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117화 (117/157)

00117 CHAPTER 10. 반디의 밤, 종언終焉 =========================

*

나는 일어나자마자 보인 광경에, 이제 막 눈 떠 정신없는 몸으로도 기함하고 말았다. 쥰이 내 손을 잡고 웅크려 자고 있어서.

나로서는 조금 전까지 의식불명이었던 아이가 그러고 있으니 온몸이 떨릴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의자에 앉아 있던 내가 어째서 침대에 누워있는지도 구별되지 않는 가운데, 쥰이 이곳에 이런 모양으로 있는 까닭을 밝히는 게 가장 급하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고요한 바람 한 결도 없는 더운 방 안에서 나는 떨리는 손을 움찔거렸다.

“쥰.”

가느다랗게 부서지고 갈라진 목소리가 아이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나는 지그시 억눌린 숨을 악물고 다시 음성을 끌어올렸다.

“쥰.”

“…….”

“쥰. 아가야.”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깨가 들썩거리지도 않아. 움직임 한 번 없다. 내 옆에서 영영 잠들기 위해 여기까지 기어왔다는 말만 하지 마라. 그런 이야기는 안 돼. 어찌 된 일인지 붕대가 감겨 있는 내 손에 힘을 주었다.

“쥰.”

힘 준 손을 애써 흔들며 떠는 순간, 주황색으로 물든 빛이 그 방향을 바꾸어 강하게 우리를 비추었다. 노을, 그 볕 하나에 바뀌어버린 분위기마저 불안하였다. 정적이 호젓하다. 나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아래턱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린 후에 들어오는 누군가에게 알렸다.

“쥰이 눈을 안 뜨네.”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그렇군. 의사다. 의사와 여자 하나. 그리고 할리.

“각하……! 정신이 드십니까?”

“쥰이 눈을 안 떠.”

내 위로 들이 밀어지는 그들의 눈을 보며, 나는 고집스럽게 쥰의 상태를 알렸다.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의사 대신 할리가 침착하게 내게 대답했다.

“정신은 차리셨어도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부디 염려치 마십시오. 각하의 몸이 상할까 염려됩니다.”

“아니야. 숨이 안 들리네.”

물을 마시지 못해 목소리는 쩍쩍 갈라지는데도 말하고 말하였다. 쥰이 정신을 차렸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내게 저 죽는 모습 보여 주려 온 게 정말 아니야? 아닌데 얘는 왜 눈을 안 뜨나.

그러자 대경한 것 같은 의사가 급히 쥰의 코에 손을 대 보았다.

한참 후에야 그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숨 쉬십니다.”

“…….”

나는 입을 조금 벌리고 깊이 숨을 흘렸다. 살았구나. 살았다. 살았어……. 한참 찾기 힘들 정도로 실낱같은 호흡이라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아득바득 말한 여파인지 마른기침이 거세게 시작되었다.

누워서 기침을 하니 가슴 부근이 몹시도 아파 왔다. 쥰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기침하며 몸을 조금 웅크렸다. 할리는 그런 나의 등을 받치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굽히고 오래도록 기침하였다.

그리고 킴이 떠다 준 물을 두 컵 연거푸 마신 뒤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나는 의사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가며, 또 나는 의사에게 쥰에 대해 질문해가며, 그가 조심스럽게 내 몸을 만지며 진찰하는 걸 가만히 두었다. 물론 할리는 내게서 뒤돌아 있었다. 내가 나흘 만에 일어났다는 것도 진찰 중에 들었다. 일단의 진찰이 전부 끝나자 의사가 조심스럽게 내게 발언할 허락을 구하였다.

나는 허락하였다.

“……각하의 몸은 오래전부터 이미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능히 견딜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독에도 이제는 조금이나마 흔들리고 말게 될 정도입니다.”

“…….”

