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3 -CHAPTER 에본느. 끝으로 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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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되고 수개월 후의 봄, 황제가 바뀌었다.
알드리히가 어떤 길을 뚫고 걸어 황제에 즉위하였는지 옆에서 정확히 지켜보고 함께한 사람은 에본느뿐이지만, 알드리히를 만날 기회가 자주 있던 대귀족들은 어느 정도 알드리히의 냉혹한 성정을 알고 짐작은 하고 있을 터.
그러나 즉위한 알드리히는 제국을 일단은 그럭저럭 평범하게 다스려 나갔다. 물론 평범하다는 감상이 가능한 건 표면의 정치에 그친다.
확실히 성격 자체만 따진다면 알드리히는 성군으로 남을 수는 있겠으나, 일반적인 성군이 될 사람은 아니었다. 백성들을 위해서 그나마 다행이지, 그것조차 아니었으면 그저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재미만 찾는 미친 황제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에본느의 경우, 공작이 된 이후 첫 일 년 정도는 괜찮았다.
그녀는 준비된 사람이었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심각하게 중독된 몸과 얼마 남지 않은 수명뿐이었으니까.
유감인 것은 킨들 라이네의 토벌작전에 동행할 수 없는 것 정도. 의사와 신관은 물론이요, 독의 종류를 알아내고 해독제든 뭐든 연구해내기 위해 결국에는 끌어들인 라이네의 마법사도 미친 듯이 말렸다.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들의 반응으로 몸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대충 실감했다.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몹시도 갑작스럽고 기가 막힌 소문이 머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전 공작의 독살 가능성에 대한 소문이었다. 도대체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 년이나 지나서 소문이 시작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에본느는 골치 아파 하면서도, ‘그제야 부랴부랴 사람을 움직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전 공작의 시신을 보았고, 하여 공작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부터 사람을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소문의 절반은 사실이다. 전 공작은 반쯤은 독살된 게 맞았다.
직접적인 사인은 괴물들의 무기에 의한 여러 자상이지만, 그 무기에 독이 발려 있었을 뿐더러 그 독 이외의 독들에도 오래 전부터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후자의 독들에는 반드시 사람이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 쳐도, 에본느는 괴물들의 무기에 발린 독에도 사람이 배후에 있을 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당연한 짐작이었다. 괴물들이 독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하여 에본느는 쥰에게 공작위 승작을 권하며 당부하고자 했던 일들을 차례대로 시작했다.
소산식 후 공작 업무의 인수를 위하여 라이네 중앙령에 머무는 동안, 킨들 라이네 산맥 첫째 산 근방의 지리를 잘 알고 그 족속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괴물들에게 독을 맡길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을 추적했다. 시간은 걸렸으나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독을 맡기라 의뢰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짐작되는 사람도 없다. 권력암투라 해도 이런 식으로 상대를 죽이고 시작하는 귀족은 드물었다.
“…….”
에본느는 셋 중 하나의 목을 직접 베었던 그 때를 떠올리고 피식피식 웃었다.
다시 생각해도, 라이네령에 속하는 영지의 사람이 라이네 공작을 죽이는 데 일조했다는 것은 어이가 없다. 그런 자들을 지키고자 공작이 되었나. 기막힌 조소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의자를 돌려 책상을 등지고 앉은 그녀는 팔걸이에 걸친 팔끝의 손가락에 턱을 기대었다.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소문인가…….”
소문의 발원지를 찾고는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 공작의 시신을 본 이들은 한정되어 있기에, 그래서 외려 곤란했다.
킨들 라이네 산맥으로 떠난 토벌 작전단의 기사들. 그들이 토벌을 끝내고 하산하며,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난 공작의 시신을 발견하고 수습하였다. 입이 무거워야 할 기사들이라서, 물론, 그들이 범인일 확률은 낮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털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기사들을 어찌 털어내나. 시드니에게 부탁하자니 그런 민폐가 없다.
그 기사들 외에 시신을 본 이들은 모두 라이네에 속한 자들이니 문제없이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일 년이나 지나 이제 와서, 산을 완전히 수색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전 공작과 기사들의 시신 주위에 괴물 사체가 한 구 남아있었던 덕분에 전 공작을 살해한 괴물의 생김새를 안다. 그럼에도 첫째 산이라도 전부 수색하지 못했던 것은, 죽이지 않고 남긴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산에 올라갔으나 그녀가 도중에 쓰러진 탓이었다.
