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2. 각성자들
핸드폰이 울렸다. 또 모르는 번호다. 스팸 번호 등록하는 것도 지쳐 아예 핸드폰을 꺼 버렸다. 지겹다는 말조차 지겨워질 정도였다.
연고자 없는 미성년자인 각성자. 하필 구조 소식이 뉴스를 타면서 지호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연락을 해 오고 있었다. 아저씨 기억나니? 혹은 내가 너희 부모님 친구 누구인데, 삼촌이 어릴 때 뭐 사 줬었는데 등등.
그토록 어려운 삶을 이어 가던 때에는 오지 않았던 연락들이다.
아빠가 살아 계실 때조차 지호네는 가난했다. 돈 빌려준 친구가 연락을 끊어 어쩔 수 없이 가난한 동네에 살았고, 대균열의 날 이후에는 새벽같이 나가 일하는 엄마 얼굴 보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그나마 함께하던 휴일 장보기는 악몽으로 남았다. 입이 썼다.
“점심은 외부 식사로 대신할게요. 여기 신분증요. 고마워요.”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간호사와 인사하며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검사할 때마다 검사실 밖에서 지호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다. 결과도 대신 들었고, 필요한 보호자 노릇에 충실했다.
그 균열에서 지호를 구해 준 헌터였다.
날카로운 인상을 가리는 호의적인 미소. 맛있는 냄새 솔솔 나는 봉투를 내려놓으며 당연한 것처럼 옆자리에 앉는데 평소처럼 얼굴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음식 말고도 짐이 꽤 많았다.
“병원 밥 질리죠? 오늘은 이거 먹어요. 검사는 대충 다 끝나서 오늘 퇴원하면 돼요. 서류 작업 같은 건 내가 대충 해 놨어요. 어쩌다 보니 임시 보호자가 됐거든요.”
“임시, 보호자요?”
“급성 균열에서 각성한 사람 중 상당수가 이형 에너지 불균형 반응을 보이거든요. 그래서 검사할 게 좀 많았어요. 이상도 없고 격리 필요성 전무. 무사히 퇴원하셔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답니다.”
헌터가 비닐에서 꺼낸 음식은 생경한 것이었다. 새우가 가득 올라가고, 낯선 향이 나는 밥. 음식에서 과일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제법 그럴싸한 맛에 지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헌터는 웃으며 간호사에게 보여 주었던 신분증을 지호에게도 확인시켜 주었다.
“잘 먹으니 좋네. 나는 임보현이에요. 1세대 헌터였지만 지금은 은퇴했고요. 이번 급성 균열에는 임시 파견되었다가 지호 씨를 발견했어요. 몸은 좀 어때요?”
“좀 찌뿌둥한데 괜찮아요. 멀쩡한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그간 쥐꼬리만 한 병원 특별식 먹으면서 배고팠을 텐데. 각성했을 때도 그렇잖아요. 각성하고 나면 되게 배고프거든요.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예전이랑 달라서 더 그래요. 감각도 많이 열리고요. 사람마다 개인차가 좀 있긴 해도 다들 똑같이 허기를 느껴요. 눈 뜨자마자 먹을 것부터 챙겼죠? 본능이에요. 아무튼, 그때 당시랑 비슷하게 상태 유지시켜야 해서 양이 좀 적죠. 이제 많이 먹어도 괜찮아요.”
보현의 말이 맞았다. 지호는 원래 병원에선 밥을 이렇게 적게 주나 생각했었고, 주린 배에 물만 부으며 밥을 더 달라고 하면 추가금을 내야 하나 걱정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이 병원비는 어떻게 하지 고민했었다. 이제는 물어볼 때였다.
“저, 제가. 그러니까 저희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이제 고아가 되었는데요.”
“맞아요. 오늘부터 제가 지호 씨의 임시 보호자예요.”
“그, 저 병원비는……. 어떻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모아 놓은 돈도 얼마 없을 텐데. 엄마가 항상 한숨 쉬며 걱정하던 밤들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이렇게 오래 입원해서 이런저런 검사받는 데 드는 돈은 다 어떻게 하나.
