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7 CHAPTER 11. 애가哀歌 =========================
*
베르덴의 사형 방식은 그래도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참형으로 결정되었다.
교수형을 받고 죽은 데스챔프 공작에 비하면 훨씬 깨끗한 죽음이다.
목이 매달려 죽을 것을 선고받은 베르덴은 마지막으로 나와 만나 대담할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그 부탁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고, 황제는 내게 서신을 보내왔다.
‘발리앙 후작이 이렇게 저렇게 요청을 해왔는데, 전해주지도 않으려다가 일단은 전해준다. 만날지 아니 만날지는 공작이 알아서 정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것을 읽고 옆에 서 있던 할리에게 보여주었고, 할리는 미친 것처럼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당연히 질색했다. 떨떠름하게 내 얼굴을 검지로 가리키고 좌우로 흔들었다. 흔들고, 원을 그리고.
“그, 저기, 얼굴 좀, 관리를, 그, 표정 좀. 관리 좀 하지.”
“…….”
그에 기사는 웃음을 뚝 그쳤다. 상처받았다는 표정인 것 같다. 경이로운 변화였다. 그 표정을 무시하고 물었다.
“왜 웃었나?”
“…….”
“삐쳤나?”
“삐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그래서 왜 웃었어?”
“…….”
건성으로 받아주고 다시 묻자 할리는 우울하게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기가 막혀서 그랬습니다.”
“뭐가.”
“무슨 낯으로 각하를 또 뵙고 싶어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변명할 것도 없는데 무슨 할 말이 남아있다고…….”
나는 옅게 웃었다.
아아. 변명이 아니라 협박할 게 남아있지 않을까. 지난번, 이게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였던 날, 그는 나를 협박해서라도 아리엘을 살리려 했으니까. 그러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바비에르의 일을 말하겠다던 베르덴도 아마 신문 중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비에르의 일에 황제도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을 리 없지만, 만일 말했다면 황제는 기겁했겠지. 그런 날을 위해 나를 방패로 내세웠다지만 요즘 나와 사이도 나빠졌겠다, 내가 어떻게 미쳐서 물귀신처럼 황제에게 달라붙을지 모르니까…….
바비에르에 대해 말한 즉시 황제는 관용 없이 베르덴의 입을 막았을 것이다.
내가 베르덴에게 협박 당했던 것을 황제에게 미리 경고하지 않았던 건, 베르덴에게 협박당했다는 자체가 어떤 식으로 내 약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던 탓이다. 이미 황제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협박당했다 하더라도 협박당한 일 자체가 좋지 않다.
모든 일이 마무리 지어질 때까지 나는 매 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이제 베르덴이 죽으면, 많은 것이 처음처럼 돌아갈 것이다. 재시작, 정도 될까. 두 번째 삶이라는 건 그제야 좀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기억을 찾은 순간부터 나는 발리앙에 사로잡혀서 강박적으로 걸어왔다.
내가 발리앙을 놓고, 발리앙에서 놓아지면, 그러면 지금보다는 머리가 가벼워질까.
지난 수년, 호흡과 함께 긴장해왔다. 호흡하는 것처럼 초조해 왔다. 숨 쉬는 것처럼 뾰족하게 가시 세우고 걸음걸음 칼날 위를 걸어왔다. 일상이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긴장이었다.
팽팽하게 조여왔던 내 몸은 다 끝나면 먼지처럼 부서져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연기에 휩싸인 것처럼 흐리게 웃으며 턱을 괴었다. 그리고 기사를 불렀다.
“경.”
“예.”
“만약에.”
“…….”
“만약에 내가 죽었다 해 보지.”
“……예?”
“내가 누굴 죽이려 들었다는 누명을 당했어. 그래서 아리엘 발리앙처럼 고문을 받고, 그래도 나는 그런 적 없다고 버티다가, 그러다가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해보게.”
“각하.”
그랬을 때.
“그리고 어떤 기적적인 힘으로 시간을 되돌렸다고 해봐. 내게는 내가 어쩌다 죽었는지 기억이 남아있어.”
쥰은, 어떻게 살았을까?
“…….”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일을 꾸며 라이네를 구해냈고, 내 개인적인 복수도 전부 마쳤어. 그렇게 끝이 왔네.”
내가 너만은 꼭 살아남으라고, 다른 건 바라지도 않으니 살아남기만 해주라고, 그래서 행복하게 살아주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면. 쥰은 어떻게 살았을 것 같은가?
“그 기적적인 힘은 나를 살게 둘까? 아니면 내 억울함이 풀렸으니 나를 죽일까.”
