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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꽃 작가님-64화 (64/157)

00064 CHAPTER 6. 연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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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괴물들 탓에 나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발악했다. 조금만 더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내 눈에 보인 건, 기사들이었다.

“…….”

그 기사들마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보고 살짝 곤란해진 내가 결국 광역 마법을 쓰게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대량으로 빠져나간 마나 때문에, 무기로 입은 부상과는 별개로 힘이 쪽 빠졌다. 그런 마법을 쓰고도 멀쩡하게 서 있을 체력이 없었다. 말했지 않은가. 나는 강하지 않다고. 내가 기사들에게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으란 말도 전하라고 해야 했는데, 잊은 결과가 이것이다. 이십 년 조용히 감춰온 게 어떻게 이렇게 드러나나.

뾰족하게 갈린 얼음이 쏘아져 내려와 박힌 시체들은, 덤덤하게 볼만 했지만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독물로 하려 했으나, 상황이 급박했던 것과는 별개로 독물로 했다가는 내가 몹시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한 후였다. 여러 번 상상해왔던 상황이기도 했기에 선택과 대처는 침착했다.

독물이 곤란해진다는 것에 관해서는, 그, 저 기사들 중 누구 하나라도 배신해 보라. 전 공작이 독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금이라도 지레 찔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후에 독물 마법 같은 건 모른다고 할 실마리 같은 건 남겨두어야지.

그러나 상황이 이리 되고 나서도 조금 아쉬운 것은 기사들의 존재 자체였다. 그냥 얌전히 전투 현장 바깥에 있었으면 내가 알아서 도주했을 것을. 일찍이 텔레포트 하지 않은 내 실수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렇게 될 것을 반쯤은 예상하고 있던 바.

저 기사들이 모두 여기서 죽기까지 기다린 후에 텔레포트 한다 하는 방법은, 음, 글쎄. 생각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 기사들은 이번 세 달 간 맡았던 일이 있고, 한두 명은 여전히 맡고 있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같이 능숙하고 당분간 믿을 만한 사람이 아직 필요하다.

요컨대, 마법사임을 알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뜻이다. 근거만 잡히면 이 산에 올라오려 하던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고.

“각하.”

“아, 잠깐만.”

숨을 고르던 나는 손을 들어 기사를 막았다.

들킬 각오를 했던 게 영 쓸모가 없었는지, 내가 지금 자조와 후회부터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나마 싸우는 중 흐르던 웃음은 기사들을 본 순간 쏙 들어갔기에 지금은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했다.

그리고 기사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 약 가져온 거 있나? 지혈제든 진통제든 치료제든. 모든 약을 환영하네.”

이미 목소리는 다 죽어가고 있었다.

위엄 있고 늠름하게 서 있고 싶었지만, 오기를 부릴 수 있을 정도는 이미 넘었다. 아직 아드레날린 덕분에 몸이 고통을 제대로 자각 못한 모양인데 그래도 아프다. 피 철철 흐르고 있어. 땅에 꽂은 검을 지팡이 삼아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나에 비하면 훨씬 덜 다친 기사들이 부랴부랴 내게 다가와 곳곳에 약을 부어주었다. 나는 체온 유지가 어쩌고 하는 것은 잠시 잊고 코트와 셔츠의 단추를 풀어 약이 복부에도 충분히 닿도록 했다.

끝 뭉툭한 몽둥이가 살을 깊이 파고들었던 환부를 내려다보다 피식 웃었다.

역시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

일반적인 약의 약효가 이러니, 내가 이 산에 묻어둔 약들과 내가 가진 해독제는 만능에 가까운 무언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새삼스럽게 감동이다.

이어 할리는 내게 허락을 받은 뒤, 힘을 잃어 떨리는 내 손을 대신하여 단추들을 꼼꼼하게 잠가주었다. 이제 내려갈 때였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나는 마나를 쥐어짜며 입을 열었다.

“지하감옥. 살피고 있겠지.”

“예.”

“돌아가면, 타르디프경이 남은 두 자를. 처리해.”

“존명.”

“경들 전부, 마법에 대해선 함구하고.”

“존명.”

그리고 쥐어짠 마나로 창들을 없앴다. 자연스럽게 녹기 전에 누군가가 온다면 내가 곤란해진다. 마법사조차도 얼음창을 이렇게 수십 개 만들어 본 적이 없을 터.

창의 제거 직후, 내가 내 몸을 그나마 세우고라도 있을 수 있던 여지조차 이제 사라졌다. 버티지 못해 휘청거리기 시작한 다리가 결국 접혔다.

“각하!”

“하…….”

온몸이 피범벅인 사람은 나뿐이라, 피가 굳어 나만큼 사지 뻑뻑한 사람도 나뿐인 것 같다. 저 자유로운 움직임들이 일순 고까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도록 살해에 몰두해 있던 내 미련함도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나온다.

