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95화 (95/157)

00095 CHAPTER 8. 겨울비. 비애 =========================

그 자객의 침을 모아놓았던 나의 부주의로 아버지께서는 그 침에 찔리셨던 바.

검 끝이 바르르 떨리며 집사의 목 살갗에 실금을 그었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믿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네놈을. 나는 피가 비치는 그 선을 보고 조금 더 힘주어 웃어 보이고 또 물었다.

“그대 독단인가, 발리앙의 사주를 받았나.”

아버지께서 네놈을 얼마나! 믿고! 있었는데! 네놈은! 아, 으. 으!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참아야 한다.

그러나 여든셋의 집사를 쓰러트렸던 일로 맹렬히 화를 내셨던 아버지가 불쑥 떠올랐다. 겉으로 보여야하는 언행과 다르게 발광하고 있던 속내가 불현듯이 튀어나와 집사를 상처 내었다. 세 줄 정도가 더 생겨난 상처로 눈길을 미끄러트렸다.

그때 너는 나를 진정 걱정하여 쓰러졌던 게 아니구나.

평온해야 해.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 숨을 몰아쉴 수도 없었다. 나는 사납게 눈에 힘을 주고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증오를 풀 원수가 라이네 일가라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아마 발리앙의 일원과 뜻이 맞아떨어졌기에 집사는 그자와 의기투합했으리라 생각한다.

발리앙이 먼저 사정을 알고 접근했을 확률이 높은 것은, 집사는 발리앙을 콕 집어 제 아군으로 삼을 이유가 없으니까.

“아버지와 내가 죽으면 쥰이 라이네 공작에 오를 것이라 생각을……, 한 모양이군.”

“…….”

표정을 보자마자 알았다.

이제껏 노인과 주고받았던 수많은 농담 섞인 대화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배신감에 앞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일에 대한 감정들이 나를 짓누른다.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깊은 죄책감도 또, 또다시 나를 삼키고, 이 모든 것에 쥰 자신도 모르는 새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에 끔찍한 미안함이 들었다.

돌아오기 전에도, 돌아온 후에도, 한 명 이상의 누군가는 쥰을 공작에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너.

나는 소리 내어 짧게 흣 웃고 목에 겨누고 있던 검을 조금씩 옆으로 움직였다. 목은 안 된다.

“막아.”

“예.”

할리가 즉시 제 크라바트를 풀어내 집사의 입에 쑤셔박았다. 부족하니 손수건도 꺼내어 쑤셔넣었고, 그것도 부족할 성 싶었는지 장갑도 벗어 넣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을는지 짐작하고 몸부림치기 시작한 집사를 잡아 눌렀다.

나는 웃으며 검을 들어올렸다. 집사가 발리앙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이상, 집사가 갑자기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그쪽에서 의심을 할 것이다. 이를 어찌하지. 일단은 이대로 사지 멀쩡히 두어야 하나.

팔을 내려치기 직전의 모양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그렇다고 잡아두지 않자니, 어떤 사소한 행동이 발리앙에게 가는 신호일지도 모르고.

일단 라이네를 뒤집어야겠다는 건 확실해졌다.

이미 아버지께서 뒤집어엎은 바 있지만, 집사의 주도로 한 색출이었으니 퍽이나 깔끔하게 쳐냈겠다 싶고. 베르덴이 보좌로 돌아오자마자 내 차에 독을 탔던 사람이 이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게 독단이든, 사주 받은 바든.

……사주 받은 것 같지만.

“이거 귀찮아졌네.”

한숨을 쉬고 말하자, 할리는 말없이 나를 보았다.

나는 막힌 입으로도 으븝, 읍, 따위의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비명을 질러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집사를 잠시 내려다보다, 입맛 다시듯 혀를 찼다.

쥰의 모친의 수족이 되어주었던 시녀를 이번 시간에서는 아직 남겨두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아가씨도 바깥에 흘렸다고 토설했던 기억이 있다. 듣고 처리했었고. 따라서 경우의 수는 크게 셋이다.

로드리게즈 백작과 데스챔프 공작의 합작품으로, 소문의 출처가 그 두 사람일 경우.

집사와 발리앙의 합작품으로, 출처가 이들인 경우.

그 외의 경우.

만일 데스챔프가 소문을 낸 당사자였다면, 우리 대귀족들이 모인 회의에서 시녀 아가씨의 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기에 그쪽은 배제했었다.

“…….”

일단은 집사와 발리앙이 출처인 걸로 하자. 애초에 발리앙이 출처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으니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 외의 경우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 나는 결국 검을 내리고 할리에게 물었다.