“각하. 이미 여러 번 말씀드린 바 있듯이, 몸을 혹사하시는 것도 문제이지만, 제발, 제발 마음을 편히 가져 주십시오. 마음 병은 몸 병에도 기어이 영향을 미치고 맙니다. 올리는 이 말씀을 부디 받아들여 주십시오.”

매번 마음 병에 대하여는 그럴 리 없다며 잘라 냈던 바.

긴장한 의사를 잠시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쥰을 내 침대에 눕히고, 할리경은 이리 와서 이 사람을 도와주게. 킴. 씻어야겠으니 목욕시중 들 이들을 데려오고.”

간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물을 마셨어도 아직 메말라 있는 입술에서 무언가가 부스스 떨어졌다. 핏방울이었다. 손을 들어 굽힌 검지를 입술에 대었다. 갈라진 입술 살갗 사이로 핏방울이 연신 솟아오르고 있었다.

킴이 대어주는 손수건을 내가 대신 지탱하고, 킴은 시중 들 시녀들을 부르러 보냈다. 의사는 내 외면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도록 몇 걸음 물러났다.

나는 일어나기 위해, 잡고 있던 쥰의 손을 놓으려 하였다.

“…….”

놓아 지지 않았다.

나는 무심코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잡고 있는 줄 알았더니 주도권은 쥰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숨기고 손수건을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빈손으로 쥰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었다. 마지막으로 새끼손가락을 떼어내며 아주 잠시 그 손가락을 꼭 잡았다.

……미안하다, 쥰.

이마를 침대 이불에 고이고 있는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정수리나마 보면서 나는 내심 사과하였다.

미안하다.

너를 라이네의 일로 희생시키는 일은 아리엘과의 혼담 말고는 좀처럼 없으리라 생각했다. 결코 없으리라고는 말하지 못해도, 되도록 없도록 하리라 생각했어. 너는 나와 라이네를 염려치 말고 네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 뒤는 내가 봐주리라고도 생각했고, 그게 네 누이인 내 마음이고 라이네의 주인인 내 의무였어. 내 동생. 너를 사랑하는 나의 의무였어. 나와 관련하여 다시는 네 삶을 잃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런데 이게 뭔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 부축마저 받아가면서 내게 달려온 네 애정. 이제 그저 숨 막히는 게 아니라, 숨 막히도록 애달프고 섧다.

네게 내가 독이구나.

몸을 구부려 쥰의 머리통에 입술을 대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에 입을 묻고 속삭였다.

“……사랑한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다시 한 번 입맞추었다. 사랑한다, 내 동생. 네 목숨을 건 희생은 두 번 다시 없게 하겠다.

중독된 건 쥰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일을 여기까지 몰고 온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허리를 폈다. 내가 입 맞추는 것을 보고 급히 시선을 돌렸을 두 남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고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다리가 뻐근했지만 서지 못할 정도도, 걷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의사와 할리가 깊이 잠든 쥰을 들어 내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히는 걸 지켜보았다.

기척에 깨어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저토록 건드리고 움직이게 하여도 잠에서 깨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일이었다. 의사의 말대로였다. 일어나긴 하였으나 결코 멀쩡하지는 않겠다. 저런 몸으로 내 곁에 붙어있다니 저 아이는 제정신이고, 그걸 가만히 둔 할리와 용인들은 제정신인가.

씻고 나와 곧바로 집무실로 간 나는 그곳에서 할리를 매섭게 질책하였다.

그로부터 남은 겨울 며칠은 팽팽한 긴장과 함께 흘러갔다. 그리하여 3월의 봄.

나의 목숨이 시작되고 끝나기 시작하는 봄이 왔다.

*

봄의 첫날. 3월 1일.