“어린 친구가 할 필요 없는 걱정이었는데……. 신경 쓰지 마요. 각성자 등록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하거든요. 검사비 같은 것도 다요. 그거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표정이 그렇게?”
지호는 민망했으나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이었구나.
좀 더 빨리 각성했다면 좋았을까.
조금 우울해졌으나 거기 파묻히지 않으려고 오래도록 애써 온 지호는 일부러 음식 먹는 속도를 빨리했다. 독특한 맛에 색다른 느낌. 통통한 새우 살 씹는 즐거움에 금방 기분이 나아졌다.
“천천히 먹어요. 이것도 더 먹어도 괜찮아요. 먹으면서 들어요. 당분간은 제가 지호 씨 보호를 맡았어요. 각성자 기본 교육을 이수하고 국가에 등록 절차를 마칠 때까지는 저와 함께할 거예요. 지호 씨가 예전에 살던 동네가 이번 균열에 일부 휩쓸려 많이 망가졌더라고요. 주소지를 확인했는데 거기가 망가지진 않았지만, 치료와 교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위해 당분간 우리 집에 와 있는 게 어떨까 싶어요.”
“네?”
“지호 씨를 발견했고 등록 절차를 담당했기에 제가 우선 배정된 보호자인 건 맞지만, 혹시 불편하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철회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오지랖 넓고 노련한 보호자를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 어지간하면 저랑 같이 가요.”
보현은 씨익 웃으며 그가 가져온 다른 짐 꾸러미를 풀었다. 속옷들과 세면도구, 수건 같은 기본적인 물품부터 해서 간식과 두꺼운 책자, 태블릿PC 같은 것들이 든 가방이었다.
“첫날 줬으면 좋았을 텐데 검사 단계가 빡빡해서 좀처럼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불편했을 텐데 미안해요. 지호 씨 구조하고 나서도 계속 균열에서 구조 활동을 도왔거든요. 일반 균열이랑 달라서, 급성 균열은 사라질 때 안에 갇힌 사람들도 같이 사라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은퇴한 일손까지 빌려 가며들 일했어요. 이제 막 균열이 사라진 참이고요.”
지호와 샛별이 역시 구조되지 못했다면 그대로 괴물들 가득한 세상에 남겨졌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좀처럼 마음 편히 앉아 있기 어려웠다. 보현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개체가 나타난 균열은 아니라서 대부분 구조됐을 거예요. 대균열 이후로 급성 균열이 나타난 건 몇 번 되질 않아서 조사로도 늦고 보고하느라고도 늦었어요.”
“대균열도 급성 균열이었나요?”
“네. 전조가 유사해서 가장 보편적인 급성 균열의 예시로 쓰이죠. 이건 각성자 교육 안내서니까 나중에 찬찬히 봐요. 맛있었죠?”
일회용 그릇이 벌써 바닥을 보였다. 보현은 먹이는 보람이 있다고 웃으며 그릇을 한쪽으로 치웠다. 팔다리 멀쩡한 나이롱환자 지호는 머쓱하게 눈을 굴렸다.
“저랑 같이 구조된 애는요? 이름은 함샛별이라고 하는데…….”
“보호자가 데려갔어요. 다행히 부친 쪽이 살아 있었다더라고요.”
다행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 다 가족을 잃었다면 얼마나 불행했을까.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현의 브리핑을 들었다. 뉴스에 알려진 것보다 사상자 수가 더 많고, 각성자도 좀 있다고.
“언제나 그렇듯이 각성자는 쉽게 생겨나지 않아요. 괴물은 좀 더 잘 생겨나지만.”
“저 그, 죽었다 살아나는 게 정말 각성자가 되는 방법인가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안 살아나요? 많이 죽었는데…….”
보현은 그 대답은 시원시원히 내놓지 않았다. 그저 지호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쉽게 각성을 할 수 있었으면 세상천지 각성자 판이었을 거예요.”
