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1 CHAPTER 8. 겨울비. 비애 =========================
살롱에 다녀오려고 채비를 하던 참에 할리로부터 보고를 받았는데, 확실히 이후 도착하여 느낀 살롱의 분위기는 아주 만족스럽더라.
정보에 빨라야 하는 대귀족 가문의 가주가 나를 포함하여 셋이나 참석한 살롱이었으므로 이상하게 생각할 일 아니었다. 이 정도면 곧 온 오드리나에 빠르게 퍼질 터. 아니 기쁘랴. 나와 베르덴이 혼인하면 내가 공작위를 포기하거나 베르덴이 후작위를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토록 재미있는 일. 수많은 귀족들이 관심 둘 수밖에.
라이네 전 공작 독살과 발리앙 전 후작 독살에 관한 소문은 이번 혼담 소문에 가려져 많이 가라앉은 게 느껴졌으나, 머잖아 풀무불 같이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테니까.
차근차근, 이 중요하지 않나.
나는 살롱에서 귀족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며 피곤하고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후원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살롱에 초대받은 데다, 내게 헌정하는 연주도 하였기 때문에 흡족함에 흡족함이 더해졌다.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싱글싱글 웃으며 독서에 매진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알드리히가.
저택에 돌아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척지를 전달 받았다. 입궁하라는 내용이었다. 소공녀 때보다 공작위를 물려받은 뒤에 황제를 알현하는 방식이 몹시 간단해진 것 같다. 전에는 알드리히가 아버지께 말을 흘리기라도 했지.
나는 한동안 서신을 들여다보다가 차림을 확인했다. 도주하고 싶다. 용건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서.
이것은 황제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다.
종이를 들고 가볍게 팔랑거리며 시선을 옆으로 비꼈다. 가지 않는 것은 선택지 밖이다. 잠시 생각하다, 나는 할리의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로 눈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바비에르의 수기도 아직이다.
집사의 얼굴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집사.”
“예.”
“오늘따라 나이 들어 보이네. 내가 뭐 사고 친 거라도 있나? 오늘은 밭에 침입도 안 했는데.”
“……그, 그럼 버찌 나무를 터신 건 각하가 아니신 겁니까?”
“버찌 나무가 털렸어? 아니, 어떤 너구리가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했, 을까, 했는데, 아. 내가 했지. 깜박했네.”
“…….”
실낱같은 희망이 어린 목소리로 묻기에 나는 멋쩍은 척 노인의 정신을 털어주었다.
출타 전 그새 그런 짓을 하셨느냐고 할리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집사에게서 크흡, 하고 목메는 소리가 새어나오자, 할리도 손을 올려 입을 가렸다. 나는 두 사람에게 심각하게 명령했다.
“웃지 말게.”
“우는 겁니다!”
“울어? 내가 나무를 타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뭘 이제 와서 감동을 받고 그래.”
“…….”
이야아. 여든 노인의 혈압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할리는 그 기색을 알 텐데도 노인을 위로하거나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모르는 척 무시하고 할리가 손에 든 서류 봉투를 가리키고 물었다.
“그건 뭔가?”
“토벌 작전 관련하여. 혹 오늘 입궁하시는 김에 작전기사단에 걸음하실 지도 몰라서 일단 챙겨왔습니다.”
“아…….”
직접 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면 진작 전해주었을 것을.
일 년에 한 차례 남의 땅에 들어와 토벌하는 황제의 기사들. 그럼에도 그들을 존중해야 하기에, 작전에 관련한 것은 작전 책임자와 영주가 적어도 한 번은 직접 교류하며 의론해야 했다.
그제 입궁할 때도 그는 내게 이것에 대해서 말했던 바. 나중에 하자고 미뤘었는데, 킨들 라이네 토벌작전이 다다음 달에 수행될 것을 생각하면 더 미룰 수 없다.
절로 나오는 쓴웃음을 삼키고 봉투를 받았다.
“그럼 다녀옴세. 집사는 건강 조심하고. 자칫 나 때문에 심장마비 오는 일은 없어야지.”
“고혈압이겠지요.”
