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본래 계획은 다 수포가 되었고요. 균열 안정기까지 다시 사흘을 기다려야 할 판입니다.”

“아니, 그럼 생존자들은요?”

박 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나 지호는 답이 무엇일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호 역시 하이브리드 헌터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안에 있는 사람들 다 죽어요.”

“우선 무작위로 식량을 살포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염동력 능력자가 아니셨죠?”

“저는 균열 부근에서 구조대원분들을 지원할래요.”

꾹 다문 입술과 결연한 표정을 본 박 팀장은 지호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실제로 센터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지원해 주는 편이 훨씬 도움되기도 했다.

“장시간 유지하면 금방 지칠 겁니다. 바람이 부는 때에만 펼치는 식으로 운용하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연락하시고요.”

“그럴게요. 구조대원들 위치는 어떻게 파악하죠?”

“어플에 실시간으로 뜹니다. 이쪽 지점은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 하니 다른 곳으로 모셔다드리죠.”

“저, 저도 갈래요!”

다른 임시 각성자가 번쩍 손을 들었다. 분명 다른 센터 사람인데, 아직 떠나지 않은 이들인 모양이었다.

“어느 센터, 아. 균열에 들어간 두 사람이 온 곳이군요. 그쪽도 아직 출발을 안 하긴 했는데…….”

상원과 나머지 한 사람 중 본인 능력을 속인 쪽은 누굴까. 다른 임시 각성자들 중에도 지호와 함께 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모두를 남길 수는 없는 법. 박 팀장은 지호에게 물었다.

“이지호 각성자는 감지계 능력도 있었죠. 지금 이분들 파장 좀 살펴보십시오. 장비로 확인하는 것보다 더 직관적으로 보이니 이쪽이 빠릅니다. 안정적인 분만 남고 나머지는 돌아갑니다. 아닌 척해도 파장으론 다 티가 나니까 숨기고 남지 마세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제가 이동할 때 파장을 느끼시죠? 그걸 눈으로 보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집중하고요.”

박 팀장의 지시에 맞추어 천천히 호흡하며 눈을 느리게 깜빡이자 정말로 사람들 몸에서 피어나는 이형 에너지가 연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의 파장은 거칠게 흔들렸고 누군가는 신체에 밀착한 상태로 두께를 이룰 만큼 안정적이며 누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는 쪽은 말할 것도 없이 후자 그룹이다.

“이분은 괜찮을 것 같아요. 저분이랑, 저쪽 분도.”

딱히 의도해서 고른 건 아니었는데도 남은 것이 다 여성 각성자들이다. 처음에 지호와 함께 남겠다고 자원했던 여성 각성자는 활짝 웃었다. 파장이 특이하다. 이 사람은 치유계인가. 지호는 그들에게 능력 계열을 물어보며 어떤 사람이 어떤 파장을 가지는지 확인했다.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여러 능력을 병행해 가지고 있는 때도 있었으니.

지호가 추려 낸 사람들을 본 박 팀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원래 여성 각성자가 좀 더 적응이 빠릅니다. 급격한 호르몬 변화로 인한 다양한 몸 상태에 익숙해서가 아닐까 추측하곤 있는데, 사실 이쪽이야말로 정확한 이유를 알기가 어렵더군요. 각성 방법부터 개인차가 심하다 보니……. 아무튼 가시죠. 여기서 제일 가까운 현장은, 부평 초등학교군요.”

익숙한 지명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제 브라보 대원이 들어갔던 학교다. 물품은 잘 전달받았을까. 아이들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지호의 표정이 대단히 심란해지자 박 팀장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아직 들어가실 순 없습니다. 아시죠?”

“알아요.”

“균열 구조대가 진입한 상탭니다. 뒤에서 보조 부탁합니다. 임시 각성자들은 어차피 균열에 출입까진 시킬 생각이 없으니 밖에서만 도와주시면 되고요.”

“그것도 알아요.”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네 사람의 병아리들과 박 팀장이 빛과 함께 사라진 뒤, 남아 있던 임시 각성자들은 상태 좋지 않은 이들부터 천천히 센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본래는 자유롭게 귀가하도록 놔두는데, 상태들이 좋지 않아 일부러 센터로 귀가시키는 일을 담당하는 헌터가 붙었다. 협회 입장에선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입장이니 당연한 일이다.

“한 가지만 말해 두죠. 사실 양솔 박사의 이론은 이론적으로는 완벽합니다. 아마 변수가 잘못되었을 거라고들 추측하고 있고요.”

박 팀장은 간결하게 설명했다. 신체 계열 헌터만이 균열 출몰 시 경계를 오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힘을 쓰게 만드는 파장이 신체를 되살리며 이미 끝나 버린 데 있었다. 다른 계열 헌터들처럼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몸에 남아 있는 이형 에너지를 쓰거나 혹은 주변에 있는 이형 에너지를 사용하는 등의 능력은 일체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살아난 신체가 조금 더 강해졌을 뿐인 각성.

그 때문에 다른 각성자들과 달리 균열이 그들을 강한 존재로 인지하지 않는다. 다른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다만 다른 능력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자의 경우에는 약하게나마 고유 파장을 가집니다. 균열이 인식하는 바로 그 파장이죠.”

