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8화 (29/260)

28화

4. 병아리들

이른 아침부터 균열 구조 센터에 찾아가는 건 좀 민폐인 것 같아 지호는 우선 헌터 전투복을 반납하기 위해 부천 헌터 협회를 찾았다.

운이 좋으면 나연과 마주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스에서 내린 지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협회 입구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아이고, 지호야!”

엄마 또래의 여자다. 이름까지는 몰랐다. 엄마와 인사하는 동네 아줌마 중 하나였으니까. 지호는 불편한 얼굴로 그에게 달려오는 중년 여성의 눈치를 보았다. 원래도 어른들에게 썩 잘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불편했고, 예전 핸드폰으로 오던 연락을 무시했던 것이 생각나 두 배로 불편했다.

“아이구,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 잘 지냈어? 아픈 덴 없고?”

손이며 팔을 마구 잡아 오는 우악스러운 손짓이 불편했다. 아프거나 힘이 과하지는 않았다. 지호는 각성자니까. 그러나 보통 이런 식으로 어린애 취급당할 때는 꼭 아플 만큼 손을 붙들던 사람이었단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걱정과 염려 담긴 목소리가 아니다. 반쯤 가식 섞인 어조에 날 선 말이 목구멍 밖으로 툭 튀어 나갔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네가 연락도 안 되고 하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네 엄마 소식 듣고 바로 너한테 연락부터 했었어.”

“왜요?”

“얘는. 네 엄마랑 나랑 보통 친구니.”

보통 친구도 못 될 텐데. 심지어 그다지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다. 데면데면한 와중에 길 오가며 반찬거리 장은 무얼 보았는지 따위의 이야기를 할 뿐인 동네 친구 중 하나.

지호가 뭔가 이야기를 하려 할 때 과할 정도로 볼륨이 큰 벨소리가 울렸다. 여자는 아이구 잠시만, 하며 전화를 받더니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어! 여기 지호 있어. 부천 센터야. 자기 빨리 이쪽으로 와. 아이구, 애가 그래도 아프진 않아 보이는데 뭐 좀 먹이고 해야지. 내가 지호 엄마 친군데 당연히 그래야 되잖겠어?”

“아니 저는…….”

“내가 여기 근처에 맛있는 집 알아. 거기로 가 있을 테니까 오면 돼. 왜, 그 큰 대학 병원 앞에. 어, 거기 알지? 그쪽에서 봐!”

전화가 뚝 끊겼다. 헌터 협회 부근엔 사람이 많지 않다. 실험 때문에 폭발도 자주 있는 편이고, 위험한 훈련을 할 때나 출력 조절을 잘 못하는 헌터들의 실수로 충격 이상의 압력이 가해져 벽이 폭발하는 경우가 없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출입을 통제하진 않지만, 보통 일반인들은 출입은커녕 접근 자체를 피한다. 그런데 여자는 자연스럽게 지호 옆에 서서 호호 웃으며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헌터 협회 쪽에서 누군가 펄쩍 뛰며 튀어나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아 또 왔어요? 미치겠네.”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여자와 지호가 동시에 움츠러들었다. 지호야 한 대 맞은 기억 때문이라지만 여자는 왜?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여자가 아악 소리 지르며 얼굴 앞을 가렸다.

“거기 너 빨리 들어가라. 임 헌터네 꼬맹이라며?”

“예, 예?”

“연구실로 바로 가. 오래 하면 안 되는 기술이라 금방 풀 거니까.”

지호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서둘러 남자 뒤쪽, 그러니까 협회 건물 입구로 종종걸음 쳤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빽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 경찰에 신고할 거야!”

“신고? 맘껏 해봐. 뭐 잡히는 거라도 있나. 한 번 더 여기 와서 교육생들 귀찮게 하면 다음은 환각 아니고 실제 상황 보여 드릴게. 아줌마.”

“내가 지호 엄마 친구야! 비키지 못해?”

“차나연 헌터 출동 대기 중이라 아직 있으니까 연구실에 없으면 이동 포트로 가라.”

동주는 여자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면서 지호를 손짓해 안으로 들여보냈다.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센터로 접근하진 않는다. 언제고 지호를 향해 뻗을 것 같던 억센 손도 없었다. 황급히 백색 복도를 지난 지호는 천장 높은 연구실 한쪽에서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한 무리의 헌터들을 발견했다. 그 틈에 나연이 껴 있었다.

“차 헌터님!”

“어, 일찍 왔네요. 다행이다. 나 지금 송도 균열 파견이에요. 좀 멀리 가는데 아마 장기 임무 될 거라 한동안은 센터 나와도 남는 헌터가 있어야 교육받을 수 있을 건데. 좀 그러면 집에서 쉬면서 온라인으로 필수 이수 교육만 좀 챙겨 받고 그래요.”

