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129화 (129/157)

00129 CHAPTER 11. 애가哀歌 =========================

기어이 할 말을 다 하겠다 하는 건 이 회의의 특성상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작위로 찍어누르는 것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내가 라이네라 하더라도, 저 사람도 대귀족 가문의 가주이기 때문에.

그러나 사안 나름이다.

내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것도 아니면서, 나와 가까운 친척 되는 이를 이따위로 모욕할 수는 없다.

내가 분노를 발하자 기요트 변경 백작은 눈동자를 슬쩍 아래로 내렸다. 꼬리를 말았다든지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라이네공의 선숙모를 모욕한 바에 대하여는 차후에 반드시 사죄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다시 씩 웃었다. 그리고 상냥하게 물었다.

“무엇으로. 목숨으로? 나는 지금 숨넘어갈 것 같이 불쾌해서.”

“두 분 다 그만하시게.”

결국 황제가 제지하였다.

그러나 그 제지가 결코 나를 위해서도, 기요트 변경 백작을 위해서도 아닐 것을 아마 이 자리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알드리히는 소요가 곧바로 잠잠해지자 빙긋 웃으며 기요트 변경 백작을 지목했다.

“변경 백작은 계속 이야기해보게.”

“폐하.”

“라이네공작이 불쾌할 것은 짐도 십분 이해해. 그러나 짐은 듣고 싶네. 혹 발언의 정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발언을 허락한 짐도 공작에게 사과하지.”

“…….”

황제가 사과 운운하는 데에 대고 그런 거 진심으로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저 입을 완전히 틀어막고자 무리수를 둘 생각은 없었다. 두는 순간 무언가는 돌이킬 수 없어진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라이네에 해 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대응하리.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 백작은 내게 다시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베르덴을 응시했다. 그 입이 열리는 걸 나는 도저히 웃지 못할 것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나직한 말이 시작되었다.

“생전에 르네 발리앙과 깊은 친분이 있던 영식에게 증언을 들었습니다. 발리앙후께서 쥰 라이네경의 모친과 정을 통한 바 있다고.”

……이런. 내 고개가 조금 내려갔다.

“그리고 고인은 자액하였습니다. 이번 르네 발리앙 영식도 자액하였지요. 공통점은 곁에 발리앙후가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끝에 이마를 기대고 말없이 책상을 보았다.

그걸 또 그렇게 엮었나. 이제 나는 이 자리에서 베르덴을 위하지 못한다.

베르덴이 관계있을 리 없다고 그를 믿는 모습을 보이는 건 간단하지만, 저 문제에 대해서 잠시라도 한데 묶이고 싶지 않았다. 역시 내 아버지께서 죽이신 게 아니냐는 말이 한 번이라도 또 나오면 그에 대해 불쾌해해야 하고 일이 번거로워진다.

우선순위는 항상 명백하다.

베르덴이 나보다 발리앙을 우선했듯, 내게도 베르덴보다 당연히 라이네였다.

-적어도 네가 나를 배신치 않으면 나 역시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약속드리지.

내가 내내 너를 이해해 왔으니, 이제 네 차례다. 나를 이해해라.

나는 묵묵히 듣고 있던 베르덴이 싸늘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

“기요트 변경 백작. 그대는 지금 나를 심히 모욕하고 있네.”

“아직 말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영식의 말로는 발리앙후께서는 라이네경의 모친을 도와 오래전부터 라이네공을 살해하려 하셨다고 하던데. 이 자리에서 확실히 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는 채로 눈만 홉떴다. 대치하고 있는 기요트 변경 백작과 베르덴을 차례로 보았다.

몇몇 사람이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변경 백작은 아직도 끝맺지 않았었다.

“그리고 라이네공께서는 연세 적을 때부터 독이나 자객 등으로 위협을 받아오셨고, 그 위협을 하는 게 쥰 라이네경의 모친과 발리앙가임을 알면서도 침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손끝에서 머리를 떼었다. 자세를 바로 하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가, 뭘 해?”

