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4 CHAPTER 11. 애가哀歌 =========================
“각하. 오늘 그들을 무너뜨리며 각하께서는 물러나 계실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이어 그는, 베르덴을 여전히 친구로 여기고 있다는 대외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것처럼 말했다. 물러나서 그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으나 그들을 보호하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인식. 그리하여 라이네 공작은 여전히 발리앙을 친구로 여기고 있다고 보일 수 있는 그 모양새.
나는 물끄러미 그를 응시하였다.
베르덴을 ‘아직도’ 친구로 여기고 있느냐는 질문이 지독히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팔걸이에 팔꿈치를 댄 왼손을 들어 두 눈을 가렸다. 누르는 압력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이 시려졌다. 왼편으로 기울인 허리와 배에서 통증이 뭉클하게 솟았다.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게 벌린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었다. 어흐흑, 하며 명치에서부터 시작된 숨이 우는 듯 경련한 것이다. 혀를 터친 작은 숨마저 젖어 나왔다. 실로 당황스러운 숨결이다. 그러나 나는 더 큰 동요를 보여 상황을 악화시키지는 않았다. 그 정도 이성은 있었으므로.
그러나 저 말 자체는 옳았다. 나는 오늘 기요트 변경 백작과 시드니가 발리앙을 무너뜨릴 때 조용히 입 다물고 물러나 있을 수 있었다. 발리앙이 무너지는데도 나는 발리앙에 반하는 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친구인 척 할 수 있었다. 보호하는 말까지 하였으니 미련하고 갸륵하게 남아있을 수 있었으리.
따라서 저 말이 옳다.
저 말이 옳고.
그래서 시드니가 무슨 고백을 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묻고 있고, 무슨 말을 듣고자 하는 건지 막연하게 알 것 같았다. 그는 차근차근 내게 묻고 있었다. 대신관의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과 맥락을 같이 하는 질문들을. 그러니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신중히 말을 골랐다. 그를 모르는 척 해야 해.
사늘하게 식은 손의 끄트머리를 구부렸다. 관자놀이가 눌렸다.
“……내가 경에게 반드시 대답해야 할 부분은 아니군. 그러나, 그래, 오늘 회의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친구로 여기고 있네.”
목소리가 가물었다.
“그리고 경. 사과든 무엇이든, 할 말이 더 있으면 나중에 하세. 미안하네. 피곤하군.”
시드니라서 오늘 만나도 될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차라리 다른 귀족을 상대하는 게 더 편했을 것 같다.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시드니를 앞에 두니 정신이 말이 아니게 약해지는 것 같아서. 자존심에 금이 가야 옳을 상황이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 자리를 파하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복부에 갑작스러운 힘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깜박했다. 힘이 들어간 배에서 일순 숨을 멈추게 하는 고통이 발현되었다. 약효가 확실히 끝나긴 했나 보지. 나 모르는 새 신음이라도 흘릴까 하여 이를 꽉 악물었다. 오늘은 도통 믿지 못할 몸이다.
시드니는 지금까지 차분한 기색으로 나를 깨뜨리려고 했던 것과 다르게 더 밀고 들어오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느낀 흔들림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단정하게 예를 갖추었다.
“몸도 편치 않으신데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멀리 나가지 않겠네.”
오른 입꼬리만 슬쩍 올려 웃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아득바득 대답했다. 지나치게 건조했다. 입을 더듬듯 가리고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가 의자에서 비켜나 문을 향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다.
여태 그가 앉아있던 맞은편 의자만 보며 조용히 숨을 고르는데, 돌연 떠오른 게 있었다. 나는 반쯤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경.”
부른 후에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도 나를 돌아보았다. 기시감이 든다. 저 모습, 이 구도, 어디서 본 적 있나 하였다. 그리고 깨닫기를, 쥰이 쓰러지던 날의 신전에서도 우리는 이러지 않았느냐고.
나는 무심코 코웃음을 웃었다.
우리는 항상 이래야 하나.
