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CHAPTER 9. 악, 그 두 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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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 걸 깨워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안 자고 있었나 봅니다.”
한동안 내 얼굴을 살피던 알드리히의 첫말이 그랬다. 나는 그가 나를 보는 동안 그의 코 즈음을 보고 있던 눈길을 그제야 올렸다. 그러나 그 외의 반응이 주춤하는 사이, 알드리히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고를 듣자마자 채비를 했는데도 많이 늦어서.”
“…….”
“잠, 잘 자고 있다면서요.”
이런 말을 하러 온 게 아닐 텐데도 서론이 길다.
나는 옅은 한숨을 쉬고 씩 웃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울화 운운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여러 이유로 몸에 피로가 쌓이고 쌓여 정상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런 새벽에 깨어 있었으니 잠을 충분히 자지 않고 있다는 말에 증거가 생기기도 했고.
반박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뻔뻔하게 반박할 수 있지만, 기를 써서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부족한 수면을 황제에게 인정할 이유 역시 없다.
내가 말없이 싱글싱글 웃는 걸 또 한동안 보던 황제는 웃지 않고 말했다.
“전부터 지금까지, 웃음, 많이 사라진 거 압니까?”
몰랐다.
내가 덜 웃었나. 평소처럼 웃으며 지내왔던 것 같은데. 처음 듣는 말에 지난 시간들을 빠르게 회상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그가 나를 떠보기 위하여 하는 말일 지도 모른다. 나는 드디어 멋쩍어하며 웃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리 느끼셨습니까?”
“예. 그래서 내가 이러고요. 뭐라 했습니까? 그 구더기가.”
푹 찔렸다.
나는 수 시간 전 그 남자를 상대할 때, 수작 부릴 시간을 주지 않으려 해서, 해서, 해서, 따위의 말로 대화를 이어갔던 나를 떠올리고 훗 웃었다. 기왕에 웃고 있던 입술이 조금 더 길게 벌어졌다.
나는 그렇게 웃으며 잠시간 알드리히를 응시하다가 선선히 대답했다.
“살려달라고 왔습니다.”
“주제에 촉은 참 빠르네요.”
“감탄하시는 게 자연스러워 제가 다 감탄이 됩니다. 그를 제게로 유도한 분이 폐하 아니십니까.”
“정확히 말하면 누이한테 갈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움직이나 보려고 했지. 도망칠지, 누구에게 가서 빌지. 설마 누이가 얻어걸릴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그 자랑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모든 것을 대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쥰의 모친 일부터 끄집어내야 하는데, 내가 미쳤다고. 라이네 내부의 일을 말하는 건 상대가 황제라도 힘든 일이며, 황제 역시 가문 내부의 일을 캐묻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 상황은 자칫하면 죄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황제에게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일이라서.
한숨을 쉬며 코끝을 검지와 엄지로 훔치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여행을 다닐 적에 알게 되었습니다.”
“가출하고 다니던 질풍노도의 그 시기?”
……질풍노도의 그 시기를 스물다섯 살까지 이어가고 있던 나를 좀 배려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들으니 무지막지하게 민망했다. 언제부턴가 싱글싱글 웃고 있는 알드리히에게서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느리게 대답했다.
“……예.”
“흐음. 지금 누이가 곤란한 상황이라는 건 알지요?”
“용병이 저를 찾아온 것뿐인데 어째서 곤란합니까?”
“아, 용병이었습니까? 그자. 나는 미로골목에서 살고 있는 자객이라는 것밖에 몰라서.”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그 용병단에서 어쩐지 보이질 않더라니.”
아슬아슬하다.
서로 웃으며 대치하는 이 상황이 익숙하지만, 내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을 건 이런 자리는 항시 진저리가 쳐진다. 바비에르의 수기를 받은 지 몇 달이나 됐다고 또 알드리히에게 걸렸나.
