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지휘 통제부에 해당 괴물의 간략한 정보를 전달한 승찬은 어두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보이지 않는 놈은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닿는 것들을 빨아들인다니, 구조대원들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정보가 알려지기 무섭게 돌아오라는 신호가 떨어졌다. 들어갔던 대원들은 영문도 모르고 다시 학교 부근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균열에서 돌아 나오자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던 전신에 색이 돌아왔다. 색다른 감각.
촬영한 화면을 돌려 보던 지호가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뜨거운 열기를 가하는 것처럼 일렁일렁 흔들리는 모양새가 멀리서도 식별 가능할 만큼 강렬히 눈에 띈다.
문득 불안감이 느껴졌다. 지호는 그것이 문을 잠그고 실내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상가에 있던 놈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인식하는지는 알 수 없다. 소리일까? 아니면 냄새? 혹은 기척?
괴물들의 종류는 너무 다양했다. 알려지지 않은 괴물의 정보를 약간의 경험만으로 추측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도 더 없다.
그러나 놈이 좁은 지역에 나타나 거기에 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오로지 직진만을 반복한다는 것과 철퍽거리는 끈적하고 습한 소리와 함께 이동한다는 것 정도는 구조대원들이 숙지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정보다. 승찬은 지호의 이야기를 종합해 간결하게 전달했다. 형철로부터 어이없어 하는 답신이 돌아왔다.
-직진밖에 못 하는 놈이라 이거야? 밖으로 유인하면 어때?
“예전에 한 번 만난 것이 전부인 놈이라 그 이상의 변인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장은 놈이 지나간 자리 뒤는 일단 안전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계시면 되겠군요.”
-퍽이나 안전하겠네. 한 마리일 거란 보장도 없잖아.
그렇기는 했다. 승찬 역시 출동한 대원의 감각을 믿었다. 한 마리가 아닐 수 있다. 학교는 넓었고, 층수 역시 높았으므로.
-그나마 애들 없는 시간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
정말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 남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 곧장 샛별이가 떠올랐고, 지호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동시에 수희 역시 함께 생각났으므로.
“흔들림 확인. 알파 팀 해당 입구로 진입합니다.”
통제 팀의 지시에 맞추어 이동이 시작되었다. 가장 가까운 생존자 표식은 2층. 위험천만한 높이다. 아래에 해삼 같은 개체가 하나라도 있으면, 혹은 소리에 민감한 개체가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해당 대원들이 건물에 진입하고 나자 맨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워졌다. 창문이 있는 방향을 지날 때야 드문드문 보였다. 줄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수색한 곳으로 다시 나와야 하는 모습은 불편해 보였으나 만약의 경우 대원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구명줄이라 끊고 들어가라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지호는 초조하게 학교를 노려보았다.
잔디 깔린 구장에 트랙 깔린 운동장. 여차했을 때 숨을 곳이 마땅치 않은 넓은 곳. 건물 안에 있는 놈 외의 다른 것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외에 기다리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때 한쪽의 수신기에서 소란이 일었다. 조용,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하고 구조대원이 그들을 진정시키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약간의 소란 후에 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브라보 팀 생존자 무리와 접촉. 열세 명의 어린이들입니다. 현재 집단 이동 불가능. 보이지 않는 개체 목격 후 십일 분이 흐른 상황입니다.
누군가 신음을 흘렸다. 어린애들이라니. 어른들이었으면 차라리 구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어린애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브라보 팀원 구명줄 제거하고 생존 팀에 합류하십시오.”
냉정한 지시가 떨어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깔끔했다. 구명줄 제거 완료. 해당 임시 대피소를 폐쇄했습니다. 외부와 접촉 없음.
지호는 제 몸이 떨리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승찬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탓이었다.
“괜찮아요?”
“예?”
“그때도 안 좋아 보이더니, 지금도 그래요.”
승찬은 난처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상비약 통에서 가제 손수건 비슷한 것을 꺼내 지호의 이마를 꾹꾹 찍어 주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전신이 긴장 상태로 한참 있었는지 아파 오는 곳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곤두서 있으면 정말로 필요할 때 아무것도 못 해요. 천천히 숨 쉬어요. 어려우면 등 돌리고 서서 균열에서 시선 떼고요.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나나 봐요. 그럴 수 있어요.”
“아니, 저는 괜찮아요. 그냥 긴장해서. 이렇게 긴장할 일이 없었는데, 그러니까.”
“괜찮아요. 천천히 심호흡해 봐요. 내 손 올라가면 숨 마셨다가 내려가면 내쉬어요. 자, 천천히. 하나, 둘. 하나, 둘.”
“어, 어떻게.”
“심호흡부터 해요.”
지호는 승찬의 지시에 따라 간신히 숨을 골랐다. 바짝 치솟아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고, 꽉 쥐어 피가 안 통할 만큼 허옇던 손에도 피가 돌았다. 조금 진정이 되자마자 지호의 입에서 질문이 튀어 나갔다.
“어떻게 그렇게 단숨에 생명줄을 포기할 수 있어요?”
“그렇게 훈련을 받습니다.”
“그걸 아무 고민 없이 따르는 게요.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자기 목숨을 던져 가며 남을 구할 수 있는 거죠?”
승찬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고 있는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묘한 시선. 잠시간의 침묵 후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당신은 그렇게 훈련받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했잖습니까.”
생판 상관없는 남들을 위해 한 일이 아니었다. 지호가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승찬이 고개를 저었다.
