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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4화 (5/260)

4화

입구에서 지호가 본 해삼, 그리고 지금 아래층을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끈적거리는 녀석, 마지막으로 사람을 먹는 재빠른 녀석. 상층에만 있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교묘하고 머리가 좋다고 했다.

“그게 아래층에 있었으면 너네나 나나 못 살아 있어. 저 멍청한 놈이 밑에 있어서 다행이면서도…….”

철퍽거리는 몸체가 복도를 지나갔다. 문이 묵직하게 밀리며 놈의 통행을 알렸는데, 복도가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던 건 저 녀석 때문인 모양이었다.

“위층에서 겪은 지옥 같은 사흘을 다 설명하지는 않겠어. 끔찍했고, 엿 같았지. 함께 남아 있던 생존자들은 다 죽었고, 마지막 한 놈 하고 반대편으로 뛰어서 둘 중 하나가 살고 하나는 죽는 데 생을 베팅했어. 아마 내가 살았겠지. 그쪽도 살아 있으면 좋겠는데, 조용한 걸 보니 결론은 난 것 같아.”

들어서 변하는 것 없는 사실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 수희는 소리가 조금 멀어지자마자 잠긴 문을 열어 버렸다. 지호는 당황했으나 수희는 오히려 손짓하며 그를 불렀다.

“저거야. 소리에 집중해야 해. 보호색을 쓰거든. 뭐가 보이니?”

복도만 보였다. 아지랑이 같은 흔들림이 느껴지긴 했는데,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소리가 아니라면 거기에 뭔가 있다는 걸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도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나가려면 저걸 피하고 해삼을 통과하면 돼. 처음 말했던 쪽 입구는 못 가. 거기는 지나갈 수 없는 곳이야.”

지호가 그랬던 것처럼 수희 역시 설명을 피한다. 지호는 캐묻지 않기로 했다. 허스키하고 낮은 음색에 짙은 피로감이 묻어난 까닭이었다. 알게 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려 하는 태도는 교실에서나 이해받을 수 있다. 여기서는 아니었다.

“충전기를 찾을 만한 곳은 없을까요? 먹을 거 하고……. 샛별이가 배고파해요. 걔네 엄마 핸드폰도 충전해야 쓸 수 있고요.”

“네 건?”

“챙길 겨를이 없었어요.”

수희는 표정 없는 지호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의 어깨를 힘주어 눌렀다.

“무슨 일이 있었건, 괜찮아. 살았잖아. 살아 있으니까 됐어. 다른 건 구조된 다음에 고민해. 남들의 목숨을 짊어지고 살아남는 건 생존자들에게 당연한 일이야.”

아무래도 설명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마트에서 나타난 괴물을 유인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나온 게 아니라 그 괴물들에게서 홀로 살아남으려고 따로 도망친 것으로. 이외의 지옥들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타인의 목숨 위에 선 동지가 된 것으로 착각해 버린 모양.

그러나 오해를 풀 힘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지호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희는 핸드폰을 꺼내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를 확인하곤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열려 있던 데 꼼꼼히 뒤져서 충전기나 찾아보자. 여기 비워도 되나? 얘 깨서 우리 찾겠다고 나오진 않겠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샛별이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러냐? 친언닌 줄 알았네. 하긴 별로 닮진 않았더라.”

지옥이 된 세상에서 며칠 만에 처음 만난 사람이었을 것이고, 동시에 서로에게 그러했으므로 피차 마음을 활짝 연 까닭이 아닐까. 지호는 혹시 모른다며 큼직하게 충전기 찾아 올게, 하고 메모해 문 앞에 놓아두었다.

“문 잠그고 나가야죠. 그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놈이 돌아오기 전에 가까운 곳만 살피고 돌아오는 거야. 그렇게 오래 다녀올 여력이 어딨니? 얼른 가자. 시간 아까워.”

