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물이 약간 차 있는 페트병. 혹여 멀리 날아가지 않고 지호 앞에 떨어지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해삼보다 빨리 뛰어 도망치는 수밖에. 그러다 거미들을 만나면 두 번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방법이 달리 없었기에 지호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해삼의 촉수가 작은 소리의 진원을 찾지 못해 조금 얌전해진 다음. 도시가 다시금 고요 비슷한 것을 되찾아 갈 때 그는 자세를 잡았다.
몸을 웅크려 팔을 귀 아래로 내렸다가, 있는 힘껏 뻗는다.
페트병이 붕 날아올랐다. 지호는 경악했다. 그가 생각한 거리가 아니었다. 해삼의 높이를 훌쩍 뛰어넘어 잘 보이지도 않는 위치까지 날아가다 도로 표지판에 부딪쳐 투당탕 소리를 내며 도르르르 굴러갔으니까.
놈의 촉수가 다시 혼란스럽게 움직였다.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유도한 곳보다 훨씬 멀었다. 놈의 거체가 천천히 페트병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호 역시 살금살금 입구로 이동했다. 혹여 촉수 닿는 곳에 들어갈까 두려워 식은땀이 다 났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발에 채는 것도 달리 없었다. 지호는 속으로 환호하며 다급히 건물 입구에 들어섰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혹은 문을 잠그러 내려올 사람이 없거나.
생존자 표식이 거짓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계단을 올랐다. 오 층. 괴물에게 생활 소리가 들리지 않기 적당한 높이는 삼 층 이상이다.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를 기원하며 해당 층에 들어선 지호는 바깥과 마찬가지로 문에 감아 놓은 생존자 표식을 보고 울 뻔했다. 벌써 안도감이 밀려왔다.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그리고 다시 짧게 세 번. 흔한 모스 부호지만 이제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식별 신호다. 사람인 것도 알았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사람이어야만 반응할 것이다.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내민 건 어린애였다.
“어, 아, 안녕?”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조금 더 열어 주었다. 들어오라는 뜻이겠지. 지호는 들어가자마자 나는 이상한 냄새에 당황했다. 정말로 지독한 냄새였다.
“이게 무슨…….”
“엄마가 안 씻어서 그래. 맨날 씻어야 한다고 했는데 엄마가 안 씻어서.”
아이는 주눅 든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을 도로 잠갔다. 무슨 소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파리와 벌레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래층 입구에 있던 해삼이 들은 건 벌레 소리였을까? 정확히 알 수 없다.
딱딱 부딪치는 소리에 지호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게 제 입에서 나는 소리란 사실에 더욱 당황했다. 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휘저어 벌레를 쫓았다. 엄마가 안 씻어. 들리는 말 중에 제일 잘 들리는 건 그거였다.
본디 마른세수여야 할 문지름이 눈물 때문에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지호는 아이를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았다.
“못 씻어……. 너네 엄마는…….”
차마 죽었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지호는 자신 역시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꾸준히 인지해 왔다. 죽음의 순간은 긴장을 풀 때마다 지호를 덮쳤고, 그 기억들이 자꾸 등을 떠밀었다. 다시 죽기 싫으면 움직여. 또 죽기 싫으면, 살려고 발버둥 쳐.
그렇기에 죽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호가 그러했듯, 아이의 엄마도 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
그러나 옆구리가 터져 튀어나오려는 내장을 밀어 넣지도 못한 채 죽어 있는 시신 앞에서 그 말을 도무지 꺼낼 수가 없었다.
“언니도 냄새난다.”
아이가 품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지호를 밀어 품에서 빠져나온 아이는 욕실을 가리켰다.
“저기서 씻어. 물 있어.”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었던 탓일까. 지호는 순순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가 숨어 있던 곳은 작은 마사지 숍이었다. 조그마한 욕실이 딸려 있고, 아이 엄마는 입구 근처에 죽어 있었다. 안쪽으로 있는 욕실 두어 칸, 물 받을 만한 곳마다 물이 담겨 있었다. 먼지가 둥둥 떠 있는 것을 보니 떠 놓은 지 조금 된 물이었다.
“아직 물 나와. 근데 엄마가 받아 놓으랬어.”
“수건 묶어 놓은 것도?”
“유치원에서 배웠어.”
꼬질꼬질한 행색이 무색하게 똑똑한 아이였다. 아이는 엄마 말대로 물을 받아 놓고 배운 대로 수건을 묶고, 문을 잠근 뒤 엄마가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했다고 했다. 아이를 두고 죽으며 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는 지호야. 이지호. 너는 이름이 뭐야?”
“함샛별. 예랑 유치원 장미반이야.”
“혹시 핸드폰 있어? 네 거나 엄마 거.”
“엄마 거 있어. 근데 배터리 없는데.”
충전기는 상가를 뒤지면 나올 것이다. 지호는 안도했고, 샛별이의 손을 꼭 잡으며 애써 웃었다.
“괜찮아. 충전기 찾아보자.”
“근데 언니 나 배고파. 엄마는 안 일어나고, 여기 있던 과자 다 먹었어.”
지호는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다 녹고 뭉개진 초콜릿뿐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먹을 걸 좀 더 챙길걸.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해삼을 만나면 나가거나 들어갈 수도 없고, 자칫 녀석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게 될 수도 있었다. 곤란한 일이다.
“혹시 밖에 나가 봤어? 상가에 다른 사람들이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에 생존자 표식이 남아 있진 않았다. 정말로 건물이 비었거나, 아니면 건물 안에 들어온 괴물이 있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후자라면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아이도 그것 때문에 문을 잠갔을 수도 있었다.