“거 참 부끄럽게. 칭찬은 그만 해도 돼.”
“……고혈압이라고 말씀 드린 것에서 도대체 어디가 치, 칭찬…….”
“나를 보면 너무 뿌듯해서 혈압이 오른다는 거 아닌가?”
“…….”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집사에게 씩 웃어주고, 마차에 도로 올랐다.
그리고 자칫 무의식중에 손에 힘을 주어 구길까 저어하여, 봉투는 내 맞은편 좌석에 던져놓았다. 마차가 출발하여 저택을 나갈 때까지 나는 말없이 그 봉투를 응시하다 눈을 감았다.
*
그리하여 그저께 정식 알현한 황제의 앞에 서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착용한 장갑을 보고 싱글벙글 화색 만연하던 그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장갑에 그리 시선 주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내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다.
그는 책상에 기대어서서, 나는 조금 떨어진 앞에 서서 서로 마주보고 있던 것도 잠시, 여태 싸늘한 안색이던 알드리히가 빙그레 웃었다.
“재밌네요.”
“…….”
“누이가 황궁에서 발리앙 후작에게 취한 행동은 보고 받았었지만, 별일이다 하고 일단 넘어갔어요. 하지만 그게 이런 소문의 빌미를 만들어줄 것을 누이가 정말 몰랐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으음. 겨우 어깨동무한 것으로 이런 소문이 나는 게 더 이상합니다.”
“겨우 어깨동무,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요.”
그 말이 맞다. 전혀 어깨동무가 아니었지.
그러나 황제도 내 말에 납득해야 할 것이다. 만졌고 닿았다는 사실만으로 혼담까지 생각이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일개 영애영식도 아닌 가주들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수달에 걸쳐 이런 상황이 되도록 만들어온 것이다. 죽은 전 발리앙 후작과 황궁에서 만나 마지막 대담을 나누는 것을 보인 것부터 시작하여. 당시에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였을 테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우연함 역시 작위적인 우연함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리라.
하나의 일을 가지고 여러 가지 쓸모를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이후 나는 여러 사람 있는 연회에서 일부러 베르덴을 유심히 살피고,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염려하면서도 염려하지 않는 척을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하고, 혼담에 관해 백작과 이야기 하고, 가끔 가는 살롱에서도 그런 식으로 은근히 말을 흘리고, 그저께 만난 다른 백작에게도 그리 했다.
귀찮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인내하고 꾸준히 걸어가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알드리히는 모른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대꾸했다.
“저희 혼인에 관심이 많나 봅니다. 사람들이. 아무래도 저와 베르덴은 젊잖습니까.”
“나는, 누이, 누이가 이 소문을 이끌어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실수입니다. 하도 친해서 평소처럼 대하다보니 그런, 어깨동무도 하게 된 것뿐입니다. 애초에 저는 어째서 폐하께서 저를 지목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온전히 본연의 얼굴이다.
하여 나 역시 웃음의 정도를 줄여, 양 입 꼬리만 조금 올라간 정도로 조절했다. 알드리히는 그토록 찬 표정으로 내게 촌언했다.
“왜냐하면, 내가 누이의 성격을 알거든.”
“…….”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자 알드리히도 다시 웃었다. 그리고 뒤로 손을 뻗어, 여태 그의 몸에 가려져 있던 것을 책상에서 집어 들었다. 그게 내 눈에 보였을 때, 나는 사르르 큰 미소를 지었다. 짙고, 질척해졌다.
알드리히는 피식피식 웃으며, 책을 들고 있는 손을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말해볼까? 누이는 잘 웃어요. 그런데 그게 웃고 싶어서 웃는 건 아니야. 나와 같지. 살아야 해서, 살아남기 위해 타성에 젖은 것뿐입니다.”
“…….”
“멍청하게 보이는 짓을 하고 멍청한 것을 말하면서 사람들을 넋 빠지게 하는데, 또 그런 언행으로 얻어낼 걸 얻어내요. 사람 속을 뒤집어 놓고, 속이고, 사람을 조종하고, 알고 싶은 걸 듣죠.”
“…….”
