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면꽃 작가님-79화 (79/157)

00079 CHAPTER 7. 당신을 잃기를 원합니다 =========================

CHAPTER 7.

-당신을 잃으려 해

나는 아침이 되도록 새벽의 상태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대로 낫기만을 기다린다면 며칠이고 더 걸릴 것을 직감했으며, 그 의견에는 신관도, 아침에 내게 온 의사도 동의하였다. 결국 그날 아침, 날 만나러 신전에 온 이들에게 앞으로 반시간 안에 출발할 것을 명령했고, 그 전날에 이미 준비해두었던 바에 따라 수월하게 오드리나로 출발했다.

그러나 말은 탈 수가 없어 마차에 몸을 뉘였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나는 지체 없이 말에 올라탔고 귀경 속도는 행렬에 마차가 있을 때보다야 훨씬 빨라졌다.

우리는 가까스로 소산식 하루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 라이네 공작의 오드리나에서의 첫 공식 일정은 선황의 시신에 예를 갖추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

열이 아직 남아있음에도 하얗게 질린 얼굴은, 혈색 있게 보이도록 화장이라도 하고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말을 들을 정도였으나, 나는 베르덴의 그런 충고를 물리쳤다. 황제의 승하를 안색이 질릴 정도로 가슴 아픈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거짓이지만, 거짓이 아니기도 했고, 그리 비쳐지면 좋되 비쳐지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어찌 되었든 해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예 올리는 것을 끝마친 후에도 관 앞을 떠나지 않았다.

지구를 겪으며 이곳을 내가 쓴 글로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과, 지구를 겪지 않은 천생 귀족일 때의 가치관이 섞여서 이제는 황제의 죽음에 대해 충성스러운 충격을 받은 마음 조각이 있었다. 심지어 두 번째 겪는 승하인데도 얼떨떨한 슬픔이 나를 건드렸다.

아버지께서…….

나는 불쑥 떠오른 생각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나온 호칭에 절망을 삼켰다.

아버지께서 킨들 라이네 산맥 입구에서 괴물들에게 급작스럽게 살해당하신 후에, 소식을 듣고 라이네령으로 출발하기 직전이었던 나를 가까이 부르셨던 황제는 떨리는 음성으로 나를 위로해 주신 바 있었다.

이분 폐하는 나의 어머니를 어린 막내 누이처럼 아껴주셨다고. 어찌나 활달하게 씩 웃고 다니는지 그 넘치는 힘에 당신도 나가떨어지곤 하셨다 했었다. 그래서 누이 같은 아이를 채어 가버린 에스메, 라이네 공작을 볼 때마다 한동안 눈에 불을 켜곤 하셨단다.

-그 사람, 워낙에 사람이……, 그래서……, 하여튼 간에 좀 그런 구석이 있어서……, 누이를 얼마나 냉정하게 버리고 살까 했었네.

아버지의 성격을 말씀하시며 말을 차마 못 이으시던 게 기억에 깊게 남았다. 그래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지.

“…….”

그리고 무어라 하시었더라. ‘아직 젊은 사람이 아깝게 갔다. 짐이 부덕한 탓일까. 짐이 곧 죽을까 하더니, 이제는 내 친애하는 제후마저 숨을 거두었구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내용의 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류했으나 자주 하지는 않았던 황제임에도 나는 그 말에 질색하고 정색했다.

폐하께서는 반드시 일어나실 거라며.

그러나 병자 당사자부터가 그런 희망이 없었다. 쓴웃음을 짓던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의 황제는 그 순간, 수년을 크게 앓으며 존엄한 죽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온 사람의 표정을 지어보였던 것도 같다.

그리고 말했다.

-짐이 죽고 나면 황태자를 부탁하네.

그놈의 아들 녀석은 짐을 닮아도 그런 부분을 닮아서 참 아픈 길을 간다고, 앓는 소리도 하셨던 바. 이제 와서 그 말씀을 되돌아보면, 혹 이 분이 내 어머니를 이성으로 사랑하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내가 황제를 향한 존경심이나 애정 같은 게 적은 데다 워낙에 밖으로 나돌아 다녀서, 시간을 돌아오기 전에도 적던 교류가 이번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래서 황제의 어떠한 상냥한 위로도 들을 기회가 없었다.

나 역시 이분께 어떠한 위로나 경애를 표할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회다.

나는 쓴웃음조차도 나오지 않는 기막힘에 잠겼다.

그렇다 하여 누군가가 내 뒤, 중앙 기도실의 긴 길을 걸어와 내 옆에 서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엄격하게 통제하고 지켜지고 있는 신전인지라 돌아보지 않았을 뿐.

그러나 그 사람이 새 황제일 줄은 몰랐다.

“어디 아픕니까?”

