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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7화 (28/260)

27화

대원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지호만 뭣도 모르고 눈을 굴릴 뿐이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모종의 이야기가 있는 걸까.

이것만큼은 승찬도 조심스러웠던 터라 몇 번이나 말을 망설였다. 그러나 지호가 조그맣게 괜찮다고, 이야기해 달라고 하는 말을 세 번쯤 웅얼거린 다음에야 그 역시 한숨과 함께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 구조가 필요한 위치를 위에서 지정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게 사람이 많은 위치 아닌가요?”

“저희도 균열 어플을 통해 생존자 발신 신호를 볼 수 있잖습니까. 지금이야 실제로 인원이 많은 거긴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한두 명임이 거의 분명한 신호를 향해 다수에게서 등 돌리고 사지를 헤쳐 나가야 할 때요.”

“각성자들한테도 비슷한 요구를 한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높은 분 명령받는 저희와는 아무래도 입장이 좀 다르다 보니 그래도 자유롭게 행동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는 가라면 가야 하거든요.”

“거기 있는 게 겁에 잔뜩 질렸으면서도 자기 아빠가 누군지 아느냐고 뻐기는 덜 자란 애새끼일 때는 진짜 빡치죠.”

대원들은 맞아 맞아 하고 말을 거들며 자기 경험들을 하나씩 꺼냈다. 누군가는 진짜 급한 환자 대신 얼마 다치지도 않은 나이롱환자에게 치료기를 양보해야 했고, 누구는 방호복이 다 손상된 상태인데도 진입을 강요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어떤 경력 좀 있는 대원의 말이 제일 걸작이었는데, 그는 헛기침하며 TV에 자주 나오는 정치인의 가족 중 한 사람이 균열에 갇힌 적이 있었더라며 운을 떼었다.

“그때는 뭐 균열 관련 법도 제대로 안 되어 있을 때였고. 소방관이 화재 진압하려고 문 부수거나 하면 물어 줘야 하고 그랬을 때였거든? 당시엔 소방관들이 균열 구조 작업도 도맡아 하고 그랬었어. 지금처럼 인명 구조가 최우선이고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고. 건물이고 부동산이고 다 건드릴 수도 없는데 그 상황에서 사람까지 구해야 했는데, 와 진짜 답답해서 펄쩍 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아무튼, 그런 시기에서 그 유명 정치인 가족이 균열에 휩쓸렸어. 대균열 시기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법이며 뭐며 막 아무것도 없을 때고, 우리도 아는 것 하나 없이 일단 때려 박아 뭔가를 하던 때라 그때 균열 열리자마자 각성자가 투입됐어. 그때 어떻게 됐게?”

지호는 최악의 사태를 상상했다. 균열의 생태계 상향화. 그러니까 헌터가 상대할 수 없을 만한 괴물이 나타났을 확률이 높았다.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그 대원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사건 이후로도 몇 번 비슷한 일이 있었어. 자기 가족 구해 오라고 각성자를 막 돈으로 후려치는 일 같은 것들 말이야. 명령해서 안 듣는데 어떻게 하냐. 돈이라도 쥐어 줘야지. 그때부터 헌터들 몸값이 그렇게 올랐을걸. 아무튼,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그 사람 아들 못 살렸어. 그러고 딸 하나까지 균열에 휘말렸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다음에 진짜 미친 사람처럼 법 제정에 들어가더라고. 이건 뭐, 결과적으론 모두에게 잘된 일이지. 옛날 소방관들은 환자 하나 구하려고 자기 돈 쓸 생각 하면서 문짝 뜯고 그랬었어.”

“그래도 목숨을 구해 주는 건데. 불도 꺼 주고…….”

“당시에야 고맙다고 하지. 근데 나중에 아쉬운 생각이 안 들겠느냐 이 말이야. 지금처럼 재난 관련 최우선 법률들 없으면 어휴, 누가 소방관 하려고 해. 그때는 진짜 돈도 돈인데, 희생정신 없이는 힘든 직업이었지. 균열 구조대 생기고 나서는 좀 분화했는데, 균열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구조대에 많이 자원했지. 초창기엔 좀 그랬어. 나나 뭐 김 형이나.”

형철과 비슷한 또래의 대원은 대충 말을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끊어 버렸다. 보현이 했던 이야기와 비슷하다. 보현이 보인 적의와 비슷한 태도도 조금 있었으나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 손해를 입은 정도가 달라서인지 아니면 명령 체계에 따르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지휘 통제부로부터 해당 팀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이미 지나칠 정도로 장시간 현장에 나와 있었다. 대원들의 체력은 진작 바닥이었고, 지호 역시 그랬다.