베르덴이 죽고, 미로 골목을 쓸고, 그러고 나면 쥰에 대한 궁금증을 끝으로 모든 게 갈피가 지어지는 것이다.
두고 온 과거의 마지막 미련이다.
가장 궁금한 두 사람. 한 사람은 나를 이 시간으로 보내고 뒤따라 왔는데, 쥰은 어떠했을까. 시드니에게 아직도 묻지 못했던 건 그 대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베르덴의 죽음을 목전에 두니 이제 입에라도 담게 되는구나.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는 시드니에게 물은 것은 아닐지언정.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할리를 문득 올려다보고, 나는 턱에서 손을 내렸다.
“그런 표정 할 건 없는데.”
“살아가셔야 합니다.”
됐으니 대답하려 끙끙거릴 것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때 할리가 말한 것이다.
그는 반복했다.
“살아가셔야 합니다.”
할리는 황제의 서신을 잘 접어 두 손으로 내게 내밀었다. 나는 얼결에 돌려받은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신의 힘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자의에 의한 죽음? 시달리는 탈력감. 허망함.
-신이시여, 왜 저를.
“그자를 만나려 하십니까?”
“어? 아……. 이 사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잡고 있는 서신을 위로 들고 몇 번 팔락거렸다. 등을 뒤로 기댔다.
-살려주셨으니 다시 살겠으나.
팔락거리던 종이가 느려지다가 마침내 멈추었다. 내게는 의무가 있다.
의무는 곧 권리다. 자진은 생각할 것이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이 서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씩 웃고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쥰과 산책을 나갈 시간이다. 이후에도 어느 백작을 접견해야 하는 일정이 있다. 황제가 베르덴의 말을 오늘에서야 전한 것은 깊이 숙고할 생각을 주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자리에서 정해야 한다. 시간이 없었다.
베르덴은 내일 죽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등 떠밀린 것처럼 열리려는 입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곰곰이 앞뒤 상황을 계산했다. 이 만남이 내게 해 될 것인가. 아니면 득 될 것인가. 만나지 않는 것이 해 될 것인가, 득 될 것인가.
애써 계산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웅크리고 있던 말은 그 이후에야 혀를 타고 나왔다.
“……만나야겠네.”
그 말을 함으로써 결정은 확고해졌다.
눈을 들고 할리와 눈 맞췄다.
“쥰에게 가서 오늘 산책은 못할 것 같다고 전하고.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주게.”
“알겠습니다.”
베르덴의 뻔뻔함을 비난하던 할리는 내 결정에 일말의 토도 달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철창 앞에 앉으며 옆에 서류봉투를 내려놓았다.
베르덴의 시선은 내 손을 따라 봉투를 향했다가, 스르르 내 얼굴까지 올라왔다. 나는 울지 못해 웃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다른 거야. 그대의 요청을 오늘에서야 전달받았네. 일하다가 부랴부랴 왔어.”
“오늘이라도 다행입니다. 마지막으로 뵙고 갈 수 있으니까.”
베르덴은 말을 하자마자 거칠게 기침했다. 얼굴이 전보다 죽어 있었다. 르네가 어떤 독을 써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중독될 길을 끊어놓았음에도 이리 나빠지는 걸 보면.
아니면 고신이 그의 몸을 빠르게 죽게 하였거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제는 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봐도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피 색을 가리려 시드니는 제 살을 찔렀다. 내가 전에 죽을 때도 내 피는 아마 검정색이 더럽게 엉긴 검붉은 색이었을 것이다. 그런 역사, 그런 전적을 아는 시드니가 베르덴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황제가 베르덴의 지금 상태를 보았다면 황제도 의아해했을 테고.
참수된 후 베르덴의 피를 보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하리.
도대체 누가 그를 독살하려 했느냐고 말이 나올 것이다. 그 ‘누가’의 후보로 나는 오르지 않을 것이다. 오른다 하더라도 마땅히 내려갈 거야……. 그런 의심도 피하기 위해 내가 여태 이 사람들을 보호해왔던 게 아닌가.
나는 눈을 접고 초점을 흐렸다.
“나도, 만나서 다행이야.”
“…….”
죽기 전. 그 안에서. 위선자의 위선을 당하였던 나는 너의 친구였고, 당하는 너는 나의 친구였다.
죽어가는 것조차 지친 것 같은 얼굴로 베르덴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초점은 선명하지 못했고, 정신도 흐린 것 같았다. 고통이 상당할 것이다. 혹은 예전의 나만큼이나 몸이 망가져 있어서 고신의 고통도 조금쯤은 덜어낼 수 있었을까. 무얼 명료하게 생각하기조차 어렵고 앉아 있다가도 죽어가는 그 느낌은 겪고 있을까.
