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봐요. 언니 이름 부르잖아. 우리가 이 난관을 타개할 방법은 뭐죠? 저 사람한테 닿지 않으면서 뒤로도 나가지 않으면서 여길 돌아다니고 있을 투명한 괴물하고도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데.”
남자는 지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수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호가 움직이려 하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수희가 움직이려 하면 어김없이 손을 뻗었다. 이래서야 해삼이 본체를 움직여 촉수를 이 부근으로 뻗어 오는 순간이 두 사람의 제삿날이 될 것이 뻔했다.
“언니, 지금 투명한 놈 소리 안 들리죠? 그거까지 오면 정말 끝이에요.”
“저 새끼 죽인다 소리밖에 안 들려. 시끄러워 뒈지겠네. 왜 해삼이 여기서 퍼덕거리고 있나 했더니 저 새끼 때문이었어.”
“시끄러워요?”
“이게 안 들려? 저렇게 쩌렁쩌렁 소리치는 게 안 들려?”
지호는 의아해하며 수희를 돌아보았다. 뻣뻣하게 굳어 식은땀 흘리는 모양새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놈은 중얼거릴 뿐이다. 소리친다는 건 이상한 표현이었다. 커진 동공, 미친 듯이 흘러내리는 땀.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지호를 붙잡으려고 허우적대는 손까지. 수희의 상태는 확실히 이상했다.
균열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호는 아직 정보 접근 허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일반인이라 이게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일반인에게 허락되는 정보는 정말로 극소수였으니까.
대피 방법이나 생존 수칙 같은 것 정도나 보편적이지, 그밖에 것들은 모두 헌터와 관련 있는 종사자들의 것이었으니.
그나마 협회 공지 같은 것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가끔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같은 때는 더더욱 그렇다. 지호는 수희의 상태를 보고 원인을 짐작했다. 트라우마 반응에 가깝다.
수희는 많은 이야기를 생략했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것 사이에 이 사태의 원인이 있을 터. 지호는 허공을 짚는 수희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제가 저 사람 잡고 있을 테니 뒤쪽으로 뛰어갈 수 있겠어요?”
“해야지 어쩌겠어. 머리 깨질 것 같아.”
“정신 똑바로 차려요. 한 번에 갈 거예요. 셋 하면 뛰어요. 하나, 둘.”
셋 하자마자 둘은 동시에 달렸다. 지호가 조금 더 빨랐다. 지호는 남자의 팔을 붙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거의 몸통을 들이받는 수준이었던 터라 남자가 조금 뒷걸음질 치고, 그 틈으로 수희가 달렸다.
해삼의 촉수가 가까워졌기에 지호 역시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자기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수희를 쫓으려는 남자의 오금을 걷어찬 지호는 그가 휘청이는 걸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내달렸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던 탓이다.
해삼의 촉수가 건물을 엉망으로 만들고 유리를 깨부수는 건 애교로 봐 줄 수 있었다. 피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건 아니다. 이 축축한 소리, 빠르지 않은데도 뒷덜미를 쭈뼛 서게 하는 위협적인 감각. 해삼과 비슷하다. 복도로 나온 탓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이형의 존재가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런 것이 느껴질 턱이 없는데도, 지호는 알 수 있었다. 그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희가 달려간 방향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다. 뒤편이다. 놈은 5층에서 계단을 온몸으로 밀어젖히며 내려오고 있었다.
눈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고, 귀가 두 개는 더 있는 것 같았다. 다리까지 네 개쯤 더 생긴 것처럼 달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호는 여전히 엉성하게 비틀거리며 복도를 달렸다.
중앙 계단이 보이자마자 손잡이를 잡고 두 칸씩 계단을 오르며 뒤따라 붙은 남자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휘청이거나 균형을 잃고 넘어지길 바란 것이다.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발차기였으나 결과는 극적이었다.
벽면 유리가 와장창 깨지며 남자가 데굴데굴 굴러 들어갔다.
