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수희는 피식 웃으며 다시 병에 물을 채웠다. 놈이 지나갈 때까지는 수상한 소음을 내지 말자는 의견에 따라 잠시 급수를 쉬고 있었는데, 건물 물탱크에 물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가 관건이라던 수희의 말에 지호 역시 남은 병에 물을 담는 데 동참하는 중이었다. 돌아온 직후 괴물은 세 번 지나갔고, 그 사람은 이제 한 번 지나갔다.
“둘 다 제각기 다른 쪽으로 움직이나 봐. 둘이 여태 만난 적이 있으면 무슨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그런 건 없네.”
“아니면 다른 괴물들처럼 서로를 피하는 것일 수도 있죠. 언니를 쫓아왔던 놈이 저 투명한 걸 보고 도망갔다고 했었잖아요.”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안 보이는 놈이 사실은 제일 센가. 지금으로선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짐작만 해 가며 둘은 머리를 맞댔다.
“내려가는 계단은 총 세 방향이야. 주상 복합 건물이라 주거지 하고 상가층이 비상계단이랑 엘리베이터로만 나뉘어 있지. 상가끼리만 통하는 계단은 딱 5층까지만 뚫려 있어. 네가 올라왔을 방향하고 이용하는 것이 현명치 않을 반대 방향, 그리고 중앙은 나도 잘 모르겠다. 거기는 무너져 있잖아.”
“대화라도 시도해 보면 어때요?”
“싫은데. 멀쩡한 때 만났어도 저런 놈은 미친놈인데, 이런 상황에서 만나 봐. 우리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막을 방법도 없는데, 좋다고 대화해 주겠다.”
수희는 시무룩해진 지호를 보며 혀를 찼다. 다섯 병째 물을 채운 다음이었다.
“어쩔 수 없어. 삶의 민낯을 보렴. 네가 나처럼 좋은 어른을 먼저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이야? 저런 살인마 말고.”
“살인마요?”
“꼭 그렇잖아, 캐릭터가. 괴물의 무서움에 미쳐서 정신 놓고 살인마로 돌변하는 그런 부류. 자기도 죽이는 부류에 합류해 버리는 거지. 괴물과 다를 바 없는 괴물이 되는 선택을 하는 거야.”
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기에는 중얼거림에 묻어나는 악의가 뚜렷했다. 문 너머로 들으면서도 소름이 다 끼쳤는데, 대화하겠답시고 나갔다가 정말로 수희의 말이 맞으면……. 지호는 어른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럼 문밖에는 괴물이 둘이네요. 애석하게도 활동 범위가 겹친…….”
“소리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신호 같은 거라도 정할까?”
둘은 물 열 병을 다 채워 두고 불청객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박카스를 다 먹고 남은 병에 담는 것이지만, 수도마저 끊긴 뒤에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때는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되겠지.
수희는 습관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내다 눈살을 찌푸렸다. 절전 모드에 밝기 최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배터리는 거의 휘발되는 속도로 사라져 갔다. 너무 자주 핸드폰을 켜는 까닭이었으나, 누구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자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자주 구조 요청을 보냈으면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20퍼……. 충전기 못 찾으면 곤란한데.”
“내려가 볼까요?”
“한 층 정도만.”
둘은 몇 번이고 동선을 확인했다. 심지어 시간까지 맞췄다. 시계 초침을 보며 괴물의 이동 속도를 잰 다음 짠 계획이다. 이제 두 사람이 바랄 일은 신원 미상의 살인마라고 수희가 우기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뿐이다.
이유를 명확히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지호는 다른 두 사람보다 괴물의 기척을 먼저 느꼈다. 귀가 좀 더 밝거나 뭔가에 예민해서 그럴 터였다.
이유야 어찌 됐건 놈이 가까이 오면 좀 더 금방 알아챌 수 있으리란 명목으로 지호가 입구 부근에서 감시 역을 맡기로 했다. 둘 다 안쪽까지 들어가서 수색하다가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으니 역할 배분은 필수였다.
출발하기 전 지호는 샛별이와 인사했다. 다녀올게, 하는 평범한 인사다. 이번에는 신호를 맞추었다. 안전할 때, 위험할 때 딱 두 가지. 문을 잠그거나 여는 것 외에는 샛별이가 움직여야 할 필요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던 까닭이다.
샛별이는 지호와만 인사했다. 세 사람 있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싫어하니 가운데서 죽을 맛이었던 지호는 문 잠그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혀를 찼다.
“언니는 어른이 애하고 기 싸움 하고 그게 뭐 하는 거예요?”
“어른이라고 다 양보하고 이해해 줘야 하나? 네가 당근 나는 채찍.”
“다섯 살한테 무슨 채찍이에요.”
“조용히 하고 움직이자고.”
