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출동 장비를 점검하고 근방에 잠시 외출하겠노란 보고를 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호가 도착했다. 몇 시간 전에 보았던 헌터 전투복을 그대로 입고 온 터라 눈에 잘 띄었다.
“이쪽이에요!”
승찬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피차 이름을 모르는 사이다. 전투복도 임시로 받은 것이라 이름이 적혀 있질 않았다. 샛노란 임시 표시만 돋보일 뿐.
센터 한편에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방이 있다. 다행히 비어 있어 탕비실에서 집어 온 커피와 음료, 간식거리를 한 아름 안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를 권하자 주춤거리며 의자를 끌어 앉은 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승찬은 어른답게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인사지만, 둘 다 알다시피 앞선 두 번의 마주침 모두 정신없기 그지없었다.
“지승찬입니다. 균열 구조대원이에요.”
“아, 저는 이지호고요. 음……. 아직 임시 각성자예요. 임시 헌터에…….”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일찍 연락 주실 줄 몰랐어요. 아시다시피 대기 상태라 어디 나가긴 어렵겠습니다. 차라도 한잔 드실래요?”
“차요?”
지호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어색한 만남이었다. 승찬은 지호가 왜 그를 만나러 왔을지 궁금해했고, 지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날 제가 각성자가 되었거든요.”
“그날요? 그 당일에 말입니까? 하지만 다친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승찬은 말끝을 흐렸다. 소문일 뿐이지만, 각성자가 되는 방법이란 게 있단 이야기가 센터에 돌고 있다. 이곳뿐 아니라 꽤 많은 커뮤니티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저는 아직 임시고 배울 것들도 많아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데요. 균열 구조대로 일한 지 오래되신 건가요?”
혹시 그만한 경력으로도 왜 엄마를 구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날아오나 싶어 승찬은 머뭇거리며 답했다.
“올해로 삼 년 차 됩니다. 제가 균열에 처음 휘말렸을 때가 군대에 있던 때라, 그때부터 구조 작업에 들어갔으니 실제로는 좀 더 셀 수 있을 겁니다. 뭔가 궁금한 게 있으신 건가요? 저보다는 헌터분들께 묻는 게 더 정확하지 않나 싶은데.”
“사실 저기…….”
멱살을 잡힐 차례일까, 아니면 머리를 뜯길 차례일까. 마음의 준비를 한 승찬에게 나직한 질문이 돌아왔다.
“제가, 이번 균열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이제 혼자가 됐거든요.”
승찬은 분위기를 가볍게 해 볼 심산으로 생각해 놓았던 모든 농담을 한쪽으로 집어 던졌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 어떤 이야기도 기만이 될 것임을 알아, 그는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 지호는 눈치를 살피다 좀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고요. 제가 아직 미성년자라 법적 보호자가 저를 구해 주신 헌터님이거든요. 원래도 균열 피해자분들 많이 모여 사는 외진 동네에 살았고, 알던 사람들이라곤 다 균열 피해자든가 그 가족이든가 그렇거든요.”
횡설수설하고 있긴 했으나 이야기가 조금씩 윤곽을 잡아 가고 있었으므로 승찬은 그런데요, 하고 고개를 끄덕여 가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차분한 태도에 지호는 가까스로 본론을 꺼냈다.
“음. 이번 사건 이후로 제가 각성자가 되었더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서 너무 많은 연락이 왔어요. 하나같이 본인이 제 보호자가 되어 주겠다는 둥, 부모님이 남긴 재산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은 어떻게 해결하겠냐는 둥, 뭐 사실 남은 것도 얼마 없고 다 부서지기는 했는데 아무튼요. 되게 도움될 것 같지도 않고 믿음직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그 전엔 모르던 사람들이고요?”
“아빠가 옛날에, 그러니까 대균열의 날에 돌아가셨거든요.”
승찬은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더는 뭐라고 말할 수 없어 거듭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조차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었던 상황이었고, 거기에 더는 덧붙일 말이 없었다. 홀로 살아남아 미안해야 하나. 생존이 미안할 일이 될 이유는 없었다.
“그때 연락 오는 사람들 연락은 아무것도 안 받았어요. 각성하고 알게 된 사람들은 다 각성자더라고요. 어쩌다 보니까 음, 제 보호자분도 되게 유명한 1세대 헌터시래요.”