지호는 뻗은 다리를 제대로 내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굳었다. 위층에서 수희가 지호의 이름과 욕설을 함께 외쳐 대지 않았으면 그대로 한참 멈추어 있었을 것이다.
괴물이 가까워졌고, 해삼의 촉수도 가까워졌다. 놈들의 속도가 비슷한 모양이었다.
지호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마사지 숍 문이 열려 있었고, 두 사람이 다급한 얼굴로 지호에게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지호는 달렸다. 다리가 네 개인 듯이 내달리다 익숙하지 못해 그대로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고, 수희는 넘어진 지호를 일으키는 대신 끌고 들어갔다. 샛별이가 문을 잠근 뒤에야 숨이 탁 터져 나왔다.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던 탓에 지호의 얼굴이 시뻘겠다.
“씨발, 너 왜 이렇게 무거워. 내가 힘이 없어서 그런가? 아냐, 네가 무거워. 시끄럽다. 아직도 시끄러워.”
수희는 혼자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감쌌다. 샛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지호 쪽으로 몸을 숙였다.
“언니, 언니 괜찮아?”
지호는 대답을 꺼내지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생전 그런 속도로 달려 본 적이 없던 까닭이기도 했고, 사람을 걷어차 유리를 깰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까닭이며, 뭣보다 바깥에 느껴지는 괴물의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한 이유가 가장 컸다.
“조금만, 조용.”
“어차피 못 듣는다고…….”
의미 명백한 몸짓에 샛별은 입을 다물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이제는 익숙해진 철퍽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 복도를 지나가는 소리. 닿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지독한 흡음.
지호는 그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벽에, 바닥에, 천장에 닿을 때 들리는 소리가 달랐다. 놈은 투명하지만 그렇다고 무게가 없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지나며 몸을 누르는 정도에 따라 들리는 소리도 달랐다.
지호는 왜 자기가 이런 걸 파악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할 수 있었으므로 소리를 들었고, 놈이 마사지 숍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며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투명한 놈이 멀어진 뒤에는 예상치 못한 소리도 뒤따랐다. ‘죽인다, 공수희 죽인다.’하며 복도를 느릿하게 걸어가는 남자가 버젓이 걷고 있었던 것이다. 속도는 이전보다 느려졌으나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호는 그의 몸뚱이가 유리 파편들 틈에 인형처럼 내팽개쳐졌던 것을 분명 보았다.
그것들이 모두 떠나간 뒤에도 한참이나 침묵을 요구했던 지호의 손가락이 드디어 입술에서 떨어졌다. 수희가 심하게 떠는 것을 본 샛별은 머뭇거리다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흠칫 놀란 수희였으나 그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지호는 말을 골랐다.
“여기 우리가 있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어.”
“뭐?”
“그리고 아까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 같고.”
짧은 소란이 일었다.
샛별이가 하도 불안해하여 수희는 욕으로 지호 때리기를 잠시 멈추었다. 불안감을 욕설로 표출하는 못된 습관이 있는 것을 사과하기도 했고.
“개소리 말고 차근차근 설명해 봐.”
“우선, 언니 정말 저 남자 몰라요? 저 사람은 언니를 아는 것 같던데.”
“몰라. 내 스토커인가.”
“언니. 저 사람은 언니밖에 안 봤어요. 언니도 저 사람하고 마주쳤을 때 상태 이상했고요. 지금도 그렇잖아요. 저 비슷한 사람들 봤어요. 균열 생존자 중에, 정신 계통 괴물한테 당한 사람들이 언니 같은 반응을 보여요.”
수희는 입을 다물었다. 그 남자는 괴물 같지는 않았다. 괴물이라고 보기에는 약했고,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괴물 같지만.
“저는 균열 희생자들이 잔뜩 있는 동네에서 자랐어요. 거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봤게요? 언니를 정신 차리게 할 수 있었던 건 그 가족들이 피해자를 다루는 걸 따라 했기 때문이에요. 잠깐만 정신이 드는 효과가 있어요. 비싼 돈 내고 마석 치료기를 쓰지 않으면 계속 트라우마 반응이 온다고 했고요.”
