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감지 계열 헌터가 소리 높여 좌표를 읊었다. 지호에게는 없었으나 대다수의 헌터가 그 말을 듣자마자 손목을 들어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 보였다. 지호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생존자들이 어디에 있다는 말일까. 시각을 차단하자 다른 감각이 좀 더 예리해졌다. 낯선 파장의, 그러나 괴물이 분명한 어떤 에너지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헌터들이 모두 응시하고 있는 바로 그 방향이다. 저 앞에 사람들이 있을 터.
그런데 수가 많았다. 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가 균열에 휘말렸을 때가 생각났다. 그 뱀들과 쫓기던 사람들, 도망치던 지호와 죽음의 순간.
지호는 훈련했던 대로 화살 모양의 에너지 압축체를 공중에 띄웠다. 놈들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그걸 던질 심산이었다. 에너지가 강하게 회전하려는 그 순간 누군가 지호의 뒤통수를 빡 쳤다.
“이 미친 새끼야!”
상대가 신체 강화 계열 헌터는 아니라서 맞은 게 기분 나쁘기만 할 뿐 아프진 않았다. 그러나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당황해 버린 지호의 집중이 풀리면서 화살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웬 남자가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어 더 당황스러웠다.
“저기, 누구신데 지금 저를…….”
“에너지체를 균열에 쏘면 안 돼!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제길. 임시 각성자잖아!”
남자는 지호의 명찰을 보자마자 욕을 한바탕 퍼부었다. 욕의 대상이 지호는 아니었다.
“어떤 정신 나간 담당이 여길 데려왔어! 그것도 임시를! 방금 무슨 짓 하려고 했는지 알아?”
“저도 도우려고 했는데요. 돌 던지는 거…….”
“그럼 돌만 던져야지 에너지는 왜 던져! 균열에 방해물 투척할 때 이형 에너지는 없애는 거야. 그런 기본도 모르나?”
몰랐다. 지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앞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홍조의 이유는 달랐으나 둘 다 빨간 얼굴이긴 했다. 남자는 노란 명찰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화를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지금 다 꺼져 가는 불씨에 기름 끼얹으려고 한 거랑 똑같다고. 물건 옮겨 놓기만 해. 나머지는 숙련된 헌터들이 알아서 할 거니까.”
“아니, 근데, 저기, 누구세요?”
“빨리 돌부터 날라!”
균열 안에서 거의 다 빠져나온 생존자의 발목이 뭔가에 붙잡혔다. 눈에 깃든 절망. 그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끌려 들어갔다. 거의 다 잡았었는데!
무작정 던지기만 해 괴물을 막는 건 아니었다. 줄이나 줄이 연결된 침상 같은 것들을 안으로 던져 그걸 붙잡은 생존자를 끌어내기도 했다.
고군분투하는 각 곳의 상황이 너무 급해 남자는 다른 곳으로 달려가 버리고 지호 역시 황급히 돌을 깼다. 부족해! 던질 게 부족해! 하고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어떤 놈인지는 나중에 알아보자. 지호는 서둘러 아스팔트 바닥을 뜯어냈다. 비명과 함께 생존자 중 일부에서 피가 터졌다.
미친 듯이 잔인한 광경. 지호는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못했다. 애초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해야 맞았다. 아직 균열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지옥이다. 입구부터 지옥이었다. 저기에 다시 들어간다고? 헌터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가.
물건을 옮기기 위해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을 때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간신히 멀쩡한 몸을 끌고 덜덜 떨며 균열을 빠져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피가 아닌 피. 누군가는 자기 피로 범벅이 되어 죽어 가고 있다. 비명과 괴성, 두려움 가득한 울음소리.
지호는 들고 있던 돌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으악! 맙소사, 당신 괜찮아요?”