“경, 기절 잘 시키나?”

“명치를 한 버……, 몇 번 날리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절시켜야 할 것 같은데, 명치에 멍이 남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 약물은 안 되네.”

“머리를 계속 내려치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잘못하면 깨지잖아. 그러다 죽는다. 아서.”

“숨을 못 쉬게 막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건 좀……. 나중에 뇌에 손상이 올 수도 있고. 뒷목을 내려치면?”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명치를 여러 대 때리고 싶고, 머리를 여러 번 내려치고 싶고, 목이 부러질 정도로 힘을 주어 내려치고 싶다는 말이군.

그나저나 의견 내는데 참 적극적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하다가 빈손을 들어 휘저었다.

“장난은 그만하고, 기절시키게.”

“예.”

할리는 뒷목을 날려 깔끔하게 기절시켰다. 집사는 무너져서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할리에게 다가가 검집에 검을 넣어주었다. 차르륵 미끄러져 들어가다 격이 검집 입구에 걸리는 것까지 보고 나서 눈을 들었다. 그리고 집사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다 웃음기 사라진 음성으로 물었다. 극히 피로하여 더 웃는 것은 무리였다.

“다 들었지?”

“……예.”

“집사 아들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할 테고. 어머니의 일도……, 알아봐야겠네.”

“알겠습니다.”

여전히 집사를 바라보며, 그리 느긋하지 못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내가 협박당했던 내용, 인즉 바비에르 일원이 쓴 일기에 쓰인 내용.

부집사의 아들이 쥰의 모친과 연애하였다는 이야기와, 부집사의 아들이 나의 어머니와 연애하였다는 이야기. 두 개가 있었다. 내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쥰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번 생에서 나는 어차피 공작 될 생각이 아니었으므로, 어디까지나 쥰을 위하여 바비에르를 쓸었다. 마침 아직 황자이던 알드리히에게도 모종의 이유로 거슬리던 가문이라 나와 알드리히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었다.

저번 시간에서도, 아주 다르지는 않았다. 몇 가지 세부사항이 다른 점이 있기야 있으나.

어쨌든 나를 협박하며 그자가 든 증거들은 거의 다 정황증거에 불과했다. 그러나 쥰의 눈이 파랗듯, 집사의 눈이 파랗고 그 죽은 아들의 눈도 파랬다는 점이 쥰에게 불리하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쥰의 모친이 집사의 아들과 자주 어울렸다는 점, 어울리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다는 점 등이 누가 들으면 상당히 설득력 있겠다 싶었다. 귀찮아질 여지도 흘러 넘쳤고.

내 어머니와 그 죽은 아들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부위에 치명상을 입고 죽었다는 것도 협박거리 중 하나였다. 아버지께 여쭤보면 간단하게 사실여부를 가렸을 지도 모르나, 여쭈고 싶지 않은 사안이었다. 아버지께 어떤 의미가 될지, 저번 시간에서든 이번 시간에서든 짐작 가능할 만하지 않나. 그렇다고 어머니 생전부터 라이네에 있어왔던 용인이나 기사에게 묻자니, 그들의 최종적인 주인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셨다. 반드시 아버지의 귀에 들어갔을 터.

결국 그렇게 여차저차 하여 바비에르는 그 꼴이 되었고.

집사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건 그때 알게 되었지만, 더 캐볼 생각은 않았었다. 내가 아는 집사는 항상 충성스러웠고, 바비에르가 끝났으니 더 캘 이유도 없었다. 속내가 이럴 줄은 몰랐지.

하여간에 내 죽, 음에 이 사람도 일조를 했다는 말이다…….

“…….”

나는 눈꺼풀을 내려 시야를 조금 접었다. 내 처참했던 말로. 처참했던 라이네 공작. 처참하게 스러지던 라이네. 깊은 호흡으로 어깨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옥에 갇혀 눈, 팔, 다리 하나씩 사라진 성치 않은 몸으로 보낸 생의 마지막 밤. 부디 쥰만은 우리의 약속을 지켜 살아주기만을 바라며 나는. ……나는.

너희가 그렇게 죽이려 든 나는…….

한참 무엇인가를 말할 것처럼 입술을 움찔거리다 입을 열었다.

“……내가 경, 말은 안 했었는데, 어릴 때부터 자객을 자주 맞이했네.”

차분하게 시작한 말에 할리의 시선이 느껴졌다.

“독도 많이 먹었어. 뭘 먹어도 독이고, 뭘 만져도 독이야. 중독당해서 반쯤 죽어나간 적도 있는데, 해독하느라 반쯤 죽어나간 적도 있어. 나는 누가 그렇게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고.”