“공작께서 쥰 라이네경과 발리앙에 얼마나 정을 베푸시는지는 공작이 후계자가 되시기 전부터 오래도록 잘 봐왔습니다. 아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았을 때 친구라고 감싸주신 모양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선례를 나쁘게 남기면 아니 될 것 같습니다.”

“…….”

“두 분은 분명하게 답변해 주십시오.”

여기서 모른다 하면. 그래, 좋다. 모른다고 해 보자. 그런데 혹시라도 후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밝혀지면?

내가 마법사인 걸 부정하는 건 쉬워도 내가 마법사인 걸 알고 있는 가신들이 신문받으면 어찌하냐던 때와 비슷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목숨이 달린 건 내가 아니라 베르덴이다. 저 사람이 한 말에서 내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는 손을 올려 셔츠 위로 드러나 있는 목을 조금 매만지고는,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헤르조.

내가 분명 베르덴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

“…….”

나는 시드니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베르덴을 보는 옆얼굴을 보다가, 나는 눈을 깊게 감았다. 헤르조가 아무리 천방지축이어도 저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기요트 변경 백작에게 했을 리가 없고, 변경 백작에게 가기에 앞서 제 가문의 가주에게 상담을 청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헤르조가 아무리 시드니를 미워한다 하여도 그는 머리 있는 사람이었다.

눈을 떴다. 고개를 조금 틀어 옆을 보았다가 빙그레 웃었다.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이 있었다.

“증거가 없는 말에 구태여 부정하거나 긍정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있나.”

“그럼 누군가 공을 죽이려 들었던 적이 없습니까?”

“없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처리할 일이지, 그대가 입에 담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에 아리엘 발리앙이 공을 찌른 일,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증인의 입은 어찌 단속하려 하십니까?”

“잘못 보았겠지.”

“쥰 라이네경과 공의 치료를 위해 기도했을 신관을 증인으로 요청하여도 되겠습니까?”

그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설마설마하였는데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저 변경 백작에게는 조금도 없구나.

가주의 병력과 건강은 대부분 기밀로 다루어진다. 이번의 나처럼 사람들 눈 많은 곳에서 공격당하는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가주가 신관을 거리낌 없이 불러 기도를 부탁하는 건 입 다물어 줄 것을 신관에게 약속받은 덕분이었다.

그러나 말해도 된다고 내가 허락한다면, 신관은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내가 허락할 경우의 일이다.

계산은 빨랐다.

나는 기막혀하는 웃음을 짓고, 입을 열었다.

“굉장히……, 그대, 오늘따라 주제넘군. 내 건강에 대해 알아서 무얼 하려고.”

“간단합니다. 제가 들은 말을 잊으면 될지, 계속 파헤쳐봐야 할지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이미 다른 가주들께서도 알게 되셨으니 공, 후, 이 자리에서 정리하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우리 대귀족들의 힘이 약해진다 하더라도 그걸 저 사람은 감수할 생각이다. 저 사람만, 감수할 생각이다.

멋대로 일을 그르친 값을 저 사람은 나머지 열 가문에게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말이 도는 걸 오늘 알았으니 이 회의가 끝나면 따로 발리앙 후작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되네. 굳이 그대들에게 무언가를 말할 이유도, 필요도 없지.”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그럼 발리앙 후작.”

“발리앙 후.”

기요트 변경 백작의 말을 끊었다. 화장 때문인지 아주 미세하게 색 바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베르덴이 나를 보았다.

“……예.”

“이런 말이 계속 돌면 안 될 테니 필르 발리앙은 오늘 발리앙으로 돌려보내겠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변경 백이 들었다는 그 말의 진위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겠어. 나는 내 선숙모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뒷말에 연루되는 게 굉장히 불쾌하고 의아하네. 지난번에 후작의 부친과 내 모친의 추문으로 충분히 얽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선숙모라니. 라이네와 발리앙이 그리도 만만한 가문은 아닐 텐데도.”

