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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8화 (9/260)

8화

지호가 걷어찼던 다리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급한 상황이라 너무 힘을 실었던 모양이었다. 수희는 뒤늦게 통증을 느끼고 절뚝거렸으나 지호를 원망하지는 못했다.

정강이를 문지르며 느릿하게 수희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일찍이 지호에게 했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여기서 일어난 일이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겠지. 제각기 자기가 헤쳐 나온 지옥을 이야기하느라 입이 둘이어도 모자랄 거야. 어쩌면 내가 겪은 일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중얼거리던 수희는 물을 아예 머리 위로 뒤집어써 버렸다.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물이 상의를 적시는데도 그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고층을 헤집던 놈은 사람 사냥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어. 놈에게 도망쳐서 비상구로 내려온 인원이 많았을 리가 없지. 하지만 건물을 나갈 수도 없었다고. 그렇게 도망쳤는데 밑을 틀어막고 있는 새끼가 있다니 세상이 존나 불공평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 바깥의 지옥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비상구를 잠그고 나서야 상가층에 보이지 않는 놈이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됐지. 진짜 다행이었어. 그놈, 자기 몸 들어갈 수 없는 곳은 그냥 지나쳐 가거든. 다행히 비상구 한쪽 문만 열려 있어서 들어오지 않더라고.”

하지만 문 근처에 있던 사람은 놈의 몸에 붙어 그대로 밟히고 구겨지고 터져 버렸다고 했다. 수희는 몸을 떨며 자신의 표현을 재차 긍정했다.

“그래, 그건 터졌다고밖에 할 수 없는 모습이었어. 놈이 지나간 방향 쪽에서 생존자 표시가 빠르게 꺼지더라. 그건 신호를 직접 끄거나, 신호를 보내는 기기 자체가 망가졌단 의미지. 그 화면을 보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일단 구조를 위해 다시 올라가자고, 집에 숨어 있는 편이 안전하겠다고 입을 모았어. 올라가는 계단이 길더라. 우린 우리가 문을 잠가 버려서 밖에 남아 죽었을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어. 거기 같이 남아 있던 사람은 고작 여덟 남짓이었지. 고작 여덟 명이었다고.”

수희는 완전히 지친 몸을 벽에 기대며 주르륵 미끄러져 앉았다.

“고층으로 올라갈 수도,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어서 우리는 중간층을 뒤졌어. 덜 잠긴 집이 있길 바랐지. 위에 있는 놈이 좀 더 무서워서 대부분 6층이나 7층까지만 뒤지고 위로는 올라갈 엄두도 못 냈어. 계단마다 시신이었고, 복도마다 피였지. 진짜 지옥이었어. 놈이 사냥을 잔인하게 했나 보다 생각했지. 그런데 아니었어. 그게 아니라.”

급성 균열은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다. 수희는 그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말하면서 진정되는 것 같았던 불안 증세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놈이 가까이 왔나 싶어 지호는 복도 부근에 귀를 기울였다. 괴물과 달리 남자의 기척은 좀처럼 잡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좀 괜찮았어. 멀쩡한 집인데 문 열린 곳이 있더라고. 시리얼이며 라면이며 물에다 착실하게 균열 시에 집을 벙커화 할 수 있는 재료를 갖춘 곳이었어. 사진을 보니 어떤 부부가 살던 곳이더라고. 좀 미안했는데, 살 사람은 살아야겠다 싶어서 그 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았어. 옷도 좀 빌리고, 씻을 수도 있었지. 괴물 소리가 나질 않아서 생각보다 편하게 잘 수도 있었어. 하지만 문제는 당연히 있었지. 고작 두 사람분 식량만 비축되어 있었어. 버티는 날도 길게 잡지 않았는지, 아니면 꽉 차게 채워 놓지 않았던 건지 우리 여덟 명이 하루 이틀 먹고 나니까 먹을 게 없더라. 당연한 일이긴 해.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편의점 있지, 근처에 대형 마트도 있지. 굳이 냉장고를 꽉꽉 채워 놓고 살 필요 없는 시대니까. 음식이 부족해지니 다른 집들도 확인해 보자는 의견도 더러 나왔어.”