“…….”

“그러나 모르는 척 하고 혼자서 살아남아왔네.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고 쥰을 흔들고 싶지도 않았어. 결국 그 사람은 아버지의 손에 죽었지. 자진했다고 알려졌지만.”

쥰 모친의 이야기다.

나는 고개를 들고 턱을 들었다. 하, 하는 물기 어린 숨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후로는 대체로 조용했어. 대체로 조용했는데. 이 사람이 보낸 자객에게 내가 쫓기고, 내가 쫓기다 맞고 뽑았던 침들에 아버지는,”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찔리셨고. 그리고 돌아가셨네. 하여 내 탓이야.”

“각하.”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나는 발리앙에서 내게 자객을 보낸 줄 알았네.”

고개를 내려 할리의 표정을 보고 나는 짧게 기침하듯 웃었다.

“필르 발리앙은 황제 폐하를 사랑하고, 나를 죽이고 싶어 해. 추측이나 짐작이 아니라 사실일세. 그래서 나를 죽이기 위한 침으로 아버지께 치명상을 입혔으니, 아버지가 작고하신 건 내 탓이라고 내내 생각해왔네. 그러나 발리앙을 그저 넘어갈 순 없어서 사람을……, 거기 저택에 사람을 심었고. 경도 알다시피. 그래, 그래서 심었네. 가엘경이 애써주었지.”

“…….”

“그리고 그래서, 내가 아까 집사에게 발리앙을 물은 걸세.”

손을 뒤통수에 올려, 오늘 하루 종일 꽉 묶어두었던 끈을 잡아당겼다. 긴 머리카락이 해방되어 부스스 흩어지다가 내려앉았다.

피곤하다. 오늘 밤에는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 분노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던 사람 같지 않다. 알면서도 피곤했다.

묶은 자국이 남아 있을 뒷머리를 손으로 탈탈 털며 말을 이었다.

“이제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 이 사람이 자객들에게 저택 문을 열어준 건 아닌가. 이 사람이 쥰의 모친을 도와온 건 아닌가.”

도왔을 것이다. 발리앙을 도왔듯. 발리앙을 언제부터 도와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감정으로 오른 눈을 찡그리고 웃다가, 할리와 눈을 마주치고 낮게 웃었다.

“왜. 이 사람을 죽이고 싶나?”

“예.”

“발리앙도 같이 죽여줄 수 있겠나?”

할리의 표정이 마침내 크게 일그러졌다. 호흡이 떨리는 게 들렸다. 나를 위해 죽었던 이 사람을 믿는다. 나는 그가 할 대답을 알고 있었다.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멋져라.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 빼놓고 가엘경이랑 그 사람 동기들과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삐치지는 말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는데 설명하기 귀찮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눈앞이 조금씩 뿌옇게 변해서, 오른 눈을 완전히 찡그려 감고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 할리가 물었다.

“그럼 집사는 이제 어찌하려 하십니까?”

“조용히 집사의 방에 눕혀놓아야지. 이제부터 이 사람은 아파서 쓰러진 걸로. 잘 지키고 있다가 일어나면 다시 기절시키게. 라이네의 용인들을 엎기 전에는 조심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블린성의 총집사를…….”

말을 멈추었다.

총집사는 블린성으로 모여드는 서류들을 모아 내게 보내주는 사람이다. 여기로 당장 불러올리면 자칫 중앙령을 포함하여 모든 라이네령이 마비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할리를 거기로 보내자니, 여기서 할 일들이 많았다.

이 저택에 부집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아직 젊고 경험이 적어 시종시녀들을 휘어잡기에는 부족했다. 이 사람이 이렇다 할 후계자를 일찍이 키우기 시작하지 않은 탓이다.

푼 넥타이를 손에 걸고 단추를 풀며 말을 고쳤다.

“부집사가 잠시 수고를 해 줘야겠군.”

“서열이 잡히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공녀일 때처럼 단속하고 다닐 수도 없고. 쥰에게 수시로 살피도록 할 테니, 버텨질 거야.”

“알겠습니다.”

목적했던 단추 두 개가 풀리자 손을 뗐다. 그리고 그 손을 그대로 할리의 어깨에 올렸다. 강하게 휘어잡자 그가 눈을 깜박였다.

나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경. 내가 잠을 잘 거야.”

“…….”