이 정도면 이 자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도대체 기요트 변경 백작이 무슨 생각으로 나머지 가주들과 상의도 없이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무리하는 편이 그와 그의 가문에게도 좋을 터다.

슬슬 오르기 시작한 몽롱함을 느끼고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숨을 흘렸다. 통증이 꽤 유지되고 있어 진통제를 먹고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판단력도 유지해야 했기에 약한 진통제를 복용했고, 하여 몽롱함은 몽롱함대로 통증은 통증대로 있는 참이었다.

이제 변경 백작이 더 입을 열지만 않으면, 황제가 가당찮은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앞서서 말씨름을 하고 있으니 베르덴은 이렇다 할 분도 제대로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걸 우정 때문이라 생각지는 말기를 바란다.

내가 삭삭 접어 결론을 내자 변경 백작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다른 가주들이 무덤덤한 척 던지는 눈길들도 더는 묵살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 가주들의 의견을 황제가 무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황제가 더 미친 짓을 하지 않고 이 회의를 파하기를 기다렸다.

“발리앙은.”

그래서 시드니가 입을 열었을 때,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라이네에 오랜 시간에 걸쳐 분명 해를 끼쳤고, 제가 그 증인입니다.”

내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입꼬리가 빠르게 내려갔다. 나는 감히 웃지 못했다. 팔걸이 끝을 움켜잡고 허리를 등받이에서 떼어내 세웠다. 분위기가 찬물 끼얹은 것처럼 달라졌다. 나처럼 자세를 고치는 이들이 많았다.

미로골목의 죄인보다는 한 영식의 증언이 신뢰받을 수 있으나, 그것 역시 어떻게든 거짓으로 몰아 내칠 수 있다.

그러나 가주된 사람이 직접 증인이 되는 건 달랐다.

내가 나 죄인으로 몰렸던 당시 데스챔프가 스스로 증인이 되어 나섰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저걸 거짓으로 내치려면 나는 저 사람을 한동안 적대할 각오를 해야 했다. 당시의 나는 살아남는 데에 집중하여 미련 없이 조롱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질 않은가.

충격으로 마비된 것 같은 내 눈이 천천히 베르덴을 향했다.

그 역시 예상치 못한 것을 맞닥뜨린 것 같았다. 아니, 저건, 지나치다. 베르덴이 아무리 약해졌어도 지나친 얼굴이다. 이미 기요트 변경 백작에게 당한 것의 연장 선상인데 저리 특별하게 충격받은 얼굴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베르덴의 반응을 살피는 사이 페레즈 백작이 입을 열었다.

“무슨 증인이 된단 말입니까?”

딱딱하게 굳은 내 시선이 돌아가 시드니를 향했다. 그는 우연으로라도 나를 향해 눈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옆얼굴. 그 단정한 선과 앞을 향하고 있는 어두운 눈동자만을 보며 내 숨이 덜컥 멈추었다가 숨 쉬었다가 다시 덜컹거리기를 반복했다.

저 사람이 지금 뭐하는 거야.

“필르 발리앙이 라이네공께 자객을 보내는 것에 대해 발리앙 영식과 의론하는 걸 나와 발리앙 후작이 들었습니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언제.”

“내가 아직 십 대일 때.”

이번 해에 있는 생일을 지나면 시드니는 서른이 된다. 십 년 정도, 혹은 십 년을 훌쩍 넘은 세월을 숨겨왔다는 말이었다.

나는 저 말이 놀랍지 않았다. 그는 나 일고여덟 살 때는 이미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을 테니까. 내가 그를 원망할 일은 손톱만큼도 없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듣기에 저건 죄였다. 베르덴이 입을 열었다.

“포르타백. 지금 뭐하는 짓인가.”

“나와 발리앙후는 오랜 세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친분을 유지해왔고, 그건 내 측근과 발리앙 후작의 측근이 증언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필르 발리앙이 증언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네.”

베르덴의 노를 억누른 그 질문이 곧 내 심정과 같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나.