부황의 관을 앞에 둔 분이, 염려하기는 나를 염려한다. 나는 그를 힐끔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를 보자마자 알아차린 건, 라이네령에 내려가기 전에 비해 그가 내게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 감정은 존중이다. 이 나라, 이 세계에서 나고 자란 귀족이 가질 법한 무거운 존중과 경애. 지구를 겪은 탓에 어설프게 희석되긴 하였으나, 작가와 등장인물로 생각했던 전처럼 마냥 가볍게 대할 수는 없었다.

전에도 그는 나를 누이라 불렀으나, 나는 그 부름을 몹시도 난처하고 곤란해 했더랬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참, 잘 지내기도 했었지. 우리의 관계는 피로 물든 진창 속에 있어 결코 건강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이 시간의 우리 관계에 비하면 지독할 정도로 가까웠다.

-누이. 우리 사이가 조금만 더 멀었어도 나는 오래 전에 누이한테 마음을 털어놓았을 겁니다.

알드리히는 그때 그 말대로였다. 그때보다 멀어지니, 그는 내게 일찍이 마음을 표현했다.

나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건강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이십 년간의 나와 알드리히의 관계와, 죽기 전의 우리들의 관계는 많은 부분이 다르나 많은 부분이 같기도 했다. 그를 겪으면서도 기억을 잃고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로 그랬다.

느릿느릿 대답하자, 알드리히는 옅게 코웃음을 웃었다.

“거짓말은 태연하게 잘 하는데, 안색이 안 도와주네요.”

“…….”

“누이가 들어가는 것을 봐서 환궁하기 전에 잠시 인사라도 나눌까 했는데. 창백한 얼굴로 들어간 사람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으면 내가 무슨 걱정이 들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인사를 올렸으나, 올려도 부족해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친한 적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할 말이 얼마나 많다고.”

“…….”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얼버무리듯 웃지도 못했으며, 음성 담은 대답도 못했다.

옆에서 나를 보고 있는 알드리히의 시선이 느껴짐에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그러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을 정도가 되었을 때, 그가 내게 말했다.

“지금 누이, 내가 이 앞에 서서 인사했던 시간보다 더 길게, 그 어떤 가주들보다도 길게 서 있어요. 그건 압니까?”

“…….”

관에 박혀 있던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높게 뻗은 벽 위에 달린 이레의 문장을 보았다. 저런 것을 다는 것 역시 우상 숭배라 하여 자제하는 신관들이지만, 여전히 유력 영지에 있는 신전에는 문장을 형상화한 조각이 중앙벽에 달려 있곤 하였다.

그러나 인간들이 만든 저런 것을 보지 않아도 나는 신을 경애한다. 나는 그의 존재를 믿으며, 따라서 붕어하신 황제의 영혼을 부디 행복한 곳으로 품어주시라고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진심으로, 내 피로를 기도하고 말아.

신이시여.

왜 저를.

다시 살기를 실로 원치 않았으니, 내게 주려 한 기회가 있었더라도 그 뜻을 거두셔도 이상치 않은데.

그리하여 결국 나는 이제 와서 신께 묻고 마는 것이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배은망덕한 저를 어째서 살리셨나이까.’ 멍하게 그 문장 조각을 응시하다가 침을 삼켰다. 끈끈한 침이 목에 걸려 늘어졌기에 답답했다.

살려주셨으니 다시 살겠으나, 그때 모든 것이 끝장났다면 지금 나는 정치에 머리 썩힐 것도 없이 잠들어 있었으리라.

그러나 말했듯, 나는 앞으로도 살 것이다.

아리엘에 의한 죽음을 두려워하던 버릇이 아직 남았고, 살고자 하는 마음도 내게 남았다. 아리엘에게 있어 불운은, 아리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역시 지금의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죽기 이전부터 그녀는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아리엘을 버렸다. 그리고 베르덴을……, 베르덴도……. 내 입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그는 끝끝내 내게 와 주었으나, 그럼에도 그가 발리앙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 다리 하나가 날아간 후부터 였던 것 같다. 날 구명하기 위해 나서지 않은 베르덴을 미워하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시작하였을 때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나서지 않았겠지. 그게 아니라면,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나서지 않았겠지.

안다.

나라고 하여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쥰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베르덴을 버렸을 터. 쥰은 그런 아이가 아니지만, 설령 쥰이 베르덴을 억울하게 몰아가서 베르덴이 사형을 앞두게 되었을 지라 해도 나는 가문과 쥰을 지켰을 것이다.

옥에 갇힌 내 앞에서 보였던 베르덴의 검은 절망은 실로 절망일 수도 있고, 혹은 위선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진심일 수도 있고 위선일 수도 있는 말들로 그를 위로했다. ‘나는 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걸 안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

너를 이해해. 베르덴. 당신을, 이해해.

