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9화 (10/260)

9화

수희는 설명하며 무의식중에 언급을 피하는 것 같았지만, 포자를 퍼트려 사람들을 마비시켰던 그놈은 이미 여러 사람의 몸을 확보한 것 같았다. 그것들이 단체로 움직이거나 괴물의 뜻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문을 열 수도 있지 않을까?

불길한 상상은 언제나 좋지 못한 방향으로 손쉽게 뻗어 가는 법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지 않았으면 싶은 추측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의 꼬리를 자른 건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린 소리였다. 본래라면 들을 수 없는 소음이 생생하게 귓가에 울려 퍼졌다. 경이로운 일이다. 지호는 그가 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부터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애당초 할 수 없던 일 같은 건 이젠 별 의미가 없었다.

그 뱀 같은 괴물들이 지호의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다.

수희가 마주쳤던 정신 좀먹는 괴물과 마찬가지로 후유증이 있을 것이다. 그게 신체 강화 기능이라면 아주 감사한 후유증이지. 그러나 앞서 보았던 신원 미상자처럼 숙주의 신체를 강탈하고 부근의 동족을 해치는 종류의 잠식이라면 곤란해진다. 샛별이를 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희를 남자에게 발각되게 할 수도 없고, 지호 본인도 뭔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심지어 놈의 포자에 뒤늦게서야 영향받은 수희가 갑자기 돌변해 샛별이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런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지호가 택할 길은 하나뿐이다. 어차피 남자는 지호를 공격하지 않는다. 홀로 돌아다닌다면 복도가 한층 안전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타이밍 좋게 핸드폰 켜지는 소리가 났다. 샛별이 엄마의 핸드폰이다. 지문으로 잠겨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망자의 손가락을 빌렸다. 차게 식은 손으로도 핸드폰은 켜졌다. 문득 스스로 하는 행동에 의구심이 든다. 언제부터 이렇게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더라. 시체 앞에서 덤덤한 마음이 드는 것부터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속 편히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지호는 잠금부터 해제하고 균열 어플을 켰다.

당연하게도 부근에 생존자는 없었다.

수희가 울며불며 뛰어 내려왔던 것을 보면 다른 생존자 신호가 없는 걸 이미 확인했단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다른 생존자가 아니었다. 살아 있었을 그들이 남겨 놓았을 괴물 관련 제보 자료들이지.

“언니 이거 다 썼어.”

“응? 벌써 다 했어? 빠르네. 그럼 이것도 써 볼까? 이건 샛별이 이름이야.”

함샛별. 세 글자 다 어렵다. 지호는 샛별이가 끙끙거리며 자기 이름을 꼬불꼬불 그리는 걸 보며 생각에 잠겼다.

밖에 돌아다니는 괴물들이 ‘느껴진다’는 이점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수색 말고 또 있을까? 혹시 그들의 기척을 피해 헌터들과 합류할 방법은 없을까?

마지막으로 계속 걸리는 것도 있었다. 수희를 샛별이와 함께 두고 가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샛별이를 데리고 나갈 것인가? 셋이 한 번에 움직이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기에 일찌감치 제해 놓은 선택지였는데, 어떤 것도 고를 수 없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해삼의 기척은 조금씩 가까워져서…….

지호는 벌떡 일어났다.

“샛별아. 여기서 나오면 안 돼. 핸드폰 잘 갖고 숨어.”

“그치만…….”

“헌터가 금방 올 거야. 근데 괴물도 같이 올 거야. 그러니까 헌터가 널 찾기 전에는 여기 꼭꼭 숨어 있자. 알겠지?”

샛별이는 자기 이름 자 그려진 노트를 품에 안고 책상 밑에 숨었다. 충전기가 연결되어 있고, 전기가 아직 들어오는 동안에는 여기서 핸드폰이 샛별이를 대신해 구조 신호를 보내 줄 것이다. 지호는 거리마다 생존자 표식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다.

“괴물들끼리 영역 안 겹친다더니, 씨팔.”

수희에게 옮은 건지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해삼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그 이유는 다른 소리를 추격해서가 아니다. 도망치고 있는 거지.

온몸을 저릿하게 할 만큼 위협적인 뭔가가 거리 저편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피해 도망치는 괴물들이 느껴졌고, 반대로 그것 때문에 아래로 내려오는 개체도 느껴졌다.

