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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8화 (19/260)

18화

그는 정확한 설명 대신 그들이 갈 곳이 있다며 실험실이란 곳으로 지호를 안내했다. 두꺼운 유리 벽 너머에서 헌터들의 다양한 파장이 느껴졌다. 각성자 연합에 있던 사람들보다 확연히 강한 파장들이었다.

“실험 땐 꼭 치료 능력 보유 각성자나 비상시 대응 가능한 이동 능력자와 동행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실험하다 많이들 다쳤거든요. 아무래도 우리 규칙과는 다른 물질이다 보니 위험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위험한데 꼭 해야 하나요?”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약한 헌터들을 좀 더 강하게 만들 방도를 찾을 수 있거든요. 헌터들은 그런 식으로 강해져 왔고요. 새 괴물에게서 발견된 마정석 받아 들이는 실험은 사실 새롭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벽 너머에 머리를 등받이에 기댄 채 다소곳이 앉아 있는 헌터가 보였다. 그의 긴장이 파장의 떨림으로 고스란히 느껴져 지호는 어쩐지 함께 불편해졌다.

“언제나 해 오던 실험이지만, 언제나 위험할 수 있는 그런 실험인 거네요. 헌터들은 원래 이런 일을 해요?”

“어어, 오해 마세요. 무슨 위험한 생체 실험 자행하는 악당처럼 보지 마시라고요.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자원하는 겁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른 사항은 변동 없도록 철저하게 통제해요. 자원자도 몸 상태가 좋아야만 실험할 수 있게 절차가 갖추어져 있고요.”

박 팀장이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지호는 보현이 왜 헌터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않는 건지 조금쯤은 알 것 같았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공통점 있는 사람들이면서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들이 어쩐지 보기 불편했다.

“꼭 해야 하는 건 아닌 거죠, 이 실험?”

“그럼요. 연구실 소속 헌터들에게 우선권이 있어서 보통은 이쪽 헌터들만 담당합니다. 일반 각성자들은 접하기도 어려운 시설이라고요. 임 헌터 봐서 특별히 보여 드리는 건데 이렇게 나쁜 사람 보듯 하시면 제가 좀 서운합니다.”

유리 벽 안쪽에선 다양한 변인을 확인한 뒤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가는 헌터들이 있었다. 능숙하게 몇 가지 주사를 맞고 마정석을 핀셋으로 집어 앉은 헌터의 이마에 댄다. 거기서 유일하게 각성자 아닌 사람이 하나 있었고, 흰 가운에 다양한 것들을 지시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연구원. 그것도 일반인 연구원 같았다.

“저 사람은 뭐죠?”

“헌터 강화 실험 담당 박사인데, 대균열의 날부터 꾸준히 균열을 접해 온 일반인입니다. 척 봐도 좀 약해 보이지 않나요? 실제로 약한 사람이라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한 달은 병원 신세를 지어야 하니 건드릴 때 주의하셔야 합니다. 특히 이지호 각성자님 같은 경우엔 정말 솜사탕 만지듯이 다가가셔야 돼요.”

지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 각성자들 틈바구니의 일반인은 정말이지 연약해 보였다.

마정석 접촉 실험이 시작된 후의 각성자 파장이 맹수처럼 날뛰었고, 그 부근에 서 있는 일반인이 더더욱 신경 쓰였다. 결국, 실험 대상자보다 그 박사 쪽에 자꾸 시선을 두게 된 지호는 박 팀장의 팔을 툭툭 쳤다.

“저 사람 진짜 괜찮아요? 흐름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저도 있고, 다른 이동 능력자도 대기 중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차하면 바로 들어가서…….”

박 팀장은 말을 이을 새도 없이 곧바로 실험실 내부로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앉아 있던 헌터의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상 수치! 대피하십시오! 누군가 외치는 알림 너머로 지호는 보았다. 내부에서부터 폭발해 나오는 에너지가 그 각성자를 삼키고 있었다.

외부 실험 관찰자 중 하나가 비명처럼 외치며 벽면의 뭔가를 두드려 깼다.

“격벽 내려요!”

실험실 외벽 유리가 수류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폭발적으로 갈라졌다. 다행히 강화 유리라 곧바로 무너지지 않았다. 유리는 깨졌으나 충격파가 외부로 튕겨 나가지는 않았다. 타이밍 좋게 천장에서 백색 격벽이 내려와 실험실을 고립시켰고, 박 팀장이 내부에서 몇 사람을 붙잡은 채로 지호 옆으로 이동해 오자마자 치료 팀이 달려왔다.

그 와중에도 내부에선 계속해서 낯선 에너지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저런 얇아 보이는 벽이 견딜 힘일까. 지호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안심하려고 하는 건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특수 반사 처리된 벽이니 괜찮을 겁니다. 이 센터뿐 아니라 각성자 사용 시설 대부분에 처리되어 있는 반사 설비죠. 어지간한 힘이 아니면 뚫을 수 없습니다. 저런 폭주 상태의 에너지로는 특히 그렇죠. 응축된 힘이 아니니까 더더욱요.”

“실험 대상자는요?”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호는 자기 말을 받아 준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굳은 얼굴을 본 남자는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긴 속눈썹이 어쩐지 처연한 느낌을 자아냈다. 걷어 올린 실험복 소매 한쪽이 풀려 내려가, 그는 한쪽을 다시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죠.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고요. 그는 좋은 헌터였습니다. 좀 더 강해져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힘을 원했었죠.”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실험을 왜 계속하는 거죠?”