공기와 살기 같은 것들이 무섭도록 그녀를 덮치는 것을 몸이 인내치 못했다.
세 번의 전투를 하며 몸을 움직인 것, 기사들의 수가 적어 위험해졌을 때 기어이 마법을 쓰고 만 것도 그녀를 좀먹었다.
기겁한 기사들은 급히 에본느를 업고 하산.
얼마 지나지 않아 말 달리는 기사의 품 안에서 정신을 차린 에본느는, 그녀 없이 다시 입산 하겠다 하는 기사들을 말렸다. 알고 있었다. 산에 올라가 그 괴물 무리를 끝끝내 찾아냈다면, 누가 사주했는지 알아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
반드시 알아낼 수 있다, 는 것이 아니라, ‘알아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라이네령에 머무는 기사들이 아닌 오드리나에서 데려온 기사들만을 기밀리에 움직이고 있었던 그때, 오드리나에서 데려온 기사들의 수는 킨들 라이네 산맥을 사망자 없이 수색할 수 있다 장담하기에는 턱없이 적었다.
에본느는 제 몸이 킨들 라이네를 능히 견뎌내지 못할 것을 똑똑히 실감한 상태였고.
결론은 하나였다.
-있을지 없을지 모를 무언가를 위해 내 기사들을 사지에 보낼 수는 없다.
-…….각하.
-이미 경들은 거의 죽을 뻔 했어. 내가 경들을 잃게 하지 말게.
그렇게 결단한 후 잊은 일. 일 년이 지난 이제 와서 참 아쉬워…….
에본느는 좀 더 창밖의 하늘을 보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 공작의 사망을 파헤치는 일에 대해서든, 소문에 대해서든, 그녀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소문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밖에는 추가로 할 일이 없었다.
물증이 없는 소문, 금세 사그라질 거라 생각했다.
헌데 그게 아니더라.
소문은 점차 형태를 단단하게 갖추어갔다.
당시 토벌 작전 중이던 기사단의 기사들이라면 전 공작의 시신을 옮기며 그 시신의 상태를 봤을 것이라는 시선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들이 입 열기를 직접적으로 종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황실에 속한 기사단 중에서도 황제 직속 기사단이다. 황제를 우선적으로 섬겨야 하며 작전상 기밀은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하므로 처음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알드리히와 시드니도 당연히 기사들을 단속했다. 문제는 그 기사들의 대부분이 권세 한미한 가문이든 유력한 가문이든 귀족가문의 직계나 방계 영식들이었다는 점이다.
직계보다는 방계의 입이 더 가벼웠을 것이며, 직계 중에서는 장남보다는 차남이나 삼남, 혹은 그 이하 순번의 영식의 입이 더 가벼웠을 것이다.
독살 의혹이 에본느의 귀에 들어온 지 채 삼 주도 되지 않아, 당시의 일이 훨씬 자세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킨들 라이네 산맥으로 떠난 토벌 작전단에 포함되어 있던 쥰은, 에본느보다 앞서 라이네 공작의 시신을 보았다. 그 사실 자체는 차라리 쥰을 가엾이 여기게 될 부분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가 보였던 언행이 문제가 되었다.
부친의 시신을 보고도 유지한 냉정.
에본느는 듣고, 하도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치겠군. 이제 하다하다 그런 걸.
그 상당히 차가웠던 태도를 ‘근거’로 하여, 도대체 어떻게 괴물들이, 고른 듯이 한 무리만을 향해 독을 쓰냐고, 토벌 작전단은 독에 당하지 않았다고 소리를 높이는 주장이 나왔다. 그걸 짧게 줄여보자면, 아, 축약은 몹시도 간단했다.
‘그것은 공작을 목표로 한 암살이었다.’
쥰이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저는, 누님, 저는 결코 각하를 살해하지 않았습니다.”
에본느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멈칫 찌푸렸다가 폈다. 찰나의 반응이었지만 쥰은 그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쥰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쥐며 가느다랗게 속삭였다.
“제가 아닙니다……. 제발, 누님…….”
“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에본느가 당황했다.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새 쥰은 전에 없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아니야. 쥰. 그런 게 아니라, 네가 그런 말을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거다. 일부러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 네가 했을 리가 없잖아.”
“…….”
“내가 그리 네게 믿음을 주지 못했나 해서 마음이 아프구나. 미안하기도 하고.”