수희가 말한 놈일 것이다. 재미 삼아 인간을 사냥하는 놈. 건물 위층의 새 주인은 팔다리가 비상구 문 여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했었지만, 수희의 이야기 속엔 다른 괴물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인간의 몸을 잠식해 그 팔다리를 마음대로 가눌 수 있는 기생체 괴물도 위층에 있었다고 했고, 꼭대기 층 놈이 아니라 기생 괴물이 내려오기 위해 문을 연다면 다른 놈도 얼마든지 넘어올 수 있는 일 아닌가.

쾅 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울렸다. 처음처럼 열리지 않는 통로에 화풀이하는 소리가 아니다. 문짝이 거칠게 벽면에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수희가 기겁하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지호는 달려온 수희를 곧장 넘어뜨렸다. 수희는 키가 너무 컸다. 창문으로 머리가 튀어나올 만큼. 엎어진 수희가 욕하기도 전에 지호는 마사지실 문을 쾅 닫으며 짧게 속삭였다.

“쉿!”

멀지 않은 곳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사정 봐주지 않는 파괴였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방 안에 함께 있던 두 사람의 어깨가 빳빳이 굳어졌다.

뭐야, 뭔데? 수희의 입 모양이 다급했다. 해삼의 촉수에 휘말릴 뻔했을 때 자기를 구해 줬던 것이나, 인간 같지 않은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줬을 때도 그랬다. 지호의 감각은 수희보다 훨씬 앞서서 뭔가를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 그래서 수희는 화내지 않고 입을 닥쳤다. 잠겨 있던 마사지 숍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무자비한 파괴는 유리를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었고, 유리 벽 파괴범은 다른 가게 유리를 부수러 훌쩍 떠나갔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해삼이 커다란 본체를 끌고 올라오고 있었고, 5층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놈은 거대한 개체고, 그 촉수도 전봇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길었으니까.

느껴지는 바로는 건물에 총 네 놈의 괴물이 있다.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해삼, 본래 건물을 돌아다니던, 아마도 앞으로밖에 직진하지 못하는 투명한 놈, 인간을 사냥하길 즐기는 놈과 인간에게 기생해 있는 기생체. 아까 그 남자는 괴물이라고 부를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 셀 수도 없다. 심지어 지호의 감각에 잡히는 놈도 아니었다.

네 마리의 괴물과 한 개체의 신원 미상자, 그리고 세 사람의 생존자가 있기에는 너무도 좁은 건물이었다.

어떻게 하지. 지호는 그것들의 움직임 정도를 느끼는 것 외에 다른 초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아주 조금 정도 힘이 세진 것 같기는 했다. 해삼 머리 위로 물병을 던질 때나, 남자를 걷어찰 때 정도나 체감할 만큼 낯선 능력.

지호는 그것들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해삼이나 투명한 놈이나 속도가 빠르지 않은 종일 것임은 분명한데, 그것들도 상당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모두 마사지 숍 근처로 온다. 뭔가에 쫓기건, 혹은 쫓건. 결론이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었다.

여기도 곧 무너질 거다. 지호는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수희가 덜덜 떨며 지호를 붙잡았고, 샛별이 역시 진작 울음이 터진 상태였다. 소리 죽여 울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상하고 안쓰럽다.

문득, 그림자가 졌다.

창밖으로 들어오던 해를 뭔가가 가렸다는 걸 인식한 순간 지호는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움직이면 안 돼. 손바닥을 펴 보이며 가만히 기다린다. 번쩍거리는 빛이 내부를 한 번 훑더니 곧 그림자가 사라졌다. 모르긴 몰라도 건물 크기만 한 뭔가가 움직이는 것들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 이 건물에 있었고.

어제 멀리서 돌아다니던 대형종이다.

지호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놈이 이 건물 안에 있는 뭔가를 노리고 있었다. 뭔가를 탐색하는 것 같은 감각. 지호의 것과 대형종의 것이 물과 기름처럼 뒤섞였다. 그 순간 지호는 벌떡 일어났다.

“나가야 돼.”

“어떻게?”

유리를 깨부순 놈이 꺾이는 복도 쪽으로 갔으니 당연히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해삼과 마주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고, 마주친다 해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

건물 밖엔 더 엄청난 놈이 있었다. 그것이 지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 그는 소리쳤다.

“지금밖에 없어. 샛별아, 업혀!”

지호는 샛별이를 둘러업자마자 내달렸다. 수희는 뒤를 따르며 거친 욕설들로 숨을 토했다. 공포를 그런 식으로 희석하려는 것 같았다. 수희는 후들거리는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넘어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달렸다. 앞으로 기울어진 몸은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았으나, 넘어지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자마자 3층 초입에서 괴물들과 마주쳤다. 그걸 마주쳤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사람 형상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버섯이라고 불러도 좋을 모양새에 달려들어 놈을 찢어발기려는 괴물과 투명한 놈이 밀어붙여 망가진 복도, 거기에 휘말려 엎어진 채로 수희를 노려보며 팔을 버둥거리는 남자까지. 해삼의 촉수가 멀찍이서 기어 오고 있는 것을 보니 괴물 집합소가 되어 버린 것이 분명했다.