“잘 배우시면 좋겠군요. 그때부터 살아남은 1세대 헌터라면 특히 경험이 많으실 테니.”
“맞아요. 어, 근데 제가 헌터가 되는 걸 별로 원하지 않으세요. 저한테 그쪽 정보는 잘 주려고 하지도 않으시고요. 그래도 저는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아, 아빠가 소방관이셨거든요. 아빠가 그러셨던 것처럼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구조대 일도 아주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보다는 헌터가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서 헌터가 되려고 했거든요.”
“헌터에 관한 걸 물으러 오신 건 아닌 거죠?”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본론이었다.
“지금 제 주변에는 저를 뜯어먹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저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끌고 가려는 사람들뿐이라서요. 객관적인 입장이 필요해요. 어느 정도는 균열에 관해 알고 있으면서, 각성자가 아닌 사람. 그러니까 어, 성함이 뭐라고 하셨었죠. 죄송해요.”
“지승찬이라고 합니다. 외우기 쉬운 이름은 아니죠?”
“승찬……. 아저씨가…….”
승찬은 한숨을 숨기며 눈치 보는 지호에게 웃어 주었다. 아저씨라니. 그는 아직 한창인 20대였다. 물론 십 대에게 그 이상의 호칭이 뭐가 있겠느냐마는.
“제게 여러 조언을 얻고 싶다 이 말이시죠?”
“괜찮으시다면요…….”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각성자에게 각성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이번 급성 균열을 수습한 다음에서야 진득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이야기하려던 찰나, 센터 전역에 경보가 울렸다.
-부평 초등학교 인근 균열 경계 지역에 괴물 출몰. 전 대원 출동 바랍니다. 부평 초등학교 인근 경계 지역에 괴물 출몰. 미확인 개체이니 접근에 주의 요합니다.
“가야겠습니다.”
“어, 저기. 저도 가도 되나요? 이번에는 이형 에너지 안 쓸 테니까…….”
“쉬셔야 하지 않나요? 헌터 파견은 좀 더 기다리셔야 하는데…….”
“어차피 저는 균열에 파견은 안 되는걸요. 괜찮아요!”
당장은 이 자원봉사자를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승찬은 급히 달려가 장비를 챙겨 들고 이송 차량에 올라탔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키 작은 여자 하나 더 탈 자리 정도는 충분했다.
주위 대원들이 당황한 시선을 보냈으나 복장이 복장인지라 따로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호는 입을 꾹 다문 채 균열 어플을 확인했다. 경계 부근으로 생존자 신호가 다섯 이상 포착됐다.
“차량 한 대가 다야?”
“지금 다른 지역으로 지원 나가 있어요. 두 대 벌써 떴고, 나머지 구조 신호는 소방대원들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입니다.”
“젠장. 불은 누가 꺼? 헌터들한테라도 지원 요청해 봐.”
“하지만 지금은…….”
“급성 균열이잖아. 비상사태라고.”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공기가 오가는 와중에 승찬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안정기가 오기까지는 균열에 들어가실 순 없어요. 접근하는 것도 위험하고요. 이젠 아시죠?”
“어디까지 접근해도 괜찮나요?”
“일반적으로 균열 경계라는 게 그렇게까지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요. 기본적으로 10미터가량은 경계라고 보고 있어요.”
멀다고 보기도 가깝다고 보기도 어려운 거리다. 그러나 발 한 번 박차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으므로 가깝다고 해야 옳았다. 자칫 잘못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거리. 지호는 입매를 단단히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자칫 그가 균열 생존자들을 모두 죽이는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었으니.
“생존 신호 발산지가 제각각이에요. 가게 되면 흩어질 겁니다. 확실한 건 아닌데, 괴물들에게 균열 너머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더군요. 놈들은 이쪽으로 접근하지도 않고, 근접해 왔다가도 금방 떨어져 버립니다.”
“그것들이 균열 밖에 나오면 죽는다고 하는 걸 들었어요.”
“아직 괴물에 관한 연구는 진행 중이라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균열 부근이라고 방심했다가 끌려 들어가는 일도 없지는 않았으니까요.”
지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 흔들렸다. 뭔가를 친 것 같았다. 당황한 얼굴에 옆에 있던 승찬의 동료가 한마디 거들었다.
“방해되는 차량은 밀어 버리고 가는 게 규칙이라 그런 거요.”