“그런데 그렇다고 속내가 마냥 악하거나 미친 것도 아니에요. 누이는 부정하는데, 내가 보고 느끼기엔 말도 안 되게 착합니다. 내가 죄책감 가지지 않게 하려고 해주던 말만 생각해도 그렇잖아요.”
“…….”
“그런데, 그렇다고. 마냥 착하고 무른 것도 아니야.”
그가 손을 멈추었다.
고개를 조금 기울인 그는 제 손에 든 것을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위의 허공으로 던졌다가 받았다. 내 눈동자는 그 움직임에 잠시 사로잡혔다.
“바비에르, 이런 이유가 있다고 그렇게 철저히 부숴놓은 당신이 전 공작의 일을 그저 지나갈 리가 없지.”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알 텐데요, 누이. 전 공작이 그리 죽은 게 온전한 자진이 아니라는 건 오드리나의 생리를 아는 귀족이라면 다 알아요.”
“…….”
“그리고 지금껏 찾던 거잖아, 이거. 바비에르의 땅들을 뒤지고 있는 자들, 다 누이가 시킨 사람들이지요?”
그가 웃으며 물었다.
나는 왼 손을 올려 왼 귀 위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눌러가며 쓸어 넘겼다. 눈이 아프다. 거짓말처럼 아파오는 눈알을 참으며 한숨도 참았다. 이미 읽었다는 말이니, 방향을 선회해야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머리카락처럼 말도 찰흙 누르듯 눌렀다.
그런 나를 잠시 지켜보던 알드리히가 이어 말했다.
“전 공작의 사망과 관련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이걸 왜 이제 와서 찾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나도 이걸 입수한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지금 이걸로 누이 협박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 받아요.”
“…….”
“받아요. 선물이니까.”
그런데 그는 이번에도 내게 바비에르의 수기를 내밀었다.
나는 더는 웃지 않았다. 내밀어진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올리자, 알드리히의 선명한 눈과 눈길이 얽혔다. 내 눈길 끝이 그의 눈길 끝. 박자를 놓친 눈꺼풀이 파르르 경련했다.
감각을 잃은 것 같은 손을 내밀어 책을 받았다.
전에 나는 이것을 나이 스물일곱인 해에 받았었다. 옥에 갇히기 얼마 전이니 똑똑히 기억해. 따라서 스물여섯 살에 받고 있는 지금, 당연한 의문이 혀뿌리까지 올라왔다.
전의 알드리히는 이걸 입수하고 나서도 일 년이 지난 후에 내게 주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왜. 그때는 나 스물일곱인 해였고, 지금은 나 스물여섯인 해인가.
심장이 혼란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알드리히는 태연하게 나를 압박했다.
“그럼 이제 대답해요. 발리앙과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런 소문을 감수하는 겁니까. 공작이 몸을 굽혀 후작의 손등에 입 맞추는 일이 얼마나 불명예스럽게 포장되어 나돌아 다닐지 정말 모를 리가 없을 텐데.”
“…….”
“누이는 라이네의 가주입니다. 그리고 누이가 얼마나 철저한지 내가 알아. 발리앙 전 후작이 독살 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 라이네 전 공작이 독살 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 이번 소문 합해보면, 두 가문을 경계하는 어떤 가문에서 낸 소문이라는 짐작도 할 수 있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 그런데 난 아닙니다. 누이와 진탕을 굴러 왔기에 알 수 있어요.”
“…….”
“발리앙에서 전 공작을 독살했습니까?”
웃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한 까닭에 멀뚱하게 황제를 응시하는 게 다였다.
말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말할 수도 없다. 물증이 있었으면 그런 복잡한 일들을 하고 있지 않았을 터.
알드리히는 한동안 내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끈질기게 살피고 살피다가, 내가 이제 웃어볼까 할 때쯤 일견 순진해 보일 만큼 생글거리는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흠칫 놀란 척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가 내게 사과했다.
“미안. 사실 전 공작의 독살은 나하고 그리 상관없어.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다른 거예요.”
……다른 것?