에본느는 두 손으로 쥰의 얼굴을 감싸고, 그의 이마에 이마를 대었다. 머리뼈를 덮은 살이 딱딱하게 살짝 닿았다. 서로 나이가 있다 보니 오래 전부터 하지 않게 된 애정표현이다. 그녀는 코앞에 있는 쥰의 눈을 들여다보며 옅게 웃었다.
“네가 어떤 아이인지 알아. 널 항상 믿고 있다.”
부친을 잃은 아픔은 벗어났으나, 그 일이 다시 들춰지는 요즘, 그녀의 내심이 평소와 같다면 거짓이다. 사막 모래벌판처럼 메마르고 까슬까슬하게 일어나있었다. 그러나 에본느는 내색 않고 쥰을 위해 애써 웃었다. 쥰을 비롯하여 지켜야 할 사람들과 지켜야 할 무형의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어릴 때부터 준비해왔던 바.
그럼에도 전 공작의 살해의혹이라는 것 하나가 추가로 쌓이니, 숨이 막혔다. 겨우 하나뿐인데. 그 의혹 하나가 미치도록 무거웠다.
생각 끝에 젊은 라이네 공작은 침묵을 택했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물으면 싱글싱글 웃으며 그걸 믿느냐고 일침하고 지나쳤다.
언젠가는 사그라질 의혹이다. 말도 안 되는 것. 라이네는 이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다. 명예스러운 라이네가 저들 입의 요깃거리가 된다는 것이 마뜩찮을 뿐.
비슷한 의혹을 그녀의 부친이 이미 받은 적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친 쪽의 상황이 훨씬 더 나빴다는 것도. 전 라이네 공작은 후계자위를 두고 동생과 다투는 중에 동생과 부친이 사망했고, 이쪽은 평소 사이좋았던 동생을 부친이 사망한 후에도 여전히 감쌌다.
화살이 쥰에게 향했으니 그녀가 쥰을 보듬어 안고 신뢰하는 모습만 계속 보여주면 될 터. 여기서 나서면 외려 긁어 부스럼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에본느가 놓쳤던 것은 설마 쥰의 신상에 대한 진실이 드러날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것이 드러나기 전에, 쥰을 감싸는 그녀로 인해, 혹 범인은 쥰과 에본느 두 사람 모두가 아니느냐는 말도 돌기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쥰의 비밀이다.
죽을 때까지 숨기려 했던 바.
에본느는 진실을 알게 된 채로 퇴근한 쥰과 마주한 저녁식사자리에서 상당히 긴장했다. 미소짓고는 있었으나 그 웃음이 진심일 수는 없다. 요즘 들어 진심으로 웃은 적이 드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러나 쥰은 식사를 시작하고 수분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여러 이유로 입맛이 없어 좀처럼 식기를 들지 못하는 에본느와 눈에 띄게 비교되었다. 나른한 웃음을 웃으며 쥰이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던 그녀는 갑작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나? 아니. 괜찮은데.”
“하지만 식사를 못 하시는 것 같아서…….”
꼬리를 흐린 말에 에본느는 씩 웃었다.
“괜찮아.”
어차피 약을 복용하려면, 위장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먹어야했다. 예의없이 음식을 뒤적거리는 모습은 그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이 아니다. 이리 입맛이 없는 것, 쥰이 일어선 후에나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평소 같은 태도에 더 신경이 미쳤다. 참 묘한 일이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어찌 숨기셨느냐고 소리쳐도 이상치 않다 여겼는데. 제 얼굴을 살피느라 쥰의 식사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것을 깨닫고, 에본느는 코웃음을 웃었다.
이 아이가 어여쁘다.
그러나 이미 이렇게 된 일에 대하여 오래도록 긴장을 하며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쥰은 분명 그녀가 지켜야 할 동생이나,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수습하는 동안 쥰에게도 크게 신경 쓸 수 없다. 바깥일로도 이미 충분히 골치 아팠다.
에본느는 애매한 웃음을 짓고 입을 열었다.
“들었을 텐데 아무것도 묻지 않는구나.”
쥰의 손이 멈추었다. 나이프와 포크는 음식 바로 위 허공에 떠서 움직이지 않다, 수 초 후에 다시 감자를 자르기 시작했다. 식기를 보고 있던 그녀의 눈이 올라가 쥰의 얼굴을 담았다.