“그러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테니까요. 제 일은 헌터님들을 좀 더 강하게 만드는 거라서요. 그게 각성자의 희생을 딛고 살아남은 자의 의무거든요.”

지호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어디에서 봤는지 가물가물한 걸 보면 알던 사이는 아닐 터.

파장이 가라앉고 치유 능력자와 이동 능력자가 격벽이 제거되기 무섭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은 채, 남자가 웃었다.

“구면이죠, 이지호 각성자.”

“누구세요?”

그의 얼굴이 한순간 죄책감으로 물들었다. 고개를 돌린 남자의 목덜미 한쪽으로 시퍼런 핏줄이 돋아 있었다.

“다쳤어요?”

“예?”

“목이, 여기요! 이분 좀 봐 주세요!”

솜사탕보다 연약할 거라는 말이 생각나 지호는 남자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고 다른 사람부터 불렀다. 그는 지호의 시선이 제 목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이건 그게…….”

“왜 그러세요?”

“여기 이분도 좀 몸에 이상이 간 것 같아요. 목 부분이 파란데.”

조금 전 실험에 휘말려 죽은 희생자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 역시 시퍼런 색이었다. 지호의 말을 들은 각성자는 심각한 얼굴로 박사를 돌아보더니 지호에게 꾸벅 감사 인사를 하곤 치료 팀을 호출했다. 박사는 당황하여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으나 다들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들의 손에 잡혀 끌려가면서 박사는 지호에게 소리쳤다.

“다시 뵙게 될 겁니다. 저는 양솔이라고 하고요. 각성자님께 관심이 많습니다!”

“박사. 저분 미성년잔데요.”

사망자를 수습하고 설비 점검을 마친 박 팀장이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양 박사는 빨갛다 못해 이제는 창백한 경지에 이른 얼굴로 소리쳤다.

“그런 관심 아닙니다, 박 팀장!”

그 말이 끝이었다. 박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좋은 상황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며 희생자를 기린 박 팀장은 현장 담당자에게 상황 마무리를 넘기곤 지호를 안내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본디 훈련 시설부터 보여 드리려 했던 건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강화 센터는 언젠가 한 번은 확인하셔야 할 곳이기는 했어요. 이지호 각성자님이야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각성자 능력이란 건 한계가 있는 법이거든요. 다들 좀 더 큰 힘을 원하게 되죠. 균열에서 구조하지 못한 사람을 떠올리게 될 때면 더더욱.”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위험한 생체 실험에 자원하실 줄은 몰랐어요.”

“사람이 직접 흡수할 수 없는 마정석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이제 다른 사람이 현장에서 시도하지 않도록 해당 정보를 업데이트해야죠. 균열에서 헌터들이 마주하는 상황이란 게 늘 이렇게 돌발적이라, 어떻게 될지 알기 어렵거든요.”

오늘 돌아가신 각성자님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에 살게 되는 거죠. 박 팀장의 중얼거림 뒤로 지호가 도착한 곳은 훈련장이었다.

미약한 차단 효과가 있는지, 벽 너머의 파장들이 한 겹 베일 너머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모인 상당수의 헌터님들은 각성 실험에 한 번 이상 자원한 경험이 있습니다. 여전히 강제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훈련에서 얻지 못하는 성취감이란 걸 더 큰 힘을 얻으면서 이뤄 낼 수 있다는 데 상당한 이점이 있거든요. 한 사람이라도 성공하면 그 성공으로 나머지 헌터들을 견인할 수 있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강해져서 얻는 게 뭐예요?”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이죠.”

박 팀장은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얼굴을 했다가 아차, 하고 얼른 표정을 갈무리했다. 지호는 각성자 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고, 아직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임시 각성자이기까지 했으니.

“평범하게 살 때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고, 기능공 연합에서는 특히 알 수 없는 부분일 테지만. 많은 헌터는 자기 힘이 부족하다는 걸 체감하곤 합니다. 이길 수 없는 괴물을 만났을 때 더욱 그렇죠. 그것들에 죽지 않는 생존 능력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걸 잡아내므로 구할 수 있는 생존자의 가치 또한 무궁무진하잖습니까.”

“그들을 구하는 데 그렇게 큰 의미가 있어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죽기까지 했던 사람들이잖습니까. 그들이나, 우리나.”

정기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는지 능력자들이 훈련 번호를 읊은 뒤 동행의 관찰하에 같은 훈련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해 균열의 모든 괴물을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강해 보였다.

하지만 모두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이게 아니다. 좀 더 강한 뭔가가 필요해, 하는 얼굴들.

“꽤 많은 헌터가 이번 급성 균열에 파견됐습니다. 개중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꽤 있어요. 동료를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특히 자책하고, 생존자를 구하지 못한 사람은 그보다 더 괴로워하죠. 그들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헌터일수록 더합니다.”

지호는 문득 보현의 말을 떠올렸다. 각성자 연합은 다 호구들 모임이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남을 구하기 위해 제 목숨 던지는 걸 한 번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보현이 왜 헌터라는 직업을 싫어하는지 이제는 꽤 명확히 알 것 같아, 지호는 파장이 균일하게 흘러나오는 훈련장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바보 같고 웃기게도, 지호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강해지고 싶다는 소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본인 역시도 그렇게 했을 것만 같았으니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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