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155화 (155/157)

00155 -CHAPTER 스완.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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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집중적으로 눈을 두니 의심스러운 낌새는 약 한 달 만에 찾아낼 수 있었다.

천으로 물건을 닦는 것은 그리 의심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세 차례 닦고 난 자리에 물기 같은 것이 묻어있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에스메의 침실. 물기 없어야 하는 자리를 쓸어본 손을 그녀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색, 무취다. 만일 이게 독이라면.

가문의 마법사나 의사에게 연구를 맡기면 당연히 시부나 에스메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스완은 그 손을 그대로 두고, 왼손으로는 손수건을 들고 탁자를 닦았다. 그대로 마차를 타고 외출하여 한 신전을 찾았다. 그녀가 기억을 되찾았을 때 찾았던 신전이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대신관이 있기를 바랐으나, 기억을 되찾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등의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 때가 아니기 때문인지 대신관은 없었다.

대신관이라면 이것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다른 신관은 아니다.

연구할 사람을 찾는 것은 감시자들을 찾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스완은 그것을 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죄를 짓고 있을 수도 있으니 감시를 늦춰서는 아니 되겠으나, 일단 이것은, 독이다.

하면, 독을, 접촉으로.

스완은 곰곰이 생각했다. 같은 병증으로 죽은 시부, 남편, 딸아이. 거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였음에도 남편과 딸아이는 사망하였는데, 그녀는 죽지 않았었다.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피부를 통해 육체 안으로 흡수되어야 하는 독을, 온몸을 얇게 감싸고 있던 마나가 막은 것이다. 독을 마셨다면 여지없이 죽었겠으나 접촉은 달랐다. 이는 같은 마법사가 아닌 이상 모를 사안인지라 그녀를 죽이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스완은 그날부터 누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심하며 하나하나 물건들을 닦아 나갔다. 닦고, 비슷한 물건으로 새로 들여오고.

그리고 살롱에서 만난 여자에게 경고했다.

“날 죽이고자 하는 독은 효과가 좋으나, 영애는 사람을 잘못 썼어요. 그 청년은 영애의 사람이 아니라 라이네의 사람, 내 도련님의 사람이지. 도련님은 날 죽이고자 하는 영애와 그 청년의 손을 빌려 내 남편과 내 아이를 독살하는 중이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부인.”

“영애가 남의 남편에 눈 뒤집혀서 지랄하고 있는 동안, 내 남편은 영애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에요.”

괜히 현 황제가 스완을 망아지라 불렀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완은 점점 지쳤다. 홀로 싸우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도 힘겨운 것이었다.

부집사의 아들을 즉시 쫓아내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도련님이 멈추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새로운 자로 바뀐다면 오히려 그녀는 어떠한 대비도 할 수 없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처음부터 알고 있긴 하였으나, 비효율적이었다.

언제까지 독을 닦아내고 경계해야 하지?

평생?

지친 저 사람들이 더는 독을 접촉하게 두지 않고 섭취하게 하면 어떡해야 해?

더는 안 되겠다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더라도 에스메에게 말하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동생이 이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걸 알면 그는 슬퍼하겠지. 많이도 괴롭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죽는 것보다는 낫다.

스완은 두 사람의 죽음을 또 겪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마지막으로 망설이고 있던 어느 날에, 도련님이 죽었다 하는 비보가 들려왔다는 사실이다.

현실감이 없는 것도 처음뿐이었다. 그녀는 기요트 변경 백작의 여식이었고, 하여 보기보다는 훨씬 강인했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죽음은 수백 번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사랑하는 남편을 지켜야 하는 아내였고, 사랑하는 딸을 지켜야 하는 어미였다.

스완은 마냥 마음 놓지 않았다. 의문이 일단 풀려야 한다.

방을 맴돌며 생각했다.

당당하게 살아서 공작위에 올랐던 건강이다. 뭐가 달라져서? 전과 뭐가, 달라져서? 병에 걸렸을 리가 없다. 그럼 무슨?

-내 남편은 영애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에요.

스완은 멈추었다.

*

그녀는 부집사의 아들을 쫓아냈다.

시부는 나이가 있었고, 그녀가 살갑게 다가가 무슨 조치를 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주변에 대해 무르지도 않았다. 이미 건강이 나빠진 뒤였던 시부는 결국 사망했다. 에스메는 공작이 되었다. 그는 살아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스완은 행복했다.