둘은 따로 다니지는 않기로 했다. 지호는 용기가 없었고, 수희는 고독을 두려워했다. 옆에 아무도 없으면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 고독감이 싫어서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인지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동네에 균열이 몇 번 터져서 집값이 좀 쌌어. 본래 같으면 지방에서나 살 수 있는 크기의 집이 이 가격에 나와 있으니 말 다 했지. 요새는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집값이 싼 거 아니? 사오 층이 로열층이 됐어. 여차하면 도망치기도 빠르고, 만약의 경우에 집 안에서 버티며 구조를 기다리기도 적합한 위치 말이야.”

“그렇군요.”

“균열 열릴 확률 높은 지역이란 건 좆같았지만, 괜찮아. 그 정도는 대피 경보만 제때 따르면 피할 수 있으니까. 이번 같은 이상한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아무도 예상 못 했지. 나도 알았으면 꼭대기 층을 사진 않았을 거라고.”

“저는 잘 몰라요. 저기 남촌동 살아서. 거기는 거의 시골이거든요. 아파트 작게 몇 개 있긴 한데, 소도 키우고 개구리 소리도 나고 뭐…….”

“그러니? 하긴, 장 보러 마트 왔다고 했지. 거기 터미널 지하 대형 마트? 거기가 가깝겠네. 근데 거기도 균열 열리는 동네 아니니?”

“대균열의 날에 아빠 돌아가시고 이사 갈 여력이 안 됐대요. 그래도 보상금 나와서 집 부서지고 바깥에 나앉지는 않았는데.”

수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균열의 날. 세상천지에 새로운 천재지변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해 지구 인류를 숭덩 깎아 먹었던 바로 그날이다.

전 세계에 균열이 발생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라, 많은 사람이 휘말리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자연적으로 균열이 소멸할 때까지 모두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살아남은 건 숨어서 아사하기 직전까지 떨고 있던 생존자들뿐이었는데, 지호네 아빠는 거기 없었다.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하나가 아빠 장례식에 찾아와서 덕분에 살았다고 펑펑 우는 모습이 기억났다. 엄마는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으니 그랬을 거라고 말했을 뿐.

타인을 원망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진 않는단다.

지호는 엄마의 말을 오래 기억했다. 그 사람을 돕지 않았다고 아빠가 살아 돌아왔을까? 그러기도 어려웠을 터.

“나는 그 이후에 생긴 균열에 가족들을 다 잃었는데, 대균열의 날 희생자들 외에는 별로 예우가 없었어. 보상금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괴물한테 죽은 것만 보상해 주고 시체 훼손도 검사하고 난리가 났지. 둘 다 균열로 가족을 잃었는데, 이제 우리마저 잃을 상황에 놓였네. 인생 기구한걸.”

수희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을 웃긴다고 키득거리며 잠긴 캐비닛을 걷어찼다. 열린 철제 캐비닛 안에는 돈 될 물건뿐이었다. 두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도움되지는 않을 것들. 그나마 가방으로 쓸 것을 하나 찾아낸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 어플로 헌터들이 진입했는지 알 수 있지 않나요?”

“진입했다고는 어제 떴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건 아니잖아. 그나마 일부 블록 수복인 걸 보긴 했어.”

“핸드폰이 사흘이나 버틴 거예요?”

“숨어 있던 곳에는 충전기가 있었어. 도망 나올 때 못 챙긴 거지.”

그럴 겨를도 없었다며 수희는 짧게 중얼거렸다. 한참의 침묵 속 수색 끝에 지호는 유통 기한이 하루 지나간 빵 몇 개와 미적지근한 박카스 한 상자를 찾았다. 충전기는 있었으나 다른 회사 기종 젠더로 충전되는 종류라 쓸모가 없었다.

“빌어먹을. 왜 세상이 이따위가 되었는데도 핸드폰 충전기가 통일되질 않은 거야?”

