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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4화 (15/260)

14화

지호의 눈이 자꾸 주변을 훑는 동안 보현은 뿌듯하게 그 모습을 관찰했다. 열아홉이라 이제 곧 스물. 사실 법적으로는 성인이 되는 나이라지만, 요새 이 나라에서 누가 스무 살을 성인 취급하나. 아직도 꼬꼬마고, 일반적으로는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다. 여전히 학생이고, 법적 청소년이기도 하고, 한참 어리고 어린 나이.

집안 환경도 좋지 않은데 힘들게 살아온 아이다. 그나마 힘겨운 시절을 서로 의존하고 살아온 가족을 잃었으니, 후폭풍은 당연히 올 터. 그때 곁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조금쯤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건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봉사다.

“밥 먹고 산책할래요? 운동하는 것도 괜찮고, 그냥 걷는 것도 좋고요.”

“어, 그래도 되나요? 발목 조심하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본인 능력에 치유 계열 있잖아요. 자가 치유 정도는 약한 능력으로도 가능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그리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뭐 그런 것도 아닌데, 뭐.”

뭔가 무시무시한 예시가 지나갔지만, 지호는 너무 당황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지도 못했다. 그게 보현 방식의 농담인 건 알지만 스케일이 감당 안 됐다.

보현의 집은 11층이었다. 실내로 들어서자 어쩐지 바짝 긴장됐다. 병원과 달리 지호가 갇혀 있던 균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 공간. 물론 주상 복합 건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위층엔 이런 아파트가 있었다. 보현이 대뜸 말했다.

“가끔 창문으로 드나들 때도 있어서 이 창문은 항상 열어 둬요. 여기 특수 처리된 건물이라 안 그러면 들어올 수가 없어서요.”

“헉, 11층인데요?”

“각성자들 중에 날 수 있는 능력은 흔한 편이거든요. 저도 할 줄 알고.”

보현이 웃으며 아래를 가리켰다. 발과 지면이 떨어져 있었다. 지호는 그 에너지 흐름의 기이함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떤 원리인지 궁금했다.

“언니 몸 자체를 염동력으로 이동시키는 건가요?”

“오, 비슷해요. 보면 알 것 같아요? 미쳤네. 천재들은 이래서 안 돼.”

지호는 멈칫했다. 실례인가. 남의 기술을 너무 대놓고 알겠다고 말해 버리는 꼴인가. 각성자들 사이에서의 예의가 일반인의 예의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고, 지호는 현업 종사자의 기술을 보고는 이거 알겠네 하고 아는 체를 한 모양새다. 그의 얼굴이 또 붉어지자 보현은 웃으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에이, 알 수도 있지. 어려운 거 아니라니까요. 일단 들어가죠?”

보현이 입구로 걸어오자 시스템이 그를 인식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완전 최첨단이네. 지호는 보현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며 조금 주눅 들었다. 그가 살던 집은 다 녹슬어 문 열 때마다 끼익 소리가 크게 나는 낡은 집이었다. 이런 집엘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실례합니다…….”

거실이 지호네 집만 했다. 장식이 많진 않지만 과하지 않게 걸린 그림과 장식품들이 보현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벽면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건 센터에서 본 것과 비슷한 기계들이었다. TV가 아니고 마석을 쓰는 바로 그 기계.

“이게 뭐예요?”

“아, 그냥 뭐. 가구죠 가구. 헌터들이면 이런 거 한두 대쯤 갖고 있다고요. 저는 이거 하나밖에 없어서 적은 편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뭐 하는 물건인가요, 하는 질문은 입 속에서 나가지 못했다. 보현이 지호 방이라고 안내해 준 곳을 본 탓이었다.

병원에서 쓰던 1인실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조금 더 사람 사는 느낌 나는 방이었다. 침대에 책 몇 권 꽂힌 책장, 그리고 옷장과 거울.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 줘요. 내가 심즈를 되게 좋아했었거든. 그, 한 이십 년쯤 전 게임이라 모를 거긴 한데……. 아무튼 집 꾸미고 그런 걸 좋아했었어요. 그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말해 주면 좋겠어. 그게 나한테도 좋아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알았죠?”

분명한 감동과 감사, 미안함과 부담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러나 지호는 그 감정들을 한 발자국 옆에서 관찰했다. 제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들.

균열에서 공포와 마주할 때도 이와 비슷했다. 그때는 그래야 했기에 각성자가 된 몸이 무의식중에 쳐 놓은 정신 방벽.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감동을 막아서는 장벽이 되어 있다.

“할 말이 있어요.”

지호는 보현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문제는 의사와 상담했을 때도 이야기했던 터라 전달되었겠지만, 지금 느낀 감동이 정말 진하게 다가왔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성한 뒤로 감동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별로예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 봤는데. 바꿀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분명 기쁘다고 생각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뭔가가 없어요. 이런 순간들에 감동하고 기뻐하던 제가 없다고 해야 하나. 말이 좀 이상한데…….”

보현은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넌지시 물었다.

“다시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싶군요?”

“그게 당연하니까요. 네.”

“좋아요. 풀어 주죠. 힘들면 울어도 돼요. 그게 정상이니까.”

보현의 손이 머리 부근을 어루만지듯 흔들렸다. 손이 정말 닿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보현이 말한 것처럼.

잠깐 흐르고 마는 눈물이 아니었다. 고장 난 수도처럼 콸콸 흘러나오는 눈물은, 독 잔뜩 오른 양파나 파 때문에나 흘려 봤을 그런 모양새로 멈추지도 않고 시야를 가렸다. 지호는 당황해 계속 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어, 이게, 이게 왜 이러지.”

“계속 그러고 싶었을 테니까요.”