그는 싱글거리는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 피식 웃더니,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피식피식 웃기 시작하며 몸을 뒤로 기댔다. 뻣뻣이 세우고 있던 허리와 등이 등받이에 묻혔다. 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인정할 리가 없겠군.”
“인정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경계하느라 수고하는 누이에게는 미안하게도, 이 일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이를 협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설령 곤란해지는 사람이 생겨야 하는 상황이 온다 해도 그건 누이가 아닐 거거든.”
“…….”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웃는 얼굴로 눈을 살짝 찌푸렸지만, 무슨 말씀이냐고 물을 건지를 결정하기 전에 알드리히는 옅은 웃음기가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이. 난 누이를 죽이려 한 자들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말이 번복되었다.
이래서 황제를 마냥 믿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믿은 적도 없기에 놀랄 이유가 없었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미세하게 갸웃했다가 세웠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다시 소리 내어 웃은 그가 몸을 조금 기울여 손가락 끝에 턱을 기대고 말했다.
“약속했던 대로, 누이가 바라기에 가만히 있긴 하겠는데, 파악은 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조금 다른 이야기로 가볼까요. 나는 미로골목이 죄악의 온상지라는 걸 압니다.”
“송구하지만, 그걸 모르는 귀족들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문제고.”
여유만만하다. 느긋하기가 열 받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나를 깊숙한 곳까지 파헤치겠다는 눈이라, 한 치의 긴장도 놓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마침 할리가 문을 두드려 살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태연한 척 관자놀이를 검지 끝으로 누르며 한 내 허락을 받고 들어온 할리는 먼저 술과 술잔을 내려놓고, 차를 따른 찻잔을 이어 내려놓았다.
다른 시종이나 시녀를 시킬 수 없으니 그가 직접 할 수밖에. 잠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폐하의 기사들은?”
“다른 응접실에 안내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내게 보고한 시종은 일단 빈 방에 갇혀있을 것이다. 불쾌해하지 않도록 잘 타일렀을 터이니 염려할 것 없다. 부드럽게 치하하자 기사는 나와 알드리히에게 예를 갖춘 뒤 물러났다.
알드리히는 몸을 바로 하고 손을 뻗어 술과 술잔을 옆으로 치웠다. 심지어 내 잔도 치우기에 의아해하면서도 웃고 말았다. 늦은 시각에 만나면 잔을 기울이는 게 보통이었지만, 설마 이런 자리에서마저 술을 마실 성 싶었나.
그가 웃으며 물었다.
“저 사람이랑 발리앙경 중 누가 더 낫습니까? 보좌로.”
“둘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한 질문에 적당히 대답했다.
이후 알드리히는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이도 알다시피, 미로골목을 이용하는 귀족들이 많습니다. 쓸어버리자니 반대가 심할 겁니다. 항상 그랬지요. 그래서 선황께서도 실패하셨고.”
“…….”
“그런데 난 어떻게든 말살하고 싶어졌습니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 대답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말살하고 싶어진 이유가 공적인 이유였든 사적인 이유였든. 나는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댔다. 기울이자, 입술을 누르며 찻물이 흘러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포르타경은 따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게 어쩌다보니 맞물려서. 내가 그 사람이 터놓은 길에 발 좀 디뎠습니다.”
찻물이 덜컥 혀뿌리에 걸렸다. 잔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눈을 올리자, 이미 나를 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황제는 문득 쓰게 읽히는 웃음을 지었다.
“누이는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무엇, 말씀이십니까?”
잔을 입에서 떼며 물었다.
이번 일에 대해 시드니와 알드리히가 얽혀있을 수도 있겠다고, 알드리히가 행차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미로골목의 남자가 가까운 관계라고 의심을 살 것이 뻔하여, 이번 일을 어찌 알아보아야 할지 할리의 의견까지 들어보았던 바.
그런데 알드리히가 직접 와서 이번 일의 전말을 밝혀주려는 것 같아, 나는 약간 긴장하고 말았다.