이미 출궁한 셋째 황자, 셋째 황자의 모친 되는 비가 추포 되었다. 또 다른 아들인 둘째 황자가 사망한 뒤 숨소리도 못 내고 물러나 있는 여자는 아들 잃은 증오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사고’로 죽었다 함에도 그 뒤에 필히 알드리히가 있다며 이를 갈고 있는 게 예전에는 가끔 우스웠다. 친정에서도 버려 세력도 없는 주제에 이를 갈면 어쩔 것인가 하여. 그러나 그래서 기어이 데스챔프에 접촉하고 마는 것에, 나는 우스워하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설마 데스챔프나 되는 가문의 주인이 그런 승산 없는 역모에 손을 대겠는가 했다.

그러나 접촉이 반복되었다. 반복되고 반복되었다. 나는 그걸 보고받고 지켜보며 판단을 보류했다. 데스챔프 공작의 속셈을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라이네는 이미 온갖 소문에 휘말려 눈초리가 곱지 않은 상태였고, 내가 골머리 썩혀야 하는 일들은 당장 내게 해 끼칠 게 아닌 반역이 아니라 당장 닥쳐 있는 라이네에 대한 일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라이네에 무슨 해라도 더할 위험은 감수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라이네의 일만으로도 이미 벅차다.

하여 지켜보기만 할 뿐 섣불리 손대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기사와 알드리히의 기사로 추정되는 자가 감시 현장에서 시선을 교환하게 된 일이 있어, 알드리히도 알게 되었다고 짐작하였었고. 그러나 내가 알드리히의 기사로 추정하였듯이 그쪽도 내 기사를 누구의 사람으로 추정하기만 하였을 것이다. 역모를 꾀하는 것을 알고도 보고치 않은 건 크나큰 죄이기 때문에, 다시 맞닥뜨리는 일 없도록 나는 더는 기사를 보내지 않았다.

내가 아닌 다른 자라도 저 천인공노할 사안을 알게 되었다면 내가 더 지켜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기도 하였다.

그럼 이번에는 어떠했느냐?

“…….”

이번 체포 작전에 나는 조금도 관련하지 않았다.

내가 꾀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제 측이 선수를 친 탓에, 여태 내가 데스챔프의 동향을 살펴왔던 일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우스운 게 무언지 아는가.

라이네와 바비에르를 엮은 소문이 내 귀에 들어온 그 다음 날, 작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르네는 계획대로 움직였으나, 그 밖의 상황은 내 계획도 르네의 계획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바비에르의 소문을 가라앉히고자 역모를 이용하려 했던 내 계획대로 되었으나, 허망하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내 계획이 하나하나 부서지고 어그러지는데 그럴 수밖에.

데스챔프가 관련되었다는 말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나오지 않았으나, 황제와 내 입만 열린다면 데스챔프 공작이 엮여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데스챔프가 무너지면 라이네가 받을 견제가 상당하기에.

오늘 다급한 보고를 받고, 나는 요즘의 일상대로 쥰과 저택 가까운 곳을 길게 산책하였다. 재활운동의 일환이었다.

그 일정을 마무리 짓고 나서야 입궁하였다. 반드시 알현하겠다는 각오로 온 건 아니었다.

알드리히는 내가 급히 청하는 알현이 아니더라도 이미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할 터. 황제의 하루 일정이란 것은 대체로 어찌나 치밀한지 나의 하루 일정에 비하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내가 알현을 청할 때마다, 그것도 며칠 전에 미리 청해둔 알현이 아닌데도 대부분을 응해주는데 그건 내게 있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내게 특별히 출입이 허락된 정원을 거닐며 여러 번 깊은 숨을 내쉬었다.

꽃은 한 송이 피지 않았다. 상록수만 녹색으로 이파리를 빛내고 있어, 외려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착잡하고 허망하게 비어가던 명치에 봄바람이 서늘하게 닿았다.

어느 한 곳에 멈춰선 나는 눈을 감고 어깨에서 힘을 풀었다.

“…….”

새 지저귀는 연한 소리가 잔잔하였다. 소리에서마저 맑고 건강한 녹색이 무성하다. 눈 뜨지 않아도 여기 청람이 감은 눈앞에 선했다.

머리칼이 차분한 바람에 작게 흔들렸다.