“……무슨 일 있었어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이번 생에서 받는 알드리히의 사랑이라 하는 것이 그토록 싫었는지도, 이해한다.

피곤한 눈이 아렸다. 눈을 감고 잠시 숨 쉬다,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쯤 눈꺼풀을 올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바로 옆에 서 있었던지라 한 번만 휘청거려도 내 이마가 그의 가슴에 닿겠다.

나는 그 상태에서 고개를 까닥하고 물러났다.

“송구합니다, 폐하.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누이. 내 눈을 봐요.”

눈알이 여전히 아팠다. 아마 벌겋게 핏줄이 섰을 그 눈을 알드리히에게 똑바로 꽂았다. 한 삼 초 정도, 나는 그를 보며 식었다. 이후에는 씩 웃었다.

선황의 시신 앞에서 보이는 웃음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폐하라 불리는 그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먼저 걸음을 옮긴 내 뒤에서, 곧 그의 발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쫓기는 감각은 매섭게 나를 덮쳤다. 소름이 오싹 돋았으나 그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 나왔다.

“……누님.”

중앙문을 나오자마자 눈이 부시더라. 식은 해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로 곤두선 눈 탓이다. 나는 손을 올려 이마를 매만지는 척 눈을 잠시 쉬게 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쥰이 내 앞에 우뚝 서 주어서.

그를 올려다보고 옅게 웃었다. 귀경하여 저택에 들르자마자 곧바로 신전으로 향했던 탓에, 이미 출근한 상태였던 쥰을 여태 만나지 못했었다.

보지 못한 지난 몇 개월간 무언가 바뀌었을 지도 모르겠는데, 참, 그런데도 어딘가가 어려진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떨렸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나 죽던 당시의 생김새 같은 것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허면 내 마음의 탓인가.

그가 햇빛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역광이 심하지는 않다. 나는 천천히 쥰의 얼굴을 살폈다. 하나하나.

눈.

코. 입. 호흡하는 그의 소리. 나의 호흡소리.

멀쩡한 몸으로 살아있는 내 앞에 쥰, 네가 있다.

너는 내가 죽은 뒤에 라이네를 잘 이어 주었을까. 잘, 살아남아 주었을까. 얼굴이라도 만져보고 싶으나 이곳은 바깥이고, 나는 이제 라이네 공작이었다. 눈으로라도 족히 살필 만큼 살핀 뒤에야, 마치 삼십 해 정도를 만나지 못하다 마침내 해후한 동생을 만난 것처럼, 온 다정함을 다 끌어 모아 웃었다.

“여기 있었어? 근무 중이야?”

“예. 그런데 폐하께서 누님과 함께 귀가하도록 하명하셨습니다.”

“……그래?”

내 왼 쪽에 서 있는 알드리히를 힐끔 보자, 그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쳐다보느냐는 게 아니라, 배려를 베푼 사람이 ‘이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정도로 가볍게 보이는 반응 정도 되리.

나는 그를 보고 슬며시 웃은 뒤 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쥰이 놀란 것처럼 나를 불렀다.

“누님?”

“잡아. 아가야.”

지구에서 돌아온 후로 쥰을 이렇게 불러본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 동생, 오래 전에는 이 아이를 그렇게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아가야. 내 어린 동생. 몸이 나빠질수록 쥰을 원망하는 마음이 불쑥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더랬다. 밉기도 미웠다.

그러나 이 자리, 이 시간에서도 미워하기에는, 그는 다시 내게 남은 마지막 가족이야. 나는 이번에는 죽지 않는다. 그의 모친 손에 만들어진 시한부도 아니며, 아리엘의 계략에 걸릴 죄인도 아니게 될 것이다.

쥰이 조금 떨리는 손을 내 손 위에 올렸다. 나는 그 손을 쥐었다.

그를 잡아끌며 몸을 옮기자, 쥰은 얼떨떨해하며 내게 끌려왔다. 웃음을 삼켰다. 선황의 시신이 있는 신전에서 웃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여 묵묵히 중앙문에서 이어지는 계단 중 첫 번째 것에 발을 디뎠, 다.

“…….”

디디며.

내가 본 사람이 있었다.

앞으로 내려가야 하는 계단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던 눈길은, 내가 본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자마자 다시 올라갔다.

시드니.

몸을 틀었다. 그는 알드리히가 아직 서 있는 맨 위 계단의 구석에 서 있었다. 문의 기둥 옆이다. 나보다 한 계단 위. 나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드니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내게 잡혀 있는 손의 손가락들이 조금 더 구부러지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물끄러미 시드니만을 보았다.

-대신관의 이름. 아십니까.