그러나 그런 투정도 부릴 곳을 구별해야 하리. 괴물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하산해야 했다. 나는 주저앉은 채로 검을 뽑아내 검집에 갈무리했다. 문제는 걷는 데 가장 중요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분한 숨을 내쉬었다.

“아, 이거 안 되겠군. 누구 힘 남은……, 사람 있나? 업혀야겠네.”

더듬더듬 문장을 완성했다. 업히지 못하면 기어가거나 굴러서라도 가야지. 그러나 다행히 가엘이 즉시 나섰다. 상당히 고맙게도 내 앞에 있던 할리를 비롯해 여기 있는 모든 기사들도 나섰으나, 내 눈길이 가엘에게 바로 갔다고 하는 게 차라리 옳은 말이겠다.

그를 택해, 그의 등에 업혔다.

가엘은 넉넉한 힘으로 나를 들어올렸다. 이거 고맙네. 그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검을 다른 기사에게 맡기는 게 좋지만, 나는 검을 내가 들기로 했다. 나를 업느라 손이 묶인 가엘을 대신해 급히 방어할 무기 정도는 남겨두어야, 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핑 돈다.

“……가세.”

그새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하자, 기사들은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들도 지쳐있긴 매한가지일 텐데도 움직임이 빨랐다. 이 상태에서 다른 괴물들을 마주치면 지독하게 곤란해진다는 것은 어린 아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해가 거의 다 졌다. 푸른 어둠이 내려 아직은 가시거리가 낮과 비슷하지만, 더 진하게 어두워지기 전에 입구까지 내려가야. 한다.

동굴에서 출발한 시각을 다섯 시 즈음으로만 잡아도 다섯, 여섯 시간을 써서 그 동굴까지 온 건데, 우리가 입구에 도착하기까지는 체감 상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겨우 그 정도 거리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참, 수색을 얼마나 세심하게 하며 올라갔는지.

그리고 그 한 시간을 보내며 내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러나 축 늘어진 와중에도 라이네의 검은 끝끝내 놓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지키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지켜야 해. 아직은 버틸 만 했다. 장하게도 기사들이 타고 온 말들은 길을 이리저리 떠돌고는 있었으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기사의 도움으로 가엘은 먼저 말에 오른 뒤, 나를 받아 안았다.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가엘을 기둥 삼아 그에게 거의 온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말에 반대할 수가 없다. 블린성까지는 말 달려 삼십 분 거리, 신전까지는 그 절반. 기도가 시급한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성으로 돌아가서 신관을 불러오는 것보다야 그편이 훨씬 시간절약이 된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는 겉옷을 벗어 내 얼굴에 씌워주었다. 내가 가진 검이 드디어 다른 기사에게 넘어갔다.

이 산에 올 때보다 공기는 훨씬 차가웠다. 그것은 시간 탓도 있을 테고, 달아오른 내 몸 탓도 있을 테지만 올 때처럼 말 달리는 동안 얼굴이 얼어붙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대신 두구두구두구, 말발굽이 땅을 박차는 소리들이 내 심장을 먹먹하게 했다. 저런 소리조차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숨이 가빴다. 아, 내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음독했을 때를 제외하고 이토록 크게 부상당했을 때가 별로 없었는데.

간만의 고통이 미치도록 낯설었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신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세상에. 각하.”

내가 누구에게 업히는지, 누가 탄식하는지, 누가 염려를 하는지, 눈을 떠 보고 느끼면서도 인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에 누워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눈감은 채로 이곳은 신전이며 기도를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는 것까지 느리게 추리했다. 한결 숨이 편해졌다.

누군가 내 오른 손을 잡자 나도 손끝을 구부렸다. 나지막하게 웃은 신관은 다정하게 내게 말했다.

“오늘은 성으로 가지 마시고 여기서 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찬성일세…….”

조금만 움직여도 토할 것 같다. 꾸역꾸역 동의하자 신관은 다시금 웃었다. 나는 신관이 내 손을 풀고 얼마 있지 않아 거의 기절하다시피 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쉬었을까. 나를 흔드는 손길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때는 한밤, 초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신관이었다. 나는 잠들기 전보다 나아진 바가 그다지 없는 것 같은 열을 느끼고 입을 벌렸다.

한숨이 뜨겁다. 그러나 신관은 나를 보며 흐리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달이 참 밝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기 좋은 밤이지 않습니까?”

“…….”

나는 멍하게 그를 응시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고, 그 말을 이해한 후에는, 솔직히, 한 대 치고 싶었다……. 이런 순수한 투기는 또 간만이었다. 심지어 아파서 앓아누운 와중인데.

============================ 작품 후기 ============================

용량은 적지만, 일단 끊습니다.

초고입니다. 수정은 다음편까지 다 쓴 후에!♪

자유연재입니다:D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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