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5화 (6/260)

5화

둘은 숨 가쁘게 달려 건물 내부를 한 바퀴 돌았다. 다시 마사지 숍 앞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였다. 괴물의 소리와는 멀어진 상태지만, 쉬지도 못하고 계속 쫓기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지호는 문을 한 번 더 흔들어 본 다음 안쪽에 말을 걸었다.

“샛별아. 우리 왔어. 충전기는 못 찾았는데, 빵이랑 음료수는 찾았어.”

“그딴 말로 문이…….”

달칵. 잠금쇠가 열렸다. 수희의 눈이 동그래졌고, 열린 문틈으로 눈물 젖은 샛별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호는 서둘러 안으로 뛰어들었고, 자기가 쓴 종이를 꼬옥 쥐고 있는 샛별이의 원망스러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언니도 나를 버리고 간 줄 알았어.”

“아니야. 먹을 거 찾으려고. 네가 배고프댔잖아.”

“엄마가 안 일어나는데 언니도 가면 나는 어떻게 해.”

수희가 들어오며 문을 잠갔다. 지호는 쪼그리고 앉아 샛별이와 눈을 맞추었다. 동생이 있어 본 적은 없는데, 동생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작은 미움 때문에 둘을 죽일 뻔한 걸 알기는 할까. 아무것도 모르겠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서 미안.”

“엄마가 문을 꼭 잠가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잠갔는데. 괴물 소리 멀리서 나서 방에 숨었어. 엄마가 숨으라고 했었어. 근데 언니 소리 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 괴물 갔어?”

“우리가 저세상 갈 뻔했다, 꼬맹아.”

수희는 욕을 참는 얼굴로 빵을 바닥에 던졌다. 샛별이는 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지호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 작은 머리통이 이상하게도 지호를 차분하게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샛별이는 짐일 것이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발목을 잡고 방해가 될 뿐인 짐.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작은 아이를 위해 음식을 찾고, 충전기를 찾고,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면서 지호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다.

일상적인 감각을 되새기면서 죽음을 맞이하던 그 순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고, 그것이 샛별이 덕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상황일수록 사람답게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이 무너지고 질서가 어지러워져도 규칙을 지키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들의 발버둥이 그들을 사람으로 만드니까.

지호는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상기했다. 그의 다리를 놓은 샛별이가 작은 손으로 빵 봉투를 찌익 뜯는 것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건, 어린아이가 아이가 할 법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화내거나 짜증 내는 것은 어른이 할 일이 아니라는 가르침 또한 떠올린 까닭이다.

샛별이는 똑똑한 아이지만 그 나이에 맞는 행동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엄마가 한 이야기를 열심히 지키는 다섯 살. 그래서 수희가 한 소리 퍼부으려는 걸 열심히 막았다.

“너 문은 왜 잠갔어? 우리가 우리만 좋자고 나갔다 왔어?”

“애잖아요, 언니.”

“애라고 다 봐줘? 우릴 죽일 뻔했어!”

“이야기하고 다녀왔어야 했어요. 샛별이 써 놓은 거 봤어?”

샛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종이를 돌려주었다.

“기, 아, 게.”

수희의 분노가 누그러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금세 이해한 까닭이다. ‘충전기 찾아 올게.’라는 간단한 문장에서 저 세 글자밖에 읽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음, 충전기 찾아 온다고 써 놓은 거야. 네가 못 읽을 줄 몰랐어.”

“어려운 글자 아직 몰라…….”

“그럴 수 있지. 언니가 글자 가르쳐 줄까? 우리 헌터들 올 때까지 글자 공부하자. 어때?”

샛별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희는 박카스를 하나 원샷 하고는 투덜거리며 나머지를 냉장고에 넣었다. 전기 설비가 아직 멀쩡하게 유지되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이건 씨, 아오.”

수희가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샛별이는 둘의 눈치를 보더니 지호에게 소곤거리며 질문했다.

