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9화 (20/260)

19화

3. 날파리들

협회 소속 센터들 간의 지호 영입 다툼은 물밑에서만 치열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잃은 뒤에 되살아나 헌터가 된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극단적인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부천 센터는 지호에게 너무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결과적으로 다른 곳에는 마음 붙이지 못하고 부천 센터로 돌아왔다. 실험실의 그 사고가 눈앞에 아른거린 탓이었다.

그러나 지호는 실험에 참여할 자격이 없었다. 정식 헌터 자격도 얻어야 했고, 균열에서 활동한 기록도 필요하며 훈련을 통해서 강해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자리였으니 당연하다. 대신 지호는 그에게 배정된 담당 헌터의 모든 교육을 흡수하며 미친 듯한 속도로 강해졌다.

부천 센터 모든 훈련 기록 경신.

지호는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 쓰이는 모든 기록을 보며 조금 부끄러워했다. 한 게 뭐가 있다고요, 하는 입버릇을 보던 이형 에너지 및 감지 계열 교육 담당 차나연 헌터는 혀를 찼다.

“박사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이걸 봐! 숭고한 희생의 증거를 봐!”

“흉내 잘 내시는데요?”

두 사람은 한참 웃었다. 꽤 비슷하긴 했다.

양 박사는 고작 이틀 만에 지호의 훈련실 출입을 금지당했다. 뭐만 하면 감탄하고 감동하느라 자꾸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까닭이었다. 왜 저래요? 하는 물음에 나연은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대균열 생존자 출신이시거든요? 초창기부터 균열 연구를 맡아 오셨는데, 그 덕분에 어떤 각성자들이 각성하는 과정에서 큰 희생을 치를수록 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걸 알아낸 분이기도 해요. 물론 그때 각성한 1차 각성자 대부분은 자기 힘이 어떠한지 알기도 전에 많이 사망하긴 했어요.”

훈련 과정에서 지호를 담당하게 된 나연은 강조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밥을 먹으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훈련할 거라고. 그 과정이 휴식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험난하단 뜻은 아니었다. 일상을 보내며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힘을 쓸 줄 알아야 그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는 의미였지.

그래서 지호는 나연이 가져온 디저트를 먹으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와, 이거 맛있어요. 안에 크림 같은 게 들어 있는 것 같은데 과일 맛도 나고 겉엔 바삭바삭하고.”

“무슨 외국 과자래요. 집중.”

아차. 과자 먹는 데 신경 쓰느라 과녁판을 놓쳤다. 이형 에너지가 화살 모양으로 형상화되어 과녁을 향해 쐐애액 날아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파워는 좋은데 명중률이 영 꽝이네요.”

지호는 멋쩍은 얼굴로 웃으며 화살을 하나 더 날렸다. 이번엔 과녁판을 스치긴 했다. 빗나간 건 똑같았지만.

“뭐, 처음부터 잘하면 훈련의 의미가 없어요.”

“아까 왜, 대균열 이야기하셨잖아요. 좀 더 말해 주시면 안 돼요?”

“아, 정보 통제 풀린 지 얼마 안 돼서 아는 거 별로 없었죠. 균열과 함께 각성자가 나타났잖아요. 근데 그때는 각성자니 뭐니 능력이니 뭐니 아무것도 모르니까 당장 살아남기들 급급했죠, 뭐. 그나마 대균열이 기록으로라도 여기저기 회자될 수 있었던 건, 각성자들이 각성하는 시기가 균열이 안정된 이후여서예요. 그 균열에서 발생하는 각성자들은 그러니까, 마치 그 생태계의 일부처럼 발생했거든요. 들으면서 계속하셔야죠. 뭐 하세요?”

“아차.”

지호가 죽은 뒤 며칠 후에 깨어났던 것도 같은 원리였다. 균열이 안정되고 난 후에 각성하여 깨어날 수 있다고. 그는 그 사실을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이번 과녁 역시 화살을 피해 살짝 흔들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며 나연은 한숨 쉬었다.

“이거 멈춰 놓고 훈련하는 것부터 다시 할까요?”

“아니, 할 수 있어요! 그래서 1세대 각성자들 수가 적은 이유는 그때 많이 희생되어서인가요?”

“음, 아는지 모르겠는데 영웅이라고 회자되는 무수한 헌터들에 거의 1세대 각성자가 없거든요. 대부분 2세대 각성자죠. 대균열 때 많이 죽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뭐. 각성에 관한 정보를 얻어 가며 모임을 만들고 단체가 되고 국가 지원도 받고 뭐 여러 단계를 거치는 동안 많이들 죽었어요. 특히 힘 가지게 된 사람들은 가족이 저기 휘말렸다고, 살려 달라고 붙잡는 사람들 떨쳐 내기를 잘 못해서. 방벽 또 얇아졌어요.”