충전기를 바닥에 내던진 수희는 씩씩거리며 다른 칸을 확인했다. 그러나 새 충전기는 없었다. 두 번 뒤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던진 걸 가방에 챙긴 지호는 눈치를 살피며 덧붙였다. 샛별이 엄마 핸드폰에 맞을지도 몰라서요.

먼 곳에서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났다. 대형종이 나타나면 진짜 곤란해진다. 건물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두 사람 모두 뻣뻣하게 굳은 채 소음이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가까운 데서 들리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래층에 다녀올 여유가 있을까요?”

“왜?”

“올라오면서 1층에 편의점 있는 걸 봤어요. 해삼만 좀 피하면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요?”

“1층은…….”

수희는 얼굴로 거부를 표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둘은 결국 의견을 달리한 채로 처음 가게로 돌아왔다. 놈의 소리가 꽤 근접해 온 까닭이다. 그런데 입구에 도착했을 때 둘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문이 잠겨 있었다.

“샛별아?”

대답이 없었다. 문도 열리지 않는다. 놈의 소리는 가까워지고, 허옇게 질린 수희는 욕설과 함께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호도 그를 쫓아 뛰었다. 놈의 소리는 빠르지는 않지만, 일정하게 뒤를 쫓았다.

“뭐죠? 왜지?”

“일어났더니 자기뿐이잖아. 버리고 갔다고 생각한 거군.”

“써 놓고 왔잖아요!”

“다섯 살이라며. 글자 못 읽는 거 아니야?”

지호는 외동이었고, 친척 중에서도 저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 없어 다섯 살이 글을 읽지 못하는 나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 멍청한 표정을 본 수희는 지나는 모든 가게 문을 열어 보려 시도하며 욕설을 토해 냈다.

“이쪽 비상구…….”

“그 문은 안 돼!”

수희는 닫힌 철문을 쥔 지호의 손을 거칠게 붙들었다. 지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붙잡혀 끌려갔고, 달리는 내내 열린 문이 없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씨발, 씨발!”

그러고 보니 수희가 밖에서 욕하며 달리던 걸 안으로 들였던 게 지호였다. 이렇게까지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대피해 버릴 만큼 균열에 익숙한 사람들의 동네인 까닭도 있겠지만, 숨죽인 생존자들이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살려 주세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놈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점과 1층 입구의 해삼이 올라올 수 있다는 점이 언제 충돌해 둘을 찢어 버릴지 알 수 없으나 지호는 소리 높여 외쳤다. 허스키하고 중성적인 수희의 목소리와 달리 지호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여자아이 목소리다. 동정심을 가진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었다. 아니면 수희가 경고했던 나쁜 상황이라도.

그러나 당장은 괴물에게 뒤를 밟히는 꼴이다. 숨을 곳도, 쉴 곳도 없이 무작정 달리기만 하면서. 지호는 이 상황이 너무 두려워 다른 층으로 내려가는 또 다른 비상구를 발견하자마자 수희를 불렀다.

“언니, 내려가요. 내려가자고요!”

“안 돼. 이 층이 제일 안전하단 말이야!”

“하지만 저게…….”

텅! 비상구 철문에 뭔가 부딪혔다. 지호는 깜짝 놀라 입을 닥쳤다. 수희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괴물의 속도가 느린 덕에 소리와 멀어지자 조금 안심이 됐다.

“뭐죠?”

“안 된다고 했잖아.”

수희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쓰러질 것처럼 허옇게 질려 있었다. 지호는 수희가 해 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위층에 있었다는 괴물이 혹시…….”

“손이 있는 놈이 아니야. 문을 열 만한 부속지가 달려 있진 않았어. 못 열 거야. 근데 우리도 못 내려가.”

“비상구에 가둬 놓은 거예요?”

“다른 멍청한 놈이 비상구를 통해 내려가려고 시도하지만 않으면 비상구 계단에 갇힌 채로 균열 없어질 때 같이 사라질 거야.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도할 텐데, 그 사람의 생존을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놈하고 나하고 다 같이 뒈지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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