“아까 무서운 소리 났잖아. 밖에서.”

“무서운 소리?”

“쾅 하고.”

아마 비상구 철제문에 뭔가 부딪혀서 났던 그 소리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지호는 애매한 얼굴로 말을 아꼈다.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도 되나? 다른 괴물이 또 있다는 말로 괜한 두려움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거, 뭐에 걸려서 넘어진…….”

“엘리베이터에서도 그 소리 났었어.”

“응?”

“엄마 다칠 때도. 쾅 하고.”

지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전기가 멀쩡하니 동작할 수도 있겠지. 수희는 놈이 머리 좋은 개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말고 한 명이 더 살아 있다고도 했었고.

“아까 문 못 연 거는, 소리 또 나서 그랬던 거야.”

“무슨 소리? 쾅 하는 거?”

샛별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람 소리. 근데 나쁜 말 계속했어. 죽인다고 계속 그랬어. 그래서 얼른 잠갔어. 미안해.”

지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진 정보가 한정적인 탓에 그의 머릿속에는 수희와 함께 있었다는 사람 정도나 떠올랐다. 며칠을 함께 의지하며 살아남은 사람일 텐데, 수희에게 말해야 할까? 하지만 죽인다고 말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멀쩡할 리가.

두 사람이 수색한 가게들은 문이 깨져 있거나 잠금쇠가 고장 나 숨을 수 없는 곳들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몸을 숨겼을 것이다. 벽면 통유리 한쪽이 통째로 깨져 나간 가게도 있었다.

모든 곳을 꼼꼼히 살피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직 가게에서 가까운 곳들만 살폈고, 도망치면서는 잠금쇠가 멀쩡한 가게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 문 열린 곳을 찾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마저 모든 가게 문을 다 흔들며 달린 건 아니었으니 어쩌면 멀쩡한 곳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곳에 누군가 숨어 있었다면? 그리고 그게 멀쩡한 놈이 아니라, 죽인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놈이라면…….

“그런 놈 본 적 없는데.”

어느새 도로 나온 수희가 삐딱하게 서서 말을 받았다. 지호는 홍수처럼 쏟아지던 생각의 흐름이 끊기자 잠깐 멍청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혼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언니랑 같이 있었다던 사람 아녜요?”

“또라이긴 했는데, 미친 새끼는 아니었어. 그리고 아마 죽었을걸. 그 비상구로 튀었거든. 아까 왜.”

세 사람은 모두 같은 소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동시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가 소리치면서 뛸 때는요, 아무도 안 나왔잖아요. 열린 데도 없고. 우리 아까도…….”

“열어 줄 거면 진작 열어 줬겠지. 너네 같은 호구가 쉽게 있는 줄 아냐?”

“호구가 뭐야?”

지호는 어설프게 웃으며 샛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음.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그럼 다른 생존자가 더 있다는 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겠는데요. 뭔가 복수심을 가진 그런 생존자요.”

“죽인다고 중얼거리는 미친놈이 복도를 돌아다니는 중이란 말이지? 괴물하고 같이.”

위험한 정도는 후자가 압도적이겠지만, 수상한 정도로는 전자도 지지 않았다. 수희는 던져 둔 빵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우리 그냥 농성하자. 이거 아껴 먹으면서 헌터들 기다리거나, 균열 없어지길 기다리자고.”

“일반 균열의 자연 소멸 평균 주기는 이 주 정도인데요…….”

“빵 하나로 셋이 하루씩 먹으면 일주일은 더 버티겠네!”

하하하! 하고 억지웃음을 지은 수희는 에이 씨팔, 하며 지호의 입에 빵을 물려 주었다. 어차피 날짜 지나서 오래 못 놔둔다는 이유였고, 사흘이나 굶었을 텐데 움직일 체력이 필요하니 얼른 처먹으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지호는 입 안에 들어온 퍽퍽한 빵을 우물거리다 뒤늦게 눈을 흘겼다.