먹고 쓴 것들은 나중에 갚을 수 있게 기록해 놨다고 자신 없게 덧붙인 수희의 표정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위층에서 본 시체와 여기 있는 시체가 다르단 걸 알아챈 사람이 있었어. 그 집 현관 바로 정면에 죽은 사람이 있어서 내다보면 바로 보였었거든. 위에 있던 놈은 사람들을 찢고 해치고 잔인하기 짝이 없었는데 여기 시체들은 멀쩡했다는 거야. 개중에는 잠든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죽어 있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았어. 대부분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시체가 있다는 사실이었지. 우린 의견이 갈렸어. 멀쩡한 집 문 따서 식량 모으는 것도 나중에 cctv에 걸리면 어떻게 빨간 줄 그어질지 모르겠다는 평범한 걱정들이나 하고 있을 때였지. 웃기지도 않았어. 이미 우리가 있던 집은 탈탈 털어다 먹고 쓰고 했으면서, 그때까지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 분명했다. 수희는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저었다. 외면할 수 없는 확실한 반응.

“밖에 나가 보자는 이야길 하며 문 열고 복도를 확인하다가 누가 발소리를 들었어. 그걸 달고 나타난 생존자 중 하나였지. 그걸 달고, 살아 있더라고. 살아 있다고 할 순 없었지. 아무튼, 귀소 본능 있는 지적 생물체를 이용해 기생체가 집으로 돌아가면 거길 차지하는 기본적인 번식 반응이었던 거라고 누가 그러더라. 어려운 거라 정확한 게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는 다 바깥 시체들처럼 널브러진 다음이었고. 어떻게 놈이 실내로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뭐에 홀린 것처럼 문을 여는 걸 봤던 것 같기도 한데, 내 기억도 신뢰할 만한 게 아닌 것 같아.”

상황을 목격한 사람이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기로는, 놈의 기생체였던 피해자가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버섯 포자처럼 가루가 퍼졌고, 그걸 맡은 사람들은 모두 기절했다고 했다. 이후는 천천히 잠식당하는 과정 가운데 있었고, 운 좋게도 수희는 문에서 제일 먼 곳에 있어 포자의 영향을 덜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다 의식이 있었고 말도 할 수 있었어. 주먹을 쥐거나 몸을 조금 비트는 것 정도까지도 가능했지. 근데 걷는 데 필요한 근육 하나하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적당한 힘을 가하는 걸 직접 판단해서 하려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야. 평소에는 뇌가 알아서 해 주는 영역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망은 구르는 거였어. 나는 구르다 다른 몇 명하고 부딪혔어. 개중 일부는 그걸 추진력 삼아 굴렀고, 세 사람 정도가 집을 빠져나왔던 것 같아. 아마도.”

“아마도요?”

“살필 겨를이 없었거든. 거길 나오고 가루를 덜 들이마시게 되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는데, 갓 걸음마 배운 어린애처럼 걷느라 추격자를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처음 포자를 뿌린 놈은 뿌리내린 인간에게 잠식해 있어서 팔다리를 자기 것처럼은 아니어도 제법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거든. 맨 뒤에 있던 사람이 붙잡혀 도로 끌려 들어가는 동안 나머지는 몸을 때려 가며 감각을 되살렸어. 나까지 셋 나왔다가 한 명 끌려가고 다른 둘은, 그 둘은 처음 합류할 때부터 손을 꽉 잡고 있었어. 친군지 애인인지 알아볼 마음도 없었는데, 그때는 아니었어.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은 와중에도 복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놈이 고층의 괴물이란 걸 알 수 있었어. 위에 잡을 놈이 없으니까 내려온 것 같더군. 이상한 일이었어. 괴물끼리는 영역이 겹치지 않는다면서? 우리 셋은 멀지 않았던 비상구로 몸을 날렸어. 둘 중 하나가 좀 굼떴고, 그래서 문을 닫지 못했는데 괴물이 제 발을 틈새로 밀어 넣어 버렸지. 그다음엔 잘 생각이 안 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고, 그러다 계단을 몇 개나 굴렀고, 상가층 표시가 보이자마자 곧바로 복도로 뛰쳐나왔어. 괴물이 있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저거에 찢겨 죽는 거랑 그거에 깔려 죽는 거랑 뭐가 덜 아플지 잴 시간은 없었거든. 당장은 뒤에 쫓아오는 놈이 먼저여서.”