그러자 할리도 진지해졌다. 쪽잠을 모아모아 하루에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나는 점점 부예져서 이제 바로 앞의 할리의 얼굴조차 확실한 형태를 잃는 것을 보고, 비장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서 집사와 함께 있다가, 저택이 조용해지면 그때 집사를 옮기게.”

“각하께서는, 그러니까, 여기서 주무신다는……. 각하 주무시는데 옆에 있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소리 내도 되니까 혹시라도 집사가 도중에 깨면 다시 기절시키고. 옮기다가 실수했답시고 팔다리 부러뜨리진 말고.”

“하고 싶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

불안하게 무얼 그렇게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어.

떨떠름해하면서도 몸을 돌린 나는, 눈에 보이는 침대에 들어갔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이불을 덮고, 아마도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든 것 같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다. 더듬더듬 손에 힘을 주고 상체만 일으켜 앉았다. 아직 할리와 집사가 있었다. 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일어나셨느냐는 걱정에 화답할 정신이 없었다. 나는 솟는 욕지기를 참고 한참을 집사를 응시했다.

아, 그러니까.

꿈을 꿨는데, 아버지의 마지막과 나의 마지막이었다.

목에 칼을 꽂고 쓰러져 있는 시신. 구두 끝에 닿은 피 웅덩이.

원망해 달라는 시드니에게 목이 잘리고 나서도 잠간 살아있던 내가, 그, 목이, 바닥에 닿는 감가

나는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황급히 떨어뜨렸다.

“흐어억. 우어, 으어억.”

“각하……!”

흰 이불에 위장에서 평범하게 녹아가던 내용물이 쏟아졌다.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구토를 하면서 쏟아냈다. 가슴뼈가 아프고 숨이 막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연신 구역질. 구역질. 구역질.

죽을 것 같다.

-원망, 하십니까.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해 주십시오.

꿈속에서마저 들은 그의 말.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채로 시간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을 시드니가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했는지 이제 알겠다.

나는 감각이 마비된 것 같은 오른 손을 들어 목을 감쌌다. 꿈의 후유증인지 구토의 후유증인지 모르겠으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죽을 당시의 두려움을 간직하면 그를 끔찍하게 여길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시드니는 죽음을 많이 보아왔고, 죽음과 수없이 부대껴온 사람이므로, 그렇게 예상했을 지도 모른다. 아, 그렇다. 바닥에 닿던 그 촉감. 내 머리가 바닥에 굴렀었다. 차갑고, 내 피로 따뜻했다.

-당신을 제 손으로 거둬야 한다면, 당신과의 관계도 잃고, 그 죽음 속에서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관계가 실로 파탄날 것을 알고도 그는.

앞으로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헤치고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눈앞이 일렁거린다. 흐렸다.

두려워도 차마 그를 원망하지 못할 나를 알아서, 원망해도 괜찮다고 우회하여 말한 걸까. 아니면 응당 원망을 받을 일이니 원망을 받아야 마음이 편해지리라 생각하여 내게 원망을 부탁했던 걸까.

그러나 어느 쪽이든, 시드니는 되돌아간 시간에서 그의 인생에서 나를 완전히 잃을 각오로 죽였을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이제, 알겠다.

토사물로 축축해진 입술을 벌렸다. 축축한 숨이 빨려 들어왔다.

처음 같은 두려움으로 숨이 막힌다. 기가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나는 토사물이 고인 이불을 다리에 덮은 채로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토하느라 고인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시드니가 옳았다. 다시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죽음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직 속이 편치 않으십니까? ……각하?”

그러나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닌데.

나를 진정 죽인 사람은 그가 아니라고, 내 죽음, 내 처형 어디에도 당신의 죄는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건 진심이었다. 내가 끔찍하게 여길 사람은 당신이 아니다.

나는 내 등을 두드려주다 가만히 물어오는 할리의 팔을 휘어잡고, 테이블에 쓰러져 있는 집사를 흐려진 눈으로 응시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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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내년에 왔습니다! [system:발랄하게 인사하던 작은밤은 독자님께 허리케인 돌려차기로 맞았다.]

......또 와서 죄송합니다. 말을 번복하고 번복하여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시험 끝나기 전에는 오지 않으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왜 나는 글을 쓰고 있나. 왜 나는 옆에 쌓아둔 책을 보고 울면서도 글을 쓰는 손을 멈출 수가 없나.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실은 심적으로 흔들리는 거라든지, 외면하고 있는 울화라든지, 지난 챕터부터 암시적으로 쓴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안 이래도 되는 장면 빨리 쓰고 싶습니다. 예에전에 써둔 시드니와 에브 파트 보면 마음이 조급해져요, 큽.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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