수희가 먼저 중앙 계단 방향으로 향했다. 이쪽은 문이 잠긴 상가뿐이다. 주상 복합 단지가 4단지나 있는데, 아래 상가층은 전부 연결되어 있어 다닐 곳이 생각보다 많고 넓었다.
“여긴 1단지야. 괴물이나 신원 미상자가 상가 내부를 전부 훑으며 돌아다닌다면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빠듯하게 잡아도 15분. 그러니까 이쪽 통로로 내려가서 딱 세 곳만 뒤지자. 알았지?”
“루트가 일정한지 좀 더 관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툭 나타나고 그러면 어떻게 하죠?”
“불길한 소리 마. 그리고 더 기다리면 내 배터리가 아작 나. 플래시 써 가면서 찾을 수 있을 때 충전기 찾아 오는 게 낫지.”
첫째 목표는 식량, 둘째 목표는 충전기다. 건물 외벽에 생존자 표식을 묶어 놨으니 차후 수색할 때 이쪽을 확인할 것이니, 지금 급한 건 그때까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음식들이다. 충전기는 있으면 좋았고 없어도 좀 아쉬울 뿐, 당장 급하진 않았다.
일자로 펼쳐진 두 개의 건물이 이어진 다른 건물들과 달리 1단지와 4단지는 기역 모양으로 꺾인 부분이 있다. 딱 꺾이는 지점까지만 확인하기로 한 두 사람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층은 위층보다 덜 부서져 있었다. 그러나 한 층 내려온 만큼 해삼의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위치였다. 가끔 크기가 큰 개체는 삼사 층까지 촉수를 뻗곤 한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지호는 바짝 긴장한 채 발소리를 줄였다.
“여기 내려왔었어요?”
“아니. 1층 갔었다가 도망은 다시 주거층으로 갔었고, 마지막에 뛰어 내려와서 바로 5층으로 빠졌어. 진짜 쉿.”
긴장 때문에 아무 말이라도 내뱉으려는 입을 막으며 지호는 다시금 숨을 죽였다. 홀로 도로에서 눈을 떴을 때와는 달리, 옆에 누가 있다는 건 색다른 긴장감을 선사했다.
처음 두 가게는 잠겨 있었으나 세 번째는 열려 있었다. 애들 다니는 보습 학원이다. 책상 아래를 확인하자 이번에는 규격 맞는 충전기가 나왔고, 수희는 기쁨을 숨기지 않으며 다른 곳도 꼼꼼히 확인했다. 먹을 것도 몇 개 있었다. 냉장고에도 가져갈 것이 있었고, 두고 간 듯한 가방도 하나 더 생겼다.
고작 며칠이지만 먼지가 꽤 쌓인 탓에 여기저기 좀 뒤지자마자 곧장 손이 시꺼메졌다. 무릎에 손을 닦은 지호는 몸을 일으키다가 섬뜩한 느낌에 움직임을 멈췄다.
반드시 외워야 하는 영어 단어가 알파벳 순서대로 나열된 벽면 위로 낯선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던 지호는 머리 속을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가까스로 눈을 굴렸다. 촉수였다. 창문 근처에 해삼의 촉수가 길게 뻗어 와 있었다.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을까 두려워 입에 침이 고이는데도 가만히 멈추어 있던 지호는 그것이 느릿하게 창문 부근을 배회하는 것을 강제로 관찰했다. 자세가 어정쩡해 몸이 쑤셔 왔다.
얼핏 보면 고무호스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촉수다. 그러나 바람에 주변 풍경이 흔들리며 소음을 내면 벌새 날개처럼 진동하며 흔들렸고, 지호는 여길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갈등했다. 촉수가 유리를 깨고 들어와 그들을 공격하면 어떻게 할까. 경계하던 상황이지만 진짜로 맞닥뜨릴 거라곤 생각지 않아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지호를 부르려고 이쪽 교실로 머리를 쑥 내밀었던 수희는 똑같이 굳었다. 지호는 보았다. 그의 표정이 경악에서 공포, 이윽고 결심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수희는 뒤로 손을 뻗어 잡히는 것을 아무거나 집었다. 작은 컵이었다. 샛노란 플라스틱 컵.
컵은 호선을 그리며 부웅 날아갔다. 지호가 있는 교실은 아니었지만, 그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를 향한 동선.
동시에 지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컵 떨어지는 소리가 곧, 출발 신호가 되었다.
유리가 와장창 깨졌다.
실내를 습격해 들어온 촉수 다발이 사방을 할퀴고 뜯으며 진동했다. 다른 소리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다. 촉수는 곧장 두 사람의 발소리를 쫓아 복도로 돌진했다.
다행히도 길이가 길지 않다. 학원을 채 빠져나오지 못한 촉수가 위이잉 기묘한 진동과 함께 물러났다.
“올라가야 해!”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 촉수가 다른 방향으로 방향을 트는 걸 느꼈으니까. 지호는 자기가 왜 그걸 감지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수희에게 달려들었다.