“고의로 숨겼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약한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진 않겠네요. 본인도 모를 정도로 약한 능력이라 이렇게 된 거면 좋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진짜 강한 각성자가 선의랍시고 균열에 뛰어들었다고 하면 그때부터 재앙이 도래하죠. 옛날에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균열 안정기에 대한 이론이 확립된 건 고작해야 몇 년 전이거든요.”

박 팀장은 덤덤하게 이야기하며 병아리들로부터 손을 떼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상황이라 오래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마다 균열 어플에 상황을 보고하십시오. 각성자 전용 라인이 따로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시고, 실시간으로 확인 후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자료는 바로바로 공개하고 있으므로 피차 아는 것을 빨리빨리 알려야 도움이 됩니다. 균열에 절대 접근하지 마시고…….”

“알아요, 다 알아. 얼른 가 보세요. 아까부터 계속 연락 오잖아요.”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박 팀장은 인사하는 모양새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확실히 이동 능력자는 귀하고, 장거리 이동 가능자는 더욱 귀하며, 무게 제한이 상당 수준인 박 팀장은 말 그대로 모든 곳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짧게나마 설명할 시간을 내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균열 확장으로 사방에서 사고가 터진 탓에 구조대원들만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네 사람이 도착했을 때 다행히 무전은 소강상태였다.

다급한 상황에서 전선을 뒤로 물리고 혹시 모를 이형 에너지 파동의 영향에서 장비를 우선 지키느라 정신들이 쏙 빠졌을 것이다. 간신히 숨 돌린 균열 구조대원들에게 지원 나온 헌터 지망생들이라고 소개를 마친 네 사람은 어색하게 눈만 굴리다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구조대원들에게 말 붙일 상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어, 저는 연수 센터에서 온 강하나예요. 최근 남동구 급성 균열에서 각성자가 됐고요. 특기는 방벽 구현화예요.”

“엇, 저도요. 저는 부천 센터 이지호예요. 아까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저야말로 덕분에 살았는데요. 능력 펼칠 생각도 못 했어요. 진짜 머리가 다 빈 것 같았는데.”

쌍꺼풀 없는 눈꼬리가 슬쩍 올라가 살짝만 미소 지어도 웃는 얼굴이 고양이 같은 인상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하나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아 흔든 지호는 거기 남은 사람들 모두 지호와 함께 현장을 수습하려 했던 이들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저도 연수 센터에서 온 장지윤이에요. 치유계 주력에 구현화 보조고요. 완전 메딕이죠.”

지윤이 윙크하며 웃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조금 소심하게 균열을 가리켰다.

“저는 검단 센터에서 온 최소민인데, 저거 뭐죠?”

또 무슨 일이 났나 싶어 다급히 고개를 돌린 지호는 균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구조대원을 발견했다. 좀 전 사고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구조복은 멀쩡했고 대원의 걸음은 일정했다.

“균열 구조대원이에요. 민간인들이 균열에 들어가서 안전하기만 기대하긴 어려우니까 저런 우주복 같은 옷을 입는 게 원칙이래요. 구하러 들어간 사람이 같이 다치면 안 되잖아요.”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에요.”

본디 균열이 열리면 접근이 금지될 뿐 아니라 아무도 접근하려 하지 않으니 사실 균열 구조대의 구조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서는 구조 대상이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지호 역시 뺨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그 역시 균열 대피니 생존 지식이니 하는 것들을 습득하고 공부했으나 실제로 마주친 건 각성자가 된 후뿐이기는 하다.

“특수 처리가 된 건 아녜요. 방검복이랬나 그렇다고 들었는데.”

구조대원은 천천히 구조대 차량 쪽으로 걸어왔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건, 그가 무전에 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찰리, 찰리 카피. 멀지도 않은 거리지만 구조대원이 계속해서 무전을 보냈다. 이유가 뭐지? 한쪽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임시 각성자들 틈에서 지호가 벌떡 일어났다. 구조대원이 균열 경계에 가까이 오자 하얗게 점멸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저런 기능이 있으면 괴물들이 쉽게 눈치채지 않을…….”

옆 사람의 실없는 소리를 계속 들어 줄 시간이 없었다. 지호는 있는 힘껏 뛰어 무전을 붙잡고 있는 구조대원 곁으로 한달음에 도착했다.

“코드 레드. 코드 레드 상황입니다.”

균열 구조대원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무전에 대고 중얼거렸다. 코드 레드가 뭐지? 최근에 들은 적이 있다. 어디였지. 기억을 더듬을 새도 없이 구호복 입은 구조대원이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사라진다.

줄이 끊겨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사방이 고요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폭풍처럼 불던 바람이 이곳에 불지 않는 까닭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대원들의 오랜 침묵. 누군가가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코드 레드. 찰리 투 감염 확인. 이상.”

“감염이요? 방금 뭐죠?”

-로져. 해당 위치를 전 대원에게 전달합니다. 출입 금지 표시 후 이동해 주십시오.

구조대원들 사이로 무거운 적막이 내리 깔렸다. 임시 각성자들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깜빡인다. 분명 부상자가 아니었다. 멀쩡히 걸어오고 있었고.

코드 레드. 어디에서 들었는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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