공간 감각이 어지럽게 나를 휘감을 때쯤 나는 조용히 눈 떴다. 결국 한 차례 휘청거리고 말았으나 오른발에 힘을 주고 버텼다.

어지럼증은 곧 가셨다.

나는 내가 들어온 입구가 아닌 다른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른 정원으로 연결되는 입구이기도 하였다. 천천히 걷고 걷다가 솔체궁에 한 번 들르면 되겠다. 마음이 아직도 모양 정갈하게 접히지 않았다.

라이네 저택은 답답하였고, 오드리나 길거리는 이미 쥰과 걸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가출하여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지금, 거닐 곳이 황궁이라니 이 무슨 찬란한 사치 같은 것인가.

바삭거리는 땅을 밟아가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첫 정원을 벗어나 두 번째 정원으로 들어가고 얼마 걷지 않아 그곳을 이미 거니는 정원의 주인을 발견하였다.

“…….”

정확히 말하면 알드리히와 아리엘, 그들을 멀리서 기다리는 궁인들을.

나는 멈춰섰다. 신발 아래에서 작고 약한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서로를 마주 보고 대화하고 있는 그들의 분위기는 일견 몹시도 좋았다.

아리엘을 진실로 황후로 들일 생각이라면 알드리히는 미친 것이다. 날 죽이려 한 사람이 발리앙의 사람이냐 물었을 때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한 상태였을 텐데. 그러나 알드리히가 특별하게 교류하고 있는 영애가 아리엘뿐이라는 건 우리 가주들의 시선에 경계가 설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말하던 아리엘의 손이 곱게 팔랑거리며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천천히 턱을 들었다.

덜컥거리는 충동이 있었다.

예복 바지 옆에 늘어져 있던 손이 들썩거리기 시작하였다. 아리엘을 보는 눈이 어릿어릿했다.

조금씩 올리기 시작한 손이 가슴 앞에 도착하였다.

자……. 이것 보라. 진을, 그려서 밀면 된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알드리히의 앞으로 진 없는 마법을 하나 더 보내면 된다.

그러면 더 갈 것도 없이 아리엘은 여기서 끝난다. 내가 그랬듯 저 여자도 여기서 끝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더라도, 내가 증언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여자를 황제살해미수 죄로 끝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르네는, 그 이후에, 나 개인적으로 가서. 텔레포트로. 라이네 저택에 감금당하여 상상하였던 그대로. 가서. 죽이고 빠져나오면. 그러면.

“…….”

그러면 된다…….

입술이 벌어졌다. 코로 숨을 들이켜던 그대로 멈추었다. 턱이 알 수 없는 허무함으로 떨렸다. 너희를 오늘 이대로 쉽게 죽이자고 내가 여기까지 일을 끌고 온 게 아닌데. 쥰, 그 아이의 몸을 스스로 상하게 하자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분명 아닌데.

정말 이 자리에서 아리엘을 마무리하는 게 내게 족한가.

어렴풋한 망설임에 상관없이 손이 더 올라와 내 턱 앞에 멈춰섰다. 조금씩 앞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얼굴로부터 한 뼘 정도 멀어졌을 때, 또다시 멈췄다.

내 앞을 가린 자가 있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기척에 흠칫 소름이 끼치는 것도 잠시, 고개를 들고 그자와 눈이 마주치자 내 입이 망연하게 벌어졌다.

“……경.”

“그러지 마십시오.”

“경.”

“그러지 마십시오.”

내 갈라진 부름에 시드니는 차분하게 반복하였다. 어둡게 가라앉은 그의 시선이 나를 휘감았다.

============================ 작품 후기 ============================

mqcetus님, 소영씨님, 후원쿠폰 감사드립니다♡♡

잠시 자유연재로 돌립니다.

어쩌다 보니 월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오고 말았습니다.

즐거운 월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

+이번편 참고는 4-1, 4-2, 에스메 외전, 에본느 외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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