알드리히의 눈꺼풀이 조금 내려갔다. 내 얼굴 위에서 일순 초점을 잃었던 눈길이 빛을 찾기까지 겨우 수 초. 길었다. 그의 모양 좋은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그때 이야기를 꺼내게 되네요. 누이가 포르타 영식과 갈라섰을 때 말입니다.”
일 년이 넘었다. 몇 개월 있으면 2년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대략적으로 시간 계산을 해보다, 나는 떨리려는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설마 그때부터 무언가가 있었나. 짧게 대답했다.
“예.”
“누이가, 포르타 영식을 마음에 담은 걸 아는 사람들을 꼽아주었었잖아. 기억합니까?”
“……예.”
전에 있던 연회에서도 알드리히가 언급했었고. 덕분에 완전히 잊고 지워버릴 새도 없었다.
느릿느릿 대답하자, 그는 다시 억지로 짓는 것 같은 웃음을 보였다.
“한 번도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어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포르타경 말입니다. 시드니경. 내가 누이의 감정을 눈치 챘을 사람들에 시드니경을 꼽은 것,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냐고 묻는 겁니다.”
겨울밤 특유의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창문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려 창문을 잠시 응시하던 알드리히의 입에서 천천히 웃음이 지워져갔다. 또다시 그의 눈길이 깨졌다.
무표정은 기묘하게 여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이 무방비한 저 눈이.
비껴나가 있는 그 눈길의 끝은 좀처럼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황제는 그렇게 내게 말했다.
“안면 있고. 대화도 나누고. 인사도 하고. 웃고. 의론하고. 그러나 그게 다인 사이는, 누이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도 가진 관계입니다. 수많은 영애들, 수많은 영식들, 수많은 가주들과.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리고 그건 누이가 포르타경과 가진 관계이기도 해요.”
나는 거기까지 듣고, 아직 들고 있던 잔을 입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그런데도 누이는 포르타경을 참 자연스럽게 선 안에 두었습니다. 나처럼. 발리앙 후작처럼. 포르타 영식처럼. 발리앙의 그 쌍둥이처럼, 말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포르타경만을 특별히 용납했어.”
목을 넘어간 한 모금이 두 모금이 되었다.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느낌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오묘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포르타 영식을 보는 눈이 달라져서, 포르타경은 아니구나 했었고.”
“…….”
“누이보다는 포르타경 쪽이 읽어내기는 더 쉬웠어요. 어려웠다면 좋았을 텐데. 왜 나와 같은 사람을 보는 남자들은 귀신 같이 읽히는 건지.”
나는 찻잔을 완전히 비웠다.
빈 잔을 받침에 내려놓아도 알드리히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보지 않는다. 고요하지 않은 새벽인데도 가라앉은 고요함이 있었다.
내가 후계자 신분으로 알드리히에게 불려서 잠시 쉬고 가라는 배려를 받았던 날. 시드니가 올 건데 같이 가겠냐며 물던 당시 황태자의 표정이 떠올랐다. 떠본 게, 맞구나. 술병으로 뻗으려던 손을 확 구부리고 거두었다.
“포르타경은…….”
“…….”
“그 사람은 누이를 보고 시선을 떼는 게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조금의 아쉬움도 없는 것처럼 시선을 뗄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 짧은 순간, 빛납니다.”
“…….”
“내가 누이를 보는 눈도 그렇게 빛나기를 원할 정도로 빛나.”
나는 욕지기가 오른 것처럼, 혹은 헛기침을 하는 것처럼, 명치에서부터 올라왔던 숨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불편해하며 두 어깨를 폈다. 자세를 어떻게든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알드리히는 천천히 내게 시선을 되돌렸고, 그 끝에 박힌 나를 한참을 보던 그는 웃지 않는 내게 말했다.
“누이가 그 사람을 볼 때 그렇듯이.”