“아이고.”

“강도 유지하고요. 좋아요. 걸으면서 해 볼까요? 천천히 걷죠. 산책하듯이.”

나연은 감지계 능력자였고, 지호와 같은 각성자들이 힘을 사용하는 방향이나 가하는 힘의 크기 자체까지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예리하게 다듬어진 계열이라고 했다. 감지계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며 나연이 덧붙였다. 균열에 들어가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으로는 썩 쓸모가 없죠. 어떤 괴물이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숨어서 헌터를 공격하려 한다는 정도는 알 수 있는데요.

물론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 나연이 헌터 업무를 볼 때는 주로 구조 상대가 없는, 대피가 끝난 균열에 괴물을 사냥하러 들어가는 팀에 합류할 때 정도라고 했다.

그때 드라마가 나오고 있던 TV에 갑자기 다급한 음성의 앵커가 튀어나왔다.

“속보입니다. 급성 균열 발생. 이번에는 경인 교대가 통째로 휘말린 상황입니다. 학생들의 신변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며, 해당 구역에 진입을 위해 헌터들이 소집되는 중입니다. 확장 조짐을 보이는 성장형 균열이므로 주변 지역 주민들은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헉, 또야?”

과녁판이 드디어 화살에 꿰뚫려 벽에 처박혔다. 지호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연을 돌아보았다.

“차나연 헌터님도 가셔야 하지 않아요?”

“아직 못 들어가요. 모르나? 균열 안정기까지…….”

“아뇨, 알긴 해요. 근데 확장 조짐을 보인다니 그건 뭐예요?”

“최근에 발견되기 시작한 악성 균열이죠. 발생하기만 하는 거로도 재앙인데,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가요. 이건 반드시 전투 계열 헌터가 진입해서 괴물 사냥을 일정 수 이상 해야 없어지더라고요.”

“괴물이 균열 밖으로 나오는 그런 건가요?”

“음? 아, 괴물은 균열 밖에서는 거의 못 살아 있어요. 물 밖으로 나온 고기 같다고 해야 하나. 설명 나중에 할게요. 같이 갈래요?”

“예?”

고작 며칠 훈련받은 것이 전부인 병아리 지호는 뻣뻣하게 굳었다. 나연은 주변을 떠다니게 하던 과녁판들을 제자리에 정리한 뒤 연구실로 달려갔다. 상황이 상황이라 다들 전달받긴 했을 것이다. 뉴스가 뜨기 전에 더 빨리 받은 사람들도 있었는지 벌써 전투복이 쭉 놓여 있었다.

“사이즈 맞는 거 착용해요. 혹시 모를 일이니까.”

“저도 들어가나요?”

“그럴 리가요. 균열에서 탈출하는 일반인들 구조하고 검사하는 업무 정도에만 동원될 거예요. 괜찮다면요. 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을 데려가진 않아요. 얼마든 말해도 돼요. 남을래요?”

회색 하늘과 찢어진 땅, 무너져 가는 건물과 죽은 사람들의 시신 같은 것들이 아른거려 지호는 눈을 꾹 감았다. 각성 후 살기 위해 숨어 있을 때보다 보현에게 구출되어 균열을 탈출하면서 참상을 노골적으로 직면했었다. 그러한 지옥에서 돌아와, 이제 조금 삶을 되찾아 가고 있던 참이었고.

“사태 수습 때까지 당분간은 센터에 안 와도 돼요. 대기하고 있으면 나중에 다시 연락…….”

“갈래요. 저도 가겠어요.”

“의무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할 필요 없어요. 지호 씨는 아직 정식 헌터도 아니고, 심지어 정식 각성자도 아니잖아요.”

“제가 균열에 싸우러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사람들 구조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괴물이 균열 밖으로 튀어나오고 그러지만 않는다면…….”

나연은 고무와 재질이 비슷해 보이는, 그러나 늘어날 때 이형 에너지 파장이 짙게 퍼져 나오는 장갑을 양손에 끼운 다음 지호에게도 그걸 한 짝 던져 주었다.

“역시 배울 것 투성이라니까. 괴물은 균열 밖에선 못 살아 있어요. 물 밖으로 나온 고기처럼 좀 퍼덕이긴 하지만 금방 죽는다고요. 그러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안전거리 지키고, 다른 헌터들 통제 잘 따르고요.”