그리고 딸아이의 유모와 함께 산책도 할 겸 디자이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아마, 그녀가 마차 타고 다니는 걸 즐겨 하고 산책을 싫어했다면 그런 식으로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집사의 아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지나가서, 그녀의 시야 안에서 그 여자와 만났다. 저것은 또 웬 해괴한 짓거리인가. 아직도 만날 일이 있어? 잊고 있던 공포가 올라왔다. 보란 듯이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부인!”

정신없이 골목까지 쫓아온 상태였다.

아차했다.

준비된 왈패들이 그 여자와 청년과 기다리고 있었다. 스완은 굳었다. 심장이 발끝까지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명치가 비었다. 기사. 기사가 와야 하는데. 왜 하필이면 오늘 기사에게 심부름을 맡긴 걸까.

눈이 붉어질 것 같았다. 울면 안 된다. 살아남아야 해.

그러나 만약 죽어야 한다면.

스완은 덜덜 떨리는 입술을 물고 눈을 부릅떴다.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기요트 변경 백작 가문의 핏줄이다. 그리고 라이네 공작 가문의 안주인이다. 스완은 힘을 끌어올려 방긋 웃었다.

“……아, 돌겠네. 아직도 포기를 못 했나.”

“…….”

예상 밖의 반응이었을까. 여자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품위 없는 여자.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 여자. 감히 에스메를 탐냈던 여자. 아직도 미쳐서 에스메를 사랑하고 있는 여자. 에스메 죽일 생각 없이 스완만 죽이려 하였다가 도련님은 에스메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도련님을 죽인 여자.

에스메를 사랑하면서 도련님과 관계를 가져 왔던 여자.

너, 미친. 여자.

“짐작은 했었는데, 너 진짜 무서운 사람이구나. 사람을 죽이는 데 한 치 망설임도 없던?”

그리고, 그에 비해 스완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다. 무섭다. 두려웠다.

그래도 버티고 서 있던 그녀는 자신을 쫓아온 에본느의 유모가 제 등 뒤에서 베여 죽는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마자 몸이 휘어 잡혔다.

라이네를 섬기던 자가 그녀를 뒤에서 잡고 있었다. 여기서 죽나.

마지막으로 발악이라도 해야 한다.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떨려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법을 쓰면 살아남을 수 있는데.

죽은 유모의 처참한 모습이 그녀의 집중력을 무참하게 흐트러뜨렸다. 덜덜 떨리면서도 굳은 몸으로 몸부림만 쳤다. 머리가 굳어서, 머리가, 하얗게, 비어서, 진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죽는다.

죽을 것이다.

유모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칼이 그녀를 겨누었다.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진이 생각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이성과도 같은 본능. 이 청년은 위험한 사람이다. 살려두어 좋을 것이 조금도 없었다. 부집사도 함께 쫓아낼 것을 그랬다. 후회와, 사랑과, 포기와, 다시 일어난 겁쟁이의 용기와, 지켜야 한다는 본능.

그녀의 목으로 찔러 들어오던 순간, 칼이 길어졌다.

마지막 집중력이었다.

스완의 가슴을 뚫고 들어간 칼, 마나의 끝은, 그녀를 붙잡고 있던 청년의 가슴도 함께 꿰뚫었다.

주마등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스완은 숨이 지기 직전 핏줄기가 꿀럭거리며 흘러나온 입으로 한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는 없었다. 이름 전부를 입에 담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서는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잊지 마. 에스메.

나는 네가 죽고 나서야 내가 널 사랑했던 걸 알았어. 애가가 말하는 것은, 결국엔 후회였던 거야.

나는 돌아온 이후 네게 들려주고 싶었어. 아니, 아니다. 들려주고 싶었던 건 단 한 줄. 단 한 문장.

모든 기억을 되찾은 이후 나는, 네가 다시없을 사랑임을 처음부터 알았어.

알아?

넌 내 꽃이었어.

꼭 살아. 꼭 살아야 해. 내가 이 자를 데려갈 테니, 꼭 살아. 에브와 함께 꼭 살아야 해.

사랑해. 꼭 다시 만나.

*

마음이 꽃 되어 피어나니 그 위에 그대 죽은 시신이 누워있더라.

환상을 뭉쳐 그댈 만드니 다시없을 은애임을 처음부터 알았더라.

나비며 떨어지는 는개 있더니, 그것이 눈동자에 닿더라. 어서 오소서.

돌아가시다 밀려오니, 환상마저 서글프더라.

안개 위에서 그대 지는 모습 보이더니, 아, 나도 그대 따라 졌다. 나는 그대에게 꽃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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