이 정도 친구에서 머물고, 이 이상 한 걸음도 저 사람에게 다가가 보지 않으며 평생을 살다 죽기에는 지독히 아쉽다. 아쉽지만, 라이네가 언제 흔들릴지 모르고, 포르타가 언제 흔들릴지 모르며, 우리의 가까운 관계가 또 저 사람을 어떻게 비참하게 만들지 모르고, 저 사람에게는 또 어떠한 죄책감을 가지게 만들지 모른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미래가 두려웠다.
거기에서 내가 다시 잃을 게 생길까 두렵다. 죽어가며 망친 것들이 이미 많았다.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며 아득바득 정신을 다잡고 있는 것에 집중하느라 애써 외면했지만, 내 주변이 무너져간다는 건 실은 상당히 두려운 일이었다. 몸이 그나마 멀쩡할 때 엄습하는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더랬다.
숨이 한 겹 한 겹 지고 떨어지는 건 괜찮았다. 어쨌든 나는 반드시 죽을 사람이었으므로.
나를 긴장과 초조한 두려움에 잠기게 했던 건, 죄를 캐내기 위해 고문 받고 있다는 비참함과 처참함과 좌절감과 불명예에 대한 죄책감과, 고통, 과, 일이 알드리히와 의론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쥰의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두려움과, 나를 살리고자 하다 자기 일신뿐 아니라 가문마저 흔들리게 된 시드니에 대한 염려 정도였나……. 베르덴을 이해하는 걸 멈추고 사적으로 진심으로 미워하게 될까 하여 이 악물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흐느꼈었다. 나는 이렇게 죽으나, 그러나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쥰, 너와의 약속을 믿으니 부디 훌륭하게 살아남아 달라고. 라이네를 잇지 않아도 좋으니 살아만 남아 달라고.
……시드니, 더는 날 보호하려 하다 비참해지지 말라고.
나는 그 지독히 소름 끼치는 좌절감을 또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알아. 그러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좌절감을 느낄 지도 모를 상황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다.
-제 증언은 제가 당신과 가깝다는 이유로 위증이 되었습니다.
-생을 다시 살게 된다면 바꾸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차라리 당신과 멀리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살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당신과 친구가 되지 않을 것. 하여 당신을 지킬 것.
내가 옥 속에 있었던 그때, 그와 내가 서로에게 토했던 소원이 번갈아가며 내 머릿속에 울렸다.
그의 다짐이며, 나의 다짐이다.
역시 그래. 우리는 다시는 가까워지지 않는 편이 좋겠다. 이 사람이 잃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가문을 지키지 못한 가주. 그건 혹자의 예상보다도 훨씬 끔찍하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수치스럽고, 제 존재의 이유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끔찍한 일이다.
따라서 다시는 유혹 받아서는 아니 되리.
쏟아놓은 고백을 주워 담을 수 없어 후회하는 것보다는, 언젠가를 기약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을 것이다. 혀가 무거울수록 좋다. 입이 묵직할수록 좋았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래 하려던 말을 입에 담았다.
“쥰의 복귀기한을 늦춰줄 수 있겠나.”
“…….”
시드니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가 돌아갔다.
비뚤게 서 있던 내 몸이 좀 더 그를 향해 돌아가고, 그의 몸 역시 그렇게 나를 향해 돌아왔다. 그의 어두운 색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서 흔들렸다.
“각하.”
시드니는 다른 말 없이 나를 불렀다. 예의 바른 제지다. 그가 이끄는 기사단이지만, 그의 기사단은 최종적으로는 황제의 것이다. 자칫 라이네 공작이 선을 넘어 황제의 권한 내의 것에 침입했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었다. 위정자의 부탁은 압박 담은 명령과도 같이 들릴 수 있기에.
안다.
앎에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리 된 건 쥰의 선택의 결과이나, 그래도 일을 오래도록 끌었던 나 때문이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싶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쓴웃음을 지었다.
“간섭하려는 건 아니네. 나도 이런 말을 하는 게 민망해. 늦출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물어보는 걸세.”
그러자 그가 물었다.
“경의 예후가 좋지 않습니까.”
“거의 매일 길거리를 산책하고 있네. 상태가 어떻게 보이는지 들은 게 있잖은가. 한 달 안에 작전 투입 가능할 만큼 몸을 끌어올릴 수는 없네.”
“폐하께 말씀 올려보겠습니다.”