반박할 것처럼 벌어졌던 입술을, 남은 이성으로 닫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내가……, 어찌한다고?
“말했었지요. 누이가 포르타 영식을 마음에 두었던 당시 어땠는지. 그런데 그것보다 더합니다. 분명 안 그랬었는데, 분명 아니었는데, 그런데 그날, 누이가 신전 앞에서 그 사람을 돌아보는 게, 그게, 포르타 영식 때에 비할 수가 없어서…….”
일그러진 황제의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내게 물었다. 내 눈이, 어찌한다고?
턱이 떨리는 걸 다잡고 입을 다물었던 알드리히가 입 꼬리를 올렸다. 억지로 끌어올렸다 하는 그 느낌이 내게 밀려왔다. 그에게서 비슷한 걸 느낀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스스로 옥에 들어간다 했을 때처럼 무너지는 중이었다.
앎에도 그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내심 다시 물었다. 내가, 시드니를 볼 때, 어떠했다고? 그리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
“누이 옆에 있는 모든 남자를 질투했으나 그 사람을 질투한 만큼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럴 리가.
“그런데 결혼 이야기가 나오더니, 내가 꼽았던 사람 중에는 없답니다. 그리고 누이는 발리앙 후작과 혼인할 것처럼 발리앙 저택을 드나들더니, 포르타경은 필르 발리앙에게 청혼했어요. 누이는 그것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
그럴 리가 없다. 정리와 재단이 끝났다. 나는 내가 어떠했다는 의문을 이만 지웠다. 내 주의는 다시 알드리히에게로 쏠렸다.
알드리히의 눈이 가늘게 찡그린 웃음을 그렸다.
“둘 다 가주이니, 그래, 안 되겠지 하고 납득은 했습니다. ……그런데…….”
“…….”
“그런데도 그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생각해 봐요.”
직전까지 다른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 때문에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던 집중이 어느 순간 솟구쳤다. 하여 이해하지 못한 말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보았다.
그러니까. 그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
……뭐?
이해의 순간, 나는 망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대화가 처음에 무엇에서부터 시작했었는지를 떠올린 탓이었다. 알드리히는 직전의 가라앉은 표정일랑 전부 지워버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어 앉아 있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앞으로 휘청거렸다. 순간적으로 팔걸이를 잡고 버텼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분명 그자들은 폐단이고, 도려내야 할 악입니다.”
“…….”
“그럼에도 그 죄인들이 필요해요. 나는. 역대 황제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그들이 필요해. 그들은 악이지만 귀족들의 약점이기도 하니까.
헌데.
허면?
“해서 나는 진심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은 내 반대를 거역하고 미로골목을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내가 반대했다는 말은 결코 공식화 되어서는 안 되지만, 어쨌든 오늘의 일이 문제가 될 여지는 당연히 있고, 그럴 확률도 몹시 높습니다. 후에 그 사람은 다른 대귀족들의 움직임에 의해 모종의 이유로 실각할 확률이 참, 정말, 높아요.”
“해서, 그 사람은……. 바비에르 때의 저처럼…….”
알드리히는 싱글거리며 두 손을 올렸다. 비어있는 손. 황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말이다. 내가 그와 몇 년을, 무슨 일을 함께 구르며 왔는데 그걸 모르겠나. 그리고 짐작대로 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까 말했잖아요. 반대가 심할 거라고.”
“그래서 포르타 가문이 움직인다는……?”
“예.”
“알고 계시면서 어째서 막지 않으십니까?”
“나는 그가 실각하길 원하니까.”
“그는 폐하의 충성스러운 기사입니다.”
그러자 그가 세상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웃음이 갈무리되자 여전히 재미있어 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재미있는 것 말해줄까? 그 사람은 나한테 충성 안 해요. 일신과 가문이 가장 중요한 다른 가주들보다도 더 충성심이 없습니다. 내게는 내 형제만큼이나 위험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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