“송도에도 균열이 열렸어요?”

“그쪽은 급성이 아니고 대피 다 끝난 구역이에요. 얼른 들어가서 정리하고 들어가 있는 헌터들 챙겨 나와서 계양 쪽으로 빠져야지.”

지호는 전투복을 연구실 보조에게 반납하며 의문을 표했다. 근접 지역에 균열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탓이었다.

“그럼 송도에 균열이 열린 상태에서 어제 그 난리가 난 거예요?”

“맞아요. 그래서 당장 계양에 파견할 헌터가 별로 없어요. 자원 채취보다 인명 구조가 우선이니까 데려와야죠. 사실. 송도 쪽 균열이 전파 방해 파장을 띈 균열이라 외부와 송수신할 수가 없거든요. 근접 지역까지 안테나 이고 가든가 직접 데리고 오든가 해야지. 이런 상황에서는 저 같은 감지계가 유용하거든요.”

“차 헌터님은 사람 구하는 일에 더 유용하지 않은가요?”

“나 하나보다 특출난 전투계 헌터 하나가 더 급해요. 괴물이 당장 사람 습격하려고 하는 상황이면 내가 뭐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저 이제 가요. 나중에 봐요. 연락할게요!”

헌터 팀이 이동 포트에 올랐다. 손을 흔들던 나연의 웃는 얼굴이 한 줄기 빛으로 변해 번쩍 사라지고 나서 지호의 입가에 억지로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때 한 번 겪은 적 있는 거친 손이 지호의 등짝을 퍽 쳤다.

“왜 죽을상이야, 신입?”

왜 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디서 금방 출소한 조폭같이 험악한 얼굴이라 뭐라고 대들 용기가 나질 않았다.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던 지호는 한숨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음, 뭘 해야 할지 생각했어요.”

“차나연은? 갔나?”

“예? 아 송도 균열로 가신다더라고요.”

“아까 그 아줌마 아는 사람 맞아?”

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야 할지. 지호의 망설임에 동주는 혀를 차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안 앉고 뭐 하냐는 눈빛 때문에 지호 역시 얼떨결에 그 옆에 앉아야 했다.

“뭐 이제부터 알아 가고 그런 사이는 아니었지? 내가 방해했다던가?”

“아니에요!”

“좋아. 나는 김동주다. 임보현의 피보호자. 현재 주목받는 꼬맹이 엘리트 이지호 맞나.”

편견이 없는 것까진 그렇다 치는데 눈치까지 없는 사람 같았다. 아까 그 분위기가 이제부터 알아 가는 사이로 보일 만했나. 그것보다 그런 나이의 아줌마를 만날 취향의 사람으로 보였던가. 지호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워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전투복 반납하고 균열 구조 센터로 가려고 했는데 여기 왜 앉아 있는지 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치상으론 보호자가 필요하기보다 남을 당장 보호하러 가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어린애니까. 임보현이 차나연한테 맡긴 너를 임시로 내가 맡았다. 균열 구조 센터에 파견 다녀왔더군. 이번엔 허튼짓 안 하고 일 잘했나?”

“진짜 몰라서 그런 거였어요…….”

동주는 씩 웃었다. 확실히 다른 곳에서 본 적 없는 험악한 인상이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을 보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래. 그땐 피차 긴급 상황이라. 때린 건 미안하게 됐다.”

어쩐지 괜찮다고 말하긴 싫었다. 지호가 입을 다물고 있었음에도 동주는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연구실 컴퓨터 하나를 바깥 방향으로 돌려 조작했다. 뭔가를 입력하자 지호의 사진과 함께 천장을 찌르는 익숙한 그래프가 화면에 떠올랐다.

“듣기만 했는데 숫자로 보니 진짜 물건이군. 임 헌터 아니면 사방에서 탐냈겠어.”

“개, 개인 정보예요. 어떻게 이렇게 맘대로 보시는 건지…….”

“보통은 안 되지. 하지만 이건 임시 각성자라 센터 내부에만 공개된 정보고, 이제부터 네가 이 정보 중에 필요한 것만 공개 처리하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돌릴 거라서.”

“예?”

“계속 임시 각성자로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정식 등록을 하면서 공개할 정보와 숨길 정보를 지정할 수 있거든. 예를 들면 봐라.”

동주는 보현의 이름을 검색했다. 외모에 걸맞지 않은 상당한 나이에 지호와 비슷할 정도로 많은 종류의 능력 분화가 눈에 띄었다.