“나는 경에게 묻고 있네.”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위험한 것을 물으면서 보이기에는 많이도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알고 있으나 나는 이 자리에서 어느 정도라도 답을 받기를 원했다.
쥰이 저렇게 되도록 종용하였던 사람이 바로 황제이니 내게 더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쥰을 쳐내려 할 것이며, 내가 그에 대해 항의라도 한다면 우리의 사이는 더 나빠질 것이다.
오늘은 여러모로 길이 갈린 날이다. 알드리히가 라이네 핏줄의 특대를 윤허할 리가 거의 없게 된 날이기도 했다. 내가, 라이네 공작인 내가 그의 옆에 서 있다는 게 그의 경계도 되고 그의 힘이 되기도 하니, 다른 가주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나와 거리를 두지는 않겠지만 전에 비하면 이것저것 멀어질 터. 지금껏 빠르게 허락받아왔던 알현도 자주 미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관계를 지금보다 더 어그러뜨리는 건 좋지 않았다. 하여 시드니의 선에서 처리해주기를 원해. 그러나 저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경은 불가하다는 입장인가?”
“…….”
“경.”
“각하께서 이런 부탁을 하시도록, 그 사람이 부탁드렸습니까.”
“아니네.”
“라이네경이 이 청탁을 원하는지 아닌지는 들어보셨습니까.”
쥰이, 원할 리가. 나는 입가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 움찔움찔 입꼬리를 올렸다. 우는 것처럼 웃었다.
“내가 원하네.”
“…….”
“내가 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야. 저 아이가 자기 장래를 놓게 할 수는 없네.”
“저는 불가하다는 입장입니다.”
시드니는 나직하게 내게 고했다.
그 차분한 음성이 비처럼 내린다. 붉게 달아올랐던, 달아오른 줄도 몰랐던 흥분을 깨달았고, 그것은 천천히 가라앉아갔다. 마침내, 기어이, 긴 한숨을 뽑아낸 후에야 머릿속을 잿빛으로 식힐 수 있었다.
기묘하게 되찾은 평온이었다. 식은 숨을 쉬고 그를 바로 보자, 그가 단정하게 깎인 말을 이었다.
“복귀가 불가능하게 될 것도 처음부터 각오하였을 겁니다.”
“그 아이는 자객에게 당한 걸세. 쥰이 무얼 각오하고 말 것도 없어.”
“그게 아님을 알고 있고, 각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쥰이 쓰러지고 밤, 새벽, 신전에 갔다가 만난 시드니는 내게 황제를 말한 바 있었다. 쥰이 중독당해 쓰러진 내막과 뒷배를 에둘러 말해주었던 바. 나는 손을 들어 입가를 한 차례 문지르듯 진득하게 쓸어내렸다.
서로 알고 있는 걸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 쉽다.
나는 그리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시드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입에서 손이 떨어졌다.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낮은 숨만 훅 흘렸다. 시드니는 내 답은 애초에 필요치 않았던 것처럼 또렷한 음성으로 설명해갔다.
“제가 기사 하나의 특례를 허용하고 그 기사가 라이네 공작의 사촌이라면 기강은 어떤 식으로든 흔들리게 됩니다.”
“…….”
“폐하께 말씀 올려보겠습니다.”
아.
나는 흐린 웃음을 웃었다. 아니다. 시드니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부터 일말의 기대도 부러뜨려 정리한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시드니를 치우고 싶어 하는 알드리히에게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이유를 줄 필요는 없다.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는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에게 화답했다.
“경이 많이 배려해주고 있다는 건 알겠네. 고마워. 그러나 그분은 허락하지 않으실 걸세. 그럴 필요 없네.”
“하실 겁니다.”
내 거절에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적당한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말했다.
차게 느껴질 정도로 뚝 잘라낸 단언이다.
내 코끝이 움찔거렸다. 이건 또 무슨. 황제가 그리 움직이리라 생각한다는 그런 어조가 아니었다. 반드시 그리 움직이셔야 할 거라는 냉정한 조소 같은 게 조금 느껴졌나.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조소와 확신이었다.
무례한 말이기에 경고를 해야 하는데……. 나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적신 뒤 흐드득 떨어지는 숨을 지었다.
