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1 CHAPTER 11. 애가哀歌 =========================
*
거울 앞에 앉아 내 손으로 머리를 빗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쭉 빗어 내리기를 마치고 빗을 내려놓았다.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내 죽을 길이 시작된 것 같았기에 숨고 도망치고 유랑하기 쉽도록 염색을 하였고, 이야기가 끝나거든 염색을 그만두려 하였었다. 그 ‘이야기’가 설마 실로 있었던 내 삶과 죽음을 각색한 것이었을 줄은 이 염색을 하던 당시에는 몰랐었지…….
나는 문득 웃고 말았다.
원래 머리 색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리.
나마저도 내 머리카락의 색이 어떠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카락의 뿌리가 올라오기 전에 염색을 반복하여왔던 탓이다. 붉은 바탕에 약간 자색도 돌았나. 잘 익고 농도 짙은 와인색이라는 감상을 들은 적도 있었다. 꺼림칙하게 생각되는 색은 눈동자였다. 거울을 보면 내 검붉은 눈동자는 때때로 피가 말라붙은 것 같이 어둡게 죽어 있는 듯했다.
나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보았다.
드러난 동그란 귀와 작은 알의 보석이 귓불에 박힌 것 같은 귀걸이.
다물고 있는 입술은 내 검지 두 마디 정도 길이로 작았다. 이런 모양의 입으로 사람을 비웃고 경고하고 어여삐 여겨 다독이고 거짓을 말하고 다녔다. 손을 들어 입술을 더듬었다. 거울에 손가락이 비쳤다.
잘 다듬어진 손톱은 평범하게 윤기가 없었다.
손가락에 툭 튀어나온 굳은살도, 없다. 혹이 난 것처럼 굳은살이 박여 있던 손톱 옆은 곧게 뻗어 있었다. 이번 시간의 내 삶이다.
기억이 없던 처음에는 도망이었다.
기억을 찾고 나서도 전과 달랐다. 영지민을 자주 살피고 직접 토벌에 나서기보다는 일단 라이네를 살리는 데에 주력했다.
앞으로도 라이네에 집중할 것이다.
앞으로의 내 삶이다.
나는 전체적인 내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결국에 시선이 간 곳은 마음이 닿았던 곳이다.
입술을 새길 것처럼 끈질기게 박았던 시선을 잠시 후 접었다. 눈꺼풀을 내리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 앞으로 덮개가 씌워졌다.
염색하지 않은 머리카락이 다 자라기까지 오래 걸릴 것이다. 나는 그 색과 비슷한 색으로 염색하도록 했다. 머리카락이 자라나며 염색한 머리카락은 아래로 밀리게 될 것이다.
발리앙의 악몽에서 벗어난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으로 시드니에게 물었다.
“경을 마지막으로 떠보겠네. 신중하게, 대답해줘. 나는 이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네. 사랑만으로 무얼 포기할 용기도 없이 비겁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 나로 인해 경이 무얼 걸고, 무얼 포기하는 것도 볼 생각이 없어.”
그러자 시드니는 옅게 미소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본 웃음이었다.
그는 다정하게 대답했다.
“저를 위해서입니다. 희생한 적 없으며, 앞으로도 없습니다. 오히려 희생하실 분은 각하십니다. 저를 원망하십니까?”
“하지 않아.”
“당신의 소원을 또 무너뜨리는 중입니다. 저를 멀리하시겠다 했던 그 소원.”
“…….”
“제가 당신께 가도 되겠습니까?”
그 음성과 그 내용에 나는 묶였다.
지독히도 따뜻하게 묶여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의 사랑이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위를 그가 덮었다.
에녹의 검이 생성되는 모습을 함께 보았던 그 신전, 그 자리에서 시드니는 내게 왔다.
대신관은 이제 신성한 보호가 나로 인해 흔들릴 일이 없어졌다며 우리를 축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