나는 그러했다.
저 죽어가는 걸 본능적으로는 느끼고 있는데, 버텨야 한다는 본능도 있어서 버텼다. 데스챔프 공작이 내 죽음을 밀어붙여 사형이 결정될 때까지 버텼다.
내 죽음을 이용하여 그렇게 데스챔프 공작을 치우는 조건으로 황제는 라이네를 책임지고 복권해줄 것을 약속하였던 바.
그런 희망도 없는 베르덴은, 이 가주는 어떤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까.
우리는 시선을 마주하며 서로를 놓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그의 눈꺼풀은 감기다 번쩍 뜨이기를 반복했다. 없는 힘을 끌어올려 마지막으로 긁어모아서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나와의 만남이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얼마든지 기다려줄 생각이었다.
이 모습, 얼마든지 보아줄 생각이었다.
흔들리던 상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벽에 부딪혔다. 그렇게 비스듬하게 기댄 채로 그는 꽉 감겼던 눈을 떴다. 게슴츠레한 눈빛이 내게 끊임없이 부딪혀 왔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저를 이해하십니까?”
나는 그 질문을 이해했다. 피하지 않겠다.
입매에 힘을 주고 고개를 한 차례 느리게 까닥였다.
“……이해하네.”
“사과드리지 않겠습니다.”
“…….”
“줄곧 경고받아왔습니다만 저는 선택했습니다. 가문과 가족입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할 때를 놓친 것이 제 무능 중의 무능이 되겠습니다.”
“…….”
“저는 그가 없었다면, 당신이 죽는 것도 결국에는 묵과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베르덴의 무능은 그가 독살당해 죽는 것으로 증명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되든 이 사람은 죽었을 터.
잠잠히 그를 들었다.
“그는 당신을 향해 가는 자객을 처리하면서도 발리앙을 고발하지는 않아서, 설마 그런 공적인 자리에서 크게 터트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 미친……, 자식이…….”
“…….”
까무룩 그의 눈이 감겼다.
내 아래턱이 파르르 떨렸다. 베르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코와 인중, 입가를 꼬집는 것처럼 쓸어내렸다. 나를 향해 오는 자객을 처리했다 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그랬구나.
그랬구나…….
코가 맵다. 숨이 떨려서,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입을 벌려 숨을 들이켰다. 그 사람이 나 모르는 곳에서 나를 그렇게도 지켜오고 있었구나. 바닥에 무릎을 고이고 있는 오른쪽 다리가 흔들렸다.
그런데 그 사이에 베르덴은 정신을 차렸던 모양이다.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으면, 나 역시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약속드리지…….”
“…….”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실눈을 뜨고 아래쪽을 보고 있는 베르덴은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이 벌어졌던 흔적도 없어서 나는 한순간 꿈을 꾸었나 했다. 환청을 들었나, 했다. 그러나 환청이 아님을 그가 확인해 주었다. 조금 전과 똑같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는 속삭였다.
“그…… 성정이, 어디 갈 것 같지는 않아서 말하는데……. 네게도 그런 다정한 감정을 가진 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눈에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갔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초점을 되찾기 위해 눈을 깜박였다. 등허리를 차가운 것이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저 말의 최초 화자가 베르덴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르덴이 계속해서 받아왔다는 경고 중 하나였을까. 시드니는 최선을 다해 베르덴의 마음을 돌리려 했던 모양이다. 잃은 사람이 있어 발리앙에 원한이 있다 하던 그 기사는 끝까지 베르덴을 놓지 않았던, 모양이다.
-베르덴, 아직도 친구로 여기셨습니까.
그게 괜히 나온 질문이 아니었음을 은연하게 느꼈다.
나는 아랫입술 안쪽 살을 꾹 물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모를 베르덴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천천히 밀려왔다.
“그는 줄곧, 이날을 위해 인내한 것뿐이었는데……, 제가 바보 같았습니다.”
“……그대.”
“친구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던 사람을 제가……. 그래도 친구라고……. 경고를 당하면서도 친구라고…….”
“그래서 그를 원망하나?”
“…….”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여 원망해?”
베르덴의 눈동자가 느리게 움직여 나를 보았다.
나는 눈가를 움찔 구겼다가 폈다. 아니, 구태여 속내를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시드니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망을 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배신당했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분명. 그렇지 않으면 ‘친구’운운하며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베르덴이 예전의 기억이 있었다면, 내 눈앞에 있는 베르덴이 나 죽은 기억이 있는 베르덴이었다면, 실로 묻고 싶은 게 생겼다.
그럼 나는.
베르덴.
그럼 나는.
나는 어떠했을 것 같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