“근데 언니, 애도 듣는데 말 좀.”

“이런 험난한 시대 사는데 쟤도 알 건 알아야지.”

수희는 제 몫을 천천히 뜯어 먹으며 문을 노려보았다. 안마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버튼은 누르지 않는다. 소음이 걱정되어서였다.

“현대 사회는 이게 문제야. 이웃사촌이며 뭐며,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아무도 모르잖아. 혹시 우리 집 근처 사는 놈이 전자 발찌 찬 범죄자 새끼여도 알 수가 없다니까. 하물며 누굴 죽인다느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달고 다니는 새끼가 건물을 쏘다녀서야.”

수희는 욕설을 섞어 가며 온갖 불평을 쏟아 냈다. 샛별이가 몇 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볼 동안에도 비속어를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지호는 그 모습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동네에 수희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분노와 불평을 잔뜩 담고 돌아다니다가 뭐라도 건덕지만 잡히면 그걸 붙잡고 펄펄 뛰며 상관없는 곳에 화풀이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에 불만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 중에는 유독 균열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많았다. 지호네 동네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낯설게만 생각할 순 없었다.

“언니, 혹시 숨어 있던 며칠 동안 무슨 일 있던 건 아니죠?”

“일은 좆같이 많았는데. 이리 봐도 먹색이고 저리 봐도 쥐색인데 해가 뜨면 뭘 하고 달이 지면 뭘 해. 헌터들은 어디 기어들어 가서 안 나타나는데? 그놈들 세금 면제해 주는 거 다 돈지랄이야.”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이게 나라냐, 정부는 뭐 하냐 하고 욕하는 어르신들과 대화 패턴이 비슷했다. 지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웃기만 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경험상 맞장구치면 더 길어지고, 반박하면 노여워할 뿐이니 잠자코 있는 쪽이 차라리 나았다.

한참 분노와 욕설을 퍼부어 대던 수희는 목이 칼칼해져선 물을 한 병이나 비우고 난 다음에서야 말하기를 멈추었다. 그마저 목이 아프다는 이유 때문보다는 밖을 지나는 괴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였다.

질퍽대고 습기 가득한 소리가 복도를 느릿하게 지나친다. 연약한 유리문 자물쇠가 끼이이 소리를 내며 불길하게 밀리는 것을 보는 일행의 심정은 초조함 그 자체였다. 다행히 놈은 여태 그러했듯이 유유히 가던 길을 갔다. 목적 없는 배회였다.

그들이 놈의 목표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였기에 더 이상의 불평이 쏟아지는 일은 없다. 실내는 다시 고요해졌다.

* * *

지호와 수희는 돌아온 시간으로부터 한참 후에야 죽인다를 달고 다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혹시 사람같이 말할 수 있는 괴물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내놓았던 지호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사람이었다.

“그러게, 균열 내 괴물들끼리는 영역이 안 겹친다니까. 그리고 말할 줄 아는 괴물 같은 건 없어. 헌터 협회 발표 꼼꼼히 안 듣는구나? 요즘 세상에 젊은 애가 그러면 쓰나.”

“아녜요.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거죠. 이거 급성 균열이잖아요. 일반 균열보다 더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뭐 그런 거……. 그리고 비상구 그놈은 사실상 여기까지 내려온 거나 다름없는데 영역이 겹친 게 아니에요?”

“아무튼, 두 놈의 동선은 안 겹치잖아.”

“누구를 저렇게 죽인다고 말하는 걸까요? 보니까 괴물하고 이동 시간이 안 겹치고, 저 사람도 복도 지나가는 괴물은 피하는 것 같긴 한데.”

“어딘가에 여기처럼 숨을 데를 마련했든가 하겠지. 다른 층일 수도 있고.”

“본 적 없는 사람이에요? 언니 여기 살잖아요.”

“요새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아냐? 하물며 이렇게 큰 건물에 누가 사는지까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으면 이상한 거지. 남의 정보 수집하는 변태일 수도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