“엄마는, 저기, 엄마 다쳐서 주무시잖아. 어디서 다쳤어? 나가려다 그런 거니?”
샛별이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상가 안쪽을 가리켰다.
“엘리베이터에서 괴물 나왔어. 엄마 옆 사람한테 달려들었는데 엄마도 같이 다치고. 계단으로 도망가는 사람들 쫓아가서 지금은 어딨는지 몰라.”
애석하게도 아니길 바랐던 추측이 사실이었다. 지호는 표정을 관리하려 애쓰며 조심스레 물었다.
“밖에 안 나가고 계속 여기 있었어?”
“밖에 무서운 소리 나. 엄마가 여기 있으면 헌터들이 데리러 온다고 했어.”
지금은 신호가 꺼졌지만, 핸드폰이 꺼지기 직전까지 균열 어플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던 모양이었다. 자기가 죽기 전에 아이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있길 바랐겠지.
“언니. 엄마 일어나면 이제 나갈 수 있어? 언니도 왔는데 헌터는 언제 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지호는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래도 지호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언니도 왔으니까 헌터들도 금방 올 거야. 우리 배터리 찾아볼까? 여기 안에 다 찾아봤니?”
샛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 키가 작아 손 닿지 않는 곳이 더러 있었을 것이다. 수납장이나 서랍, 걸린 옷 주머니 같은 곳을 뒤지다 보니 간식거리가 좀 나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온 과자를 다 자기에게 주자 샛별은 지호의 눈치를 보면서도 과자를 뜯어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며칠이나 굶었을까. 시신이 이렇게 부패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하지?
샛별이 엄마의 시신에 가운같이 생긴 것을 덮어 둔 지호는 벌레나 냄새가 조금 덜해지길 바라며 창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이렇게 덮어 두기만 해도 조금 냄새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저 기분뿐이겠지만.
지호는 자기가 아는 것이 얼마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아는 것이라곤 복도에 괴물 한 놈, 혹은 그 이상의 개체가 돌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충전기를 찾지 못했다. 지호의 손에 들린 건 전원 나간 핸드폰 하나뿐이다. 결국,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지호가 건물로 들어올 때도 그랬지만, 5층까지는 조용했다. 5층 위로는 가정집인 주상 복합 건물이다. 위층부터는 상가가 아니라 가정집들이 있을 것이고, 괴물을 피하기는 조금 더 좋은 환경일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찾기에는 나쁘겠지.
요즘 사람들, 그것도 균열이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균열 시의 방범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소한 잠겨 있기라도 할 것이며, 그런 집이 즐비한 복도에서 괴물을 만나게 되면……. 지호의 몸이 파드드 떨렸다. 끔찍한 상상이다.
과자를 다 먹은 샛별이가 아쉬운 얼굴로 손가락을 빨았다. 배가 찰 양은 아니다. 오랫동안 굶었다면 더 그렇겠지.
“언니, 쉬잇.”
갑자기 샛별이가 지호의 옷자락을 꾹 말아 쥐며 검지를 세웠다. 왜 그러냐고 물을 이유는 없었다. 익숙한 고요가 낯선 소음으로 채워졌으므로.
복도에서 철퍽, 하는 소리가 났다.
샛별이에게서 떨림이 옮겨 오는 건지, 아니면 지호 본인이 떠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멀지 않은 지역 안에 세 종류의 괴물? 듣도 보도 못한 패턴이었다. 하기야, 급성 균열에 관해 지호가 아는 거라곤 그 안에 휘말렸다간 죽은 목숨이란 사실뿐이다.
괜찮아. 지호는 입 모양으로 샛별이를 안심시키며 귀를 기울였다. 젖은 발소리 같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벽이건 바닥에 진득하니 붙었다가 쩌억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지호를 찢어 죽인 뱀 같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모르는 종류다.
아는 것이어도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이 없는데 하필이면. 지호는 입술을 짓씹으며 숨소리마저 죽이려고 애썼다. 문 부근을 지나갈 때는 철퍽 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잠긴 문이 끼익 소리와 함께 밀렸다.
샛별이가 심하게 떨었으나 다행히 소리는 내지 않았다. 며칠을 홀로 버티는 동안 그래야 한다는 걸 체감했을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호는 아이의 어깨를 꽉 붙잡고 놈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속도가 빠르지 않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빠르지 않은 건지, 본래 그런 속도로 움직이는 놈인지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놈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때쯤 되어서야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으아아 씨발, 씨발! 씨발! 살아 있는 사람 어디 없어? 없냐고!”
지호는 경악했다. 균열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 자살행위다.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부근에 있는 사람 다 뒈지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다름없는 동반 자살. 샛별은 험악한 욕설에 당황하며 지호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 엄마가 조용히 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으나 점차 가까워진다. 불을 끄고 나갈 정신이 없어 형광등을 훤히 켜 놓은 가게가 많았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런 가게들을 전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문은 제대로 잠갔다. 가게 문이 크게 흔들렸으나 열리지는 않았다. 저런 충격으로 열릴 정도였으면 좀 전에 괴물이 지나갔을 때 진작 열렸을 것이다.
바깥 목소리는 험악하게 욕을 뱉다가 이제는 울기 시작했다. 살려 달라고. 살아 있는 사람 없냐고. 위층에는 아무도 없다고. 다 죽어 버렸다고 하는 말을 한창 듣고 있던 지호는 샛별이를 내려다보았다. 수건이 걸려 있었을 텐데 왜 문 앞에 더 오래 머무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