마사지 숍이 있는 방향 쪽 상가 전체가 어두웠다. 햇볕이 비치는 대신 그림자가 져 있고, 번뜩이는 빛이 실내를 훑었다. 괴물들이 서로 죽이는 일에 너무 몰두해 있어 그들 중 어느 것도 세 사람에게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투명한 놈의 아래에서 기어 나오려는 남자의 목을 찍어 누르는 괴물의 앞발을 마지막으로 지호는 다시 달렸다. 곧 상가 외벽이 부서지며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수희는 비명을 질렀고, 해삼의 촉수는 비명을 쫓아 뻗어 나왔으며 샛별이는 더는 소리를 죽이지 못하고 크게 울었다. 지호는 비틀거리는 수희를 붙잡고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 내려갔다.

출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커다란 발이었다. 발? 지호는 당황해 잠깐 속도를 줄였다. 그때였다. 수희가 두 사람을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괴물들을 먼저 발견한 것이다.

“난, 나는 못 죽어!”

지호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샛별이를 업은 채로 넘어질 수 없어 다리에 힘을 주느라 발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것 같았다. 그러나 상처를 살필 새가 없다. 괴물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샛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다. 머리만 아프고 끝난다면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었는데.

밖으로 뛰쳐나간 수희는 균열의 회색 하늘이 평소보다 어둡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지호는 곧바로 팔을 들어 샛별이의 얼굴을 가렸다. 사람 몸 터지는 소리가 비현실적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존했겠지. 아마 끝끝내 말하지 않은 진실이 있었을 것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고 살기 위해 도망친 깨끗하지 못한 진실 같은 것들.

투명한 놈은 보이지 않아 파악할 도리가 없었지만, 다른 것들은 서로를 공격하면서도 꾸역꾸역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싸우던 놈 중 하나가 결국에는 승리한다. 한 놈의 머리를 뚫어 버리고 승리의 괴성을 지른 뒤 지호와 샛별이를 바라보며 입을 벌리는.

문득 지호는 다른 소리를 인식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바로 뒤에서 나는 걸 보니 샛별이가 꼭 쥐고 있는 핸드폰에서 들리는 소리다. 미약한 진동음까지.

“생존자 발견. 미등록 각성자 확인. 구조에 들어간다.”

두 사람을 삼키려고 달려들던 괴물의 아가리가 코앞에서 폭발했다.

미약하게 울리던 진동음이 잦아들었다. 지호는 몸을 천천히 돌렸다. 바깥에 서 있던 건물 크기만 한 괴물이 쓰러지며 사방 천지가 진동했다. 흙먼지나 건물 잔해,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지호와 샛별이를 향해 튀는 건 하나도 없었다.

헌터가 뻗은 팔을 내렸다. 둥글게 펼쳐져 있던 원형 막이 사라지며 그제야 먼지가 부옇게 주변을 메웠다.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는데도 지호는 그가 두 사람을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울음이 터졌다. 샛별이가 목을 꽉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기다리면, 헌터, 온다고…….”

“맞아. 샛별이네 엄마가 맞았네. 엄마가 맞았어.”

다른 괴물들을 손쉽게 정리한 헌터는 해당 건물 부근에 이형 에너지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들은 다음에야 선글라스를 벗었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일 것이다.

두 사람은 사흘 만에 구조되었다. 애석하게도 급성 균열이 닫히는 데는 삼 주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생존자는 극히 적었다.

지호는 미등록 각성자로 분류되어 무수한 검사를 받았다. 팔에서 피를 몇 번 뺐는지 모르겠고, 윙윙 소리 나는 기계에도 수차례 들락날락했다. 몇 번쯤 검사관을 만나 검사를 마친 뒤에 지호는 그가 각성자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웃기는 일이었다.

생존자 명단에 엄마는 없었다. 엄마의 이름은 사망자 명단에서도 찾기 어려웠는데, 사망 확인을 할 만큼 시신이 남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기에 더 그랬다. 지호는 그 명단을 붙들고 한참 울었다. 울음이 더 나오지 않게 된 다음에야, 이제는 각성자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아이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때는 연예인, 한때는 유튜버였던 모든 아이들의 꿈은 이제 헌터가 되었다. 지호 역시 헌터가 되기를 꿈꿨지만, 이런 방식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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