눈물 다음에 오는 건 두려움과 공포, 서러움과 비탄, 괴로움과 절망, 무력감과 탈력이었다. 지호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몰라 허덕였다. 바닥을 설설 기는 그를 동정하는 시선으로 내려다본 보현은 그대로 몸을 살짝 돌렸다.

“혼자 있을래요?”

“아뇨. 싫어요. 혼자 있기 싫어요. 가지 마세요.”

지호의 입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열렸다. 지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머리를 저었다. 그 와중에도 앞을 제대로 보려고 애쓰는 모양새가 웃겼지만, 저만 몰랐다.

“다시는 그렇게 혼자 버려지고 싶지 않아요. 사실은, 사실은 저도 같이 도망가고 싶었어요. 어차피 죽을 건데 마지막에라도 엄마랑 같이. 근데 저는 죽고, 근데 저만 죽었다 살아나고, 왜 엄마는, 왜, 이거 왜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죠? 그렇게 열심히 피난 훈련 받고 살아남기 위해 준비하고 애썼는데, 어떻게 그 한순간이 사람의 목숨을 쉽게 앗아가요? 왜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요? 왜 그때 있었어야 할 힘이 지금에서야 생겼어요? 난 그때 정말,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요. 엄마 옆에 있을 수도 없었어요. 근데, 근데 이제 와서…….”

마지막은 제대로 말이 되지 못했다. 눈물에 어그러지고 슬픔에 짓이겨진다. 지호는 엎드려 짐승처럼 울었다.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한참 울었지만, 이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다.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정말로 사고 후유증처럼 슬픔이 늦게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슬프지만, 그걸 이겨 내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하지만 아니었다. 당연히 그의 것이어야 할 슬픔을 잠시 가둬 놓았던 것뿐이다. 무너진 댐을 이제는 다시 막을 수 없어 지호는 펑펑 울었다. 사람 소리처럼 들리지도 않는 흐느낌에 보현은 곁에 쪼그리고 앉아 등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말 없는 위로였으나 지호는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내 울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새벽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요?”

부끄러움으로 빨개진 건지, 너무 울며 문질러 빨개진 건지 모를 얼굴이 차라리 익숙해질 지경이 될 즈음이었다. 보현은 다 식은 저녁을 다시 데우며 물을 한 컵 가득 따라 주었다.

“그게 정상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지.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받아야 할 슬픔을 한 방에 처리해 버린 거라고요.”

“저는 제가 충분히 슬퍼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지호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은 보현이 코웃음 쳤다.

“그때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사달이 벌어진 거예요. 당연한 일이니 너무 창피해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때는 그럴 겨를도 없었고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제 아니잖아요. 등 토닥여 줄 사람도 하나 있고.”

고맙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맞겠지만, 이미 몇 번이고 고맙고 미안하고를 반복하며 보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던 터라 다시 이야기하기가 민망했다. 타이밍 좋게 음식이 다 데워진 터라 둘은 묵묵히 늦은 식사를 했다. 저녁도 아니고 야식을 먹는다고 해야 할 시간이었다.

“사실 각성자가 됐으니 오래 안 자도 괜찮긴 할 거거든요? 하지만 각성자일수록, 특히 신체 강화 계열일수록 강하게 가져야 하는 게 일상적 항상성이에요. 보통 사람처럼 잠을 자고 제때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걸 일상으로 삼아야 몸이 일찌감치 축나지 않지요. 그러니 괜찮아도 먹고, 괜찮아도 자고, 괜찮아도 쉬어야 해요. 그러니까, 이거 먹고 눈 좀 붙이란 뜻이에요. 병원에서도 거의 안 잤죠? 그러라고 읽을거리를 준 건 아니었어요.”

“피곤하지도 않고…….”

“휴식은 의무예요. 피곤한 줄 모른다고 달리다 그대로 쓰러져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우리가 만든 규칙은 다 그런 경험의 산물이에요. 씻고 잘 준비해요. 지호 씨 방에서요.”

지호는 자기만의 방을 가진 적이 없다. 항상 가난했던 집. 식구들은 다 같이 잤고, 생활권을 공유하는 것이 익숙했던 터라 다른 무엇보다 혼자 공간을 차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제일 낯설었다.

식사를 마치고 먹은 쓰레기를 대충 쌓아 두었다. 치워 주는 분이 매일 오니까 괜찮아요, 하는 보현의 능숙한 태도가 낯설었다. 분리수거도 하고 남은 음식물도 치워야 할 것 같아 불안해하는 지호의 흔들리는 시선을 놓치지 않은 보현은 다른 방도 구경시켜 주겠다며 손짓했다.

“옷이나 신발이나, 뭐 그런 것들은 다 이쪽 방에 있어요. 편하게 입어도 돼요. 혹시 단추가 떨어지거나 어디 걸리거나 한 거 있으면 이쪽 상자에 담아요. 일하는 분이 수선 맡겨 주실 거예요. 당장은 제 걸 쓰는데, 지호 씨 공간도 마련해 줄게요. 어차피 균열도 닫혔고, 옷은 많이들 선호하는 기부 품목이거든요.”

“언니는 부자네요. 이런 거 드라마에서나 봤는데. 그래서 저한테도 자선을 베풀어 주는 건가요?”

“제가요?”

보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옷방을 한 번 돌아본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 넉넉하게 살긴 하죠. 마정석이나 괴물 부산물이 돈이 되니까요. 각성자들이 괜히 헌터직을 택하는 게 아니긴 하죠. 아까 낮에 좀 쌀쌀맞게 얘기하긴 했는데, 균열의 공포와 전투의 위험만 극복할 수 있다면 헌터만큼 돈 쉽게 벌 수 있는 일도 없죠. 돈 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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