죽은 이들이 모두 각성자가 된다면 균열 피해자들의 삶이 저렇게 힘겹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족 잃은 사람들의 하루도 슬픔보다는 재회의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이고.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은 지호의 매일은 버거웠다. 혼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밀려올 만큼.
지호의 심정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곁에 있던 보현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그는 지호의 어깨 부근에 손을 댈 듯 말 듯하다 한숨과 함께 행동을 물렸다.
“당분간 정신없겠지만, 앞으로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하면 돼요. 내가 불편하면 센터에서 다른 보호자 찾는 등록을 할 수도 있죠. 그걸 나한테 말해서 내가 찾아 주는 건 꼴이 좀 웃기니까, 지원 센터 쪽에 수배해서 알아보는 건 자유예요. 언제든 편하게 나가도 돼요.”
“아뇨. 저기, 그쪽 분이 불편한 건 아니고. 그러니까……. 헌터님이…….”
보현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대로 불러요. 헌터님이나 그쪽이나 이모나 선생님이나 상관없으니까.”
나이가 가늠이 가지 않는 얼굴이긴 했지만, 이모뻘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1세대 헌터였다고 자신을 소개한 걸 보면 어릴 때 헌터가 되었거나 정말로 나이가 많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지호는 머리를 긁적였고, 짐작하는 대신 질문했다.
“언니가 아니고 이모예요?”
“양심이 있지 고등학생 아가씨한테 언니 소릴 듣겠다고 할 순 없죠.”
보현은 크게 웃은 다음 헌터증 뒷면을 보여 주었다. 태어나는 국민 모두의 특정 번호를 수집하는 강박 있는 나라답게 헌터증에도 나이부터 기재되어 있었고, 지호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보현의 나이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십에 가까운 나이라니, 이제 막 이십 대 중반쯤 되었다고 해도 좀 더 어리지 않냐고 물을 판이었는데.
“헌터가 되기 전엔 의사였는데 현역으로 오래 일한 건 아녜요. 어쩌다 보니까 수련 마치자마자 바로 각성하는 바람에 이쪽저쪽 잴 것도 없이 곧장 헌터 일을 해서. 그래도 지호 씨보단 훨씬 많죠. 제가 일찍 결혼했으면 몇 살 차이 안 나는 애가 있을 텐데요.”
“아니, 그치만…….”
“각성자가 되면 노화가 늦어지거든요. 이거 하나만큼은 정말 좋은 일이에요. 그렇죠? 이제 각성자의 삶을 새로 배울 거고, 이런 소소한 것들을 상식으로 여기는 세계에 들어온 거예요. 환영하진 않을게요. 끔찍한 경험이었죠? 죽는 것 말이에요.”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보현은 부드럽게 지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놀랐으나 손을 도로 빼진 않았다. 다정한 손길이었다.
“고생 많았어요. 아프고 괴로웠죠. 다 지나갔어요. 이제 괜찮아요. 안전하고요. 그러니까 편하게 있어도 돼요.”
“저는, 음. 편해요……. 아픈 데도 없고 멀쩡한데…….”
“그렇다고 생각하려고 의식하곤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걸요. 지금도 균열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하게 파장을 발산하고 있어요. 균열에서 이러면 비슷하거나 더 강한 괴물들이 옳다구나 하고 지호 씨를 잡아먹으러 올걸요. 그때도 그랬죠? 갑자기 괴물들이 몰려왔던 것 말이에요. 그리고.”
보현의 한쪽 손이 지호의 발목을 짚었다. 불시의 충격이라 지호는 억 소리와 함께 몸을 움츠렸다.
“아픈 데가 없기는. 균열에서 다친 상처, 나으려면 한참 걸려요. 밖에서 다친 것보다 몇 배는요. 그래도 치료기를 쓸 정도의 상처는 아니고 살짝 다친 거라 다행이죠. 이것도 하나씩 배워야 할 거예요. 균열에서 생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다치지 않는 거거든요. 당연한 소릴 하는 것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