내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슬쩍 웃자, 이제껏 걸터앉듯 기대어 있던 책상에서 몸을 뗀 알드리히가 내게 다가와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전에 누이를 독살하려 한 게, 발리앙입니까?”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말한 까닭. 순간적인 반응을 보려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걸려들었던 것 같다.
내게서 물러난 알드리히는 눈부시게 웃었다.
“나는 용건 끝났습니다. 누이는? 남은 용건 있습니까?”
“……폐하.”
“그거 토벌 작전 서륩니까? 직접 갈 것 없습니다. 내가 불러서 문 밖에 있을 거야, 포르타경.”
“폐하.”
“포르타경은 들어오게!”
“폐하.”
나는 책상을 돌아가려는 알드리히의 팔을 잡아챘다.
이런 무례를 저지른 건 단언컨대 처음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 그 기척을 다 듣고 느끼면서도 놓을 수 없었다. 들어오는 사람이 시드니라서 마음을 놓고 있던 것도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알드리히는 내가 항상 그로부터 받는 눈빛으로 눈을 물들인 채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무감정하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아무 것도 인정치 않았습니다.”
“내가 말했었죠, 누이. 난 누이를 안다고.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는 참 비슷하거든. 그래서 누이가 무얼 원하는지도 압니다.”
황제는 손을 들어 내 얼굴에 닿았다. 그는 맨손이었다. 잠시의 접촉 후, 그의 손은 미끄러져 내려가 그를 잡은 내 손 위를 덮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
“안심하고 가요.”
그 말에 외려 손에 힘이 들어갔으나, 결국에는 천천히 그를 놓았다. 알드리히가 싱글싱글 웃으며 돌아가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보고 있다가 다시금 눈이 마주치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욕지기가 솟으며 다리에서 힘이 풀린 탓이다. 아찔하게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가는 뾰족한 통증도 있었다. 몸을 순간적으로 가눌 수가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주저앉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시드니가.
그의 단정한 움직임에 일어난 바람이 내게 끼쳐왔다. 놀란 알드리히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내게서 즉시 떨어져나가는 손을 느끼며 어째서인지 조금 멍해지고 말았다.
차마 돌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돌아보아야 하는 게, 나다. 나는 그를 보며 인사했다.
“고맙네. 경.”
“괜찮습니까, 누이?”
“괜찮습니다.”
알드리히와 문답을 할 때도 시드니는 덤덤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서 내가 받은 안도와 일순의 평강은, 내 착각이다. 그럴 일 없다. 없어야 했다. 감히 무슨 낯으로, 내가. 그와 다시 친구를 하고 싶어 해.
나는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오드리나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는 내가 바빠서 따로 들르지 못할 걸세. 이번 작전, 수고해 주시게. 킨들 라이네에서 만나지. ……그럼 폐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예. 건강 챙기고. 나중에 보겠습니다.”
용건만 말하고 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다. 대화를 피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드니는 물러나는 내게 인사한 이후로 그 이상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내가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지나는 사람이 없자 잠시 멈춰 서서 이마를 짚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뒤이어 내려오는 시드니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내 일 때문에 솔체궁에 불려온 게 맞나 보다.
뒤돌았던 나는 그가 잠시 나를 보다 말없이 인사하는 것에 웃어준 후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시드니가 내 등에 대고 나직하게 물었다.
“어디 미령하신 곳이 있습니까.”
내게 도달하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야말로 본능이다. 나는 이 질문을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쓸데없는 기억들만 이렇게 종종 선명해진다. 질끈 감고 싶은 눈을 참고 이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다.
이 시간의 나와 그는 이 정도 문답은 간단하게나마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다.
그러니 대답해도 된다.
그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호소하기 시작한 피로를 천천히 억누르고, 나는 씩 웃으며 그를 재차 돌아보았다. 대답했다.
“아니. 없네. 고맙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려가던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음에도 우리는 멀어야 했다.
============================ 작품 후기 ============================
mqcetus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출간여부에 대해서 지금까지 따로 말씀드리지 않은 건,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소장본은 어떻게 만드는지 다 잊어버렸......(아련)
장기휴재는 유효합니다!
그럼 내년에 뵙겠습니다:D
매일매일 행복한 나날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