복귀 명령을 들으며 꼬질꼬질해진 헌터 전투복을 쭉 잡아당긴 지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세탁해서 반납해야 하나? 양심상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른 구조대원들과 함께 차량에 몸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채로 졸았더니 금세 센터에 도착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하품하니 어느새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먼저 일어난 승찬은 비스듬히 누운 지호를 일으켜 주며 물었다.

“지호 씨. 집이 어디예요?”

“어, 여기서 가깝진 않은데요.”

“지금 인천 1호선이 저렇게 된 터라 전철도 안 다닐 거예요. 이 밤에 혼자 보내기 좀 그래서. 괜찮으면 태워다 주고 싶은데요.”

승찬은 멋쩍게 웃으며 비슷하게 땀과 먼지로 찌든 구조복 버클을 풀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옷 안으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눈이 갔다. 지호는 자기가 한 행동에 제가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아니에요. 뛰어가면 돼요!”

“가깝지 않다고 하지 않았어요?”

“저, 그, 헌터니까. 뛰어가면 괜찮을 거예요.”

물론 그렇게 해 본 적은 없지만, 지호는 황급히 그렇게 대답하며 핸드폰을 켰다. 방향을 검색하니 도보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이번 균열이 운 좋게 산에 절반 이상 걸쳐져 있어서 그래도 일찍 끝났는데. 다른 때도 이렇게 여유가 날 거라고 말 못 해요. 다음엔 못 태워다 준단 뜻인데.”

“괜찮아요!”

승찬은 그 완강하고도 단호한 거절을 들으며 난처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대원들이 눈을 부라리며 모종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승찬의 손님이었고, 승찬 때문에 함께 구조 업을 도운 헌터다. 그러니 편히 모셔다드려라. 그런 압박이다.

승찬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곤 센터로 뛰어갔다. 그사이 집으로 돌아가는 최적 루트를 검색한 지호는 컴컴한 밤길을 보며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좀 염려했다. 그래도 엄마가 한밤중에 외간 남자랑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고 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엄마 생각이 나자 지도를 터치하던 지호의 손이 멈췄다. 승찬의 얼굴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엄마 생각이 났다. 오늘 현장에서 뛰어다니던 것을 보면 그때도 그가 최선을 다해 엄마를 구하려 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생각이 나는 건 어떻게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호는 울적해져서 그대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좋은 사람이다. 선량한 사람이고.

좋은 의도에서 각성자가 되고자 시도하려 하는 것도 알겠다. 물론 그게 좋은 결과를 낼 거라고까진 말 못 하겠지만. 그래도 지호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 삶을 사는 게 옳다고 믿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각성자들은 하나같이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어떻게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진단 말인가?

짧은 경적 소리가 상념을 끊었다. 지호는 소리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옷 갈아입고 차를 끌고 나온 승찬이 경적을 울렸다.

“안 타시면 저 내일 좀 시달릴 것 같아요. 살리는 셈 치고 타 주실 수 없나요?”

지호는 뒤늦게 다른 대원들의 시선을 알아챘다. 지켜보고 있다는 손짓까지 봐 버린 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한 사람들이다.

“이랬는데 집 반대 방향이고 그럼 어떻게 하죠?”

“어차피 인천으로 가시잖아요? 우리 처음 만나야 했던 데가 그쪽인데.”

그건 그랬다. 지호가 살게 된 아파트도 그곳에서 크게 멀지 않은 위치다. 조수석에 조심스럽게 몸을 싣고 어느 동 모 아파트예요, 하고 중얼거린 지호는 괜히 꿈지럭대며 안전띠를 했다.

“좀 웃기죠? 헌터 위험하다고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민간인요.”

승찬은 액셀을 부드럽게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까지 긴장하고 있던 지호는 조금 안심했다. 모두가 보현처럼 운전할 리가 없지. 사실 그런 난폭 운전자들은 면허를 압수해야 옳다.

여태까지 함께 있었지만, 차에 단둘이 앉아 있으니 어째 기분이 좀 이상했다. 지호는 괜히 창밖을 구경하다 핸드폰을 보다 하며 눈을 어디 둬야 하나 걱정했다. 승찬은 모른 척 음악을 켰다. 지호가 어색해하는 게 대놓고 느껴진 탓이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며 차가 어두운 도로를 달렸다.

말을 꺼낼까 말까 생각하던 승찬은 지호가 졸지도 않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깥 경치나 둘러보는 걸 보곤 웃으며 물었다.

“안 졸려요?”

“이 정돈 아무렇지도 않아요. 며칠 밤새도 괜찮을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다행이네요. 모처럼 여러 가지로 마음먹고 연락 주신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모르겠어요. 같이 출동할 생각 추호도 없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어차피 들어가도 할 것도 없고요.”