“그래도 되나요?”
“그 한 놈 때문에 열 명 백 명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럼, 당연하지. 사이렌 이렇게 울리면서 가는데도 안 비키는 놈은 밀어도 괜찮고.”
김형철. 명찰에 박힌 이름이 그랬다. 나이도 좀 있어 보였다. 승찬이 젊은 아저씨처럼 보인다면 이쪽은 다른 호칭을 써야 하나 하는 의심의 여지가 끼어들 새도 없이 그냥 아저씨인 셈이다.
지호의 의식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아저씨로 규정했는지 알지 못한 채 그는 중얼거리듯 투덜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많이 부딪치는군.”
“급성 균열에 휘말린 사람들 차 같군요.”
승찬의 말이 지호를 동요시켰다. 확실히 그렇다. 차를 세워 두고 이동한 경우라면 더더욱.
지호는 이 근방 지리는 잘 몰랐다. 전철을 타고 이동할 수는 있어도 내려서 돌아다닐 일은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균열에 반쯤 먹힌 상태의 초등학교를 마주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건물이 반만 먹힐 수도 있구나. 하기야 재난이 인간이 만든 도시 계획을 따라 가지런히 터지는 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구조대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균열에 맞춰 비스듬하게 차를 댄 다음 옆면이 다 열린 차량에서 밧줄 고정대가 두 개씩 네 개가 밀려 나왔다.
대원들은 약속한 듯이 둘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줄을 고정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특수복과 고정 장치를 점검했다. 방화복에 가까운 복장이었는데 우주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호 발산지로 두 조씩 나누어 들어갑니다. 신호기 체크. 원 투 원 투.”
헬멧 안쪽으로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갑갑한 목소리가 빠져나왔다. 들립니다. 확인. 이상 없음. 각자의 방식으로 대답을 들은 다음에서야 구조 팀이 출발했다. 승찬은 후방 지원 팀이라 지호와 함께 뒤에 남았다. 들어가는 건 형철이었다.
구조 신호가 점멸하는 지역에 도착하자 창문에 묶인 생존자 표식이 보였다. 교실 몇 군데에 띄엄띄엄 있다. 왜 아직도 탈출을 못 했을까? 지호와 같은 의문을 가진 승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렇게 탈출하기 쉬운 위치인데도 나가지 못했다는 건 균열이 열림과 동시에 괴물이 나타났기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환경일 때에는 사망 확률이 굉장히 높고요.”
“로봇 같은 게 들어가면 안 되나요? 드론 같은 것들…….”
“투입된 상탭니다. 가까운 곳이 아니라 균열 내부로요. 안쪽에 어떤 괴물이 있는지 먼저 정찰해야 해서 이쪽 구조에 사용할 여분이 마땅치 않군요.”
“여기에 있는 새로운 괴물을 파악할 수도 있잖아요. 특히 이런 상황이고, 구조대원분의 노련한 감각으로 판단한 위험 상황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일리 있는 말이다. 승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후방에 해당 의견을 전달했다. 요청이 전달되었다는 말은 곧바로 들을 수 있었으나 언제 기기가 올지는 알 수가 없다.
그때 창문 쪽으로 일렁이는 뭔가가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보이는 건 없었다. 안으로 진입한 구조대원들이 최대한 엄폐물이 있을 위치를 찾아 몸을 숨겨 가며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때 지호의 감각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균열 안쪽을 탐지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균열 쪽으로 파장을 확장해야 하니까. 그렇기에 소심하게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으나, 그 의견에는 납득할 만한 경험이 녹아 있었다.
“제가 균열에 들어갔을 때 만난 놈이 있는 것 같은데요.”
“어디서 보인 게 있습니까?”
구조대 방향은 의무적으로 촬영 중이기에 승찬이 반색하며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호는 고개를 저었고, 머뭇거리면서도 끝끝내 말을 이었다.
“안 보여요. 투명한 놈이거든요.”
“그걸 어떻게 알아본 겁니까?”
“그,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흔들려요. 그리고 지나가면서 만나는 것들을 다 빨아들이고요. 내부가 깨끗할 거예요.”
“급성 균열에 등장하는 종류의 괴물일까요?”
“저도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요. 각성한 줄 모를 때 만난 놈이어서 숨어 다니고 피하기 바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