“하지 말게. 이런 말은 내 약점이 되니 하지 않으려 했는데, 경, 오늘 내가 폐하께 대차게 대섰거든. 정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네.”
대섰다기보다는 비난하였다 할 수 있겠으나, 타 가문의 가주인 시드니에게는 이 이상 말할 수 없다. 시드니라서 이 정도라도 말할 수 있는 거지.
그 직후, 나는 내 모순을 깨닫고 하, 하고 짧게 웃음을 뱉었다. 참. 우스워라. ‘시드니라서.’ 오래전처럼은 돌아가지 않기로 하였으면서. 손을 올려 뒷목을 슬슬 주무르며 걸음을 옮겼다. 내게 그만큼 배려를 하려 해주었으니 이건 호의다.
그를 지나쳐 내 몸소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철컥. 돌아갈 때.
“폐하께서,”
문고리를 잡은 손끝이 멈칫했다. 홈에서 빠져 헐거운 느낌이 고스란히 손에 전해져왔다. 이대로 열기만 하면 되는 문이다. 나는 그래서, 열었다. 열며 물러났다.
활짝 열린 문을 잡은 채로 그를 보았다. 시드니는 숨을 조금 들이켰다가 어깨를 약간 들썩였다.
“오늘 회의에서는 라이네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지만, 발리앙이 빠르게 무너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말씀하실 겁니다.”
“…….”
“각하와 라이네경을 중독시키고 살해하려 하였던 자들의 증언을 이용하려 하실 테니, 각하의 용납 없이 그 일을 진행하신다면 그 대가로 라이네경의 복귀 기간을 늦추어 달라 청하셔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당연한 대가입니다.”
“……그래서 경도 그걸 나 대신 이용해서 폐하께 청하려 했던 건가?”
“아닙니다.”
“…….”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구부려 미간을 문질렀다. 그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까 그런 단언을 하였나. 알드리히와 무슨 거래라도 하였을까. 그럼 그 거래를 이번에는 쥰을 위해 쓴다고……? 느릿느릿 도달한 생각이 얼토당토않아서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이 사람은 도대체 라이네와 무슨 악연이 있어서 이토록 라이네를 위해 힘을 쏟고 쏟나.
문 옆에 비스듬히 선 나를 향해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그를 눈으로 좇았다.
그리고 그가 내 앞을 지나치기 직전에 한숨 어린 목소리로 시드니를 불렀다. “경.” 피곤을 이유로 접견을 빠르게 끝내버린 탓에 이 자리에서 논했어야 했던 것들이 뒤늦게 떠오르는 탓이다.
그가 멈추었다. 내 왼 어깨 앞. 두 걸음 정도 나와 떨어져 있는 그를 앞에 두고, 나는 마지막으로 짧게 고민했다. 정말 짧았다.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간 고심이었다. 더디 입을 열었다.
“……발리앙에 넣었던 청혼에 대해서는, 나와 의논하여 그랬다고 해도 상관없네. 청혼한 이유는 경이 알아서 정하고. 하지만 그리 말하고자 정하였으면 연락은 주게.”
나는 내가 몹시도 좋아하던 눈, 그 밤하늘 같던 눈을 올려다보며 말을 마쳤다. 시드니는 곧장 반응하지 않았다. 언젠가 보았던 것만 같은 거멓게 죽은 눈동자로 나를 담다가, 입을 열었고, 닫았다. 입을 닫으며 눈꺼풀도 내려가더라. 숨도 함께 내려갔다.
눈은 닫히자마자 도로 열렸다.
“자칫 각하께서 불명예를 쓰실 수 있습니다.”
“알아. 그리고 또 앞으로 나서는 게 되지. 경이 아까 말했던 것처럼 물러나 있을 수도 있는 일에 또.”
“…….”
“경은 오늘 분명 나를 곤란하게 하였지만, 쥰을 위해 폐하께 말씀을 올리겠다고까지 해 주었으니 이제 되었네. 내게 더 사과할 건 없어. 날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되네.”
“……이 과한 호의는 제가 조금 전 라이네경을 위했다 생각하시기 때문입니까?”
묵묵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시드니는 분명한 발음으로 차분하게 물었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네.”
“그렇다면 거두십시오. 저는 한순간도 라이네경을 위한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