“잠깐만요. 그럼 이 건물에 괴물이 대체 몇 마리가…….”

지호가 아는 상식과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수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저 중얼거렸다.

“비명 같은 걸 들은 것 같기도 해. 저 남자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 난 모르겠어. 하지만 힘도 없는 내가 그 사람들을 구하러 돌아가야 했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구하러 힘을 보태 주지 않은 날 미워할 순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돌아간다고 해도 거기엔 남는 건 시체 두 구가 세 구로 늘어나는 결과뿐이었을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캐물을 만큼 수상쩍지는 않다. 그렇게 뛰어오자마자 문이 열리는 것이 무서워 사방을 두드려 대며 문 열린 곳을 찾았고, 그래서 만난 게 두 사람이라고 했다. 수희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같이 있던 여자가 죽어서 날 죽이고 싶은 거고, 원망의 대상이 필요한 거라면 그럴 수 있다고 쳐. 근데 저 상태는 뭘까. 위에서 그 가루를 마신 게 뭔가 악영향을 미쳤나? 그럼 나도 안전하지는 않겠지. 상태가 좆같은 걸 보니 너희한테 해가 갈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혹시 모르니까 어디 혼자 들어가 있어?”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었다. 수희가 정신적으로 곤두서 있기에 먹힌 방법이지, 실제로는 이렇게 외면하고 몰아붙인다고 제 이야길 털어놓는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그게 괴물들 틈바구니에서 지옥을 뒤로하고 살아 돌아온 생존자라면.

생존자들은 입이 닳도록 말했다. 균열에서 제일 위험한 건 분명 괴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특히나, 어떤 아수라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일수록 도덕과 책무, 윤리와는 먼 선택을 했을 거라고.

“왜 높은 층 괴물은 저 남자를 놔뒀을까요?”

“나도 몰라. 저거 사실 시체 아닐까? 중간층에서 우리를 무력화시켰던 그놈이 붙어 있던 사람처럼. 그 사람은 인지 기능도 거의 떨어지고 정신도 거의 못 차렸었어. 그런 식으로.”

“사람이 괴물에게 먹힌 걸까요? 다른 방식으로?”

“그렇다고 봐야지. 아니면 위층에 먹을 게 많아서 놔뒀을 수도 있고. 가만히 있는 음식이 있는데 굳이 뛰어가는 음식을 쫓아가고 싶진 않을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어. 내 말 중에 맞는 게 뭐가 있나 모르겠네. 내가 지금 멀쩡한 상태인지도 모르겠어. 그냥, 그냥 좀 쉬고 싶다.”

한쪽 구석에 웅크린 수희는 그대로 축 늘어지더니 손을 저었다. 이야기하며 떠올린 것만으로 힘겨웠는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트라우마 반응의 하나다. 지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대신 지호는 샛별이의 손을 잡고 볕이 잘 드는 마사지실 한쪽에 노트를 펼치고 앉아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어떻게 쓰고, 어떻게 읽는지. 샛별이는 몇 가지 정도는 알고 있다며 더듬더듬 글을 읊었다. 기특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다른 것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아이에게 따라 쓰라고 가르쳐 주곤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차라리 좋았다. 아주 혼자였다면 불안했을 것이고, 너무 지호에게 의존하면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겠지. 샛별이는 수희와 지호의 눈치를 보다 못해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샛별이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멍하니 보며 지호는 고심했다. 수희의 말이 진짠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저 남자가 왜 저 상태가 되었는가가 궁금한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수희는 아는 것이 없었고, 남자는 수희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수희만을 목표로 둔 채 복도를 배회했다. 눈앞의 지호를 없는 것 취급하는 거로 볼 때 눈앞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수희를 앞에 들이밀지 않는 이상은 저렇게 부유령처럼 복도를 헤매기만 할 것 같았다.

그러면 앞으로는 지호 혼자 건물을 돌아다녀야 할까.

수희는 이 건물에 세 개체 이상의 괴물이 돌아다닌다고 이야기했다. 본인이 당해서 저 꼴이 되게 한 것이 제일 위험할 것이다. 보고 피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니까.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신원 미상자는 놈에게 당한 숙주 중 하나일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다쳐도 모자랄 유리 파편 더미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걸어 다닐 수 있는 존재는 더는 인간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터.

그런 것이 과연 하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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