“아마 이게 전체 공개는 아니겠지. 그래도 기본적으로 봐. 염동력 그래프가 전체 헌터 중에 탑 클래스지. 정신 계열도 마찬가진데, 여긴 종류가 좀 세분되어 있어서 임보현 헌터의 경우는 방어 특화지 공격이나 감지 쪽으론 소질이 없지. 구현화 계열도 상당해서 여파가 큰 공격을 막는 데도 주효한 능력자고. 근데 치유 쪽은 전혀 없어. 있는 힘 다 퍼부어도 어깨 뭉친 데 좀 풀릴까 말까야. 수치상으론 말이지.”

그밖에도 보현의 자료에서 공개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단발머리에 냉정한 얼굴. 사진 속 보현은 지호가 아는 보현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헌터 활동을 정리하기 직전 임보현은 대균열의 날 이래로부터 함께하던 파트너를 잃었다. 그가 발견된 건 힘을 다 소진하고 탈진한 상태였고, 해당 구역에는 치유 계열 파동이 넘쳐 나고 있었지. 죽은 파트너도 그랬고 임보현 헌터 역시 치유 계통은 등록되어 있질 않아. 정식 등록을 할 때 원치 않는 정보는 아예 삭제하고 올릴 수 있긴 하지만, 치유 계열을 지우는 각성자는 없어. 다들 성향이 그렇다 보니 특히 그렇지.”

보현과 비슷한 어조로 다른 각성자들을 바보 취급한 동주는 보현의 정보에 기재된 치유 계열 0 수치를 가리키며 투덜댔다.

“특히 임보현 헌터는 전직 의사라고. 기본적으로 가진 의학 지식으로 응급 처치를 얼마나 많이 한 사람인 줄 알아? 치유력이 있었으면 진작 썼지 멍청하게 의료 도구 짊어지고 다녔을까. 그래서 그를 의심하는 건 아니야. 그때 죽은 파트너가 치유 계열을 미약하게 각성한 상태였을 것이고, 보현을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 냈든가 했겠지. 약하게 이동 능력도 가진 헌터라 임 헌터만 외진 곳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했을 거고. 전부 추측이긴 하다만.”

“헌터가 되면 파트너도 생기나요?”

“아무래도 그 편이 활동하긴 편하니까. 차나연 헌터 같은 경우엔 고정 파트너가 있진 않아. 그렇게 뛰어난 감지계면서 전투 능력이 전무한 축에 속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까 아무래도 파견은 안전한 곳으로만 가게 되거든. 무슨 말인지 알지? 보통의 헌터들은 위험한 곳으로 뛰어들잖아. 부나방처럼.”

“그건…….”

“최근에 일어난 실험실 사고도 목격했다고 들었는데.”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왜 물어보는 걸까. 묻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불편해 보이는 표정을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동주는 꿋꿋이 제 태도를 고수했다.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목격한 바와 같은 사정으로 헌터들은 하나같이 위험한 데 뛰어들어서 사람 구하는 걸 즐기는 변태들이라서 말이야. 제 안전보다 남의 안전을 먼저 챙기려고들 하거든. 근데 다 그런 건 아냐. 범죄자 놈들도 있긴 하지. 그래서 여기서 기록을 지우고 공개 자료를 제출한다 해도 검사를 한 센터에서 임시 각성자 시절 측정한 자료를 완전히 지우지는 않는다. 1세대 때야 센터가 균열에 휘말려서 자료니 뭐니 다 날아가던 게 흔한 시절이라 임 헌터나 파트너 정보를 열람 못 하는 거지, 지금은 아냐. 그런 시대는 끝났거든.”

지호는 자신이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어렴풋이 알았다. 다른 각성자들이나 헌터들이 보이던 기본적인 호의가 없다. 각성한 사람들은 일단 좋은 사람이라고 전제를 깔고 가는 듯한 그 선한 느낌이 없기도 했다.

“제가 범죄를 저지르면 이 센터에 와서 제가 공개하지 않은 정보들을 꺼내 볼 것이니 조심하라 뭐 이런 이야길 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있지. 똑똑한 병아리로군. 근데 본론은 그게 아냐. 박 팀장이 그러더군. 갑자기 헌터가 되고 싶단 말을 했다나? 보호자는 말리고 있는데 말이야.”

“저도 사람을 구하고 싶어요.”

“각성자 연합에서 하는 일도 다 사람들을 위한 일이야. 아니면 직접적인 구조 활동에 관심이 있나? 그거라면 헌터 쪽이 좀 더 가깝긴 하지. 어제 균열 구조 센터 다녀왔다며? 그것도 그 관심의 일환인가?”

“무슨 조사 같은 건가요, 이거?”

“꼭 대답해야 하는 건 아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지. 정보 공개 여부나 설정해, 병아리 선생.”

“왜 병아리라고…….”

“임시잖아. 노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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