기억이 났다. 그것은 내가 이 세계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어린 모습의 시드니는 내게 그렇게 물었고, 나는 클레멘트라는 이름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알려진 다른 이름을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이후로 내게서 멀어져 갔었다…….

“…….”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그에게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시드니의 자리를 대신 채웠던 헤르조가 있었고, 나중에는 션까지도 나와 안면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제 동생들을 나와 연결해준 시드니는 내게 오지 않았다.

-그 생에서, 그럼 당신은 그때 또 다시 내 친구가 되렵니까?

나는 눈을 아주 조금 찡그리고, 계단을 차분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것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하겠으나, 그래도 그가 어찌 말했는지가 기억났다. 몹시도 고통스러웠던 옥중 생활의 기억이야말로 내가 지금 가진 기억 중 가장 선명하다.

시드니는 내게 말했었다.

-당신과 멀리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살리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했었다.

-나도 동의합니다. 다시 살아야 한다면, 나도 당신의 친구가 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이제 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계해야 하며, 사람을 지나치게 믿는 실수는 다시 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드니 역시 믿어서는 아니 된다. 그의 됨됨이를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래도 안 돼.

내가 죽을 때 가능한 한 눈을 마주쳐주었던 그이기 때문에 안 된다.

-필르 발리앙은 마법사입니다.

나조차 모르게 내 친구로 남아서 아리엘을 경계하고 있던 그이기 때문에 안 된다.

-경. 제가 누구고, 누구인지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습관이 있습니다.

입을 조금 벌려 숨을 토해냈다.

알아.

-제발 살아주십시오.

에녹의 검으로 죽은 사람은 나지만, 당시 검을 손에 잡고 있는 사람은 그였기 때문일까. ……아니, 아니다.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정말 모르겠는데, 무언가는 알 것 같기도 해.

알아. 경, 당신도 돌아온 걸 알아요.

그래서 안 돼.

지금 당장이라도 아리엘을 죽이면 입 닦고 모르는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알아내야 할 것들이 있어. 이번 시간에서 베르덴이 내 호위기사와 보좌로 들어와 준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확실히 알기를 원했다.

그러니 시간이 조금 걸릴 텐데, 일이 모두 마무리 지어질 때까지 죄 없는 시드니가 관여하기를 원치 않는다.

하여 나는 앞으로 그와 더 철저히 거리를 두려 한다.

설령 이번 시간에 시드니가 나를 버렸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전에 그가 나를 위해 해 주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손 내밀면 연고를 발라야 할 것 같다고 염려 받을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쥰이 내게 어떤 사랑을 고백했는지 기억하는 만큼, 시드니에 대해서도 기억한다.

나는 짧게 쓴웃음을 웃고 쥰의 손을 더 꼭 쥐었다.

“쥰.”

“예?”

시드니.

-그리고 당신을…….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매순간 행복하였던 저를 좀, 봐 주십시오.

“사랑한다.”

미안합니다.

죽을 사람의 눈을 마지막까지 보는 것이 얼마나 큰 끔찍함을 남기는 건지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시드니의 시선을 물리치지 않았었다. 마지막으로 남겼던 사과 속에 접어 넣은 것은 나로 인해 그가 안게 된 모든 것들.

고개를 들고 눈물을 깊숙한 곳으로 집어넣었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날숨.

미안합니다.

“사랑해.”

나지막하게 속삭이거나 삼킨 고백은 어느 쪽이라도 진심이다. 나는 쥰의 고개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앞을 보았다.

============================ 작품 후기 ============================

하...............(손에 얼굴을 묻는다) 부디 아무 말씀도 말아 주세요. 며칠 쉬었다 온다고 하더니, 못해도 그 다음날 오는 것도 아니고, 그 공지 올린 날 다시 왔..........(깊은 창피)

이제 정말 며칠 쉬었다 올 겁니다. 이번에야말로 쉴 겁니다! 진짜! 내일 안 올 거예요!(그러나 말하면서도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바로 챕터7 가지고 온 저를 칭찬해주세요! 칭찬 받고 싶당...(시무룩)

본편으로 돌아왔으니 다시 시동 걸고 유쾌하게 가보겠습니다:D 생각해보면 제대로 유쾌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끌려감)

죽은 황제와 스완의 관계에 대해서는 스완외전에도 나와요ㅇ_< 하지만 꼭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초고, 자유연재입니다. 일단의 수정은 보통 업로드 직후부터 30분 안에 하고 있습니다.

+시드니 회귀 관련해서는 프롤로그, 4-1회, 4-2회, 에스메 외전, 6-8회 참고해주세요:D 그외에도 아리엘이 마법사라 한 부분, 챕터 3의 킨들라이네 산맥에서 에브의 습관 관련한 대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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