발리앙가문을 어떻게든 해하기 위해 작정했던 것 같은 기요트 변경 백작에 이어 시드니가 직접 나서는 게 내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심한 긴장감을 주었다. 아직 그는 아리엘에게 혼담을 넣어둔 상태다. 저 말대로라면 아리엘의 악행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결혼을 청하였다는 말이 된다.

아리엘을 인질로 삼아 발리앙을 손아귀에 쥐려 했다는 뜻으로 비추어지기 십상.

그리고 베르덴은 차마 인질마저 줄 수 없어 혼담을 바로 수락하지 않고 오래도록 시간을 끌었다는 게……, 될지도…….

어라.

내 눈이 소리 없이 굴러떨어졌다.

정말 그렇게 보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베르덴이 스스로 죄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이 생각하게 되어버리는데. 어라, 이거.

입가를 매만지던 손끝으로 입술을 덧그렸다. 입꼬리가 비실비실 올라가는 걸 숨기지 않았다. 나는 항상 웃는 사람이므로. 버릇 된 웃음이든 진심 어린 웃음이든 나는 웃는 사람이다. 이 순간에마저 나는 웃어도 되었다.

이거야 원.

이를 어째.

베르덴. 너는 이리 보이게 될 걸 알면서 네 목을 죄었나.

아니, 몰랐겠지. 몰랐으니 혼담을 오래 끌었겠지.

시드니가 나도 모르는 새에 베르덴과 친분을 유지해왔다 하는 저 말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다. 나는 그가 내게서 거리를 두었듯 같은 옛 친구인 베르덴과도 거리를 두었으리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따라서 두 사람의 친분을 조사해볼 생각도 해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내가 놀랍다 하는 건 그 친분 자체가 아니라…….

“여기가 어느 안전이며 무슨 자리라고 감히 거짓을 말하나. 어찌 감히 내 가문을 내 앞에서 욕되게 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놀란 건, 시드니 저 사람이 옛 친구이자 현 친구인 베르덴에게 덫을 놓고 지금 베르덴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일이다.

시드니는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친구인 나를 위해 저가 이루어왔던 명예와 가문까지도 걸었던, 미련하리만큼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베르덴의 목에 이리도 무덤덤하게 칼을 들이밀 줄은, 정말, 몰랐다. 아리엘에 대해 대비는 하여도 베르덴에게마저 이럴 줄은.

“그럼 발리앙후, 그대는 포르타백의 말을 부정하는 거요?”

여태 잠잠히 있던 디알로 후작이 물었다. 공작을 공작이 공격하던 때와는 조금 풍경이 달랐다. 베르덴에게서 살기가 사람을 찌를 듯 살벌하게 나왔다.

나는 베르덴을 신중하게 살폈다.

서슬 시퍼렇지만 결코 이성 잃고 날뛰는 살기는 아니었다. 찰나, 금세 갈무리하고 그는 써늘하게 대응했다.

“당연히 부정하오. 그리고 디알로 후. 말씀 조심하시면 좋겠군.”

“그리 하겠소. 그럼 포르타백.”

디알로 후작은 고개를 가볍게 숙여 사과를 대신한 후 시드니를 불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러운, 무시이기도 하였다. 수위가 낮아 무어라 분노할 수도 없는. 디알로 후작이 베르덴을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존중하고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경멸하고 있는 중으로 보인다.

그나마 경고할 수 있는 황제는 입을 다물고 있고, 또한 비슷하게 경고할 수 있는 나는…….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있고.

실은 이 자리, 이 주제, 싱글싱글 웃으며 툭툭 내뱉는 말로 정리할 시도는 할 수 있다. 조금 전에도 그리했듯. 이보다 더 무겁고 소름 끼치는 자리에서 나는 나와 라이네를 살리기 위해 태연한 척 변호했던 바도 있다. 그런데 하물며 남을 조금 돕는 자리라고 못할까.

그럼에도 더 나서지 않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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