지호는 멀쩡했으나 그 위에 떨어진 돌덩이를 본 사람의 심정은 그렇지 못했다. 패닉에 빠져 고개를 돌린 지호 앞에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낯선가? 아니, 어디선가 본 것 같기는 했다. 입은 복장은 구조대 복장이지만 각성자와 일반인을 표시하는 색 표식은 일반인으로 분류되어 있다. 균열이 열렸는데 여기 일반인이 왜 왔지. 죽는데. 여기 있으면 죽는데.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 봐요. 저기요.”
넋 나간 지호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디서 그를 봤었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알던 사람이 아니다. 양솔 박사와 비슷한 느낌. 그러니까, 언젠가 보기만 한 사이 정도에 지나지 않을 그런 낯섦과 낯익음이 공존한다.
남자의 얼굴을 보자 떠오르는 건 공포였다. 뱀. 갈퀴 같은 손아귀. 도망치는 사람들. 붉은 눈. 추격. 그러고는.
“아, 어, 알아요. 당신 안다.”
엄마를 부탁했던 남자다.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떠오른 기억에 지호는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는데 생존자가 몇 명 있었다. 지호는 슬픔으로 병원에서 보내던 며칠간 그때를 몇 번이고 떠올리며 생존자들과 사망자들의 사진을 내내 들여다봤다.
그러니 익숙할 수밖에 없지. 그러면서도 낯선 것이 당연하다. 본 거라곤 고작 한 번이 다인 사람일 테니.
“저 아세요? 근데 지금 당신 발이 괜찮은지가 중요한 거 아녜요?”
“왜 또 균열에 있어요? 각성자도 아니면서, 왜 여기 있을 수 있지?”
지호가 제정신 아닌 상태로 횡설수설하며 말하고 있단 사실도, 그리고 상태가 조금 좋지 못하다는 것도 예민하게 알아챈 남자는 난처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엔 패닉에 빠진 임시 각성자를 맡길 만한 헌터 하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급성 균열이 터진 걸 수습하러 뛰어온 마당이니.
“일단 각성자죠? 신체 계열 맞죠? 어휴, 사고 난 건 줄 알고 놀라서 뛰어온 거라고요.”
“안 다쳤어요.”
“좋아요. 일단 그거 옮겨요. 그리고 후방으로 빠져요. 노란색, 노란색이 임시던가? 빨강이 임시인가? 아무튼, 상태 보니 노랑 맞는 것 같네요. 임시 각성자는 일반인 피해자와 큰 차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시 각성자를 볼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정말 그런 것 같고요.”
“하지만 제가 아니고 당신이 일반인이에요.”
“예. 저 일반인입니다. 구조대원이에요. 이런 업무를 담당하죠. 헌터들이 일반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고 할 수는 없어서요. 자, 저쪽 보지 말고 정신 차리고요.”
남자가 몇 번씩 박수를 쳐 가며 지호의 시선을 끌었다. 살아 있네. 이상한 일이야. 살아 있다. 엄마는 죽었는데 이 남자는 살아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게다가 멀쩡하게 일하고 있기까지 하네.
각성한 지호조차 검사니 뭐니 하며 병원을 전전하다 며칠 전에야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충격받은 것 같지도 않고, 균열의 아비규환을 자연스럽게 거닐고 있기까지 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남자는 간신히 지호의 발을 누르고 있는 돌을 치우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하곤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고작 이런 것으로도 사람은 안도한다.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데.
기분이 이상했다. 지호는 그가 지금 당장에 손을 까딱여 이 일반인 성인 남성 하나를 골로 보낼 수 있단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게 옳으니까.
남자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주변을 바삐 오가며 살아 나온 사람들을 데려갔다. 이름을 묻고 상황을 파악하고 병원으로 데려간다. 사람들을 챙기는 이들은 의료 팀 소수를 제외하곤 모두 일반인이다. 경찰이나 소방대원들도 있었는데, 그들 틈으로 남자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 그렇다. 지호가 꿈꿨던 직업이다. 눈을 뜨고 있었는데도 재차 눈을 뜨는 것 같은 기분. 지호는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혼란이 가라앉았다.