나연은 특수 전투복에 샛노란 명찰을 하나 달아 지호에게 건넸다. 대충 사이즈가 이 정도 되어 보이는데, 하고 준 옷이었는데 맞춘 것처럼 잘 맞았다. 지호의 눈이 동그래지자 나연은 장비를 챙기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웃었다.

“감지 계열의 특권이죠. 수치를 재지 않고도 어림짐작하는 게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말이에요.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상황 보고받고 균열 안정기까지는 도망쳐 나오는 생존자들 구조하고 치료 필요한 사람들 치료하고 검사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거 없으니까. 갈까요?”

센터 한쪽에 이동 능력자가 오갈 수 있도록 장치된 방이 있다. 지호 역시 센터에 들어올 때는 이쪽 입구를 이용했다. 평소엔 한산하던 곳이 헌터들로 북적였다. 몇몇 이동 능력자들이 힘겨워 보이는 얼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장비 점검을 마친 나연은 지호 가슴팍의 노란 명찰을 가리키며 강조했다.

“임시 각성자 표시니까 절대 현장 뛰어들어 가면 안 돼요. 알았죠?”

명심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앞 팀이 이동했다. 지호와 나연에 다른 세 사람까지 총 다섯 사람이 이동 포트로 올라섰다. 이동 능력자가 안정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인원은 평균적으로 셋 내지는 다섯 정도다. 특출난 능력자의 경우 좀 다르겠지만, 그 정도 능력자들은 좀 더 먼 거리에 필요한 물품을 나르기 위해 동원된다고 했다.

지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 나연은 다시 권했다. 여기 남아도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장비야 반납하면 그만이고.

그러나 지호는 씩씩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갈 수 있어요. 저도 도움이 될래요.”

능력자 이동 시 동반되는 약간의 빛, 소음, 이형 에너지의 흔들림과 함께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박 팀장은 신체가 안정되자마자 곧바로 뛰어나왔다.

“양솔 박사님!”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다섯 사람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지호는 나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우리 이동시켜 주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어, 상황을 보니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다음 능력자가 늦지 않게 등장해 다섯 역시 현장으로 이동했다. 균열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건 끔찍한 감각이었다. 입구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수습해 상처를 치료하는 구급 팀과 입구 안쪽으로 물건을 던져 넣는 헌터들이 제일 먼저 보였다.

“저거! 저거 할 수 있겠어요? 물건을 움직이는 힘을, 제길. 설명할 시간 없어요. 따라 해요!”

지호를 제외한 네 사람의 헌터가 능숙하게 흩어졌다. 구조 팀으로 보이는 헌터는 곧바로 다리가 찢어진 사람에게 치료술을 펼치기 시작했고, 나머지 셋은 각자의 방식으로 균열에 물건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물건을, 왜? 사람이 다칠까 봐 놀랐던 지호는 그 투척이 꽤 정교한 각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체 계열 능력자는 주변에서 안으로 던질 물건을 확보합니다. 그럼 다른 능력자가 사용할 거예요. 지호 씨는 염동력 계열은 없었죠? 그럼 가서 건물 깨요!”

“예?”

“일단 해요! 경계에 그림자 호랑이 출몰! 습격에 대비합니다!”

나연의 외침에 몇몇이 들고 있던 온갖 무거운 물건을 내려놓고 뛰어나왔다. 그림자 호랑이? 지호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어떤 그림자가 탈출하는 생존자 방향으로 빠르게 접근해 왔다.

그림자뿐이다. 그러나 맹수의 형상. 익숙지 않으나 이름을 듣고 눈치챘다. 집중하자 느껴지는 모양새가 있었다. 어느 염동력 계열 헌터가 던진 철근 섞인 콘크리트가 생존자의 머리 위를 지나 ‘무언가에’ 적중했다.

당시 건물에서 봤던 투명한 놈과 비슷한 걸까. 어쩌면 시야에 잡히지 않는 괴물이 그것 외에도 많을 수 있었다. 멍청하게 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음! 하고 외치는 소리에 신체 계열 능력자가 옆 건물을 깨부쉈다.

균열에 들어가진 않아도 가시거리 정도에선 이런 활약을 펼칠 수 있구나. 지호는 헌터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생존자 수를 늘리기 위해 애쓰는 장면을 보았다. 조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헌터들이 상당수 이동해 온 다음에는 필요한 물품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동 능력자들이 죽여 달라는 얼굴로 거점과 현장을 오가고 있었다. 지호는 바닥을 깨고 건물을 부수고 부산물을 들어 던지기 좋은 크기로 쪼개는 일련의 동작이 너무 쉽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균열에서도 몇 차례 느꼈지만, 신체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는 건 이런 비정상적인 활동을 할 때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생존자 무리 접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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