“그쪽은 안 돼요!”
“뭐? 이거 놔! 씨팔 미쳤냐?”
지호가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진 탓에 수희는 몇 걸음 가지도 못했다. 험악한 얼굴로 지호를 패대기치려 한 수희는 지호의 손을 쥔 자세 그대로 굳었다. 계단 방향 유리가 일제히 깨지며 촉수 서너 다발이 복도를 훑은 탓이었다.
“저쪽, 저쪽으로 가야 해요!”
“너 왜 이렇게 힘이 세, 미친! 여긴 누가 내려오자고 했어! 그냥 배터리 다 닳을 때까지 있을걸!”
“떠들 시간 있으면 뛰어요!”
분노 섞인 욕설과 함께 둘은 어쩔 수 없이 달렸다. 해삼의 촉수는 삼 층 높이 전체를 뒤져 소리의 진원을 찾으려는 것처럼 펄떡였다. 옆에서 수희가 씨발 씨발을 호흡 뱉는 때마다 토하는 바람에 그게 다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꺾이는 복도에 도착한 건 십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다. 방향을 틀 시간이 없어 벽에 몸을 박아 버린 둘은 다급히 몸부터 틀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지호는 현실성 없는 풍경에 잠시 생각했다. 바깥에서 그들을 잡으려고 촉수를 뻗어 대는 해삼의 움직임은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고작 몇 초 내달려 닿을 거리에 가까이 있는 이 사람은 왜 알 수 없었지?
남자의 입이 열렸다.
“공수희.”
입 안이 붉었다.
“죽인다.”
지호는 몸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려 오자 당황했다. 본인이 떠는 것이 아니었다. 곁에 바짝 붙어 있던 수희가 떨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편 계단에는 괴물의 촉수, 이쪽 복도에는 적대감 가진 사람.
“누군지 모른다면서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죽인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에 반해 남자의 움직임은 보잘것없었다. 다리를 절고 있었고, 뒤에 찍힌 자국은 그가 상처 입은 상태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수희는 꼼짝을 못했다. 이상할 정도로 두려워하는군. 지호는 수희의 등짝을 철썩 쳤다.
“언니!”
수희는 아예 주저앉아 버렸다. 지호는 일전에 이런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균열 피해자 중에서도 정신 계통의 괴물들에게 당한 사람들이 이런 상태였다.
지호는 빈민가에 살았고, 균열에 당했으면서도 보상받기는커녕 삶의 굴레에서 튕기어 나와 하루하루 생존하기도 급급한 사람들 틈에서 생존해 왔다. 수희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균열에게 가족을 잃었지. 그러나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위해, 지호는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 때문에 수희가 맛이 갔고, 지호는 지금 다른 사람 하나 더 챙겨 가며 도망치거나 생존할 여력이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멀지 않은 비상구에서 문을 쾅 두드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엎친 데 덮치고 난리가 나는군. 지호는 수희에게 손 뻗는 남자의 팔을 철썩 쳐 냈다.
“꺼져요.”
죽인다고, 혹은 죽이리라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의 그르렁거림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쪽도 저쪽도 멀쩡한 놈이 없었다. 그 와중에 지호는 차분했고, 차분한 자신에게 놀랐다.
해삼의 촉수 역시 꾸준히 그들을 향해 가까워졌다. 촉수 달린 본체가 아래에서 이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건물로 들어오는 최악의 사태가 다가오기 전에 피해야 했으므로 지호는 수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생전 남을 그렇게 세게 차 본 적이 없었다.
“악!”
효과가 있긴 했다. 지호는 균열 생존자의 딸린 가족이 어떤 식으로 넋 빠진 생존자를 데리고 살아가는지 오래 보아 왔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픈 고통을 느끼게 하면 된다. 우선은 돌아온다. 나중이 문제지.
“씨발, 뭐야!”
“저 사람이 언니 이름을 알아요. 왜 모른다고 했어요? 뭐 하는 상황이에요, 이게?”
정신 멀쩡히 차리고 있던 지호조차 알지 못하는 사태를 수희라고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답게 욕설을 걸쭉하게 토해 낸 수희는 남자가 뻗는 손에서 멀어지기 위해 몇 걸음 더 물러났다.
“닿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인데.”
느낌. 웃긴 소리지만 균열에서 저 느낌이 생존자들을 많이 살렸다. 생존 수기를 열심히 읽어 온 지호는 수희의 말을 간과하지 않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사실 저 남자를 사람이라고 칭해도 되는지 아까부터 아리송하던 참이었다.
“뭘 먹었을까요?”
“뭐?”
“입 말이에요. 저 사람 입이.”
남자의 입은 말할 때마다 찐득한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검붉은, 흡사 피를 연상시키는 느낌의 액체였지만 그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뭘 먹은 걸까. 아니면 사람이 아닌가.
“공수희…….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