“지랄 마.”
“언니가 저 사람을 정말 모른다면 제 말을 믿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나요? 정신 계통 괴물에게 당한 영향이 나타날 리가 없을 테니 조금 쉬면 괜찮아질 텐데.”
수희가 입을 열지 않았기에 지호는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가방을 열어 샛별이에게 가져온 것들을 자랑하듯 나열했는데, 한글과 영어 공부 책자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누구라고 쓰여 있긴 했지만, 아무튼 한글 공부를 할 수 있는 문제집이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다. 샛별이가 글자를 몰랐었지. 지호는 연필에 노트까지 들어 있는 작달막한 학생 가방을 잘 챙겼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언니가 글자 가르쳐 준다고 했었지? 마침 학원 문이 열려 있더라고. 다 쓰고 나서 반납하자. 그때까지만 빌리는 거야.”
샛별은 수희의 손을 놓고 지호 옆에 앉으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어 눈치를 보며 노트를 받았다.
지호는 넘어져서 깨진 필통은 나중에 새로 사 줘야겠다고 평범하게 이야기하며 책을 펼쳤다. ‘이거는 읽을 줄 알아?’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것이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너 이 씨발년.”
지호는 수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못 본 척했다. 가뜩이나 날카로운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다는 것도. 지호는 샛별이에게 이 글자는 이렇게 읽고, 하는 이야기를 해 주던 어조 그대로 상냥하게 말했다.
“트라우마 상태의 피해자들이 제일 자주 하는 말은 그거였어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마석 치료기 쓸걸. 그랬으면 이렇게까지는…….”
“그래, 씨발 그래! 그래 먹혔었다. 뒈질 뻔했어. 가까스로 탈출했더니 아수라장이더라. 어쩌라고! 살았는데, 나는 살았으니까 된 거 아니야! 나는 살 거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몰라요. 근데 저 사람도 괴물도 아닌 게 언니를 쫓는 이유를 언니가 알 거 아니에요. 이대로 또 뭐 찾으러 나가면 위험할 것 같은데. 여기도 언제 들킬지 모르겠고요.”
아마 수희는 도망치는 데 급급해서 뒤돌아볼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지호가 어떻게 남자를 유리 파편 바닥에 처박았는지 보았을 턱이 없지. 그러나 지호는 자기가 한 짓을 똑똑히 보았다.
“저는 그림자에서 솟아나던 괴물들을 봤어요. 그래서 전혀 의심하질 않았거든요. 괴물은 균열 안에서 그냥, 생겨나는 거잖아요. 그냥 자연 발생하는 자연재해 속의 재앙인 거고. 그렇게만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저 사람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균열 피해자 출신 중에서는 균열을 멀리하기 위해 어떻게든 양지로 나가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호는 그들 사이에 속하지 않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상이고, 누군가는 거기에 휘말려 가족을 잃고 삶을 잃는다면…….
지호는 다른 사람들이 더는 그런 슬픈 대열에 합류하지 않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울고 우는 사람들이 자꾸만 많아져서 작고 좁은 빈민촌이 슬픔으로 터져 나가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었다.
지호는 모범생이었고, 누구보다 성실히 균열을 공부해 왔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그의 아빠가 그러했듯이.
“언니가 솔직히 말해 줘야 대책이라도 마련할 수 있어요. 충전기 찾았었죠? 구조 신청 다시 하면서 방법 좀 찾아봐요, 우리. 균열 내부에서는 일반인에게도 어느 정도는 정보 규제가 풀린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언니 그 반응 막을 방법도, 이름 모를 괴물 정보 알아낼 방법도 어디에든 있을 거니까. 솔직하게 말해 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내가 도울게요.”
수희는 손톱이 손바닥을 뚫을 만큼 노여워하고 분노했으나 이내 핏방울 맺힌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균열이 열리자마자, 그게 튀어나왔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