그는 의아해하는 것처럼도 보였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도 보였으며, 선물이나 자랑할 것을 감추고 흐뭇해하는 아이처럼도 보였고, 곧 토설할 비밀로 인해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른처럼도 보였다.
그는 옅게 웃고 있었다.
알 수 없다. 에본느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니?”
“아니요.”
시간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습니다.”
감자는 잘리고, 잘리고, 또 잘렸다. 쥰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없었다. 앞에 있는 접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그는 물끄러미 그것만 보며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이프를 잡고 있는 마디 굵은 손이 멈추지 않는다.
쥰은 되풀이했다.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
“그래도 염치없이, 누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고 누님의 곁에 있었습니다.”
“…….”
“해서 저는 지금 겁이 납니다. 제 태생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지금 이런 소문도 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 때문에 일어난 문제를 누님께서 대신 짐 지시게 되었지요. 이번 일이야말로 제가 누님께 방해가 된 분명한 예입니다.”
“…….”
방해가 되었다는 말에 기겁하지 않았다. 단지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소문의 내용 자체는 제가 동요할 일이 아닙니다. 제게는 누님이 계시고, 저는 누님께서 결정을 내려주시면 그렇게 따를 겁니다.”
“……아.”
마지막 말에는 머리가 조금 늦게 돌아갔다. 스스로 판단하여 자살할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명령대로 자살하겠다는 말이다.
흣. 에본느는 이해하자마자 낮은 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말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닐 거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이리 쉬이 들리는가. 네게는 자진해서 끊을 멀쩡한 목숨이 있어 좋겠구나. 누구는 네게 멀쩡한 가문을 넘겨줄 수 있도록, 남은 목숨, 남은……. 남게 된 목숨, 언제 쓰러져 죽을지 모르게 된 이 생명도, 도대체, 누구 모친 때문에.
“…….”
마음이 한순간에 뭉개졌다.
그녀는 피식피식 웃으며, 팔걸이 바깥에 늘어져 있던 손끝을 구부렸다.
수 주간, 알지 못하는 새 힘들었나 보다. 원망할 수 없고 화낼 수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쥰을 상대로 이럴 것이 아니다. 알지만, 전부는 알지 못하는 동생을 상대로 이럴 것이.
무너진 점토 같은 마음을 다시 주섬주섬 폈다. 잡고 쭉쭉 늘려서, 다시 온화하고 여유로운 모양으로 만들었다. 에본느는 기존의 웃음을 없애고 느긋하게 싱글싱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올려 휘익 손사래를 쳤다.
“그런 소리 말고. 네 탓 아니니 그런 생각도 말고. 큰 문제가 되지 않게 할 테지만, 소문이 도는 중에 마음 고생할 사람은 나보다는 너인 것 같구나.”
소문에 대해 쥰과 이야기하는 일은 그날 이후로 없었다.
그러나 쥰의 태생에 대한 소문이, 쥰의 얼굴 생김과 불분명한 나이에 의해 약한 신빙성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니 ‘비슷한 의혹을 그녀의 부친이 이미 받은 적 있다는 점’이 다른 방향으로도 적용될 수 있더라.
천천히 밀려들어오던 잔물결이 노도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전 라이네 공작은 동생의 여자를 빼앗은 희대의 악인이 되고, 에본느는 눈엣가시 같은 자를 치워버리기 위하여 부친을 죽이고 쥰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운 이가 되었다. 심지어 쥰의 모친이 실은 자살이 아니라 에본느가 죽인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떠오르고 있음을 들었다.
돌겠군. 전 공작이 보관하고 있던 두 장의 계약서를 들추어보다 그녀는 웃었다. 가관이지, 참. 그러나 이제 와서 사교계에서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가 생길 터. 소문과 관련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하고 있다.
그 즈음, 그러니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려는 때, 시드니는 백작위를 승작했다. 포르타 백작은 스물아홉 살의 장남을 둔 것 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그보다 더 젊었던 에본느의 부친이나 베르덴의 부친이 더 일찍 사망하였으니 기묘할 따름이다.
에본느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에도 시드니에게는 당연히 진심어린 축하와 위로를 건넸다.
============================ 작품 후기 ============================
쓰던 것도 다 지워버리고. 음. 전개 위주로 빠르게 빠르게.
외전 힘들어....... 빨리 에브가 죽었으면 좋겠다.......(막말)(독자님들께 끌려감)
예쁜 코멘트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초고! 자유연재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