“오늘 말실수했던 것들 다시 사과할게요. 각성자들의 희생을 가벼이 여기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어요. 구조대 일을 하다 보면 가끔, 한계를 느낄 때가 있으니까. 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바보 같은 소리였죠.”

“죽지 않을 수 있다면 안 죽는 게 제일 좋아요. 형철 아저씨 말처럼 살아날 거란 보장도 없고.”

느린 음악처럼 말도 느릿하게 늘어진다. 피로 때문일 터. 아무리 신체 강화 계열 헌터라고 해도 온종일 긴장의 연속이었으니 피곤치 않을 턱이 없다. 사실 승찬 역시 좀 피곤했다. 그는 운전대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각성자들에겐 편협한 정보를 얻으시는데 정작 도움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이런 소릴 해 대니 기분이 좋을 것 같진 않더라고요.”

“구조하면서 그런 딴생각할 겨를도 있으셨어요?”

“그럴 여유 있는 활동들이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괴물 마주쳐서 살겠다고 허우적대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나은 하루였는데요.”

확실히 운이 좋았다. 부평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다른 현장들에선 괴물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일이 없었다. 생존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생존자를 인계하면서 지호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가 헌터가 되어 하고 싶은 일도 이런 일이었다. 당장은 할 수 없겠지만.

“정식 헌터가 되면 저도 진짜 구조대 일을 할 수 있겠죠. 그치만 지금은 그렇진 못하잖아요. 임시 표 떼기 전까지는 균열에 못 들어간대요.”

“그래야겠죠. 위험하잖습니까. 저희처럼 도망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저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걸요. 그래서 말인데요. 종종 와도 돼요?”

승찬은 대답하지 못했다. 모터 소리가 좀 시끄럽게 들려서 대화라도 방해하면 좀 좋나. 성능 좋은 차라 액셀을 좀 밟아도 부드럽게 미끄러질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회피하고 싶었던 그의 눈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왔다.

“지금 보호자분이 유명 헌터라고 하시더니, 이 아파트였네요. 돌아다니면서 보긴 많이 봤던 곳인데.”

“어, 시설 되게 좋더라고요. 이런 좋은 곳에 처음 살아 봐서 좀 낯설어요.”

“이 근방에서 여기만큼 집값 비싼 곳도 없을 겁니다. 임대 아파트다 보니까…….”

“임대 아파트가 왜 비싸요?”

“아……. 두 가지 종류의 임대 아파트가 있습니다. 도시 빈민 구제를 위한 국가 정책 주도 주거권 보장 아파트하고, 나머지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건데요. 대균열 이후로 워낙 사람이 많이 죽은 바람에 국가에서 각성자 등록제를 실시하는 대가로 각성자들에게 집을 제공했습니다. 당시에는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고 각성 사실이 알려지면 실험실에 끌려가니 뭐니 하는 헛소문도 많아서 반발도 많고 파격적인 조치였는데, 그때 임대 아파트를 헌터들한테 내줘서 거주지를 모아 버렸거든요. 근데 이게, 균열 때 같이 휘말린 각성자가 있으면 생존 확률이 대폭 올라갔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다들 생각한 거죠. 어, 옆집에 헌터가 있으면 만약 재난 상황에 처해도 살 수 있겠네, 하고요.”

진부하고 당연해진 이야기였으나 승찬은 차분히 당시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헌터의 가치는 치솟았고, 나라에선 나중에 고가의 아파트 단지를 통째로 헌터들에게 분양했다. 남은 집에 들어가려고 일반인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 시작됐는데, 그때 이후로 헌터 거주구가 본래와는 다른 의미의 임대 아파트가 된 모양이었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설비도 제일 잘 되어 있고 고가형 주거지에 속하죠. 헌터들이 워낙 돈이 많다 보니 같이 살 집이랍시고 방비니 뭐니 해 가며 다 같이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지역도 비슷할 거고요.”

차는 어느새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했다. 보현이 해 주지 않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단 점에서 승찬 시점에서의 이야기들은 매력적이다. 지호는 차에서 내려 문을 닫기 전에야 그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음, 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신 것도요.”

“저야말로 고마워요.”

무엇이 고맙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호는 승찬의 말이 너무 많은 의미를 담은 나머지 한 마디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믿었다. 그런 눈빛이었으니.

눈으로 여러 말을 하는 사람이다. 오래 마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부끄러웠다. 지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문을 닫았다. 차 떠나는 것까지 보고 들어가려는데 승찬이 먼저 돌아가는 거 보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에는 그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돌아서며 지호는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가, 일상이 아니었다가.

모르겠다. 삶이란 너무 복잡하다.

그 밤, 보현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호는 따뜻한 물을 한참 맞은 채 오래도록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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