“가족을 위해서였다는 말로 자신의 희생을 폄하하지 마십시오. 그 희생은 정말로 숭고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수한 훈련을 받아야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순간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신을 던져 타인을 구하기도 하죠. 저는 후자를 택한 사람들을 각성자라고 부른다는 걸 압니다.”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각성자가 타인을 위해 죽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지호의 의문은 타당했고, 승찬은 그의 반응을 본 뒤에야 한숨 쉬며 고개를 돌렸다.
“확신하진 못했었는데 지금 그 반응을 보니 이게 그냥 소문만은 아니었군요. 확실히 구조대원 중에 각성하는 사람 비율이 대단히 높다는 부분에서 좀 이상하단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각성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지기도 했고요.”
“함정이었나요, 지금?”
“순수한 감상을 읊은 겁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요.”
갑자기 형철의 신호가 폭발적으로 튀었다. 잡음이 요란하게 섞였다. 당황한 승찬과 통제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음성이 돌아왔다.
-씨발! 한 놈 아니야. 한 놈이 아니야! 구명!
누군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밧줄 고정대가 미친 듯한 속도로 되감기기 시작했다. 형철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이 똑똑히 들렸다.
-이거 방검복이야 개새끼들아!
썩 생산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억지로 균열에서 끌어낸 대원의 상태는 심각했다. 신체가 다치지는 않았으나 입고 있던 방호복이 거의 녹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손상됐다. 다리 부근은 거의 뚫렸고, 피부에 심각한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욕지거리를 뱉었다.
“지능적인 놈이더군. 계단에서 바로 뛰어내린 것 같았어. 갑자기 철퍽 하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더니 곧장 코앞이 일렁거리더라니까. 바로 뛰었는데도 잡혔어. 흡입력이 어마어마하더군. 잡아먹히나 했다. 분명 몇 분 전에 다른 놈이 지나간 걸 보고 이동한 건데도 당했어. 최소한 둘. 그 이상 있을 수도 있다.”
휴대용 치료기에 다리를 넣고 있는데도 통증을 무시하기 어려웠는지 형철의 얼굴은 내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수포가 올라오며 검붉게 물들었던 피부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긴 했으나, 마정석 치료기의 힘은 치료 능력을 가진 헌터의 것보다 효율이 떨어져 응급조치 정도만 기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방호복은 못 쓰겠군요. 계단 부근을 이동할 때 주의하십시오. 개체가 하나가 아닙니다. 이상, 나머지 두 대원 복귀 바랍니다.”
지호는 화들짝 놀라 지휘 통제부의 전언에 귀를 기울였다. 두 명이 돌아오면 나머지는? 다른 생존자들은? 생존자 아이들과 남은 대원은?
지호의 얼굴에 감정이 지나치게 드러났는지 승찬이 먼저 설명해 주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수색과 지원이 전붑니다. 헌터들처럼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학내에 보이지 않는 개체가 있고, 그것들에 휩쓸리면 방호복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으니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합니다. 다른 방향의 신호를 수색할 겁니다.”
“하지만 저기 들어간 대원은요?”
“외부 위험 요소가 있나 확인하고 당장은 구호물자와 식료품을 전달할 겁니다. 그런 뒤 최우선 우선순위 표식을 남겨 두고요.”
학교 문이나 창문이 튼튼해 봐야 얼마나 튼튼할까. 아이들이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던가. 지호는 초조한 얼굴로 균열 너머를 노려보듯 응시했다. 들어갈 수도, 힘을 가할 수도 없다니. 힘이 있으면 뭘 하나. 이렇게 무력한데.
마정석 충전분이 부족해 치료기의 빛이 꺼졌다. 형철은 신음을 참으며 다리를 빼냈다.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단순히 닿기만 했는데도 이러다니……. 외피에 독 같은 게 있는 것 같군요. 진짜 위험한데요.”
진짜 아파 보인다. 지호는 형철의 다리에 마취 용도의 겔이 도포되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치료 능력도 아주 소량 있다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본인이 덜 다치는 종류의 능력 아니었을까. 지호는 주저하다가 손을 뻗었다.
“자, 잠시만요.”
덜덜 떨리는 손에 허옇게 질린 얼굴. 누가 봐도 여기서 제일 환자 같아 보이는 형철을 제외하면 그다음 환자는 지호 같았다. 다른 구조대원들이 눈짓으로 소통했다. 트라우마 반응? 승찬이 슬쩍 동의하며 지호를 제지했다.
“다친 대원을 병원으로 이송할 겁니다. 호위해 주시겠습니까?”
“제일 안전한 곳으로 빠지라고요?”
“어차피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구조 요청 신호가 오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애들이랑 다른 대원분을 두고?”
“지원품 전달을 위해 다시 들어갔다 올 겁니다. 그러나 그 전에 다친 대원을 챙겨야 하니까요. 두 사람이 붙어 이동하는 것보다 신체 강화 계열 헌터분이 이송을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형철의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지호는 떨리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승찬이 보기에 지호에게 필요한 건 헌터 훈련이 아니라 트라우마 치료 같았다.
샛노란 명찰의 임시 헌터는 떨림이 가라앉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심호흡한 뒤 환자의 다리 부근에 손을 얹었다. 형철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미세한 충격에도 통증이 저릿하게 퍼진 까닭이었다.
“제가 이게, 해 본 적이 없긴 한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