“지난번 급성 균열에서 그쪽을 봤어요.”
“예? 아, 오, 이런. 설마 그 학생이에요? 그때 그 마트?”
남자는 기겁하며 지호를 덥석 붙잡았다. 여기저기 살피는 것을 그러하도록 내버려 두며 지호는 생각했다. 균열 관련 업종이 다양하긴 했지만, 소방관이었던 아빠가 그러했듯이 지호는 사람 구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 이 사람들이 하는 바로 그런 일.
“어떻게, 아니지. 각성자가 되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날 이후로 내내 잠을 설쳤습니다. 진짜 다행이에요.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많은 말이 함축된 문장이었다. 남자는 침울해진 얼굴로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학생을 데리러 자꾸 뒤로 돌아가려고 하셔서 다른 분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돌아가는 것과 상관없이 이미 괴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지만요. 왜들 은신처를 찾지 않고 뛰어나가셨는지……. 가만히 있는 게 올바른 수칙이었지만, 그걸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요. 남자는 작게 덧붙이며 당시 상황을 짧게 이야기했다. 자꾸만 돌아가려는 지호 엄마 때문에 둘은 행렬 뒤로 처지고 괴물들이 금세 그들을 쫓아왔다고. 그런데 천운으로 근처의 좀 더 약해 보이는 할아버지를 먼저 습격했다고 했다.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 저희가 만난 게 저겁니다. 그림자 호랑이? 은신 개체를 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게 학생 어머니를……. 그러고 저도 정신없이 도망쳤습니다. 정말 운 좋게도 출동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균열 근방에 있던 헌터분들이 계셨습니다. 당시 마트에서 나온 사람 중 살아남은 몇 명은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상황에서 산 겁니다.”
한참 상황을 이야기하던 남자 허리춤에서 칙, 하고 무전 소리가 났다. 어느 구역 응급 환자 발생. 균열을 빠져나온 뒤에 건물이 무너져 일반 응급 환자 다수. 대원들은 바로 이동 바랍니다 하는 알림들이다. 남자는 급히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좀 줘 볼래요? 저쪽 보지 말고요. 천천히 돌아요.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이 수습할 겁니다. 그게 일이니까요.”
남자는 지호가 균열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들에 패닉을 겪는다는 걸 알고 지호를 천천히 돌아서게 했다. 급하게 달려오는 사람들이나 이송되는 사람들 정도만 보이는 현장으로. 숨까지 참고 있던 지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었다.
“좋아요. 잘했어요. 급하게 뭔가 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은 저런 곳에서 살아 돌아온 거잖아요. 산 것만으로 모두의 기쁨이에요. 제가 본 각성자들은 이상하게도 살아남은 것을 빚으로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돼요. 진짜로요.”
보현과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호는 의심을 약간 거두고 제 핸드폰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자기 번호를 입력한 뒤 돌려주며 웃었다.
“급하게 가 봐야 해서요. 혹시 원망할 곳 필요하면 연락해요. 할 말 있을 때도 괜찮고, 욕하고 싶을 때도 괜찮고.”
“안 그래요.”
“그러고 싶을 때가 있을 수도 있어요. 가족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남자는 그럼, 하고 급히 달려가 버렸다. 균열 현장에서 등 돌린 채 뒤를 보고 있었기에 지호는 알았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출입 제한 표시가 있고, 그 너머에서 경찰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균열에 가족이 갇혔다고 울부짖는 사람들. 내 가족이 무사하냐고, 내 친구가 무사하냐고, 내 사랑을 구해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기분이 이상했다.
균열 발생 직후 세 시간가량, 균열 경계에서 멀지 않은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는 것을 돕느라 바깥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다. 각성자 아닌 일반인은 경계 틈새를 오갈 수도 있어, 구조대원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경계에 뛰어 들어가 다치거나 지친 사람들을 구해 왔다. 남자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번호를 저장한 지호는 그가 남자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망하기 위해 연락하라고.
그런 말을 익히 들어 온 사람 같은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